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 적의 야비하고도 기습적인 테러
우리집 둘째 아이의 팔에 원인모를 뾰루지가 여러 개 나고 아내의 팔에도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중의 약국에서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연고를 구입하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지냈는데, 새벽녘에 팔이 하도 따끔 거리길래 희미한 미명에 팔을 들여다 본 순간, 안경을 끼지 않아서 정확히 몇 마리인지는 셀 수 없었지만 너댓마리의 바퀴벌레가 내 팔목 위에서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꿈이길 바랬지만 생시였다.
2단계 : 테러범 체포
다음 날, 새벽에 가만히 자는척 하며 관찰해 보니 어미바퀴들은 동작이 빠른 대신 한 번에 10센치미터 정도 움직이고서 1-2초쯤 주변을 살핀 후 다시 움직이는데 새끼들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번처럼 베개로서 눌리면 죽지도 않고 달아날테고 차마 손으로는 못하겠고....... 그러나 놈들의 움직임이 이상한 것으로 보아서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잽싸게 내 몸을 움직여 베개들 들고 일단 제일 큰놈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불을 켠 후에 거실에서 슬리퍼를 가져와서 베개를 들추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책상 아래로 도주하는데.......... 하지만 나의 슬리퍼가 더 빨랐다. 놈은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3단계 : 체포된 테러범의 행방불명
순간 시끄러움에 잠이 깬 아내가 일어나서 투덜거렸다. "당신은 이 밤중에 안 자고 뭐해요!" 그러더니 나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부부는 서로 마주보는 사이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사이라던가?.... 그 순간 아내의 기겁한 표정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평생에 가장 큰 바퀴였으니 아마 아내가 보기에도 그러했으리라!
일단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내 아내는 분명히 지구인이고 파충류는 아닐텐데 저승으로 보냈던 그 바퀴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아내도 징그러운 그 놈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들의 단잠을 깨울까봐 걱정이 되어 일단 의문은 덮어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4단계 : 최초의 반격과 작전회의
다음 날 저녁에 파리채와 [에프킬라]를 방에다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한창 인기중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서 11시쯤 꺼져 있던 거실의 불을 켠 순간 '우와!' 10여마리의 바퀴벌레가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잽싸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방으로 가서 파리채를 가져오니 이미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적당치 않은 은신처"를 찾은 몇 놈은 파리채를 맞았다. 그러나 그 순간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파리채는 파리 잡으라고 만든 것이지 결코 바퀴벌레채가 될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바퀴벌레를 본 적도, 두들긴 적도 없는데 파리채를 맞은 놈들은 한 순간(아마 0.1초쯤) 동작이 느려진 증세를 보이다가 제 2타를 날리기 위해 파리채가 공중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타격점을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파리채의 위력이 극히 미미해졌다. 평지에서 제대로 맞아야만 사망에 이를 수 있지만 곡면이나 장애물이 있으면 파리채의 공격력은 유명무실했다.
학교로 와서 여러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어떤 선생님은 뿌리는 살충제가 최고라고 하셨고 연막탄, 치약처럼 짜는 약, 스프레이약, 바퀴벌레 퇴치기..... 일단 한 가지씩 시험해 보기로 했다.
5단계 : 전쟁선포 및 작전개시
인터넷에 접속하여 바퀴벌레 퇴치기를 구입했다. 곤충에게 해로운 전자파를 발산하여 바퀴벌레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므로 1-2주 후면 모든 종류의 해충이 집밖으로 추방된다는 설명이 있었다. 특별 세일을 해도 세종대왕의 초상권이 석장 필요했다. 그날 저녁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이 기계의 놀라운 위력을 설명하고 24시간 콘센트에 꽂아 두었다. 그런데 이 퇴치기를 꽂아 둔지 10여일이 지났는데도 바퀴벌레가 줄어들기는커녕 이제 새끼뿐만 아니라 손자쯤 되어 보이는 잔 벌레들까지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 기계에 대해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명서에는 최대 2주 정도 기다리라고 해놓았으므로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바퀴는 즉시 처단하기로 하고 어김없이 밤 열한시에 싱크대의 불을 밝혀 왼손에 든 살충제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조금 끔찍하지만 오른손으로 놈들을 가격했다. 역시 파리채나 슬리퍼 보다는 효과가 확실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놈은 좌우 압력을 가하면 되었고 연속 타격도 가능했으므로 한 번에 최대 여섯 마리를 살상하는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혹시 내 손을 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에 바빴으므로 내 손을 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바퀴벌레의 파편을 처리하는 역겨운 과정은 인내하는 수 밖에 없다. 어떠한 전과 뒤에는 항상 숨은 고통이 있는 법이다.
