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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통신 (13)
“금발로 물들이는 것은 싫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7>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 나오는 마릴린 몬로를 보고 생겼음직한 금발에 대한 조크가 많다.
예를 들면, 한 남자가 정원 손질을 하고 있는데 그 옆집에서 금발 미녀가 나와 우체통을 들여다보고는 휙 돌아서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는 금방 다시 나와서 다시 우체통을 들여다보고 화를 내며 들어가고 또 다시 세번째 나와서 우체통을 들여다보고 화를 내자, 이웃 집 남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금발의 미녀가 대답하는 말, 내 멍청한 컴퓨터가 You've got mail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연한 영화 제목과 같다) 이라고 자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이처럼 그 내용은 물론 금발은 멍청하고 머리가 나쁘다는 게 주조이다. 그런데 그런 조크가 나온 것은 서양에서도 금발을 선호하기 때문이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나 의사가 허가받은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도 부모들이 기쓰고 법대나 의대에 보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금발은 멍청하다고 조크하면서도 금발이 되고 싶어한다.
남녀 구별 없이. 금발이면 다 금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우리 애가 말할 때까지.
"엄마 진짜 금발하고 가짜 물들인 금발하고 어떻게 구별하는 줄 알아?" "몰라." "눈썹이 노랗게 금발이면 진짜 금발이고 눈썹이 다른 색이면 진짜 금발이 아니야." "어 그러니?"
그러고 보니 눈썹까지 노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갈색이거나 까만 눈썹을 가진 금발이다. 물론 화장을 한 걸 감안하더라도 진짜 금발은 그리 많지 않다. 어쨌거나 금발이 원래 자기네 머리색 중 하나인 백인에게는 금발로 물들인 게 눈에 튀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진짜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자연스럽다, 이태원 가게의 가짜 진짜들처럼.
그런데 동양인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까만 머리는 다른 색이 염색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탈색을 하고 염색했던 노란 머리가 물색이 빠지면서 노란 머리 가끔 섞인 흰머리에다 밑에 새로 나오는 까만 머리까지 합치면 정말 보기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아이가 어느 날 말하기를 포니 클럽 친구 하나가 자기보고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면 어떻겠냐고 했단다.
"아니, 왜?" "나보고 여기 이민 와서 한국에 몇 번 돌아가 보았느냐고 해서 아직 한 번도 안 갔다고 했더니 나보고 그럼 이제 너는 키위다 고 하면서 머리를 물들이면 진짜 키위가 된다고 했어."
온 지 4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친구가 놀리느라 한 말인지 아이들의 유치한 진지함으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듣는 느낌은 놀림받은 거구나 라고 생각되었다. 그 클럽에 있는 아이들은 다 우리 애보다 나이가 많아 고등학생들이었으니까. (물론 학제가 달라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중학생 나이이기는 하지만)
"너는 금발로 물들이고 싶니?" "글쎄..". 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머리를 물들이면 그 클럽 아이들 사이에 끼기가 더 쉽지 않을까 라고 아이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엄마 생각에는 금발이 동양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거든. 이상하게 그렇단다. 백인들은 이런 저런 색으로 물들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데, 동양 사람 피부에는 까만 머리가 가장 잘 어울린단다.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주신 대로가 가장 아름답거든. 그래도 만일 정 물들이고 싶으면 들여도 좋은데, 금발로 들이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뒤 별 말 없더니 친구 오빠가 빨간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서는 마음에 안 들어 하루 종일 12번 머리를 감았다나. 12번 머리 감으면 색이 빠지는 염색약이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12번 감으면 빠지는 염색약도 있고 20번 감으면 빠지는 염색약도 있다는 둥 나에게 머리 염색이 영구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임을 알려주는 정보만 제공하더니 염색 이야기가 나온 지 드디어 5년만인 작년, 머리를 염색하겠다고 선언했다.
