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앙코르왓 여행기(2)
/앙코르왓편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는 오후 4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점심식사후 하노이 공항으
로 갔다. 하노이 공항에서 씨엠립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 가이드 말로는 푸로펠라 경
비행기라고 했는데 타고 보니 보잉기였다. 규모가 큰 보잉 747은 운행이 안된다고 한
다. 앙코르왓의 균열 예방차원이란다.
비행기안에서 캄보디아로 입국하는데 필요한 3종류의 서류를 기재하느라 끙끙댔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여권과 사진만 받는게 아닌가! 이상해서 물었더니 입국 비자수수료
가 20불인데 급행료로 5불을 더 주기 때문에 이런 게 다 필요없고 비자도 도장을 찍어
서 다음날 호텔로 갔다 준다고 한다. 돈의 만능을 실감한다.
시간도 예상시간보다 빨라서 저녁시간을 6시30분으로 당겼다.
식사후 숙소인 PRUM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내부시설이 베트남 보다 훨씬 좋았다.
준특급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남자회원들이 이심전심으로 총경리인 조병무 싱글룸으로 모였다.
권중화가 가져온 소주에 과자 등을 안주로 술상을 벌였다. 여행중 에피소드 그리고
과거 여행의 무용담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 보니 밤 10시반이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앙코르왓을 찾아가서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감각
으로 느끼는 날이다. 각각 방에서 샤워를 하고 일찍 쉬기로 하였다.
캄보디아
앙코르왓 관광을 시작하면서 캄보디아에 관한 기본자료
국토의 면적은 우리나라(남한)의 2배가 되는 18만 1035㎢, 인구는 약1200만, 수도는 프놈펜이고 공용어는
크메르어다.북동쪽으로 라오스, 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 북쪽과 서쪽으로 타이에 접해 있고 남서쪽으로는
바다인 시암만에 접해 있다. 캄보디아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 평원국가로 평지가 국토의 75%나 된다.
지형은 바다에 접해 있는 남쪽을 제외한 3방향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의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전개되
어 있어 마치 얕은 대접 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위의 산지는 가장 높은 남서부의 카르다몸(크라반)산맥도 해발고도가 1,000~1,500m
에 불과하다.이들 산지는 중앙부를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 서부에서 가장 움푹 팬 부분이 캄보디아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하는 톤레샆('큰 호수'라는 뜻)이다.
내일 이 톤레샆 호수를 관광한다.
반티아이스레이 사원
당초 예정된 코스일정을 바꾸어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반티아이스레이 사원을 먼저 가
기로 했단다. 아침 7시 씨엔립 시내에 있는 호텔을 출발했는데 1시간 15분이 걸려 사
원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캄보디아의 시골 풍경을 차창 밖으로 감상하였다.
오늘 관광스케쥴은 반티아이레스-앙크로톰-바이욘사원-바푸온사원-코끼리테라스-
피미에나나까스사원-타푸롬사원-그리고 마지막으로 앙코르왓을 구경한다.
앙크로왓은 전 앙크로 유적지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이유로 맨 나중에 보는 것이 좋다
고 한다. 거꾸로 보게 되면 다른 유적지가 시시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일몰시간에 맞춰 프놈바킹에서 낙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로 하였다.
반티아이스레이는 1914년 프랑스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반티아이스레이는 석양으로 물든 낙조시간이면 장미빛 불길이 훨훨 타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앙코르 유적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붉은 사암으로 쌓아올린 건축물의 단아함 때문에 복원작
업에 참여하였던 프랑스 건축가들이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는 찬사를 남겼다 한다.
특히 붉은 사암에다 나무에 조각하듯 정교하게 새겨넣은 조각과 치장물등은 그 화려
함과 섬세함이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사원전체의 화사한 아름다
움은 마치 공들여 치장을 마친 여인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반티아이 스레이라는 이름의 뜻도 '여인의성채'라는 의미이다.
데바다 여신상
남성의 심벌인 '링가' 그리고 여성의 심벌 '요니' - 사진촬영때는 요니 모이세요! 링가 모이세요!
입구에 들어서면 긴 보도가 나오고 이 보도를 걸어가면서 옆으로 늘어선 돌기둥에 조각
된 작품부터 감상하게 된다. 보도 끝에는 신전으로 들어가는 탑문이 외벽과 함께 서 있
고 탑문안으로 들어가면 크다란 해자가 나온다. 해자에는 아름답게 핀 연꽃이 반긴다.