6단계 : 내부로 부터의 지지와 비협조
그 후로 아내는 내 손을 잡지 않는다.- 그 전에도 자주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 그러나 괜찮다. 나의 사랑하는 세 아들은 이 아빠의 손바닥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니까!..... 반쯤 졸도한 놈들을 한 번씩 보여주면 막내 녀석은 건전지 없이도 움직이는 장난감쯤으로 생각하니 일거양득이다. 그런데 <벌레퇴치기>라는 기계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꾹 참아왔던 기다림의 마지노선인 2주가 지났다.
7단계 : 합동작전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최근에 나온 가장 확실한 약을 추천받았다. 주사기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가격은 좀 비싸지만 음침한 곳에다 짜 놓으면 그 다음 날부터 바퀴벌레 구경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특히 이 제품을 구입하게 된 것은 확실한 효과를 봤다는 모 선생님의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방마다 장롱 아래, 싱크대 아래 곳곳에 짜놓고 3일을 기다렸지만 눈에 보이는 바퀴벌레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지 않고 이놈들의 횡포는 계속되었다. 다음으로 스프레이같이 생긴 약을 뿌려 보았다. 그런데 조금 효과가 있는 듯 했는데 아예 초저녁부터 천장에 기어 다니는 놈들도 생겼다. 이것들 간이 커진 것 같기도 하고(바퀴벌레도 간이라는 생체조직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약을 먹어서 살짝 맛이 간 것인지 구별이 안되었다. 어른들 말씀에는 아래뿌린 약 기운 때문에 약이 없는 천장으로 도망을 갔을 것으로 추측하셨다.
8단계 : 핵폭탄 투하
이왕 바퀴벌레 제거를 결심한 이상 다음 작전으로 들어갔다. 군에서 사용하던 조명지뢰같이 생긴 빨간 통의 연막제 - 일명 바퀴폭탄 -을 세 통 구입하고 바퀴전문 뿌리는 살충제를 한 통 사서 약은 일단 구석 구석에 뿌린 후 환기구를 모두 막고 [폭탄]을 터트렸다. 장장 여섯시간의 기다림 후에 환기를 시키고 입실하니 방 바닥에는 바퀴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짜릿한 쾌감, 승리의 환희가 온몸으로 전해온다. 전장에서 승리한 군인의 심정이 이와 같을까? 기쁘기 한량없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전부 드러누워서 죽어있을까? 이상하기도 하다. 과학선생님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
9단계 : 상처뿐인 승리
그러나 이득이 있으면 손해도 있는 법, 살충제 냄새가 강해서 이날 밤은 눈이 따가왔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 약이 오죽 독했으면 바퀴가 죽을까? 사람에게도 역시 피해는 돌아왔다. 또한 기분 좋은 나와는 달리 태산같은 식기며, 아이들 장난감과 가재도구를 닦는 아내의 뒷모습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어미된 의무로서 저녁수라를 지어야 하는데 이웃집에서 식사준비를 했으니 꽤나 골이 난 것 같다.
10단계 : 패잔병 처리
이후 3-4일 동안 뒤늦게 약 기운이 퍼진 패잔병들이 대 여섯 마리 씩 항복을 하더니 이제, 바퀴벌레를 한 마리도 못 본 세월이 10여일 흘렀다. 혹시나 싶어서 밤 열 한시에 싱크대를 기습해도 한 마리도 없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모를 일이다. 은근히 한두 마리쯤 기대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두들겨 잡던 찜찜함도 일종의 쾌감이었는가 보다!
11단계 : 적의 대열정비
소탕작전이 종결된 지 한 달쯤 지났다. 그런데 새끼 바퀴벌레가 한두 마리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까놓았던 알에서 부화한 모양이다. 아들 세 명이 하루종일 흘리고 다니는 과자 부스러기가 온 집을 어지럽히므로 이놈들의 번식조건이 충족되는 모양이다. 먹이 공급원을 끊지 않는 한 이것들을 완전히 멸종시키기는 어려운 것 같다.
12단계 : 휴전
또 다시 그 난리를 치고 싶지는 않은데.... 이제는 내 마음을 바꿀 때가 된 모양이다. 적을 완전히 죽여 없앨 수 없다면 어느 정도는 공존과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인류는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놈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죽이기 전에 약 때문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한 번씩 보이는 바퀴벌레는 우리집에서 키우는 가축쯤으로 생각하자! 요 놈들도 살자고 태어난 녀석들인데.....
첫댓글 오~A++ 슈퍼 스팩타클 울트라 액션 워리어를 본 기분입니다...ㅎㅎ 근데 휴전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모를 패배적인 기운이...ㅋㄷㅋㄷ
이라크 전에서 미국이 안이겨도 이겼다고 하쟎아요!
임집사님~'태극기 휘날리며' 보다 더 흥미진진한 블록버스터 대역작 입니다...벧엘교회 선정 올해의 000을 수상하셨습니다...^^* 혹시 2부의 계획은 없으신지...혹시라도 계획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요...제작 지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