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챈들러는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가족자본주의에서 시작하여, 산업자본주의, 상업자본주의를 거쳐 금융자본주의로 발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산업 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뛰어 넘어 21세기에 새롭게 기대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올바른 발전상은 무엇일까? CEO 전문기자인 유승용은 이 책에서‘경영자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러 경영서적을 접할 때마다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CEO의 어록과 CEO의 생각인 이유가 바로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로 가는 증거가 아닐까?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대부분이 외국의 경영자들의 ‘말’들 이었다는 것이다.
쌍용그룹 우덕창 전 부회장은 이런 말을 한다.
“한국식 경영 모델을 정립해야 합니다. 경쟁력이라는 것은 대등하거나 앞서가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서구식 경영 기법을 따르는 것은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식 경영 모델을 기준으로 한 글로벌스탠더드를 따르는 것은 항상 그들의 기준에 맞추고 뒤따라가는 것입니다. 진일보된 한국식 표준 경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지난 5년간 국내 기업 3백여 명의 CEO들을 만나면서 21세기 한국경제 발전 모델, 올바른 경영자 상에 관한 토의를 통해, 리더십, 미래 예측 방법, 조직 관리 철학 등 CEO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여러 덕목들을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온 생생한 얘기들로 전해주고 있다.
경영의 기법: 경영혁신, 목표관리
역시 CEO가 뛰어나야 하는 것은 경영이다. 경영에 관해 삼성캐피탈 제진훈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사물과 행동을 회사 업무와 관련시킵니다. 하물며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더라도 비즈니스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엉뚱한(?) 생각을 할 정도니까요. 비즈니스적 사고가 쌓이고 쌓이면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개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포드의 창업자 헨리포드가 만들어낸 경영혁신인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도살장이다.
도살장에서 가축을 달아매서 이동시키며 부위를 하나씩 잘라내고 뼈만 남는 것을 보고 포드는 멍하게 30분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 공정으로 만들어낸 것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다. 그 이전에는 부품을 하나씩 가져와서 조립했다. 이제 본체가 흐르고 부품이 결합되는 대량생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어디서든, 야구장에서도 비즈니스를 찾아낸다는 제 대표의 말은 경영자의 자세 그대로다. 흔히들 경영자는 24시간 근무라고 이야기한다. 꿈에서도 회사 생각을 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로 삼성캐피탈을 인터넷으로 이끈 경영자가 제 대표이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가 이미 옛날로 치부되고 있는 시점에서 삼성캐피탈이 소유하고 있는 도메인이 겨우 4개라는 것을 직시한 그는 삼성캐피탈 대표로 부임하자마자 무려 230개가 넘는 도메인을 제안했다. 그 결과 삼성캐피탈이 지금까지 등록한 도메인이 250개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e-비즈니스 추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 결과 삼성캐피탈 홈페이지는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의 웹사이트 1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웹을 통한 내부관리이다. 제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지요. 항상 어떤 부가가치가 있는 일들을 찾을 따름입니다. 웹(WEB)을 통하면 전 세계가 하나의 사무실이기 때문이지요."
이와는 달리 목표에 의한 관리를 멋지게 표현한 CEO도 있다. 동양메이저 건설부문 김희선 대표이다.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방법과 결과에 대해선 사람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과 단순히 현상에 집착하며 일하는 사람의 결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세상 이치이다.
기업 조직은 더더욱 그러하다. CEO 들은 직원들이 회사 업무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기업의 생산성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석공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한 감독관이 ‘당신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한 석공은 ‘돌을 다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반면, 다른 한 석공은 ‘나는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목적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현재 당신이 돌을 다듬고 있는지 성전을 짓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김 대표 자신도 항상 일에 있어서는 확실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것이 조직의 발전을 물론, 자기 자신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재관리
그렇다면 한국의 CEO들의 인재론은 어떨까? 먼저 IQ가 성공의 지름길인가? EQ가 성공의 지름길인가? 21세기는 전문가 시대이다. 과거처럼 얕은 지식만을 가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임을 자랑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되야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의 고현진 사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평범한 개인의 작은 창의성, 작은 노력이 누적돼 큰 변화를 일궈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평범하고 작은 아이디어를 수시로 주저 없이 내게 하고 다른 사람의 평범한 아이디어를 무시하고 비난하지도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조직을 업그레이드하는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상반된 논리일 수도 있지만 경쟁력 있는 조직은 각 개인이 전문적이면서도 팀워크가 형성되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전문화와 팀워크를 양립시켜야죠. 전문화만 강조하면 팀워크가 흐려지고 팀워크만 강조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최고의 인재는 자신의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T자형 인재이다. 고 사장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롯데월드 오용환 대표 역시 전문가 시대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직원들간의 '화합과 신뢰'라고 강조한다.