해자에 비춰지는 사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신전 입구의 탑문에 조각된 부조는 너무나 섬세하여 감탄이 절로 난다.
라젠드라바르만 2세(재위 944~968년)가 다스리던 시기에 귀족이 세운 힌두교 사원으 로 지붕과 회랑마다 새겨진 부조는 앙코르의 수많은 유적 중 최고로 꼽힌다.
특히 중앙 사당에 조각된 풍만한 가슴의 테바다 여신상이 관심을 끈다. 동양의 모나리 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부조는 한때 프랑스 문화부장관을 지낸 앙드 로 말로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몰래 밀반출을 시도했다는 일설까지 있을 정도이다.
앙코르톰
다음 목적지인 앙크로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돔사원을 눈 으로 보면서 지나고, 한시간 뒤 앙코르톰에 도착하였다. 앙코르톰은 1200년대 100만명 이 거주했던 어마머마한 대도시였다. 앙코르 톰은 자야바르만 7세가 조성한 앙코르 왕 국의 마지막 수도다. 앙크로톰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바이욘사원이다.
<앙코르 문화의 대표적 사원, The Bayon>
앙크로톰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앙코르톰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위대한 건설자인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가 12세기말에 앙코르톰의 중심
에 건립한 불교 사원으로 54개의 탑에 새겨진 소위 '앙코르의 미소'라 불리는 관세음
보살의 사면불(四面佛)이 200개를 넘는다.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더욱 놀랍
다. 거대한 바위산 모양으로 건설된 이 사원은 앙코르의 유적 중 유일하게 우물을 갖추
고 있다.
바이욘 사원 탑에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한 자야바르만 2세로 추정되는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부처와 동일시된 왕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다. 회랑의 벽면에는 그 당시 크메르인들의 역사와 일상 생활을 책대신 기록한 부조가
벽면 따라 사방으로 새겨져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2층으로 올라가면 자야바르만
2세로 추정되는 거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흔히 앙코르왓과 견주기도 하지만 앙코르왓이 힌두교의 철학에 의해 지어진 사원인 반
면 바이욘 사원은 블교양식에 의해 지어져 있다. 따라서 설립 목적이, 설계, 건축과 장식
에 있어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지어졌으므로 바이욘과 앙코르왓을 잘 비교해 보면 불
교와 힌두교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바푸욘사원> 앙코르 톰 경내에 위치한 바푸욘사원은 북쪽 테라스를 나와 공터를 가로질러 좌측으로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 모양의 사원이다. 앙코르 지역에서 3번째로 건립된 유서깊은 사
원으로 앙코르톰이 건설되기 이전부터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다야디트바
르만 2세에 의해 1060년에 완공된 바푸온은 힌두교의 쉬바신에게 바쳐진 웅장한 성소였
으며 훗날 쟈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건설할 때 바푸온을 경내에 넣었다. 때문에 앙
코르톰 내의 다른 건축물들과는 건축 양식이 현저하게 다르며 더 많이 훼손되었다.
덩그러니 높다란 산 모양의 사원은 멀리서 보면 단조롭지만, 내부는 멋진 부조로 장식
되어 있는 사원으로 유명하다.그러나 보수중이라 내부를 관람할 수가 없다.
<코끼리테라스>
코끼리 테라스는 그 길이가 300m가 넘는데(건기에는 마르고 우기에는 물이 찬다)
이 테라스의 외벽은 세 단으로 나뉘어져 아주 깊게 부조되어 있다.
남쪽의 계단에는 머리 셋 달린 코끼리가 코로 연꽃을 모으는 조각이 새겨진 기둥이 받
쳐 있고 각 단의 벽은 중앙 계단을 받치고 있는 사자와 가루다의 조각이 있다.
300m가 넘는 긴 벽을 따라 무수한 무리의 실물 크기의 코끼리떼가 남성적이면서도 섬
세한 텃치로 새겨져 있어 '코끼리 테라스'라 불리운다.
