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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16구간]
☞ 한티재-길등재-깃재-칠보산-광비령(애미랑재)-통고산-답운치 ☜
- 隨處作主 入處皆眞 : 金剛松의 기품과 함께 유순한 정맥길 30km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16구간[한티재-답운치]
◆ 일시 : 2006. 6. 2.(금)/3.(토)[무박산행]
◆ 날씨 : 아침 안개/오전 8시 이후 맑음
◆ 종주경로 : ☞ 한티재(446m)/88번국도 → 길등재(527m) → 612.2m → 884.7m → 깃재(748m) → 새신고개(759m) → 칠보산(974.2m) → 애미랑재(광비령, 605m)/917번지방도 → 937.7m → 통고산(1,066.5m) → 답운치(619.8m)/36번국도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4:05 현대오일뱅크 한티재주유소 출발
△ 04:07 한티재 출발
△ 04:17 묘1기
△ 04:36 봉우리/벌목지대
△ 04:45 묘1기
△ 04:50 길등재/1차선 포장도로
△ 04:53 안부4거리 직진
△ 05:03 612.1m/삼각점(소천 463, 2004재설)
△ 05:20 공터봉우리
△ 05:54 분기봉/우능선
△ 06:06 850.5m봉 갈림길
△ 06:40 분기봉/좌능선
△ 07:00 884.7m/헬기장/2등 삼각점(소천 25, 2004재설)
△ 07:08 봉우리/우 내리막
△ 07:17 봉우리/좌 내리막
△ 07:29 봉우리/우 내리막
△ 07:41 깃재/24분 아침식사 및 휴식
△ 08:05 깃재 출발
△ 08:25 10지 춘양목
△ 08:47 고만고만한 봉우리 4개 지나 헬기장
△ 09:08 새신고개
△ 09:30 칠보산 전위봉
△ 09:46 칠보산(974.2m)/삼각점(소천 306, 2004재설)/15분 휴식
△ 10:01 칠보산 출발
△ 10:24 묘1기
△ 10:45 절개지
△ 10:49 광비령/애미(매)랑재/2차선 포장도로/11분 식수 보충 및 휴식
△ 11:00 광비령 출발
△ 11:23 봉우리
△ 11:47 사면끝/7분 휴식
△ 12:00 분기봉/우 내리막
△ 12:23 헬기장 터/우 내리막
△ 12:30 937.7m/삼각점(소천 429) 안내문 표지판
△ 12:43 임도 통과
△ 13:15 분기봉/헬기장터
△ 13:17 왕피리 갈림길
△ 13:21 무인감시탑
△ 13:22 통고산(1,066.5m)/정상표석/20분 휴식
△ 13:43 통고산 출발
△ 13:50 등산로 갈림길 직진
△ 13:58 봉우리/우 내리막
△ 14:05 봉우리
△ 14:10 임도 통과
△ 14:22 889m
△ 14:25 분기봉/우능선
△ 14:57 봉우리
△ 15:01 헬기장터
△ 15:16 봉우리
△ 15:21 봉우리/우 내리막
△ 15:28 마지막 봉우리/헬기장/10분 막걸리 분음
△ 15:42 답운치 도착/산행 종료
◆ 산행거리 : 30.6km[『사람과 산』자료 참조]
☞한티재-2.7km-길등재-1km-612.2m-6km-884.7m-6.5km-칠보산-2.3km-애미랑재(광비령)-3.6km-937.7m-2.4km-통고산-6.1km-답운치◀
◆ 산행시간 : 11시간 37분(아침식사 및 휴식 포함)
◆ 형태 : 德七이 합동산행[서고문, 창암, 김진태, 오르고파, 대왕, 윤비, 천사, 돌범, 뚜벅이, 나푸른솔, 김수영, 김익수, 허공, 흑기사, 록수, 들꽃, 토끼, 주유천하 :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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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문득 먼데 하늘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허둥거리는 시간을 하나씩 잡아 포개어 넣고
끈을 조이고 나면 긴장의 등짐 하나
나를 밖으로 떠다민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산에 들면서부터
숲이 내 키를 높여주면서부터
길들은 눈 크게 떠 손을 내민다
초록 옷 입은 길들의 몸을 따라가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할 일
그대로 두어 잠들게 하고
참을 수 없는 사연들
저절로 물 흘러 떠내려가느니
- 이성부, “길이 나를 깨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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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6구간의 포인트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6구간은 한티재에서 길등재-깃재-칠보산-애미랑재(광비령)-통고산을 지나 답운치까지 이어지는 30여km의 산줄기이다. 『사람과 산』의 종주지도집에는 이 구간 거리가 30.6km로 나와 있으나,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31.7km[답운치-6.4km-통고산-8.5km-칠보산-16.8km-한티재]로 나와 있다. 지금까지의 낙동정맥 종주 구간일정 중 제일 거리가 긴 구간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산세가 유순하여 거리에 비하여 생각보다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구간의 거리가 제법 길지만 그렇다고 중간의 애미랑재에서 구간을 끊을 경우 산행거리가 18km에 불과하고, 다음 구간 12km의 운용이 애매해지므로 애매한 애매랑재에서 구간을 끊을 것이 아니라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쭉 이어서 타보기로 한다. 산을 타는 시간보다 버스타고 오고가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려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구간도 지난 구간과 마찬가지로 낙동정맥 특유의 오지 산길을 걷는 길이다.
