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석빙고 탐방일시 : 2008년 5월 11일 ♡
#01. 청도읍성 복원 탐방기에서 소개하였던 사진인데, 이 안내판이 서있는 구.도로에서
약 50m, 남산이 있는 청도향교 쪽으로 걸어가면 아래 사진의 석빙고에 닿는다.
#02. 석빙고 주위엔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다.
#03.
#04. 입구 바닥에 놓여져 있는 넙적한 돌들(아마 읍성터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닌가 한다)
#05. 석빙고 내부는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으므로 출입금지를 요한다.
#06.
#07.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08.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
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09. 석빙고 내부가 너무 지저분하여 차마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사진인용: 국내테마여행 최대여행정보/ 글쓴이: 참누리투어)
종 목 보물 제323호
명 칭 청도석빙고(淸道石氷庫)
분 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기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청도군 화양면 동천리 285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청도군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 출처 : 청도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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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석빙고(보물 제 66호)
보물 제66호. 1738년(영조 14) 부윤 조명겸(趙明謙)이 목조의 빙고를
석조로 축조하였다가 4년 뒤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는 빙고 입구
이맛돌에 '숭정기원후재신유이기개축'(崇禎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
이라고 새겨진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월성 북쪽의 둑을 잘라서 남쪽에 입구를 내고 안으로 바닥을 경사지게
했으며 바닥 중앙에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밖으로 빠지도록 했다.
내부는 동서로 홍예(虹霓) 5개를 틀어올리고 홍예 사이에 장대석을
걸쳐서 천장으로 삼았으며 북쪽 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천장에는
배기공을 3곳에 두었는데 지금의 배기공 위에 있는 석재는 근래의
수리 때 놓은 것이다. 출입구는 너비 201cm, 높이 178cm로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영조 때 만든 석빙고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그 중에서도 경주 석빙고가 가장 완벽하다.
겨울에 강에서 채취한 깨끗한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땅을 파고 만들었다. 이러한 빙고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이며 그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밖에서 보면
무덤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땅을 깊게 판 다음 안쪽 벽은 석재로
쌓고, 바닥은 경사지게 만들어 물이 빠지도록 되어 있다. 천장은
석재로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올려 궁륭형으로 되어 있고 환기
구멍이 있다.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안동석빙고(보물 제305호)·
창녕석빙고(보물 제310호)·
청도석빙고(보물 제323호)·
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
영산석빙고(사적 제169호) 등이
남아 있다.
[석빙고 유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얼음을 저장하던 시설은
신라는 오래전부터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는데, 삼국
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부터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으며,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지증왕(智證王) 6년(505년) 11월에 유사에게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석빙고 구조]
첫번째는 천장 구조입니다. 화강암의 천장은 1-2 미터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이치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그 사이에는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입니다.
두 번째는 환기구입니다. 위쪽에 설치된 환기구는 에어포켓에
갇힌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데. 이것은 바로 더운 공기는
위로 뜬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죠. 이렇게 해서 석빙고 내부의
온도는 한여름에도 0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얼음에 치명적인 물과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배수로입니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하여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는 밀집, 왕겨, 톱밥 등을 단열재로 채워 넣어 외부열기를
차단하였고 거기에다 외부의 잔디는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
전달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어 석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에도 거의
녹지 않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 출처 : 신라역사여행 /
글쓴이: 최원호님
♬ 님 그림자 -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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