<타프롬사원(Ta Prhom)> 12세기 중반 자야바르만 7세때 축조되었다. 아침이 정글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사원 이름은 '브라흐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타프롬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전혀 복구를 하지 않
은 사원이다.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의 생명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
었다. 나무가 자라면 유적이 위험해지고 그렇다고 나무가 죽으면 마찬가지로 유적이 무
너지게 된다. 그래서 나무는 크지도 죽지도 못하는 슬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생명촉
진주사와 억제주사를 교대로 맞는다고 하는 넌센스--
밀림 속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 사원은 당시의 영화보다 더실감나는 현실을 살고 있다.
500년 이상 된 스펑나무가 돌로 된 사원을 곳곳에서 먹고 있어 붕괴와 공존을 함께하는
기괴한 느낌의 사원이 되었다. 자연의 생명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곳이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톰레이더'의 촬영장소로 더욱 유명해졌다.
<피미아나까스(Phimeanakas)>
10세기 라젠드라바르만 2세때 건축된 이곳은 "하늘의 궁전" 이라 불리우며 왕궁 내부의
왕실을 위한 사원이었다. 또 '황금탑'이란 이름도 갖고 있으며 원나라 세관원으로 톰에 거주했던 주달관(周達觀,
Zhou Daguan)의 방문기에 의하면 3층의 성소 꼭대기는 황금으로 입혔다고 전해온다.
피미아나까스 사원 앞에서 열대과일을(코코넛)을 먹으면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앙코르왓
앙코르유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앙크로왓을 보기 전에 여러 다른 유적지를 둘러보
았다. 폭 200m, 길이 4km의 해자 저 너머가 바로 앙코르왓이라는데 마치 무슨 보물을
숨겨두고 애를 다루는 것 같다.
세계 7대불가사이의 하나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단일건물로는 규모가 세계 제1이다.
가로 1.3km, 세로 1.5km 건물로 60만평에 펼쳐저 있다.
1,863년 프랑스의 앙리무어가 동남아 지도를 만들기 위해 태국을 방문했다가 길을 잃
고 헤메다가 이곳 앙크로왓의 거대한 문화를 발견하고 그 뒤 프랑스 탐험대에 의해 세
상에 그 모습을 들어내게 되었다고--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2세에 의해 37년간에 걸쳐 건축된 앙코르 왓은 정말로 장대하
고, 섬세한 부조들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뛰고 설레이는 곳 이다. 앙코르 유적
중 개별 사원으로는 가장 크고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인 역사적인 예술로 인정받은
곳이다. 돌로 만든 "우주의 모형"이라는 사원으로 사방 200M의 해자와 사각형의 외벽
길이가 5,5Km, 3개 층으로 높이가 65M인 세계최대의 거대한 단일 건축물이다.
앙크로왓이 밀림속에 묻혀있어서 16세기 왕국이 사라진지 400년이나 자연속에 방치되
어 있었기는 하지만, 지금은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불과 6km 떨어진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고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부근에 있는 앙크로톰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건축물이어서 연중 관광객이 들끓고 있다.
앙코르왓의 5개의 탑이 앞 해자에 비쳐 10탑을 이룬다. 아래는 뒷면이 가려 마치 3개의 탑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천상으로 오르는 계단길은 75도로 위험하다.
전쟁의 무사들
우유의 바다 휘젓기- 악신과 선신이 힘을 모아 바다를 휘저어 불사의 영약 암리타를 만든다.
아랫쪽 바다밑에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많은 부조(벽면조각)에 나오는 압살라/유액을 발라 반짝거린다.
22명 전원이 모두 천상의 계단길에 올랐다.
앙코르왓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3일동안 내용을 감상하면서 관광해야 하나
마치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식으로 다니다 보니 빠뜨린 것도 많고 차에서 가이드로 부
터 들은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건축물 벽면의 부조나 작품을 하나하나 연관
시키면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쉽다.
앙크로왓 관광을 마치고 일몰시간에 맞춰 프놈바킹으로 향했다. 구름이 많아 일몰을
보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단 기대를 해보면서 -
이곳도 경사가 심한 계단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야만 한다. 정상에 오르니 많은 관
광객들이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구름이 너무 짙어 결국 포기를 하고 씨엠립으
로 귀환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더위에 흘린 땀을 샤워로 말끔히 씻고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버스에 올
랐다. 저녁식사는 압살라 민속디너쇼를 겸하였다. 전통악기의 음악에 맞춰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의 춤과 공연이 흥을 돋구었다.