머리 전부는 아니고 군데군데 몇 가닥씩만. 이곳에 와 있는 한국 애들, 심지어는 꼬마들조차도 염색 안한 아이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그것도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그러니?" 라고 일단 말하면서도 금발은 아니길 속으로 바라는데, 아이 하는 말, 짙은 파란 색으로 염색해서 그냥은 염색한 게 잘 안 보이고 불빛에서만 형광으로 파란 색이 보이게 할거라고. 나는 무조건 참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내 속 생각을 들여다 본 것처럼 아이가 덧붙이는 말, "금발로 물들이는 것은 싫어, 금발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2003. 08. 12>
누가 뉴질랜드를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했나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8>
아무도 나에게 뉴질랜드가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속았어 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거나 정말 속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온돌을 그리워했다, 거의 7,8년간을.
이곳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이곳에 너만 왔냐 네 가족도 있냐? 이 때 가족은 나의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을 뜻한다. 남편과 아이 말고는 이곳에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면 고향이 그립겠구나 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끄덕이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 말고, 날마다 정말 절실하게 그리운 것은 따뜻함이었다.
사실 해가 나면 기가 막히게 따뜻하다, 온돌이 없더라도. 그래서 햇빛이 나면 햇빛을 따라 이방 저방 옮겨다니며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기분이 밝아지지만 비라도 추적거리면서 그칠 기미 없이 하루 종일 구름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날이면, 속았어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굶는 것은 참아도 추운 것은 참기 힘든 나에게 뉴질랜드는 일년 열두 달 중에 열 달이 추운 나라였다. 거의 일년 내내 에어메리를 아래 위로 다 입고 살아야 하는 나는 차라리 쨍 하게 얼어붙는 추위가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집에 난방시설이라도 있을텐데.
제일 추운 겨울이라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10년 가까이 살면서 0도가 되었던 날은 딱 하루. 4-5도 정도로 내려가는 날도 드물고 아침 기온이 적어도 8-9도는 되는 겨울 날씨를 가지고 내가 너무 불평을 하는 것 같지만 해가 안 나는 날 으슬으슬함은 맵싸한 우리나라 추위보다 마음을 더 시리게 만든다. 얼어죽을 정도로는 춥지 않기 때문에 집 자체에 난방이 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거실에 벽난로든 탄 난로이든 난로가 하나 정도 있을 뿐. 어쩌면 이것은 내가 북섬 오클랜드에 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도 남극에 더 가까운 남섬에 있는 집들은 대체로 난방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하니까.
40년 된 우리 집도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다, 장작을 피워야 하는. 그래서 분위기 좋아하는 남편은 겨울에 벽난로 땔 생각에 즐거워했다. 이 집에 이사온 그 여름에. 못된 나는 벽난로까지 청소할 마음이 없으니까, 벽난로에 불을 지피면 벽난로 청소까지 할 생각을 하라고 말해두었다. 벽난로 있는 집에 살았던 친구를 보니까 그 일이 예사 일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벽까지 순식간에 그으름으로 까매지는 것을 보아왔기에. 그러나 청소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벽난로가 사실 바로 그 앞에 앉아서 불을 쬐어봐야 몸 앞면이 따뜻해질 뿐 등은 여전히 시리다는 데 속 이유가 있었다. 나무 사는 돈이면 차라리 전기 난로 켜고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싶어서, 또 전기난로는 청소거리를 만들지 않고.
우리 집은 방마다 전기 난로가 천정 바로 밑 한 벽에 부착되어 있기는 하다. 난로라기보다는 전열선이 하나 있는 전열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이것을 켜면 빨갛게 달아올라 잘 때 눈을 성가시게 한다. 방 전체를 충분히 따뜻하게 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침대에 전기담요를 깔아놓고 따뜻하게 자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얼굴이 시리다. 우리나라 옛날 스팀 히터처럼 생긴 전기 난로를 방에다 들여놓고 자면 공기는 따뜻하지만 공기가 너무 건조해지고 답답하다. 오늘은 어떤 난방기구를 이용해야 할지, 전기난로를 켠다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켜야 할지, 전기 담요를 사용한다면 몇 도에 맞추어야 할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따뜻하면서도 쾌적하게 잘 수 있는지를 의논하는 게 남편과 나의 잠자기 전 일과가 되었다.
