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영욕으로 가득한 호프부르크 왕궁을 바라보며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서 링 거리를 건너서 부르크 문을 통과하여 <헬덴 광장>으로 들어서니 웅장하고 화려한 호프부르크 왕궁건물이 너른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호프부르크>는 합스부르크가의 영욕과 더불어 650년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합스부르크가의 정궁인 <호프부르크>는 12세기 초에 최초로 세워진 성관을 중심으로 역대의 군주들이 차례로 증축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왕궁 건물들이 다양한 양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쪽 구시가지에 연결된 <미하엘 광장>을 향하고 있는 것이 구왕궁이고, 남쪽 부르크 링 거리에 면한 잔디광장 <헬덴 광장>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신왕궁>이다. <호프부르크 왕궁> 답사는 신왕궁 동쪽의 <왕궁정원>을 거쳐 <헬덴 광장>과 <신왕궁>을 답사하고 <구왕궁>을 둘러 <미하엘 정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신왕궁의 정문 부르크 문>
<헬덴 광장>에서 바라본 신왕궁의 웅장한 모습은 옛 합스부르크 왕국의 위세만큼이나 당당하였다. 광장 동쪽에 세워진 위풍당당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신 왕궁>은 1881년 <카를 폰 하제나우어>에 의해 짓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1916년 까지 건설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후의 궁성인 이 왕궁은 2천개의 홀을 가진 거성으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듯 2개의 머리를 한 독수리가 건물 정면 위쪽에서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민족학 박물관>, <고대 악기 박물관>, <궁정 무기 박물관>, <에페소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왕궁> 정면에는 푸른 잔디로 이루어진 너른 <헬덴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웅들의 광장’이라 하는 이곳에는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이 유럽세계를 주름잡던 시기에 활약하였던 영웅 <오이겐 공>과 <카를 대공>의 커다란 기마상이 서로 마주보며 힘찬 모습을 하고 있다. <부르크 링>을 향하고 있는 신왕궁의 정문인 <부르크 문> 은 일명 ‘헬덴(영웅) 문’으로 신왕궁 에 걸 맞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후의 궁성 신왕궁의 위용>
신왕궁의 뒤편에는 널따란 <왕궁정원>이 위치하고 있다. 이 정원에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모차르트의 조각상>이 있어 관심을 갖고 찾았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화단위에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모차르트의 생동감 있는 조각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멋진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였다. 많은 모차르트의 조각상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생동감 있는 멋진 조각상이다. 그런 반면에 정원 한쪽 구석에는 68년이란 최장의 통치기간 동안 비엔나를 가장 번영된 도시로 만들었던 <프란츠 요세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실상 제국에 최후 의 황제였던 요세프의 동상 모습은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어 기울어져 가는 제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차르트의 조각상에 가려 별로 찾는 이가 없어 대조를 보였다.
<왕궁정원 높음자리 화단에 세워진 모차르트 조각상>
<헬덴 광장> 북쪽에 위치한 <구왕궁>으로 이동하였다. 구왕궁 정원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여러 양식의 건물들이 정원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배치되어있다. <구왕궁>은 <왕궁정원>을 중심으로 북쪽에 <재상 집무관>와 동쪽의 <스위스 궁>, 남쪽의 <레오폴드 관>, 서쪽에 <아말리에 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왕궁이 처음 세워진 것은 1220년 경 <바벤베르크가>의 <레오폴트 1세>에 의해서였다. 그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루돌프 1세>가 이곳을 차지한 이후부터 18세기 전반 <카를 6세> 때 까지 이곳은 합스부르크가 역대 황제들의 거성으로 사용하였다.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색 건물인 왕궁은 16세기 <페르디난트 1세>때 지은 것으로 구왕궁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현재 이곳을 <스위스 궁>이라 부르는데 그 유래는 18세기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궁을 지키는 근위병을 스위스 용병들에게 맡겨진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왕궁정원에서 궁으로 이어지는 <스위스 문>은 르네상스 양식의 색채가 두드러진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다. 19세기에 와서 왕궁이 새로이 신축한 <신왕궁>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프란츠 요세프 황제>의 영빈관으로 사용하였다가 현재는 신성로마제국의 왕관들을 보관한 <왕실 보물관>과 <왕궁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 왕궁정원 북쪽의 <재상 집무관>과 서쪽에 <아말리에 궁>을 잊는 20개실의 건물 군을 <황제의 아파트먼트>라고 불린다. 북쪽에 있는 하얀색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은 18세기에 <힐데브란트>가 설계하고 <에를라흐>가 세운 것으로 제국의 재상들이 집무하던 곳이었으나19세기에 와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최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황제> 부처가 거쳐 하였다고 한다. 서쪽에 위치한 <아말리에 궁>은 17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19세기에는 비운의 왕비 <엘리자베트 왕후>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크고 작은 살롱을 비롯하여 거실과 침실, 화장실, 식당, 응접실 등에는 비명에 간 왕비의 혼이 남아 있다. 10번째 방인 붉은 색 <큰 살롱>에는 비극적인 <엘리자베트>와 <프란츠 요세프>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20번째 방 <작은 살롱>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었던 사라예보 사건에서 희생된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기거했던 방이라고 한다.
정원 남쪽에 위치한 <레오폴드 관>은 18세기에 여걸 <마리아 테레지아>가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오스트리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건물은 세속 정치에 힘을 가진 사람들만이 거주 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인 것 같은 역사의 우연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구 <왕궁 정원> 중앙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왕관을 나폴레옹에게 빼앗긴 <프란츠 1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의 모습은 우람하였으나 그 표정은 기울어져가는 합스부르크가의 운명을 나타내는 양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왕궁정원 동상 앞에 서서 사방에 둘러선 제국시대 건물들을 바라보니 지난세기 제국을 주무르던 주역들은 다 어디로 가고 굳게 닫힌 아파트먼트 지붕 너머로 무심한 구름들만이 흘러가고 있어 역사의 무상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구왕궁의 황제의 아파트먼트 전경>
<황제의 아파트먼트> 뒤쪽으로 나와 구왕궁 정문인 <미하엘 문>을 통과하였다. 18세기에 세워진 이 문은 철 세공이 아름답고 양옆으로는 힘의 상징인 4개의 헤라클레스 상을 세워놓은 건축미가 빼어난 건물로서 궁성 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왕궁 건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문 앞 넓은 <미하엘 광장> 한가운데는 바다와 육지의 힘을 상징하는 커다란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광장에는 관광 마차들이 구시가지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구시가지가 이어진다.
<화려한 왕궁에 걸맞는 아름다운 구왕궁의 미하엘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