이 구간의 한티재에서 애미랑재까지는 영양군 수비면을 관통하여 지나가고, 애미랑재에서 937.7m봉까지는 좌측으로는 경북 울진군 서면을, 우측으로는 영양군 수비면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그 이후 답운치까지는 울진군 서면을 관통하여 지나간다. 그러고 보면 화매재 이후 네 구간째 영양군내에서 놀다가 울진과 봉화군내로 올라간다.
이 구간에는 산이름이 있는 산으로 칠보산(974.2m)과 통고산(1,066.5m)이 있고, 나머지는 무명봉과 고개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구간의 칠보산에서 덕산봉 방향으로 흐르는 73km의 덕산지맥이 분기한다는 점을 눈여겨볼만 한 정도이고, 울창한 숲 속에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특히 이 구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늠름한 금강송의 기품은 이 구간의 백미이며 키포인트다.
이 구간을 마치면 앞으로 낙동일정은 두개 구간이 남는데 6월 중순과 7월 초순은 장마철과 된통 겹쳐 어쩌면 우중산행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구간을 마치고 컨디션과 기상상황을 보아 답운치 인근의 옥방휴게소에서 1박한 후 다음날 답운치-석개재 구간을 주파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석개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교통편도 숙지하여 둔다. 석개재에서 봉화군 석포로 이동하여(히치 또는 택시로) 석포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타면 된다.
2. 낙동 오지의 진수를 보기 위하여
2006. 6. 2. 밤 퇴근 후 낙동정맥으로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이번 구간 거리가 길어 산행을 일찍 시작하기로 하고 통상의 시간보다 1시간을 앞당겨 밤 10시 30분까지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있어 얼음물과 막걸리 얼린 것 등을 단단히 준비하고, 배낭에 이것저것 쳐 넣으니 묵직하고 무겁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애미랑재 부근의 계곡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여름철 종주산행의 경우 어느 지점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지 챙겨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같이 땀을 많이 흘리는 작자는 물 소비가 많고 여름철 산행은 가히 물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구간에도 검마산에서 백암산 갈림길로 가는 도중에 갈증 때문에 혼이 났었다.
지난주에 낙남정맥 마지막 구간을 다녀오면서 쫄딱 비를 맞았던 터라 혹시 이번에도 비를 맞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어 기상청 사이트를 들락거려보았으나 이번 주에는 비가 내릴 조짐이 없어 적이 안심이 된다. 이제는 약간의 비는 몰라도 하루 종일 비를 맞는 것은 피하고 싶다.
양재동에서 오른 버스에는 산타래님이 타 있다. 산타래님은 한티재에서 남진하여 창수령까지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홀로 산길을 이어가는 정열이 대단하다. 대간이나 정맥은 한번 빠지면 여간해서는 그 거미줄의 구속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고, 골치 아프다. 나도 빨리 정맥의 구속에서 벗어나 나만의 산길을 걷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변 회장님은 함백산 아니면 대관령으로 가셨는지(?) 불참하셨고, 밤안개님은 회원들에게 불참 메시지를 날렸는데 혹시 늦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외에 steady member 중에 무흠님과 황초롱님, 경로님, 범털총무님 등이 업무관계로 불참하여 이번 구간 산행인원은 18명이다. 탱크님은 돈벌이에 바쁜 모양이고, 28인승 우등고속버스의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토끼님이 오랜만에 나왔다.
그러나 저러나 업무와 생업이 우선이지 산이 우선이 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산은 단지 우리의 생활을 감미롭게 하는 조미료에 불과한 것이지 산이 주식은 될 수 없다. 그저 맹목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산에 올라서도 산은 보이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데 있어서 집념과 집착은 불필요한 것이다.
