|
'공무원 문학상'의 제출할 작품을 퇴고를 마치면서, 공직퇴직후의 취미로
정자문학을 즐겨하였으며, 무등산의 산록과 영산강변의 풍광이 좋은 자리에
우뚝 서있는 정자와 문인묵객들의 주고받은 시에 반하여,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항상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노력을 하였다.
5.25일까지 공무원 관리공단에 제출할 원고를 퇴고를 마치면서 여기 삶방에
올리기도 하였지만 ,그글을 토대로 보충하고 줄일것은 줄이고 하여 오늘 비가
내리는 한적한 시간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 4시에 99%의 원고를 탈고하였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고 ,삶방의 방제에 맞지않아 읽어보실분만 보시고나면
글을 내릴까 합니다 글의 제목 : 영산강변의 영모정과 백호임제문학답사기 이며
고전문학이라 사실은 관심이 없는 분들은 재미가 없으며, 고향의 향촌의 자료를
많이 참고하여 글이 대중성이 없으며 ,또한 몰랐던 부분을 알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 글이 내컴에 저장된글을 가지고와서 글이 깔끔하지못함을 죄송
스럽게 생각하며, 백호종중의 도유사분께서 많은 자료를 저에게 제공이 되어
이러한 글이 나오게 되었으며 , 이미고인이 되신 고) 임동열 선생님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리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전문학 교수님들에게도 고전문학에 눈을 뜨게 하여주신 큰 은혜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림니다 .
공모주관 :공무원 연금관리공단
참여 대상: 전.현직 공무원,무기계약 및 기간제 직원
참가부분: 시.시조 수필.단편소설.희곡.동시 동화
--------------------------------------------------------------------------------------------------
영산강변의 영모정과 백호임제 문학답사기
---호남 문학의 기행(1)----
현대사회에서 수 많은 차량과 도시화 속에 아파트 주거생활의 변화,삶의 가치관의변화로 현대사회는 경쟁의 치열한 속박속에서 우리 인간은 각종 전자매체의 발달로 순수하고 서정적인 우리들의 삶이 퇴락하여 가고 자기 자신을 잃고, 환경의 파괴,몰
인정한 인간성의 상실속에 핵가족의 대두,고령화의 사회문제, 전국의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어 지방의 인구와 경제가 소멸화 되어가는 작금의 현실 속에 우리 인간의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우리사회의 각 종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면서 자신의 삶을뒤돌아보고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풍광이 좋은 송림(松林)과 산수속에 백로(白鷺)는 푸른 창공을 차고 어디론지 짝을 지어 나르고 있어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속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장소는 ‘정자(亭子)“만 한 곳이 있으랴! 고고한 선대의 선비들의 삶의 유휴공간이며, 현대의 삶의 청량제 같은 곳이기도 하며, 담(潭) 아래 샘물에서 맑고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신 듯 하기도 하다.
호남지방에는 무등산변의 산록과 영산강변을 따라서 유독 수 많은 정자들이 즐비하게 산재 되어 있어 선현들의 삶과 문우지기로 시(詩)로 주고 받으며 아름다운 유휴(遊休) 공간으로서의 모습을 느껴 볼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시조문학과 가사문학이 발달하였으며 거기에는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어부사시사’‘금쇄동기’가 있으며 절해의 고도(孤島) 남해안에 있는보길도에는 세연정'이 있으며 어부들의 생활속에 ‘어부사시사’를 노래 하였으며, 무등산 자락에는 면앙’송순의 ‘면앙정가’를 이어받아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외 다수 등의 작품들이 찾아 볼 수가 있어,가사문학의 꽃을 피우고 ‘가사문학관’이 세워져 가사문학의 고장으로도 손색이 없고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의 정자들이 있어 계산풍류(溪山風流)의 모습을볼 수가 있다. 담양에는송강 정철의‘송강정’‘면앙정’장성의 요월정 영산강따라 나주 회진의 영모정.벽류정.소요정,칠두정,영산강 하구의 몽탄의 식영정 등이
정자문학의 산실로 누정문학의 공간으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때는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활동을 하여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꿈을 펼치다가 당쟁과 사화에 밀려서 한가한 고향의 산수가 아름답고 산자수명한 풍광이 좋은산이나 강변에 정자(亭子)를 지어 놓고 서로 글을 주고 받으며 유유자적한 삶을이어가고 있으며 향촌사회의 선비로 향촌의 교화와 때로는 재야세력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무등산 자락을 따라 서해로 흘러가는 영산강변에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나고 풍치가 아름다운 영산강변의 정자중에서 호남에서 손꼽히고 유서 깊은 ‘영모정’(永慕亭-지방문화재 제112호))을 찾아 중심적으로 정리를 해 보고 져 한다.필자는 원래 누정문학을 공부해 보고자 나주향토문학에 관심이 많아 영산강 줄기를따라답사를 계속해서다녔다.또한나주향토문학회에서발간한"樓亭題詠"을 확보하여 나주지방 정자를 찾아공부를 하여 보고자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 이후에도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에 가입하여 고향의 향토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물론 필자의 12 대조 시서 김선(金璇)도 나주금성산변의 죽림에 오락정(五樂亭)을 세우시고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수 많은 한시와 상소문 그리고 시대를 걱정하고 자연을 완상(玩賞) 하시면서 게학대(憩鶴臺)에서 글을 쓰시면서 올바른 선비로써 당.후대에 추앙받는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훌륭한 선대의 학문과 영산강변의 정자에 소장되고 있는 훌륭한 시(詩)들을 찾아 다니며, 그 유적들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관리를 하여
산수가 아담한곳에 시비를 세우고 현대인들이 읽을수 있도록 책자도 발행할 생각이다.