난방 종류를 잘 선택하고 온도를 맞추려고 당연히 날씨가 어떨지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고 그래서 남편이나 아이는 뉴스 시간에 일기예보 나오면 나를 열심히 부른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 놀리면서.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을 확률은 여기도 거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기예보를 보고 잠자리 온도를 맞추어도 자다가 깨는 일이 일상이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서 온도를 다시 맞추려고. 어쩌면 밤새 기온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이 곳 추위에 대한 투덜거림과 한국 아파트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이 변함 없었다, 이곳에 와 5,6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까지.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집에 살다보니 겨울에는 집에서도 당연히 두툼한 세타를 입고 지냈는데, 아는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찜통에 들어간 것처럼 숨막히는 경험을 했다. 그 집은 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중앙 난방 시스템이 있어서 온 집 안에 히터를 켜 놓고는 열효율을 높이려고 창문도 꼭 닫아두었던 것이다. 겨울 옷 차림으로 그 집에 들어간 나는 추위를 못 참아 하고 따뜻함을 그리워했던 것이 언제냐 싶게 환기 안 되는 상태의 훈훈함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차라리 서늘한 것이 낫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 내가 그 사이에 변했구나. 나도 모르게 이곳 날씨에 몸이 적응을 했나 보다 싶고. 그 뒤로부터 날씨에 대한 불평을 덜 한다. 그래도 아주 안 한다고는 말 못한다, 원래 날씨란 것은 여기나 저기나 변덕스러운 거니까.
<2003. 08. 13>
영어 때문에 느끼는 존재의 초라함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9> 영어이야기 1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곳에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낀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제일 못한다는 것을. 뭐든지 표현되지 않으면 표가 나지 않는 세상에서 언어 능력을 우선 과시할 수 있는 게 말인데, 도무지 영어로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얼마나 엉터리로 떠들고 있는지를 자각하면서 계속 말하는 게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산다.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우리 말 단어가 늘어나는 만큼 영어 실력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하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어와 독해 실력은 월등 뛰어나지만 우리보다 훨씬 단어도 모르고 문법의 기본도 없는 중국 사람들, 그것도 죽의 장막이 걷힌 지 얼마 되지 않는 본토 중국 사람들이 중국말인지 영어인지 구별 안 되는 발음으로 엄청나게 떠드는 것을 보는 기분은 엉망이다. 엉망이다 못해 화가 날 때도 있다. 내 발음이 훨씬 더 사전의 발음표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키위들은 내 말에는 파든(Pardon?)을 연발하면서 중국말 같은 영어는 신통하게도 잘 알아듣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워낙 쉴 틈 주지 않고 떠드니까 전체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누가 오래서 왔나 내가 솰라 거리면서 살겠다고 온 것을. 그런데 그 놈의 영어가 자존심을 건드릴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살맛까지 잃어버리게 만든다. 나의 빈약한 표현 능력이 나의 존재의 초라함처럼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8살 전후까지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울 수 있고, 20대까지는 그래도 엔간히 비슷하게 말을 할 수 있지만 30대 이후에는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아예 발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흉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발음을 가끔 우리 아이가 고쳐주려고 시도하는데 그 때마다 이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나는 아이가 따라하라고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한다고 생각하고 또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만, 아이는 서너번 연습시키다가 어김없이 그냥 엄마 맘대로 발음하는 게 낫겠다고 해버리기 때문이다.
발음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억양이 영 어색해서 흉내조차 내기가 힘든 것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모든 단어의 발음보다는 억양으로 말을 알아듣는다고 하는데, 40 평생을 모노 톤의 말을 쓰던 사람이 말에 굴곡을 주는 일이 쉽지 않다. 내가 언젠가 키위 친구에게 너희가 한국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이유는 우리말이 원래 억양이 없어서 영어를 말할 때도 밋밋하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자 동의를 했다. 그가 택시를 탔는데 동양 사람이 운전사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에 아무 억양이 없어 한국 사람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대답하더라나.