버스에서 잠에서 깨어나 보니 2006. 6. 3. 토요일 새벽 3시경 경북 봉화 지역으로 와 있다. 중간의 휴게소에서 깨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흑기사님이 한숨 자지도 못하고 버스기사를 인도하여 영양에서 울진으로 가는 88번 국도상의 한티재주유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새벽 3시 50분이다.
눈치를 보며 산행 전 체조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들머리로 이동한다. 산타래님은 남진하여 창수령 방면으로 가고, 우리는 북진하여 답운치 방면으로 간다. 혹시 중간에 탈출할 사람들을 위하여 중간 지점인 애미랑재 인근의 남회룡교에 버스를 대기시켜놓기로 했다.
3. 여명, 그리고 안개 속에 아침 이슬을 털며 :
[한티재 → 깃재 : 12.3km//2시간55분]
새벽 4시 7분 한티재를 출발한다. 지난 구간보다 1시간쯤 일찍 출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표지기를 따라 야트막한 절개지 위로 올라서서 소나무 숲길로 빠져든다. 처음부터 고도차가 별로 없는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길이 이어진다. 묘1기를 지나고 이어서 또 묘를 지나면서 본격 정맥길로 들어선다. 땅 바닥은 보송보송하고 이슬도 없어 편하게 진행한다.
무박산행의 묘미는 하루를 여는 새벽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데 있다.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고,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짙은 밤중이다. 비록 어둠 속이라 주위의 산세나 풍경은 느낄 여지가 없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대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산행거리가 길어 긴장을 하는지 모두들 초장부터 속도를 내고 내뺀다.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들을 연이어 지나간다. 길의 방향의 요리조리 휘면서 나아가지만 길은 잘 나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어떤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우측으로는 벌목지대인지 휑하니 뚫려있다. 새들도 잠에서 깨어났는지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 지저귐이 시작된다.
내리막에서 묘를 지나 1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니 길등재이다. 이 도로는 최근에 포장했는지 좌측으로 공사가 중단된 지점이 나온다. 한티재에서 길등재까지 2.7km를 오는데 43분이 걸렸다. 시간은 새벽 4시 50분, 이제 랜턴불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날은 훤하게 밝아온다.
포장도로로 내려선 후 우측으로 보면 절개지 위로 올라가는 곳에 표지기가 달려있다. 오르막에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직진하여 오르막을 올라선다. 새 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벗하여 새벽 산길을 걷는다. 한 봉우리에서 내려선 후 오른 봉우리의 등로 우측에 삼각점(소천 463, 2004재설)이 박혀있다. 지도상의 612.1m봉이다.
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로 장송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몇 분 단위로 언덕 같은 오르막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주위에 소나무들이 많은 공터 봉우리에는 중위그룹들이 쉬고 있다. 잠시 쉬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언뜻 언뜻 등로 좌측으로 나타나는 장송, 금강송의 자태가 눈길을 끌기 시작한다.
운무속의 금강송
그런데 자욱하게 안개가 끼면서 나뭇잎에도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다. 빗방울인지 이슬인지 나무에서 후두둑 떨어지면서 혹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배낭이 무겁다고 우의를 빼놓고 온 게 마음에 걸린다. 이슬을 털어내며 걷다보니 금세 바지가 축축해진다.
850.5m봉 갈림길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 어떤 분기봉에서 좌측으로 뻗은 능선을 탄다. 고도차가 거의 없고 특색이 없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봉우리를 요리조리 지나다보니 현 위치 파악도 제대로 안된다. 헬기장이 있는 지도상의 884.7m봉에 올라 제대로 지도를 맞춰보기로 하고 자욱한 안개 속을 이슬을 털어내며 진행한다.
흐릿한 안개 속에 우뚝 솟은 금강송들의 모습이 수묵화처럼 신비감을 더해준다. 아마도 참암 이화백님은 좋은 화폭의 소재를 만나고 있으리라. 헬기장 봉우리에는 2등 삼각점(소천 25, 2004재설)이 박혀있다. 이곳이 지도상의 884.7m봉이다.
884.7m봉
안개가 걷히기를 기대하며 금강송을 감상하는 맛으로 진행한다. 간혹 송진채취흔적이 있는 금강송들도 눈에 띤다. 일제시대 송진으로 부족한 항공유를 대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뿌리에서 나온 금강송의 가지가 10여개로 갈리어 뻗어가는 것을 보고 혹시 이것이 10지춘양목이 아닌가 했으나 10지 춘양목은 깃재를 지난 지점에 있다.