영산강구비따라한 정자(亭子)를찾아드니
돌하나기와한 장고색이창연하여
오늘도선인의문기(文氣) 훈훈하게감돌고,
편액에새긴시정(詩情) 풍류가넘치는듯
청아한목소리에 속진(俗 塵)이씻기는듯
지나는바람한점도예사롭다하리오.
-------이하중략------------
이 글은 "慕亭"이란 책자에 찬가로 허연(許演)님이 쓰신 글이며 ‘영산강유역18대정자 연혁기’에서 정자를 관리하는 후손들에 의해 발간된 책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으로는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93 번지 마을로 들어가는 풍호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4년봄에 개관한 백호문학관이 임백호 선생의 탯 자리에 사업비 33억으로 세워져 개관을 되었으며 백호 선생의삶과 그리고 사상, 문집 등을 살펴 볼 수 있는 문학의 공간으로 현대식으로 세워져 있으며 영산강변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명실공히 영모정과 한테 어우러져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영모정의 앞으로는 영산강의 물결이 흐르고 ‘강 건너 노총각과 택촌마을의 처녀의 사랑’의 전설이 서려 있는첩첩의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앙암바위 앞을 돌아서 서해로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아침저녁으로 석양에 비치는 곳에 범선(帆船)의 노도(櫓棹)소리에 장강(長江)의 백사장에 백로들이 더 덩실 춤을 추니금성(錦城) 팔경의 제일인지라 백리의 푸른 물결이 출렁거리며 청풍이 고색창연한 정자에 스며들며 심금이 쇄락하여 문우지기들이 음풍농월(吟風弄月)하기 그지 없으며 5백년이나 되는 홰나무들의 모습은 옛선현들의 지조 높은
고고한 삶의 모습을 대변이나 하는 듯, 선현들의 살아오신 삶의 모습들이 그려지면서 말없이 영산강을 바라보며 영모정을 지키고 서 있다.
영모정에서 영산강변을 향하여노산 이은상선생님이 글을 지으시고 김충현 선생이 글을 쓰신백호 선생의 기념비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으며, 임백호의 '금성곡(錦城曲)'과 '물곡사(勿哭辭)'의 시비와 그리고 국회의원을 지내시고 임백호 추진사업회 회장이며14 대 후손이신 임인채님이 쓰신'회진가‘시비가 영모정 주변에 세워 져 있다.
원래 이 정자의 터는 귀래정 임붕(林 鵬)이 ‘귀래당’을 짓고 지방문우들과 ‘금강십인계’를 조직하여 자주 시회(詩會)와 정자 앞 영산강에서 선유(船遊)를 하는 곳이며 명종11년(1556년)에 그의 아들 풍암 임복과 셋째 아들 임진이 이 터에 부친의 삼년의 시묘살이를 마친 뒤에 선친을깊이 사모하여 정자를 새로 짓고'永慕亭'이라 하였다.
정자 안에는 원운은 풍암 임복이 하였으며 차운은 설강 안현. 시서 김선(필자 12대조), 석촌 임서, 창암 박사해 등의 시문이 남아 있다. 위 정자의 주인공인 귀래정 임붕(林鵬)을 위하여 두 아들인 임복과 임진의 영원히추모하는이 정자인 영모정(永慕亭)에서는조선중기를 풍미한 임붕의 손자인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문학사에 널리 알려져 있다.