그런데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 발음만 이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끼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말해달라는 표현이 많다. excuse me, pardon (me), sorry, I beg your pardon, I did not catch you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말하면서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고 말할 때는 말하는 사람이 너무 작게 소곤거려 정말 듣지를 못해서이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아니다. 우리말은 똑똑 떨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성가대에서 내가 가장 젊은이였다. 아니 어리다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 정도로 모두 다 일흔에 가까운 은퇴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물론 귀가 어두워지고 있는 연세들이기도 했지만 앞에서 말하는 지휘자 말을 못 알아들어 오히려 나보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다음 연습을 언제 할 것인지를 정하면서 지휘자가 자기가 어느 요일은 안 된다고 말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나에게 하는 말, can이라고 말했니, can't라고 말했니. 이럴 때는 내가 영어를 참 잘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나보다 귀가 어두워서 그럴 수 있다고 이 경우에는 양보를 한다고 해도 내가 강의를 듣는 카운슬링 클래스의 친구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내가 못 알아듣고 친구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가끔 내가 선생님이 '된다고 그런거냐 안 된다고 그런거냐' 물으면 글쎄, 나도 잘 듣지 못했는데 하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이렇게 속으로 혼자 우겨보아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말해 달라고 하면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이고 자기들끼리 못 알아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건 순전히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영국에서 이민 온 진짜 영국 할아버지 친구가 위로해주었다. '영어가 원래 잡동사니라서 그래. 그러니까 한 모음에 발음이 여러 개이고, 어원이 워낙 여러 종류라 자기들도 어떤 단어는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한글의 모음은 예를 들어 'ㅏ' 는 아 소리 하나지만, 영어의 a는 아, 어, 애, 등등. 사실은 그 발음들 중간쯤 되는 애매모호한 소리들을 내니 쉽지가 않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름의 경우에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보는 게 실례가 아니고 또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름을 들으면 어떻게 쓰는지 그 스펠링을 물어보는 것도 보통 일이다. 오히려 이름을 적당히 잘못 발음하거나 많이 듣던 이름이라고 스펠링을 틀리게 쓰는 것이 크게 실례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실례지만 이름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아니면 어떤 철자를 쓰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분명히 국민학교도 못 나온 사람 취급당할 거다.
우리 아이 이름에 있는 모음 'ㅏ'를 영어 모음 a 로 표기하는데, 학기초에는 그것을 'ㅏ'로 발음하지 않고 'ㅐ'로 발음하는 선생님들에게 이름 틀리게 부르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이 우리 아이의 심각한 과제 중 하나다. 나 같으면 적당히 듣고 말텐데 뭘 그렇게 끝까지 선생님에게 틀렸다고 수정해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가 자기 친구 중에 자기 같은 애가 있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에서 이민 온 아이로 이름은 ‘요나’, 그 이름의 스펠링은 ‘Iona’, 그래서 선생님들이 부르는 이름은 ‘이오나’ 라는 것이다. 그 아이는 학기초에 한 두 번 항의하고는 선생님이 부르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나. 우리 아이가 자기 이름 틀리게 부르는 것을 못 참는 이유가 이곳에 살면서 받은 영향인지 아니면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영어 이름이 필요 없다고 하는 그 아이 나름의 자기 것에 대한 고집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름을 발음만으로는 받아 적을 수 없는 나라에 사니까 이 정도 알아들으면서 사는 것도 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영어로 인해 가끔 느끼는 나의 존재의 초라함이 말끔히 사라져주지는 않는다.