금강송(金剛松)은 赤松 중에서도 수형이 곧고 재질이 단단한 소나무의 왕자이다. 더디게 자라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고 갈라지지도 않으며 강도도 높아 조선시대부터 우수한 목재로 인정받아 궁궐과 천년고찰의 대들보로 사용되어 왔다.
안개속의 금강송
조선시대에는 금강송이 자라는 경북과 강원도 지역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황장금산이나 封山으로 지정돼 엄격한 보호를 받았다. 경북 울진군 소광리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는 산림청에서 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하여 금강송을 보호하고 있다.
884.7m봉에서 10여분 단위로 고만고만한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니 깃재에 도착한다. 보통 생각하는 고개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잘록이 안부와 비슷한 곳이다. 나무에 표지기와 깃재 표찰이 달려있어 깃재임을 확인한다.
깃재
한티재에서 깃재까지 12km의 산길을 오는데 채 3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니 그만큼 편하고 유순한 산길임을 알 수 있다. 1시간에 4km의 속도라면 거의 평지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깃재 오른쪽으로도 어프로치를 많이 하는지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신내로 갈 수 있다.
깃재로 내려서니 신발에는 송화가루가 이슬에 범벅이 되어 잔뜩 묻혀있다. 원래 소나무는 암수 한 그루이다. 수꽃은 새가지 밑부분에 달리고, 암꽃은 새가지 끝부분에 달리고 달걀모양이다. 같은 나무의 수꽃이 암꽃에 날아가 닿지 않도록 암꽃이 위에 달리도록 되어 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동종교배가 이루어지면 열성이 나오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법이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깃재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식사시간을 갖는다. 안개와 축축한 분위기 때문인지 춥게 느껴진다. 천사님과 윤비님은 더덕을 잔뜩 캐고 왔는데 아마도 영등포에서 밤 모씨에게 상당량을 공출당할 것이다. 창암님과 토끼님까지 모두 도착하여 한 무리의 산꾼들이 깃재를 가득 채운다. 창암님과 토끼님은 애미랑재까지만 진행하기로 한다. 창암님은 널널하게 진행하면서 금강송의 자태를 화폭에 담을 구상을 하고 있다.
4. 하늘을 향해 치솟는 金剛松의 기개 :
[깃재 → 애미랑재 : 6.8km//2시간44분]
깃재에서 24분간의 식사 및 휴식을 마치고 오전 8시 5분 애미랑재를 향하여 출발한다. 이 구간에서는 칠보산을 넘는 게 포인트다. 그런데 깃재를 출발하여 진행하는데 안개가 걷히며 햇살이 쏟아지며 연초록 숲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광채가 신비롭다.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자욱한 안개는 사라졌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이제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깃재에서 칠보산 가는 길
온통 초록의 바다에 풍덩 빠진 느낌으로 정맥 마루금을 이어간다. 계속 금강송의 우람한 자태가 나타난다. 햇살을 받은 금강송의 황색이 빛을 발한다. 금강송은 속이 창자모양과 같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黃腸木)으로 불린다. 1950년대 춘양, 영주, 석포를 잇는 영암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금강송의 무분별한 남발로 특히 춘양역은 금강송이 외지로 반출되는 주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강송을 춘양목(春陽木)으로도 부른다.
황장목 또는 춘양목
춘양역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50년대 당시 자유당 국회의원(춘양면 서벽리에 고향을 둔 정병문 국회의원)이 본래는 철도가 건설되지 않을 지역이었던 춘양면으로 억지로 노선을 변경해서 철도가 휘어져 들어오게 만들면서 생긴 말이 ‘억지춘양’이다. 이 지역 지도를 보면 영주와 철암을 잇는 영암선(현 영동선) 철길이 부자연스럽게 춘양역 방향으로 남자의 거시기(?)처럼 불쑥 솟아있다.
황금빛 황장목
억지춘양이지 억지춘향이 아니다. 억지춘향이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고, 변사또가 춘향이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였다고 하여 ‘억지춘향’으로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억지이다. 변사또가 춘향이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였다면 ‘억지변사또’가 되어야지 ‘억지춘향’이 될 수는 없다. 억지춘향이라면 춘향이가 억지로 수청을 들었다는 것인데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는 것은 소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억지춘양을 억지춘향과 같이 엉터리로 쓰이는 말들이 많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나는 것만 몇 개 들어보자.