임제는 명종4 년에 나주에서 병마절도사를 지낸 임진과 어머니 남원 윤씨의 맏아들로 태어 났으며,조부 임붕은 중종 기묘사화때 조광조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상소를올린 정의로운 선비였다. 소년때에는 호방하게 지내다가 대곡성운(成運) 선생의 지도 아래 학문의 길로 들어섰고 속리산 대자연의 감화속에서 천성을 기르고 공부를 하는 동안 사상과 인생관이 터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백호 임제는 28세에 생원과 진사를 29세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탄탄한 벼슬길을 약속 받아예조정랑을 지냈으나,양당의 당파 싸움을 개탄하고 관리들의 부정 부페에 염증을 느끼고 옥봉 백광훈과 허균의 스승인 손곡 이달(李達).허봉등과 어울려 명산대첩을 주유하며 산과 물을노래하고 다니다가 1587년 39세의 일기로 짧은 일생을 마쳤다.
사대주의와주자학적 세계관을부르짖는 민본주의 사상에그 뿌리를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풍류남아인 백호는 애국충절 또한 남 달라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작품과 기녀들과의 사이에 로멘스도 적지 않아 많은 염정시를 전하고 있고, 그의 시풍은대단히풍류적이며 호탕하고 활달하여 면앙송순을 계승하고 황진이와도 통하는 데가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어난다.
홍안은어디가고백골만 묻혀나니"
잔잡아 권할리 없으니 그를 설어워 하노라“
라는 시조 한 수로 평안도 평사로 부임하는 길에 송순의 잔치 자리에서 만난 일이 있는 명기 황진이를 찾아 갔으나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용모가 단정하고 시문에 능하였던 황진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혼자 잔을 기우리며 인생의 무상과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일게사대부로써 관리로써 임지에 부임하지 않고 기생의 묘에서 잔을 기우렸다는 일로 관직에서 봉고파직을 당하는 일이벌어지고 말았다.
기생 한우(寒雨)와의 주고 받은 ‘한우가(寒’雨歌)'가 있으며,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고 하여 아직도 겨울인 정치 풍토를 비유하고, 한우 기생과의 운우(雲雨之情)을 나누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도 조선사회에서 사대부와 기생들의 주고받은 시가 남아 있어,황진이를 비롯하여 한우,매창 ,홍랑등의 시들이 국문학사에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백호 임제는 한시가 720 여 수가 있으며 그의 한시 가운데"금성곡(錦城曲)‘ 과'무어별'(無語別)과 남녀의 이별을 한 노래와 우국충정을 노래한 '잠령민정'의 시가 있다.
무 어 별( 無語別)
열다섯 아리다운아가씨 十 五 越 溪 女
남 부끄러워 말 못하고 헤어 졌고야 羞 人 無 語 別
돌아 와 중문을닫고서는 歸 來 掩 重 門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泣 向梨 花 月
백호 임제는 법도 밖의 인물이어서 매양 속세를 눈을 흘려 보며 공명을 비웃던 사상이었으며 마시고 시를 짓고 시조를 읊으며 노래하고 옥소를 불고 가야금을 타던 멋과 정한의 시인이다.해학과 풍류의 문장으로 정치의 흥망의 득실을 풍자하는 경세의 문장가이다.
그의 한문소설로는 ‘수성지(愁城誌)'와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화사(花史) 서옥기(鼠獄記)등이 있으며,원생몽유록에서 세조의 불의를 규탄한 대의를 외침인 부조리를 합리화한 현실의 비판이고,‘수성지’에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인격화하여 관념세계의 변함을 그대로 그려내는 철학적인 작품들이 유일하게 화훼(花卉)를사람에게 의인화하여 공명사회를 바라는 정치사상이며,‘서옥기’에서는 늙은 쥐가 자기들의 새끼쥐들과 함께 관가의 창고에 들어가 곡식을 파 헤쳐 먹으며 배불리 먹는 당시의 관리들의 부정부페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사방에의나라마다 황제라 일컫는데오직조선만이 자립하지 못 했으니 살아 무엇하며 죽는다 한들 무슨 한이있으랴!
곡 하지 마라 " 임종에 끼친말로써 공이얼마나 자주독립 사상 이었던 줄을 알려 주는 뼈저린 한 마디인가?