<2003. 08. 14>
"코리안 잉글리시를 하면 되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0> 영어이야기 2
우리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이 다 뉴질랜드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캐나다에서 왔고, 무슨 과목 선생님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도 있었다. 작년에는 지리 선생님이 영국 사람이었는데, 학년 중간에 영국으로 돌아가고 말아 그 선생님을 아주 좋아했던 우리 아이가 그 과목 공부를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아 내가 속으로 '조금만 더 있다가 학년이나 마친 다음에 가지'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캐나다 선생님도 2년 있다가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이유는 이 나라에 선생님이 부족해서란다. 부족한 이유는 이 나라 선생님들도 영국이나 다른 나라로 취직해서 떠나기 때문이다. 같은 영어를 쓰는 나라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고, 젊은 나이에는 이 나라 저 나라에 취직하여 돈도 벌고 여행도 하는 것이 영어권에 태어난 사람들이 누리는 특혜가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영국 등 서구의 식민주의에 대해 열을 올리고 비판했지만, 그 때문에 세계에 퍼져 세계어가 되어버린 영어의 덕을 영어권 젊은이들이 누린다고 해서 새삼스레 다시 열을 올릴 나이는 아니고, 어쨌거나 그로 인해 그들이 누리는 자유로움이 부러운 게 솔직한 고백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선생님을 만나면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있다. “그 선생님 발음이 이상해.”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의 발음을 흉내내며 우스워하기도 했다. come here 를 ‘콤 혀’ 라고 발음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글 발음 식의 혀가 아니라 혀와 효 사이의 소리이다.) 미국 영어만 영어인 줄 알고 듣던 나에게는 BBC 표준 영어, 하층민 영어, 아일랜드 영어, 스코틀랜드 영어, 미국 영어, 호주 영어, 그리고 뉴질랜드 영어가 이렇게 서로 다른 줄 몰랐다.
이 나라 텔레비전은 스카이라는 유선 방송 빼고 채널이 4개인데, 자기네가 만드는 드라마가 거의 없기 때문에 (딱 하나 있고, 가끔 시리즈물을 만들기는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영국, 미국, 호주에서 만든 드라마를 방영한다. 덕분에 각 나라에서 온 프로그램을 보면서 영어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특히 발음이 얼마나 다른지를 느끼면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볼 때 사투리를 즐기듯이 즐기는 것은 드라마 자체가 주는 즐거움 외에 덤으로 따라오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경상도 출신 탤런트가 전라도 사투리를 한다든지, 서울 출신이 경상도 사람 역을 하면 어색하듯이, 영어로도 남의 동네 영어를 흉내내면 정말 귀에 설다. 영화 ‘데블즈 오운(Devil's Own)’에서 브래드 피트가 북아일랜드의 IRA 테러요원으로 미국에 자금줄과 선을 대러 가서 북아일랜드에서 온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 아이리쉬 영어발음을 하는데, 그 흉내내는 가짜 발음이 정말 우스워서 영화감상에 무척 방해가 되었다.
이곳에 산다고 해도 영어로 말을 할 일은 별로 없지만 듣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노상 들으니까 말하는 실력 느는 것은 모르겠는데, 듣는 실력 그 중에서도 지금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영어가 어디 영어다 싶은 것은 전혀 없던 실력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 실력을 어디다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영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항의가 빗발쳐서 계속 방영하는 영국 드라마가 있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다. 드라마 제목이 암시하듯이 코로네이션 거리에 있는 가정들과 그 중에서도 그 거리에 있는 펍(영국 선술집)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보는 걸 포기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그 드라마를 놓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부득이 못 볼 경우 녹화까지 해가면서 본다는 것을 알고는 (그 할머니가 영국에서 이민 온 할머니라면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를 하겠는데, 네덜란드에서 남아프리카를 거쳐서 한 30년쯤 전 뉴질랜드에 이민 온 할머니가 너무 재미있어 하길래) 나도 다시 몇 번을 보았다. 또 정 볼 게 없으면 그냥 멍청히 장면만 보기도 하고, 어쩌다 한 번씩 그렇게 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드라마 속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들리기 시작하니 그들의 발음이 얼마나 BBC 표준 영어와 다른지 우리나라 드라마 볼 때 우스운 사투리 들으면 우습던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 쿡쿡 웃으면서 실없이 따라 해보게도 되었다.
