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6.2.25일
팀 명 : 큰뫼사랑 종주대
참가대원 : 최성우(대장), 유승철(대원),김승만(대원),신희선(대원)
종주구간 : 제17구간(작점고개-큰재)
종주거리 : 총9km
2006.2.25일(토)
08: 04분<분당 출발>
오늘 산행구간은 비교적 짧은 9km이므로 아침 8시에 여유있게 분당을 출발하였다. 김대원의 애마(NF SONATA)를 이용하기로 하고 기사는 김대원이, 나는 조수를 담당했다. 예전 같으면 퇴근 후 저녁에 출발하거나 새벽에 출발 하였으므로 산행 출발지 까지의 여행이 지루하였고 항상 배가고파 휴게소에서 먹었으나 오늘은 집에서 잠도 충분히 자고 아침도 든든히 먹은 터라 몸과 마음 모두 최상의 상태이므로 차창가로 뒷걸음치는 봄으로 가는 늦겨울 시골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백두대간 산행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교통편인데 이번 구간도 산행시점인 작점고개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놓고 큰재까지 산행 후 택시를 불러 다시 작점고개로 가서 우리차를 타고 다시 큰재 근처 모텔로 와야 한다. 산행 후 피곤한 상태에서 쉬고 싶은데 다시 시작 지점에 가서 차를 가져와야 하다니 뭔가 불합리한 것 같다.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실제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자리에 앉은 김대원과 나는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선 목적지인 큰재로 가서 차를 세우고 택시를 불러 시작점으로 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백두대간 안내책자에 소개된 추풍령 개인택시에 전화를 걸어(011-9700-4066) 큰재에서 작점고개까지 25,000원에 이동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내가 황간 IC를 빠져나올 때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황간휴게소에 들러 각자 물통을 가득 채우고 유대원이 사온 호두과자를 맞있게 먹었다. 한봉지에 따뜻한 것과 찬 것이 섞여있어 운이 좋으면 따뜻한 것을 먹을 수 있었다.
10:08 <황간 IC 빠져나옴>
황간IC를 빠져나와 고속도로 밑으로 통과 후 죄회전을 하여 약 100m정도 가면 우측으로 49번 도로 이정표가 나온다. 약속한대로 추풍령 개인택시에게 011-...번으로 전화를 했더니 어떤 여자가 받는다. 혹시 개인택시 아니냐고 물으니 기사 부인이라고 말하며 택시기사는 016-52...번 핸드폰을 가지고 나갔다고 한다. 다시 016...을 걸어 먼저 그 여자가 다시 받는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알고보니 금방 택시기사가 들어와 핸드폰을 바꿔가지고 다시 나갔다고 한다. 이 짧은 순간에? 하는 수 없이 다시 011-9700-4066번으로 전화를 걸어 어렵게 기사와 통화에 성공,약속을 최종 확인했다.
10:31 <큰재 도착>
49번 도로를 약 10분정도 달리다가 중모초등교를 지나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68번 공성방향 이정표가 나오고 5분 가다가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추풍령IC가 방향이고 우리는 여기서 좌회전하여 68번 도로를 계속 가야 한다. 좌측에 상판 저수지를 끼고 진행하다 보면 큰재가 나온다 . 보통 무슨 재라든지 무슨 령하면 고개를 연상하지만 백두대간길의 재와 령은 전혀 상상과 다를 수 있다. 이번 큰재도 평지와 다름없어 하마터면 지나질 뻔 했으나 마침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보고 멈출 수 있었다. 또 오는 도중에 오늘 우리가 묵을 알프스 모델도 볼 수 있다.
11:00 <작점고개 도착 및 12구간 출발>
큰재 김천방향 우측 길 옆에 김대원의 애마를 주차시키고 택시에 탔다. 택시기사는 69세의 할아버지로서 친절하시고 보통 시골사람들과는 좀 다른 유식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동네 토박이시라 작점고개까지 가는 길은 지도에도 없는 농로를 따라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을 택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시다면서 현 정권이 농촌의 살림살이를 점점 어렵게 한다고 얌전하게 불만을 표시하신다.
작점고개에 도착한 일행은 출발사진을 찍고 예전과 같이 백두대간 제 12구간 첫발을 내딛는다. 이 고개에서 서쪽은 충북 추풍령 방향이고 동쪽은 경북 김천시 방향이다.
11:22 <무좌골산 474봉 도착>
산행길은 시작부터 시골 야산처럼 완만하고 굴곡이 거의 없어 힘들지않고 약 20분간의 몸풀기 산행 후 474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도상에는 473.7봉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현지에는 “무좌골산”이라는 간이 표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좌골신경통”이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이런 희한한 산이름은 처음이다.
아뭏튼 이런 이정표를 붙여놓은 자상함이 대견스럽다.
11:41 <갈현고개 도착>
작점고개에서 40분을 산행하면 갈현고개에 도착하게 되는데 고개라기 보다는 나뭇군과 선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도랑에 불과하다. 그래도 옛날에는 이 고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녔으니 이름까지 지어 졌겠지?
여기서부터 용문산 까지 1시간 소요된다고 간이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다.
12:48 <용문산 도착>
갈현고개를 떠나 15분 더 가면 기도터 바위가 나오는데 지도를 보고 공부를 안하면 그냥 스쳐갈 곳이다. 산행앨범에 있지만 기도할 만한 조그만 바위가 있고 그 옆에는 인삼밭에 사용되는 검은색 천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창고 같은 것이 있다.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용문산으로 가는 등산로 오른쪽 계곡에는 기도원이 보이고 이상한 사람소리가 들린다. 등산로도 잘 되어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을 1시간 계속하고 나면 687봉을 지나 용문산(710m)에 도착하게 된다. 맑은 날씨에 사방의 시야가 완벽히 확보되어 마음이 후련하다. 날씨도 봄처럼 따뜻하다.