저녁시간도 바쁘다. 공연을 마치고 야간시티투어에 나섰다.
옵션의 하나인데 삼발이 툭툭이를 두명에 한대에 같이 타고 시내 번화가를 구경했다.
도중 카페에 들러 생음악을 들으며 생맥주 파티를 열었다. 링가는 생맥주, 요니는 음료를- 미리 사온 열대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결국 열대과일의 황제라 불리는 두리안은 계절상 귀해서 먹지 못했다.
냄새가 지독하지만 맛은 최상이다. 신청곡을 불러주는데 다 듣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내일은 톤레샆호수와 인공호수인 웨스트바레인호수를 관광한다.
톤레샆호수
오늘은 그다지 시간이 바쁘지 않은지 아침을 늦게 먹고 8시30분에 호텔을 나섰다.
하루종일 버스,배,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육해공군수송수단이 모두 동원되는 날이다.
가는 도중 이 지역 특산물인 상황버섯 전시판매장에 들렀다. 공군대령출신인 사장이
이 지역 산중에서 자라나는 수십년된 상황버섯을 군을 동원해 채집하면 약용으로 만들
어 수출한다고 한다. 보통 30~40년된 것에서 부터 120년 된 것까지 다양하며 년수가 많
을수록 희귀품이라 한다. 캄보디아산 상황버섯도 알아주는 모양이다.
서융덕동문이 거금을 들여 오래된 희귀품을 구매하였는데 건강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크메르인들의 생활터전으로 자연호수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수상가옥을 감상하는 시간
이다. 어제와는 달리 역시 호수로 나오니 덥지않고 시원하다. 마음이 무척 편안해 진다.
톤레샆 호수는 세계에서 바이칼 다음으로 큰 호수이다. 그러나 건기가 아닌 우기에는
바이칼호수보다 더 넓단다. 수심은 깊은 곳이 4~5m이나 만수시에는 7~8m까지 오른다.
월남이 공산화되면서 자유를 찾아 보트피플로 캄보디아를 찾은 이들 수상가족들은 이
제 캄보디아에 정착하여 캄보디아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 얘기만 듣던 수상전통가옥이 신기하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점이 많다. 이날이 우리식으로 따져 손없는 날인지 이사하는 장면이 눈에 많이 띄였다.
앞에서 동력선이 끌고 수상가옥이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있었다.
가옥안에는 여러가지 살림도구가 다 있고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한국인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수상학교에는 태극기가 선명히 보였는데 조금 가다 보니
일본인 학교도 보였다. 경쟁심의 발로인가 보다.양동이를 보트처럼 타고 가는 어린애들
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웨스트바레이(Western Baray)호수와 킬링필드.지뢰전시장
중식후 다시 배를 타게 되었다. 인공호수인 웨스트바레이 호수를 두대의 배로 나누어
호수 안에 있는 메본공원으로 갔다. 메본공원은 메본사원이 있던 유적지인데 사원의
일부 파괴된 흔적만 남아 있었다. 배를 타기 전부터 어린애들이 팔찌 부채 등 1달러
짜리 쇼핑물건을 들고 달라붙어 좀 당황스러웠다. 애들이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재미있다. 배를 탈때 "머리 조심하세요!" 정도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아줌마, 예뻐요!
간혹 "할머니 머리가 이뻐요 !" 하는 말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배가 닿은 곳은 유원지로 꾸며진 섬이었다. 수십명이 오를 수 있는 평상이 있었다.
우리일행은 평상에 올라 모처럼 과일도 먹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원래 푸로그램이 있
는지 이 섬에 있는 어린이들이 모두 모여 한국 동요 '퐁당퐁당' 노래와 '학교종이 땡땡
땡' 노래를 합창을 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동요도 한곡 부르고-- 어린이들에게 연필을
사 써라고 10달러를 주니 좋아했다.
섬 어린이들의 한국동요 부르기
김용옥여사의 가을시 낭독
심심풀이 Y교실이 열려 멀리 이국 땅에서 웃음의 Y강좌를 열었다. 이활용시인의 부인
김용옥여사께서 낭낭한 목소리로 부군의 '영주 부석사에 가면'이라는 시와 유명 시인
들의 가을시를 낭독해주어 한결 엎그레이드된 여행이 되었다.