사람들은 ‘삼수갑산’을 ‘산수갑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산수갑산(山水甲山)’이 아니라 ‘삼수갑산(三水甲山)’이다.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함경남도의 오지(현재의 북한의 지명으로는 양강도 삼수군과 갑산군)로 옛날에 이곳에 한번 귀양 가면 돌아오기 어려운 곳이다. 따라서 삼수갑산에 가는 일은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꼭 해야겠다는 식의 말을 쓴다.
산천경개 구경하면서 산수가 좋은 산수갑산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산수(山水)란 말은 있어도 ‘산수갑산’이라는 말은 없다. 영 못 믿겠거든 컴퓨터 한글자판에서 산수갑산과 삼수갑산을 쳐보시라. 산수갑산에 그건 아니라고 벌건 밑줄이 확 쳐진다. 아래에서 보는 말도 마찬가지다.
또 사람들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을 ‘절대절명’으로, ‘양수겸장(兩手兼掌)’을 ‘양수겹장’으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동병상린’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야밤도주’로,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사십구제’로, ‘삼우제(三虞祭)’를 ‘삼우재’, ‘삼오제’로 잘못 쓰고 있는 예도 본다. ‘콩인지 보리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의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숙맥’을 ‘쑥맥’으로 쓰기도 한다.
우박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 ‘풍지박살’, ‘풍비박살’로,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고 있다. 잘못 쓰는 예의 백미는 ‘복불복(福不福)’이다. 무엇을 볶는다고 ‘복불복’을 ‘복골복’, ‘복걸복’, ‘복궐복’, ‘볶을복’ 등 제멋대로 생각 없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복불복(福不福)은 복과 복이 아닌 것, 곧 사람의 운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복불복이다. Who knows? Nobody knows!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오세훈이가 서울시장이 될 줄 누가 알았는가?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 인생은 하숙생이 아니라 원래 ‘나이롱뽕’이다. 누구나 돈 따러왔다가 돈 잃고 가는 것이다.
각설하고 드디어 말로만 들었던 ‘10지춘양목’이 오르막 등성이에 우람한 자태를 하고 고고히 서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10가지가 더 된다. 아마 많다는 뜻으로 10이라는 숫자를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십년공부(十年工夫), 십년감수(十年減壽), 십년지기(十年知己)에서 10년은 오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확하게 10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에서 열(10)은 충분한 횟수를 말하는 것이지 딱 열 번만 찍는다는 뜻이 아니다.
10지춘양목의 우람한 자태
이번 구간에서 금강송을 보니 하늘을 향해 치솟는 상승의 기개가 놀랍다. 畏敬 바로 그것이다. 이들 금강송의 모습에서 확고부동한 긍정의 자세와 직립의 정신,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고고함을 본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라는 臨濟 선사의 ‘隨處作主 入處皆眞’의 진리를 배운다. 어느 곳에 있던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남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진리이다.
10지춘양목 앞에서 일행들과 함께
대왕님이 캔 더덕 한 뿌리를 배낭 물통꽂이에 넣고 가다 보니 더덕의 진한 향기를 달고 다니는 격이다. 재배더덕과 달리 진한 향내가 코를 찌른다. 그런데 등로 주변에는 더덕들이 잔잔한 것들뿐이다. 등로에서 좀 벗어나야 실한 놈들을 건질 수 있는데 갈 길이 멀다.
더덕채취 중
20여분 동안 고만고만한 봉우리 4개를 넘어 오른 헬기장 봉우리는 소나무로 포위되어 있어 실제로 헬기가 이곳에 내리기는 쉽지 않겠다.
헬기장에서
헬기장 봉우리에서 내려설 듯하다가 오른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안부4거리인 새신고개이다. 좌측으로 영양군 수비면의 새신마을이 있어 새신고개로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첩첩 오지의 산중에 고갯길 공중의 좌우로 통신선이 흐르고 있다.
새신고개
새신고개에서 잠시 쉬고 바로 직진 오르막을 오른다. 새신고개에서 칠보산까지는 210여m의 고도를 높여야 되고, 시간은 40여분이 걸릴 것이다. 오르막 정점에서 내려서다가 바로 우측 능선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다시 오르막 정점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오르니 이 봉우리는 칠보산 전위봉이다. 전위봉에서 좌측 방향으로 내려섰다가 급경사의 오르막을 15분쯤 치고 오르니 바로 칠보산(974.2m) 정상이다.