멀리 우리가 지나온 11구간 난함산 통신탑과 곧 가게 될 국수봉 정상도 보이고 아까 소리지르던 기도원도 자세히 보인다. 또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왼쪽으로 추풍령면 신안리쪽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13:38 <용문산 출발>
용문산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는 넓은 곳이 있고 머저 도착한 대간꾼 4명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대원이 라면을 준비하는 동안 최대장님이 가지고 오신 두유를 나눠 주셔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 내 배낭에 있는 양주가 슬며시 나오더니 유대원의 배낭에서 마른 안주도 따라 나온다.
먼저 9구간 산행기에 김대원이 양주를 많이 마신다고 놀렸더니 오늘은 양주잔 4개를 꺼내 놓는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을 먹고 오늘 일정은 바쁘지 않기 때문에 모처럼 여유있고 호화스러운 1시간 가량의 휴식을 취했다. 멀리 국수봉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기에 기념촬영을 하고 용문산을 떠난다.
14:47 <국수봉 도착>
용문산을 떠나 소폭의 오르락 내리락을 1시간 10분 하다보니 금방 국수봉에 도착한다. 오는 도중에 등산로 가운데에 산소가 있어 고인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상을 이렇게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후손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국수봉 정상에는 “백두대간 국수봉 716m”라로 쓰여있고 국수봉에서 바라 본 용문산에 남아있는 능선 눈줄기는 호랑이 등줄기에 하얀털 처럼 보였다.
16:22 <큰재 도착>
여기서부터 큰재까지는 지도상에 1시간 45분 소요되는 것으로 표시 되어 있지만 우리 팀원에게는 1시간20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수봉을 내려서자 마자 급경사가 하염없이 이어지고 등산로 겉에는 낙옆으로 가려져 있지만 낙옆 속은 얼음이거나 눈녹은 진흙이므로 방심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다.
상주소방소에서 설치한 나무를 잘라서 만든 귀여운 이정표를 지나 637 봉을 통과하여 마지막 내리막길을 우리 대장님이 무사히 통과하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찌으셨다. 이번 산행에서 여러 번 넘어지셨는데 걱정이 된다. 사실로 말하면 산행기자인 나도 업무상 맨 뒤에서 넘어졌기에 대원들이 몰라서 그렇지 여러 번 넘어졌다. 큰재와 김대원의 애마가 가까이 보이고 길 옆 시골집 허물어진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몽실몽실 나온다. 나도 시골에서 자랐기에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만 너무 오랬만이라 반갑고 문득 고향생각이 난다. 지금 우리고향에는 이런 풍경이 없으니 더욱 허전하다. 오늘도 무사히 5시간 22분만에 9km의 백두대간 제 12 구간 비교적 짧은 산행을 마쳤다. 오늘도 고생하셨고 몸도 마음도 보다 더 건강해졌으리라 확신한다. 기념촬영을 하다보니 잡풀이 가득한 폐교가 하나 보인다.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교적비가 서 있는데 이렇게 쓰여있다.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는 1949년 11월 9일 개교하여 졸업생 597명을 배출하고 1997년 3월1일 폐교되었음-경상북도 교육감-“
계산을 해보니 48년동안 597명을 배출하였으로 1년에 평균 12.4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셈이다. 정말 작은 시골학교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으시시하게 방치하지 말고 좀더 가꾸어 졸업생들에게도 기념이 되면서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 이 자리에서 13구간 출발을 약속하며 큰재를 떠난다.
16:48 <알프스모텔 도착>
큰재에서 차러 10분 정도 서쪽으로 이동하여 상판저수지 옆 알프스 모텔에 도착하게 된다.
입구에는 매점과 휴게소가 있고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모델이 있는데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가 전부였고(나중에 보니 밤새 우리만 묵었음) 마당에는 닭,오리들의 가축 놀이터가 있다. 우선 샤워를 하고 김대원이 준비한 닭도리탕과 막걸리로 근사한 저녁을 마쳤다. 매주 산으로 돌아다니는데 김대원은 어떻게 부인이 저렇게 잘해줄까? 혹시 천만다행인가? 참고로 유대원은 아침에 부인이 깰까봐 마루에서 자고 소리없이 나온다던데…. 부인 깨우면 죽는다나?
나는 아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식사 후 분위가가 딱 2%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지하 노래방으로 갔으나 대장님은 4000번 이상의 신세대 노래를 부르시고 우리는 1000번 이하를 불러 체면 다시 구겼다. 2% 부족한것을 메우려다가 10% 부족한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덕분에 우리는 다음에 무조건 4000번대 이상의 노래를 부르기로 약속했다.
어 휴 ~ 집에 가면 얼른 노래방부터 가야겠는걸...
내일을 위하여 오늘은 이만 안녕
온세통신 종주내역
2004년 종주팀 : 관리지원팀(이정섭,김기호,박상환,임장원,안승관)
2005년 역종주 : 김현천 부장, 박영완 대리, 김행원 대리, 신호진
첫댓글 짧은 구간이었지만 낙엽속 곳곳에 빙판이 도사리고 있어 항상 주위를 기울여야 하겠드라구요,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