그러니까 영어 발음은 나라에 따라 또는 우리나라에 사투리가 있듯이 지역에 따라서만 발음이 다른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이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 영국의 상류층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한다 해도 그 속에서도 역시 하층계급 출신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계층에 따라 쓰는 영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꽃 파는 아가씨 오드리 헵번이 말하는 영어를 상류층 영어로 고치기 위해 언어학자가 기계까지 동원해 모음 발음을 교정하는 장면이 그냥 우습자고 있는 장면만은 아님도 알게 되었다. 그 영화는 계층에 따라 영어가 얼마나 다른지, 완전히 다른 언어이기나 한 것처럼 그 발음체계, 특히 모음발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음에 따라 계층을 확연히 보여주고 그 발음을 교정하는 것이 오드리 헵번처럼 반강제로 발음연습 당하지 않는 한 힘든 일이기에 배우들이 출신계층에 따라 등장하는 드라마가 다르다. 사극에서 왕족이나 귀족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그런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의사나 변호사 등 현대 교육에 의하여 신분이 상승한 역을 맡는 데까지는 가도, 그들의 발음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지 싶다.
그런데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35주년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드라마가 35년을 장수하며 시청자의 식지 않는 사랑을 받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 드라마를 예닐곱 살 때 보며 자란 아이들이 다시 그 드라마 속에서 역을 맡고 등장하여 자기가 어릴 때 보았던 그 드라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렇게 질긴 변함 없음이 아직도 영국에서 계층이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각설하고, 다시 발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35년 전 시작할 때 등장 인물의 발음이 지금 등장인물들의 발음과 또 달랐다. 35년 전 배우들은 BBC 표준 발음에 가까웠다. 비전문가인 나의 귀의 판단이긴 하지만, 이건 또 어쩐 일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가설 몇 가지. 그 때는 계층 간에 발음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 가설은 '마이 페어 레이디'를 생각하면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그 때는 텔레비전 초창기라서 탤런트가 따로 없고 연극 배우들이 텔레비전에도 출연했을 테고, 연극은 대사 전달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배우들이 발음 훈련을 받았을지 모르고,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BBC에서 처음에는 모든 방영 프로그램에 표준 영어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었기에 표준 영어를 발음하는 사람만 등장시킨 것인지. 60년대 영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에 대해서 무식한 그리고 언어학에 관한 문외한인 나 혼자만의 머리 속의 유희였다.
이런 관찰들로 인하여 느는 배짱은 나는 한국 영어발음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혀를 꼬부려 미국식 발음을 할 수도 없지만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 태어난 사람들끼리도 저리 다른 발음을 하고 때로는 서로 알아듣지 못하기까지 하는데 내가 내 식으로 발음하면 되지 싶은 거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영어 쓰는 나라에 한 번 가보지 않고, 아니 영어 쓰는 사람과 한번 말해보지 않고도 장하게 가르쳐 주신 그 발음기호에 따라 말하면 되지 싶다. 이건 콩글리쉬가 아니라 코리안 잉글리쉬다. <2003. 08. 15>
뉴질랜드에도 이오덕 선생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1> 영어이야기 3
다시 영어이야기 하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발음 이야기하다 보니 몇 년 전 <뉴질랜드 헤럴드>(오클랜드 유일의 일간 신문이다. 신문 구독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편하다. 또 시간도 절약된다. 이 신문 저 신문 적어도 두 가지 이상 신문을 훑어라도 보아야 했던 서울에 비하면)에 실린 영어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왜 이렇게 영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가. 아마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무의식적인 열등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말 못하고, 말없이 사는 것이 먼 휴양지에 쉬러 온 것처럼 편안했다. 말에서의 해방을 즐겼다. 일일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조차 은혜로웠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와 기도 중 들리는 말만으로도 감사와 감격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기 전에 언어 실종의 그 마음 평화로움은 점차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존재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리게 되어 있는 운명을 가진 어느 동화 속의 인물처럼 내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간다는 지독한 상실감을 맛보기 시작했다. 자기 언어의 상실은 존재의 상실이다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바닷가를 거닐어 보았자 우울함만 더해질 뿐.