칠보산 정상
영덕의 칠보산이나 괴산의 칠보산은 많이 알려진 산이나, 영양의 이 칠보산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옛날 7가지 철이 출토되어 ‘칠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산이름과 달리 정상 부위는 숲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다. 삼각점(소천 306, 2004재설)이 있고, 명동산에서 본 것과 같은 ‘ROKA MA’ 표지석도 있다.
칠보산 정상 : 숲으로 조망은 제로
칠보산 정상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의 숲길에서 냉막걸리와 냉커피로 중간 급유시간을 갖는다. 막걸리 얼린 것 두 병을 지고 왔는데 한 병은 칠보산에서, 또 한 병은 통고산에서 정상주로 분음할 것이다. 여름철 산행에는 뭐니 뭐니 해도 냉막걸리가 최고이다. 이틀쯤 꽁꽁 얼린 막걸리를 지고 대여섯 시간 지고 오다보면 막걸리 샤베트가 되면서 녹아 시원한 맛을 배가한다.
돌마담의 차 배달로 15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애미랑재를 향하여 칠보산을 떠난다. 칠보산에서 애미랑재까지는 2.3km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우측 방향으로 진행하던 정맥길이 좌측으로 꺾이며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급하강을 하면서 치닫는다. 내리막 끝 지점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 중간에 묘1기를 지나고 오르막을 오른다. 뒤돌아보니 칠보산의 모습이 젊은 여자의 젖가슴과 같이 볼록 솟아있고, 칠보산 우측으로 멀리 산정에 통신시설이 있는 일월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뒤돌아본 칠보산과 우측 끝의 일월산
어떤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우능선으로 진행한 정점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좌측으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선다. 애미랑재 직전의 갈림길에서 좌측 방향으로 내려서면[나중에 반대편 절개지 위로 올라가 확인한 것은 갈림길에서 우측길로 내려가면 절개지 우측으로 내려선 후 도로 건너편의 우측 절개지 위로 기어올라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절개지 좌측의 계곡물을 놓치기 쉽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거대한 절개지 위에 선다.
산을 몽창 들어내어 도로를 만드느라 도로의 양 사이드로 엄청난 절개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곳은 터널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년 후에 생태통로니 동물이동통로니 호들갑을 떨 것임에 틀림없는데 너무 근시안적 사고로 도로를 뚫고 말았다. 절개지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수로변으로 내려가는데 경사가 너무 급하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쌓여있는 경우에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개지에서 애미랑재로 내려가는 길
조심스레 절개지를 내려가니 애미랑재 또는 애매랑재라고 하는 고갯길이다. 인근에 광비천이 흐른다고 하여 광비령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애미랑재라고도 하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울진군, 봉화군, 영양군 3개 군의 접경지로 주변 산의 높이가 엇비슷하여 애매하다고 하여 애매랑재 또는 애미랑재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구간을 끊는 경우도 많은데 좌측으로 내려가면 10분 만에 남회룡리로 갈 수 있는 접근의 용이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애매한 고개 애매랑재에서 구간을 끊는 경우 고개이름대로 산행일정이 애매해진다. 도로를 우측으로 올라가 절개지 좌측의 수로를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훌륭한 계곡이 나온다. 그리고 반대편 절개지로 기어오르기 위해서는 이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애미랑재 계류 : 식수보충처
계곡물을 식수로 보충하는 것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얼음덩어리만 댕그렁 거리는 물통에 흐르는 계곡수를 받아 넣는다. 사실 이 구간의 중간기점인 애매랑재에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곳이 있어 한티재에서 초장부터 많은 양의 물을 짊어지고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구간 산행을 한결 편하게 해준다.
5. 통곡하지 않는 통고산(通古山, 1,066.5m) :
[애미(매)랑재 → 통고산 : 6km//2시간22분]
애미랑재에서 1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오전 11시 절개지 좌측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앞으로 답운치까지 4시간을 예정하여 오후 3시 정도면 답운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처음에는 애미랑재에서 산행을 마칠 생각이었던 천사님과 윤비님도 생각을 고쳐먹고 통고산으로 간다.
대왕님이 절개지 위로 올라서는 사람들의 증명사진을 박아준다. 대왕님이 곳곳에서 박아준 사진들은 후일 우리들의 훌륭한 산행기록이 될 것이다. 산행을 하면서 사진이든 글이든 보고 느낀 것을 남겨놓지 않으면 얼마 없어 봄볕에 눈 녹듯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통고산으로 가는 길 절개지 위에서 : 대왕님이 박아준 사진
숲길 오르막을 오르다가 어떤 좌측 사면 허리를 따라 진행하다가 정통 마루금과 합류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주위는 물샐 틈 없이 온통 완전히 초록의 바다이다. 오르막에서 내려선 후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오르막 정점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고 다시 봉우리 우측 사면 허리를 끼고 올라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면서 완만하고 편한 길이 이어진다.