"엘리트들만이 다 모였다고 그 조직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발전은 능력 있는 엘리트들의 실력도 좌우하지만 궁극적으로 조직들간의 화합과 신뢰를 이끌어 내야 이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기자식에 대해 100% 만족할 수 없듯이 어떠한 조직도 인재에 대해서 100%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개개의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그들의 능력이 취합될 수 있도록 화합과 인간적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오용환 대표는 직원들의 실력보다는 팀워크, 즉 화합과 단결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구심점에 오 대표가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인재관리를 5년 후 만이라도 내다본다면 직원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데이콤아이앤의 진영준 사장은 직원들에 대한 교육 투자라면 발벗고 나선다.
직원 교육과 관련된 투자에는 전혀 인색함이 없다. 직원 개개인의 능력에 자신감이 붙도록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들의 잠재된 능력이 아웃풋(Out put)되도록 늘 격려하고 독려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부해야 한다며 진 사장 스스로 선봉에서 치열한 집념을 보이며 솔선수범하고 있다.
"쇠는 열을 가하고 두드릴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이젠 주경야독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기엔 모자란 시대입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에 조를 추가해 주경조야독(晝耕朝夜讀)으로 자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새벽이라는 글자가 더해져야 할 판이지요."
결국 지식경영의 시대에는 직원들의 지식이 부가가치 창출의 근원이 된다. 이미 많은 경영자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신경영의 화신: 투명경영, 윤리경영
새로운 신경영기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도 CEO의 말이다. 윤윤수 사장은 연봉을 많이 받는 최고의 CEO라고 알고 있다. 2003년 윤 사장이 경영하는 FILA KOREA가 FILA 본사를 인수해서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의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의 단호한 클린 매니지먼트(Clean Management) 철학이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공식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회사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경영하는 것이 혹, 손해가 되더라도 저는 그렇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했을 경우 얻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죠"
투명경영은 위에서부터 이루어져야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CEO에 대한 충분한 대우가 전제조건이다. CEO 들은 사회적 위치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즉 비공식적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CEO들의 생리이다. 그런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윤 사장의 지론이다.
"투명경영은 인간의 일반적 습성, 즉 돈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한국기업에서는 윤리정신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지만 그것은 현실을 무시한 관행일 뿐입니다. 막연히 도덕을 부르짖기보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돈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현실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윤 사장은 전산화를 투명경영의 필수조건으로 여긴다. 전산화는 회사의 프로세스를 투명화하고 공식화한다.
윤리경영, 투명경영을 단순한 마음의 다짐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경영을 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을 윤 사장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투명경영에 관해 윤윤수 사장의 '말' 한마디가 핵심이라면, '환경경영'에 관해서는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의 '말'이 핵심이다.
사장보다는 '수목원장'에 비유될 만큼 자연 환경을 사랑하는 환경 경영자 문 사장은 “이 땅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기 위해 유한킴벌리 사장이 됐다”라고 한다. 그는 환경운동의 CEO로서 환경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환경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은 배움이 끝나는 날 끝이 나는 겁니다. 겨자씨 하나가 열매를 맺기 위해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처럼 기업도 역시 이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하는 기업, 유한킴벌리의 환경운동은 단순한 나무심기 운동이 아니다. 문 사장의 환경경영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다.
"숲에 가면 '나무가 많다'고만 생각하지만 저는 갈 때마다 변해 있는 자연의 생태에 취해 간혹 길을 잃기도 합니다. 등산이 아닌 입산하는 겁니다. 자연에 귀기울이면 어느 동화보다 재미있고, 바라보는 산의 전경은 카펫에 수놓은 모습과도 같습니다."
CEO의 생각이 이렇게 깊기에 홍보용이 아닌 깊이 있는 환경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멋진 말들을 남기며 멋진 경영을 하고 있는 한국의 CEO들, 그들에게서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저자는 크게 여섯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첫째, 그들은 매우 창의적으로 사고한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독창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 다른 기업과 다른 비전과 경영방식, 리더십, 아이덴티티를 갖기 위해 항상 차별화 하려고 한다.
둘째, 그들은 경영에 있어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경영을 위해 필요한 자산은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 관리를 위해 가장 많은 역량을 투여한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것이기에 인재 중심의 경영, 즉 인간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다양한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다.
넷째, 그들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간다. 경영을 하다보면 만나는 어려움과 위기에 절망하지 않는다. 또한 문제가 해결되고 기업이 평안해져도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도전 정신을 발휘한다.
다섯째, 그들은 매우 성실하며 근면하다. 단순히 개발경제 시대의 근면성이라기보다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CEO로서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하고 공부한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CEO들은 심신의 건강관리를 통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반드시 시간을 쪼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바로 옆의 사람들, 우리를 이끌어 가는 한국의 CEO들의 생각을 알고 싶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기업경영을 알고 싶을 때, 그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