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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쓴다] 새벽에 달아나다(온천장) | ||
그땐 하잘것없는 싸구려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 ||
부산일보 2008/12/04일자 035면 서비스시간: 15:41:46 | ||
-너 힘들게 의대 공부 끝내고나서 스님 될 거니? -절에 간다고 다들 중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그렇지. 많은 하숙집 두고 왜 하필 절이니? -그냥 그곳에 있고 싶어. 실용이는 섭섭하다면서 내 책 꾸러미를 함께 묶고 이불보따리와 운동기구 따위를 어깨에 둘러매고 하숙 짐들을 옮겨줬다. 나는 산사에서 늦여름과 가을 그리고 초겨울을 보냈다. 온천장 뒷산에 있던 그 절에는 속가생활을 더불어 하던 스님과 고시공부를 하는 두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온전히 나 혼자가 되어 나날을 보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가끔 고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나는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으므로 혼자의 생활을 즐겼다.
절에서 학교까지는걸어서 40여 분이 걸렸는데 본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장전 캠퍼스에도 쓸쓸한 가을이 찾아왔고, 산길을 걸어 등교하는 나는 아침마다 수북하게 쌓여가는 낙엽을 밟으며 혼자 길을 걸었다. 마치 지구의 끝으로 향해 나 혼자 먼 길을 떠나는 외로운 방랑자 같은 기분에 푹 젖어있었다. 학교생활에서도 철저히 외톨이가 되어 혼자 강의실이나 도서관 혹은 학교 뒷산을 배회했다. 금정산은 20대에 내가 치른 허무와 방황을 방목해도 좋을 만큼 안온하고 넉넉한 품이었다. 한때 하숙방을 함께 썼던 상대 생 실용이가 의예과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가끔 나를 찾아왔다. -절 생활은 재미있어? -재미있으려고 하숙집을 옮긴 건 아니잖아. 그냥 혼자 지낼만해. 하숙을 치고 있는 그 절에는 스님이 자주 출타 중이라 신자도 별로 없었고 항상 고요하게 가라 앉아 있는 분위기였다. 고시공부를 하는 두 사람도 식사시간에나 얼굴을 마주칠 뿐 별다른 왕래가 없었다. 스님을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범상치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거나 때로는 대금을 불기도 했는데, 그 음률이 지극한 애조를 띄고 있어 한지로 발라놓은 내 방문이 사르르 떨리는 듯 산조소리가 잦아들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나도 초대를 받아 차를 얻어 마시기도 했는데, 마치 구름 위에 떠도는 것 같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떤 이는 관상을 보기도 했는데 나를 두고 이르기를 '외로운 상이야, 늙어 고고한 낙랑장송이군', 나는 그 말을 듣고 미래에 닥쳐올 길고 긴 내 생의 암울한 서장을 살짝 들춰본 기분이 들기도 했다.
늦가을이었다.절 마당에는 수북하게 낙엽이 깔려 있었고, 밤이 되면 금강공원 입구에서 산사로 이르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져 적막했다. 공원 입구의 간이매점에서는 군밤과 홍시를 팔고 있었는데 매장을 덮고 있는 신문지가 가을바람에 낙엽과 함께 쏠려갔다. 나는 저녁을 먹은 후 가끔 산문 밖으로 나와 온천장 거리를 배회했다. 1960년대 초엽의 온천장은 아직 일제 강점기의 풍경이 잔존해있었다. 오래된 호텔의 외관은 다분히 왜색 풍을 띄고 있어 목조건물이나 정원은 이국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가끔 동래관광호텔(현 농심호텔) 뒤편 어둑한 솔밭으로 들어가 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아 이상한 열기에 휩싸인 온천장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거리를 배회하다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은 어두웠다. 동래별장 못 미친 골목길 끝에 작은 등불을 밝힌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골목 안에 무슨 가게가 있지? 가까이에 가보니 책을 빌려주는 대본 집이었다. 옆으로 밀어서 여는 유리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섰다. 벽마다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한쪽 모서리에 방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내 또래 처녀가 백열등이 켜진 책상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나를 맞았다.