녹색세상[1]
울창한 참나무지대, 간간이 이름모를 새소리만이 深山奧地의 적막을 깰 뿐이다. 그 숲 속을 걷는 우리들은 녹색의 세계에서 말 그대로 ‘녹색세례’를 받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Green Shower를 ‘森林浴(しんりんよく)’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따라 우리도 산림욕 또는 삼림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적당한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녹색세상[2]
무성한 수풀에 들어가면 식물의 피톤치드 향이 신경을 자극해 피로와 스트레스를 없애준다. 피톤치드는 해충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주는 식물 고유의 살충제 성분이다. Green Shower를 통해 흡수하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병을 낫게 해주거나 건강을 유지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탄한 길이 오르막으로 바뀌다가 우측 사면 허리를 휘어져 돌아간다. 사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중위그룹들이 쉬고 있다. 빵과 과일을 얻어먹고 5분쯤 오르막을 올라서니 능선분기봉이다.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오른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10여분 동안 고만고만한 서너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헬기장 터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헬기장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낙동정맥길에서 보기 어려운 산죽지대를 잠시 만나고 오르막을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937.7m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세운 삼각점 안내문이 서 있고, 혹시 심마니들의 움집으로 추정되는 집의 뼈대만 남아있다.
937.7m
937.7m봉에서 내려서서 어떤 봉우리의 좌측 사면을 타고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휑하니 뚫려있는 벌목지대를 끼기 진행한다. 우측으로는 참나무숲이다. 앞에 통고산 줄기가 보인다. 내리막에서 임도로 떨어지고 임도를 통과하여 숲으로 들어선다. 돌범님과 함께 임도에서 통고산까지는 40분이 소요될 것으로 봤는데 정확하게 40분이 걸렸다.
30여 분간 꾸준한 오르막을 오르면 헬기장터가 있는 능선분기봉이고, 이어서 다시 왕피리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가면 왕피리로 가는 길이고, 통고산은 좌측 방향이다. 등산로 안내판에는 좌측의 하산로는 3.3km로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그런데 이 하산로는 정맥길이 아니고 통고산 휴양림쪽으로 가는 등산로 같다.
무인감시탑을 뒤로 하고 조금만 가면 바로 통고산 정상(1,066.5m)이다. 통고산은 이번 구간에서 정상표석이 있는 유일한 산이다. 通古山 장상석의 후면에 적힌 통고산의 유래를 보면 부족국가시대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으면서 통곡하였다고 하여 통곡산(通哭山)으로 부르다가 그 후로는 통고산(通古山)으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통고산 정상 표지석
그러나 나로서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실직국(悉直國)이라는 나라는 처음 듣는 생소한 나라이고, 통곡이라면 ‘痛哭’이지 ‘通哭’이 아니다. 소리가 같다고 뜻이 다른 한자를 쓰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고려 공민왕이 이 산에 피난할 때 산이 높다고 하여 통곡산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통고산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통고산의 유래
애미랑재에서 통고산까지 오는데 2시간 22분이 걸렸다. 햇볕을 피하여 숲길에서 퍼져 앉아 배낭의 간식거리들을 처치한다. 남은 막걸리 한 병도 비우고 떡 등을 덜어내니 배낭이 한결 가볍다. 통고산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정상석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박고 답운치로 떠난다.
통고산 정상 증명사진
6. 구름 없는 고개 답운치(踏雲峙, 619.8m) :
[통고산 → 답운치 : 6.1km//약 2시간]
통고산에서의 20분의 휴식을 마치고, 오후 1시 43분 답운치를 향하여 통고산을 출발한다. 넓은 헬기장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간다. 중간에 봉우리가 몇 개 있는 전체적으로 내리막 개념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오른쪽으로 통고산 휴양림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내리막을 내려선다. 내리막에서 오른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빽빽한 참나무숲 지대이고, 등로에는 잡목이 무성하다. 한 봉우리에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로 내려서는 길
절개지에서 내려선 후 임도를 통과한 후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참나무 숲 중간 중간에 쭉쭉 뻗은 금강송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답운치 가는 길
889m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내려선 후 좌측 사면을 타고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능선분기봉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우측으로 금강송 지대를 끼고 진행한다. 한 봉우리에서 내려서서 좌측 사면을 끼고 진행하는데 좌측으로 조림지대가 나타난다. 길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목 숲으로 빽빽하다.