동시에 어차피 영어 쓰는 나라에 왔으니 영어를 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과 만나 수다 떠는 것을 우리말로도 즐기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바보처럼 느끼게 만드는 영어로 더듬거리며 이야기하겠다고 일부러 사람 만나고 싶지도 않고, 이곳에서 이민자들에게 가르치는 영어 교실에서는 사실 배울 게 없고, 왜냐하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문법으로도 수준에 넘치게 많이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대충 읽던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정성 들여서 영어 소설 ‘순교자’를 쓴 김은국씨가 미국에 처음 도착하여 소설책을 외우며 영어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이다. 또 말이 별거냐 글 쓰듯이 말하면 되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소설 읽는 것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
그래서 꼼꼼하게 읽기 시작한 신문에 실린 글은 은퇴한 오클랜드 대학교 영문학 교수님의 글인데, 그 글을 읽으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떠올랐다. 일본어로 오염된 우리나라 말을 순수하게 되살리고자 애를 쓰시던 그 선생님이 생각난 이유는 이 교수님도 요새 젊은이들이 쓰는 영어가 영어 아님을 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뉴질랜드 영어가 원래 영어에 가장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언어 전문가인지 일반인이었는지, 한국 사람이었는지 키위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실제로 미국, 영국, 호주 드라마를 보다가 뉴질랜드 드라마를 보면 귀가 편안해진다. 특히 뉴스 진행자의 발음은 사전에 있는 그대로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노교수님은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영어를 제멋대로 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뉴질랜드 영어가 영어권 내에서 이해되지 않는 다른 언어가 될 거라는 우려 겸 유감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이 싱가포르에 여행 갔단다. 어느 날 숙박하고 있던 호텔의 카운터 직원이 교수님을 찾더란다. 혹시 뉴질랜드에서 오시지 않았냐고. 뉴질랜드에서 온 청년이 그 호텔에 묵겠다고 왔는데, 뉴질랜드 말을 하니까 통역 좀 해달라고 했다나. 물론 그 청년이 쓰는 말은 영어였다. 뉴질랜드 영어이긴 하지만, 이 영문학자께서 그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한심했으면 장문의 논설을 쓰셨을까 이해가 된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영문학을 전공하러 온 학생들조차 영어를 제대로 말하는 학생이 드물었다고 하면서 영어를 정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라고 해서 제대로 말할 때까지 반복시켰다는 이 교수님의 전화번호를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놓았다. 영어를 이 교수님에게 정식으로 배우면 영어를 제대로 잘 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모든 일에 언제나 그렇듯이 가정주부가 제 일을 위해 돈 쓰는 일이 쉬운가. 그 전화번호는 몇 년 동안 내 수첩을 옮겨 다니다가 사라졌다. 내가 전화하여 영어교육을 받자고 해서 그 분이 허락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 글이 실리고 며칠 후 반론이 실렸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부인이 일본 사람인 키위인데, 오클랜드대학의 일본어과 강사였다. 그 강사의 주장은 말이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젊은이들이 쓰는 영어가 순수 영어에서 벗어나 뉴질랜드 말이 되어 가는 경향도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굳이 순수 영어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영화 Back to the Future 에서 마이클 폭스가, 자기 부모가 10대였던 시절로 돌아갔을 때 런치 바에 들어가서 코크를 달라고 주문했더니 주인이 영 못 알아들어 소다수를 달라고 하니까 알아들었듯이 일년에 영어 단어가 5000 개 (나는 숫자를 기억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5자는 맞는다 싶은데, 그 뒤의 동그라미 숫자는 확실하지가 않다, 어쩌면 5자도 틀렸을 수도 있고. 어쨋거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어 그렇게 많이? 라고 놀랐던 느낌은 생생하다.) 정도가 사라지고 또 그만큼 새로 생긴다니 순수함을 고집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싶지만, 그 새로 생기는 단어라는 것이 주로 코크(콜라)처럼 없던 물건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또는 컴퓨터 디스켓처럼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니 이미 구세대에 속한 나는 그 은퇴 교수님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 이오덕 선생님에게처럼... <2003. 0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