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22. 경북 영양 지역 문화답사를 다녀왔다.)
한양 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은 일월면 주곡리에 있다. 돈간재로부터 버스로 15분 정도가 걸렸다.
큰 길가에 버스를 주차시키고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걸었다.
주실마을에서 찾아보아야 할 중요 지점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기 좋게 열지어 있었다.
호은종택 (壺隱宗宅) , 시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호은종택의 대문을 통과하자 나타난 건물의 전면부. 전면 건물(사랑채)의 가운데 있는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과 안채가 나온다.
( 안채 건물 3건 사진: 김순태)
호은종택에서 나와 조지훈문학관으로 이동했다.
문학관 우측에 부착된 호은종택의 사진을 다시 찍어보았다. 종택의 대문 정중앙에서 몸을 돌리고 멀리 바라보면 맞은편에 문필봉이 보인다고 한다. 문필봉이 있었기에 조지훈같은 대 시인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지훈문학관' 현판 글씨는 지훈 선생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쓰신 것이라 한다.
조지훈 문학관 건물은 ㅁ 자형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청동소재의 지훈흉상, 그 배경으로 지훈선생의 대형 사진이 있었다.
조지훈은 1939년~1940년까지 『문장(文章)』지에 「고풍의상(古風衣裳)」,「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로 추천된 시인이다.
지훈 선생의 육필원고, 필체가 단아하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3인 시집 <청록집>(1946). 이 시집에서부터 '청록파'라는 문학파의 명칭이 나타났다.
수필집 <돌의 미학>
조지훈 선생 가족 사진
조지훈 선생의 부모님
조지훈 선생의 부인 김난희여사는 서화가, 지훈선생의 시작품을 아내의 글씨로 채웠다.
지훈의 아내 김난희 여사가 남편의 시작품을 서예로 썼다.
지훈의 <완화삼>과 목월의 <나그네>
조선일보 '만물상' 2006. 6. 6에서
조지훈 본가- 어린 시절의 지훈(조동탁)이 자라던 집을 복원했다.
고을학교에서 주실마을도 간다기에 내심 신이 났었다. 지훈 시인의 고향을 찾아간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나의 중학교 시절 은사님, 조동걸 선생님의 생가가 그 부근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조동걸 선생님은 춘천여중 세계사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춘천교대 교수로 가시었다. 나의 중학시절, 조동걸 선생님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2017년 10월 17일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신문기사 를 보고 혼자 슬퍼했다.
조동걸 선생님
중학교 시절의 세계사 선생님
수업 시간 중,
칠판에 숫자나 모형 그려놓으시고
내 이름 부르시며
무슨 의미냐고 물으시던......
그건 그날 가르치실 내용의 상징 부호들
눈 마주치면
지긋이 웃어주시던
스승님...........
아주 먼 곳으로 떠나셨다는 기사를 대하다.
부디 편히 쉬소서 ( 2017.10. 19)
http://hankookilbo.com/v/ba5916140bd24ece8471cd6b34c9d27e
살림채의 안채. 대청마루 천정 쪽에 옥천고택이란 현판이 있다.
다시 살림채의 전면으로 나왔다. 온돌방 앞의 아궁이, 그 옆에 나지막한 굴뚝이 지근 거리에 있다.
살림채 오른 편 산쪽에 사당이 있다. 돌담이며 사당 건물이 단아하다.
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당, 초당 난간으로 오르는 계단. 큼직한 돌덩이로 쌓아올린 계단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다.
초당에서 본 전경, 눈이 시원해졌다.
옥천종택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려다보니 또 다른 골목이 열리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國士滄斯公이라........누구일까 . 주실마을이 생성된 것은 4백 여년 전, 조광조의 친족 후손, 한양에서 조전이 사화를 피해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창주정사, 지금은 모두 빈 집. 대청마루에 먼지가 부옇게 끼어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골목길은 텅 비어 있었다. 잠시전 까지만 해도 같이 종택을 둘러보았던 도반들이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달려야 했다. 마침내 버스가 눈에 들어왔고, 마지막 한 사람, 지각생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버스에 올랐다.
국사 창사공( 國士滄斯公) 은 누구일까.......
영양읍내로 나갔다. 돌솥 백반정식 상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생선구이, 가지튀김, 애호박전, 김치 모두 입에 달았다. 삼복 더위에, 폭염경보가 내린 날, 땡볕 아래 문화유적들 찾아다니며 보고 읽고, 사진 찍고.....
류규형 선생이 손수 담근 백화주를 가져오셨다. 전에도 한 번 그분이 직접 담그신 술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백가지 꽃을 넣어 빚은 백화주(百花酒)는 불로장생주라, 그런데 류규형 선생은 애초에 128종의 꽃을 넣어 술을 빚었다가 여기에 다시 5가지 새로운 종류의 꽃을 얻어 넣었기로 총 133종류의 꽃이 들어간 술이라고 했다. 워낙 다양한 향이 섞였기로 그 향에 대해서는 표현할 수 없고 입에 달고 뒷맛이 깔끔하고 좋았다.
133종류의 꽃이 들어간 백화주 3병 가지고 오셔서 28명(운전기사님 제외)이 나누어 마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