공의 성품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남에게 속박당하지 않는 성품으로 세속에서 벗어난 성품 때문에 외손이며 공의 묘비를 쓰신 외손자 미수 허목은 법도외인(法度外人)으로 지칭하였으며, 당시의 붕당의 페단을 비판하고,관리들의 부정부페를 고발하는하는등, 권문세가에 아부하기를 거부하고 절의가 높은 기개가 높은 절세가인의 풍모를 가졌던 인물이며, 그 짧은 기간에도 750여수의 한시와 ‘수성지’외 4편의 소설과 수필문학과 부(賦)의 글들과 우리들의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들로 유명하다 마침내 임진란 5 년 전인 선조 20년 1587년 8월11일에 영면하시니 향년 39세라 !인생은 이 같이 짧았을지라도 그 뜻과 문학은 천추에 길이 전 할 것이다
그의 기념비의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에서는
"멋과 정한의 시인 백호 선생이여 깨끗한 그 모습 구름 가듯 물 흐르듯 하늘 복판에 달 가듯 하였도다 자주독립의 사상인 백호 선생이시여 사나이 높은 기개를 꺾을수 없었기에 만인이 우러러 보았도다.”
그의 묘소는 신걸산 중턱에 유택을 마련하여 말 없이 영산강을 바라보고 있지만,짧은 삶을 살다가셨지만 시대를 뛰어 넘는 사상과 통찰력으로 영원한 자유인으로 ,우리들의 가슴에는 영원히 기억 되시는 분이시다. 그의 묘갈비는 외손자 ‘허목(許穆)’이 지었다.
參考文獻 : 1.시조와 가사의 해석 : 2004년 도서출판 역락. 류연석 저
2. 고전시가 강독: 201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윤덕진.손종흠 공저
3.慕亭會 沿革記(영산강유역18정자연혁기) :1999 년.모정회
4.樓亭題詠 : 2002 년 나주향토문학회 발간
5.소설 임제 1.2 .3권 2001년 도서출판 창해 임찬일 저
6. 白湖 筆蹟: 2006년 나주임씨백호공 종중 임동열.임채남 공동편저
7. 白湖文學 (수필.소설): 1996년 나주임씨백호공문중.임재 저(임형택 .신호열 번역)
8. 白湖 林悌 詩集: 2007년 나주임씨백호공문중 임동열 (사)한림문학재단.도서출판 한림
9. 市西 遺稿 : 2003년 나주시.동신대문학연구소.김종섭 번역
10.鼠獄說(소설): 나주임씨 백호공문중 김관웅 역주
11.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고전문학 교재
12. 나주임씨 대동족보: 나주임씨 종중
13.내고향 다시 누정과 문학: 2016년 나주다시 향토문화연구회
|
첫댓글 공무원 연금지에서 동구리님의 글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워낙 글을 잘 쓰신분들이 많고 ,저 같은 아마춰어는 참여하는데
목적을 둘 뿐입니다
그안에 노력을하였고 고향의 향토문학을 하였다는 것으로 족하며
즐거움을 노후에 찾고져 합니다
늘. 항상 동구리선배님의
글 읽다보면 훈륭하신 선배님의
글내용중에서
우리 할아버지를
만난 느낌이듭니다.
꼭 공무원 연금지에 선배님의
글을 만나 읽게 되길 빕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과찬에 ......
공무원 문학상의 대상이 대통령상입니다
숫자로보면 대상1, 금상 6명 국무총리상입니다
은상 ,20명, 동상 20 아마도 총 50명에 가까워서 책자로 발행을 할것같습니다
좋은 글을 쓰신
열정과 지혜 지식
에 감탄했어요.
문학상을 꼭 받으
실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까지 부
기한 글을 보고 학
자이심을 인증합니
다.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비가 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격려와 과찬에 ...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늘 새로운 문학 세계로
진입하시는 듯 한
선배님의 열정에 감사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격려에 힘이 됩니다
원고가 거의 완성이된듯
합니다.
얼마전 나주에 들러서 나주곰탕과 역주변 유적지를
돌아 보았지요.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고향에 오셨으니,
그향의 흙냄새 많이 맡으시기 바람니다
역시 나라를 사랑하시고
고향을 사랑하시는 동구리님을
존경 합니다~~♡
아이구 ...
과찬에 ,그냥 노후의 심심푸리입니다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신 글 ᆢ 분명
공무원 문학상에 장원이 되실겁니다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주옥 같은 문장,ᆢ
감탄하고 물러갑니다
위로와 격려에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