중식은 평양냉면집이었다.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여인
들의 노래와 춤공연을 보여주는 식당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동포라는 생각에 술도
사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흥겨워하며 구경했는데 핵으로 공갈치는 김정일의 작태에 환
멸을 느낀 우리들은 점심을 먹자말자 바로 밖으로 나왔다. 이심전심인 모양이다.
나는 가이드에게 항의하였다. 왜 이런 분위기를 모르느냐? 그의 얘기로는 우리 대사관
측에서도 가급적 가지 말라고 한단다. -- 아마도 단체인솔에 대한 가이드 수입과 관계
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웨스트바레이호수를 나와 옵션으로 단체로 선택한 킬링필드기념관에 들렀다.
캄보디아에서는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군이 캄보디아를 공산화한 후 농업적 공산
주의사회를 주장하면서 도시에 있던 사람들을 정글로 끌고 갔다.
그리고 반대세력과 지식인 들을 학살하고 반동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
다. 전 국민의 1/4인 200~3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으며 이 사실은 미확인 정보로만 되
었다가 영화 『킬링필드』의 주인공(실존인물)이 캄보디아를 탈출하여 전 세계에 폭
로함으로써 대학살 킬링필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기념관 있는 자리에 큰 사원이 세워져 있었다. 오토마이사원(New temple)이라는 이 절
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이 그려져 있는 탱화가 벽면을 채우고 있었는데 여태껏 힌두교의
부조를 보다가 좀 색다른 감을 느꼈다.
다음 순서는 역시 옵션 스케쥴인 지뢰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아스팔트가 없는 좁은 골
목길로 들컹거리며 찾아들어가니 조그만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이 지뢰박물관은
「아키라」라는 청년이 만든 곳으로 이 청년은 어린시절 크메르루즈군에 들어가서 지
뢰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제 평생 동안 캄보
디아 전 국토를 돌아다니며 지뢰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뢰로 인해 불
구가 된 아이들을 거둬 지뢰박물관에서 같이 생활하며 돌봐주고 있다.
실제로 「아키라」는 국내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지금도 캄보디아 곳곳에서
는 심심찮게 지뢰가 발견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지뢰 때문에 심한 부상을 입거
나 목숨을 잃고 있다.
아키라 지뢰박물관
씨엠립으로 가는 도중 보이는 농촌의 집들마다 집앞 또는 옥상에 칠성단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이채롭게 시선을 끌었다. 길거리에 돼지나 닭을 자전거에 싣고가는 모 습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닭도 돼지도 하늘을 쳐다보게 거꾸로 싣고 가는데 그래야 돼지도 꽥꽥거리지 않고 닭도 발버둥을 안친다는 재미있는 지혜를 배웠다.
씨엠립은 캄보디아에서 5번째 큰 도시이지만 인구는 1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 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선조들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행복한 도시이다.
씨엠립 시내는 교통신호대가 단 3개뿐인데 이 신호대를 처음 설치했으때는 빨강과 파랑 신호를 잘못알아 교통의 혼란을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옛날 그런일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역사의 시간흐름을 다시 생각케 한다.
저녁식사 전에 캄보디아 특유의 전통전신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부인들 몇명은 시간
이 짧은 발맛사지만 받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2시간짜리 맛사지를 받았다.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발끝에서 머리까지 시원하게 전신맛사지를 받고 나니 그간 여 행의 피로가 다 날라가는 것 같았다. 이제 서울을 떠난지 만 5일째다 여행 스케줄은 모두 끝났다.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공통비용 정산내용을 설명하고 남은
돈을 인당 15불씩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흥미롭고 즐거웠던 여행을
모두 마감했다.
이번 여행을 사전 계획하면서 많은 준비와 검토를 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많았으
리라 생각되지만 사삼여동회 멤버들 모두가 협조를 잘 해 주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조병무회우가 총경리 임무를 맡아 너무도 열심히 봉사를 해주어 고마운 마음 그
지없다. 그리고 음식물 보급역에 전경순여사가 희생적인 봉사를 하였고 안승태,허진호
두 조장이 열심히 제 역할을 다 해주어 고맙기 한이 없다. 디카를 들고 풍경과 인물사진
을 카메라에 담느라 늘 수고하는 장곡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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