그날 밤 이후,나는 그 대본집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정음사와 을유문화사에서 발간한 세계문학전집 전부를 읽기 시작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와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밤새 읽었다. 술과 담배에 탐닉하지 않았던 그 시절, 오로지 독서만이 내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일들이 몇 차례나 반복되었지만 그녀와 나는 몇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항상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던 그녀가 어느 날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고르고 있던 나를 향해 물었다.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으면 책도 많고 무료로 볼 텐데 왜 여기서 책을 빌려 봐요? 나는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고 큰 눈망울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서목록 찾기가 싫어서요. 그리고 실물의 책을 만져보고 빌리고 싶어서요. -집이 어디세요? 내가 금정산에 있는 절 이름을 이야기 했을 때 그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럼, 아버님이 스님이세요? 나는 애매하게 웃음을 입가에 담음으로서 그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냥 그녀와 이상한 수수께끼 하나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와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를 재수하다 대학을 가기보다는 그냥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보려고 이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나와 같은 나이였고 이름이 김해미였다. 보름달이 기울고 있던 날,위채 스님 방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학생 찾는 손님이 왔나봐. 방문을 열고 나가니 해미가 과일봉지를 앞가슴에 안고 절 마당에 서 있었다. 혼자 기거하는 절 방에서 그녀와 함께 사과를 먹었다. 그날 이후, 방의 위치를 알게 된 그녀는 내가 책을 반납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그녀 스스로 나를 찾아왔다. 밤이 이슥할 무렵, 길가로 나 있는 내 방의 봉창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불러냈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어깨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받으며 금강공원을 함께 걷거나 아니면 금정산 남문 방향으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어두워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비탈길에서 미끄러지거나 돌길을 헛짚어 비틀거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와 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내밀어 서로를 부축하며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았다. 그러다보면 내 팔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봉긋한 가슴에 닿기도 했다. 그런 부딪침이 있을 때는 그녀와 나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생물학 실습을 끝내고 실습용으로 사용한 죽은 닭 몇 마리를 들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 온천시장 안에 있던 니나노 술집을 찾아갔다. 1960년대의 온천장 니나노 술집의 풍경은 가히 낭만의 극치였다. 빨강치마 노랑저고리를 입는 젊은 접대부가 가난한 학생들이 들고 온 죽은 닭을 받아 부엌에 있는 주모에게 건네주며 -엄마, 학생들 돈 없으니 닭고기는 양념값 받지 말고 그냥 볶아주고 막걸리나 몇 주전자 올려줘요. -오늘 학교에서 닭 잡는 날이었나? 술집마다 학생들이 닭 모가지를 잡고 몰려오네. 주모는 아무런 불평 한마디 없이 싼값에 학생들을 배불리 먹였다. 여기저기 담뱃불에 탄 낮은 탁자, 쭈그러진 주전자, 양은 재떨이, 영화배우 문희나 남정임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미소를 품고 있는 낡은 잡지의 표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베니어 벽을 기대고 우리는 놋그릇에 철철 넘치게 막걸리를 부어 마셨다. 술이 취하면 젓가락을 두드리며 남진의 가슴 아프게나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따위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불러 제쳤다. 니나노집의 젊은 아가씨 역시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가 술에 취해 가끔 질질 짜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산업이라야 라디오 만드는 기술이 유일했던 그 시절,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녔던 젊은 여자들이 취직할 곳이라고는 술집 아니고는 갈 곳이 없었다. 속칭 니나노집이라고 불리던 그런 술집들이 온천시장 안에 즐비했다. 고객이라고는 가난한 하루살이 품삯 꾼이나 학생들이 주종이었다. 팁도 없고 바가지 술값도 없었다. 학생들은 길거리에서 낱개로 파는 개비 담배를 사서 피웠고 술값이 모자라면 시계도 풀고 학생증도 맡겼다. 단지 물건을 살 수 없을 뿐이었지 그때의 학생증은 지금의 비씨카드나 다름없었다. 원색의 한복을 입고 술시중을 들던 그녀들은 대학생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더러는 끼리끼리 사랑도 했다. 그때는 참으로 하잘것없는 싸구려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난 후에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지순한 사랑도 없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어울려 술을 마시던 그날, 내 옆자리에서 술 취한 학생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졌다. 나는 술병에 숟가락을 꼽아 장단을 맞추다말고 말싸움을 하고 있는 옆에 앉은 이들을 말리느라 술병을 탁자에 내려쳤다. 순식간에 술병이 박살나고 유리파편이 튀어 내 손바닥을 찢어놓았다. 붉은 선혈이 손등을 적시는 걸 보고 모두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말다툼도 사라지고 술자리는 갑자기 적막 속에 휩싸였다. 접대부가 엉엉 소리 내어 울더니 우리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너희들이 대학생이라고 뽐내는 모양인데, 제발 잘난 체 하지 마. 우리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잖아. 나는 일순에 술이 확 깨어나는 기분이 들어 수건으로 손바닥을 감싸 쥐고 술집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혼자 탈래탈래 시장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어느새 대본 집 부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백열등 아래서 책을 읽고 있던 해미가 나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절 생활하는 학생이 이렇게 술을 마셔도 돼요? -내가 뭐 스님인가? 가게에 붙어 있는 쪽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녀가 내 손에 감겨있는 수건을 풀었다. 상처는 지혈이 되어 있었지만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약국을 다녀온 해미가 상처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상처는 깊지 않아 병원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치료가 끝날 즈음 깨었던 술이 다시 취기가 올라 속이 울렁거렸다. 어질어질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어 해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손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있었고 사방을 둘러보니 내 방이 아니었다. 문득 간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도대체 해미는 어디로 갔지? 방문을 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백열등 켜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맙소사, 나 때문에 밤새도록 저러고 있었나? 나는 수치감에 젖어 정신없이 일어나 헝클어진 옷을 바로 입은 후 방문 밖으로 나왔다. 책 속에 얼굴을 묻고 있던 해미가 고개를 들어 나를 건너다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무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달아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온천장의 새벽이 깨어나고 있었다. 허연 증기를 내뿜고 있는 온천탕을 지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오르듯 부끄러움을 안고 새벽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골목길의 끝에서 뒤돌아보니 해미는 문설주에 기대어 멀어지는 나를 향해 우는 듯 웃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전용문 / 소설가 · 마산고, 부산대 의대 졸업 ·신경외과 전문의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 '죽은 의사의 시대'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중·단편집 '후송병원의 개' '역설, 수양애사' ·에세이집 '새벽에 찾아온 손님' |
첫댓글 울 샘,병을 내리치는 터프한 면이 있었습니꺼. 샘 소설은 아릿한 사랑이 쫌 많네예. 그러니까 계속 방랑자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