계속 금강송은 도열하고
눈길을 럿셀하는 기분으로 잡목 숲을 헤치며 나아가는데 한 봉우리 꼭짓점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울창한 잡목 터널을 지난다. 지도상의 헬기장이 나올만한 지점인데 헬기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데 바로 헬기장터 봉우리가 나온다. 이제는 봉우리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믿으며 가는데 잔봉 두개를 지나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면서 묘지를 통과한다.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종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등로 양쪽으로 벌초를 해놓은 듯한 산죽지대를 지나 안부에서 그야말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가는데 헬기장 직전에서 서고문님과 록수님이 막걸리와 김치에 생두부까지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애미랑재에서 먼저 내려간 두 분이 옥방휴게소에서 막걸리와 안주를 푸짐하게 준비하고 이곳으로 올라온 것이다.
막걸리 두어 잔을 거푸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이 드는데 후미도 모두 올라와 막걸리와 김치로 마무리 하산주를 한다. 덕칠이팀은 먼저 내려간 사람이 산행 막바지 지점에서 하산주를 준비하는 미풍이 있다. 서고문님과 록수님께 감사.
헬기장에서 36번국도가 지나는 답운치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오후 3시 42분 답운치에 도착함으로써 오늘 구간을 마무리한다. 통고산에서 답운치까지 정확하게 2시간이 걸렸고, 애미랑재에서는 4시간 42분, 한티재에서는 11시간 37분이 걸렸다. 거리는 30km를 넘지만 전체적으로 순한 정맥길이라 큰 부담 없이 구간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답운치
답운치(踏雲峙)라면 고개가 높아 구름을 밟는 고개라는 뜻 같은데 해발 619m라면 그리 높은 고개도 아니다. 이 나라에 만항재(1,330m)와 운두령(1,089m) 등 1,000m를 넘는 고개도 있다. 날머리에는 남부지방산림청의 길쭉한 산불조심 표지판과 입산금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늘 구간은 낙동 최고의 진미구간이었다. 시종 일관 녹색의 바다에 빠져 아름드리 금강송들과 함께 한 구간이었다. 다음 구간 진행할 들머리를 확인하고 우리들의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범털총무님이 승용차를 타고 이곳으로 온다. 알고 보니 옥방휴게소에서 1박하고 일요일 오늘 구간을 땜빵하려고 온 것이다.
7. 신선이 따로 없다! : 옥방천 알탕과 더덕주
우리들의 버스는 36번 국도를 타고 좌측의 봉화방향으로 진행한다. 답운치에서 옥방휴게소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로 느껴지고 옥방휴게소에서 1박하는 경우 다음 날 답운치로 어프로치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옥방벨리 휴게식당에서 버스를 내리는 대로 알탕을 하기 위하여 휴게소 뒤의 시원한 계류가 흐르는 옥방천으로 들어간다. 혹시 여자분 들이 볼까봐 양심상 팬티는 걸친 채 물속으로 들어간다. 부처바위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터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볕에 많이 데워졌는지 흐르는 물이 그리 차갑지는 않다. 흐르는 계곡물에 몸을 담그니 백암온천 저리가라이다.
옥방천 알탕장소
부처바위는 요리조리 뜯어보아야 그런가 보다 할 정도이다. 알탕을 마치고 휴게소 원두막으로 올라가 산행중에 캔 더덕으로 즉석 더덕주를 제조하여 통닭을 안주삼아 마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더德不孤 必有隣이다!
옥방휴게소
장시간 산행을 마치고 알탕에다 더덕주까지 마시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뭐 있겠는가? 처음에는 이곳 휴게소에서 1박하고 다음 구간 이어갈 생각도 했으나 그리 서두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료들과 같이 귀경길에 오르기로 한다.
부처바위: 자세히 보면 부처님의 눈, 코, 입이 보인다.
들꽃님은 다음 구간을 연속하여 이어가기 위하여 휴게소에 남고, 범털님은 천사님과 허공님을 태우고 천안을 거쳐 수원 방향으로 올라간다. 저녁 5시 50분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더덕주의 위력으로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든다.
하루 종일 산만 보다 왔습니다
하루 종일 물만 보다 왔습니다
환하게 열리는 산
환하게 열리는 물
하루 종일 물만 보고 왔습니다
하루 종일 산만 보다가 왔습니다.
- 김용택, “하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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