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막걸리의 발효 이야기
안수연 기자2009.05.27 18:06:59 (경북대신문)
발효란 넓은 의미로는 미생물이나 균류 등을 이용해 사람에게 유용한 물질을 얻어 내는 과정을, 좁은 의미로는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얻는 당 분해과정을 말한다.
맥주와 막걸리의 역사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주인 맥주의 역사는 기원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유물에는 ‘기원전 4천 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건조된 보리로 만든 빵에다 물을 부어 자연발효 맥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기원전 3천 년경 이집트는 맥주가 대표적인 주류로 자리 잡아 파라오 왕조시대의 일반생활에서는 물론 제사와 외과적인 치료에 이용하기도 했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보다 질 높은 맥주가 만들어졌다. 향료와 약초 등의 첨가물을 넣어 다양한 맛을 내기도 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의 ‘열처리 살균법 발견’으로 맥주산업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맥주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유통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덴마크의 한센이 발명한 순수배양법과 린네가 발명한 암모니아 냉동기는 맥주의 연중 공업적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한편, 우리의 전통 발효주인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거른 술’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 중 하나이다. 이름처럼 맑은 술을 떠내지 아니하고 그대로 걸러 짠 술이다. 언제부터 막걸리가 제조되기 시작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시대 이규보가 편찬한 ‘동국이상국집’에 ‘발효된 술덧을 압착해 맑은 청주를 내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라고 한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막걸리는 수난도 많이 겪었다. 식량난을 덜기 위해 1964년 쌀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데 이어 막걸리에 카바이드가 들어갔다고 해서 유해시비까지 일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던 막걸리는 서서히 소주, 맥주, 양주에 시장을 내주며 한동안 잊혀진 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컬러막걸리, 과일 막걸리 등 새로운 퓨전 막걸리로 신세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막걸리와 맥주, 발효로 만들어져요
막걸리는 쌀 또는 밀가루로, 맥주는 보리로 만들어진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 둘은 전분이 주성분인 '곡류'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닮았다. 곡류로 만들어지는 이 두 가지 술은 ‘복발효’라는 과정을 거친다. ‘복발효’ 과정을 통해 곡류에 포함된 전분을 발효가 쉬운 당으로 만드는 당화과정을 거친 후 알코올 발효가 진행되어 술이 만들어진다. 이 때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이유는 전분에서는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막걸리와 맥주의 제조 원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앞서 말했듯이 전분에서는 효모가 활동을 하지 못한다. 효모는 당을 발효시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산해야하는데, 전분에서는 그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분을 효모가 활동하기 쉬운 당으로 만들기 위해 누룩을 넣는데, 이 때 누룩의 곰팡이가 생산한 당화효소가 당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해서 전분을 분해하고 얻은 당은 효모에 의해 발효화 돼 알코올 성분을 만들게 된다.
맥주의 원리도 막걸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과정에서 ‘누룩’이 아닌 ‘맥아’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맥아는 싹을 틔운 보리를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엿기름이라 한다. 막걸리의 효모가 전분에서 활동을 못하는 것처럼 맥주효모도 전분에서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맥아가 일정한 수분과 온도를 가지면 전분으로 부터 당을 생성해낸다. 그러면 전분을 분해해 얻은 당에 효모를 넣고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특히 맥주는 넣는 효모에 따라 크게 상면발효맥주와 하면발효맥주로 나누어진다. 상면발효맥주는 발효 도중에 생기는 거품과 함께 상면으로 떠오르는 효모를 사용하여 만든 맥주다. 이는 18~25도의 비교적 고온에서 1주 정도 발효 후 15도에서 1주간의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다. 거품이 적고 호프의 냄새가 강하며 쓴맛도 강한 상면발효맥주의 대표적인 예로는 에일(Ale)이 있다.
이와 달리 하면발효맥주는 발효가 끝나면서 가라앉는 효모를 사용하여 만든 맥주다. 이는 10~15도의 비교적 저온에서 7~12일정도 발효되며 1~2개월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단맛이 나고 도수가 비교적 낮다는 것이 특징인 하면발효맥주의 대표적인 예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카스, 하이트 등이 있다.
복식발효는 전분을 당으로 분해한 다음 알코올 발효를 진행하는 단행복발효와 전분의 당화가 발효와 동시에 행하는 병행복발효가 있다. 전자의 예가 바로 맥주이며, 후자의 예가 막걸리다.
맥주와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같지만 그 보존기간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맥주는 발효 후 정밀여과를 통해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된다. 미세한 정밀 여과기를 통과시켜 불순물은 물론 효모, 곰팡이, 그리고 세균까지 완전히 걸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또한 ‘홉(hop)'을 첨가해 불순물을 침전시켜 맥주를 맑게 하며 잡균의 번식을 방지하여 저장성을 높인다. 이 홉은 상쾌함을 느끼게 하는 쌉쌀한 맛과 향이 있으며 맥주에서의 거품을 보다 좋게 만들기도 하는 맥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반면에 막걸리는 말 그대로 ‘막 걸러냈기 때문에' 여과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있다. 맥주와 반대로 막걸리가 통속에 들어간 후에도 발효가 계속되는 것이다. 때문에 짧은 유통기한을 지닌 막걸리는 전국으로 유통되는데 난항을 겪어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효모의 활성을 조절하고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시켜 유통기한을 한 달까지 늘린 생막걸리가 출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