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유래
꽹과리 별칭은 광쇠, 꽝쇠, 꽹매기, 소금, 동고, 쟁 등이며, 그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는 데, 신라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것과 고려 공민왕 때 주나라에서 만들어져 중국 명나라 때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꽹과리를 만들 때는 놋쇠를 녹여 만드는 데, 놋쇠는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구리의 합금비율이 높으면 소리가 높고 맑게 나고, 아연의 합금비율이 높으면 소리가 낮고 탁해진다. 또 요즈음에는 금이나 은을 섞어 금쇠, 은쇠를 만들어 내고도 있다. 음색에 따라서는 숫꽹과리와 암꽹과리로 나뉘는데 숫꽹과리는 소리가 야물고 높으나 암꽹과리는 소리가 부드럽고 낮다. 숫쇠와 암쇠가 서로 받아치며 하는놀이(짝쇠, 짝드름)는 마치 암쇠와 숫쇠가 서로 화답하듯 화음이 잘 어울려 리듬악기로서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제례악에서도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풍물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쓰임새
꽹과리의 크기주)는 직경이 21㎝(7치), 둘레부분의 높이는 3.6㎝(1치2푼)가 평균 크기였는데, 요즈음은 판의 성격과 양식이 변화되어서인지, 크기가 작고 울림이 많지 않은 꽹과리가 선호되고 있다. 이는 예전 생활 속에서 행해진 마당판의 푸진 소리보다 무대 위에서 음악적 예술로서의 '보여주는 판'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꽹과리를 고를 때 역시, 추세나 유행에 따른 소리와 모양만으로 선택할 것은 아니다. 이 꽹과리가 어떤 판에서 무슨 용도로 쓰여질 것인가가 고려된 선택이 중요하다. 마당판에서는 크기가 크고 소리 울림이 좋아 푸진 맛이 있고 힘을 느낄 수 있는 악기를, 무대판이나 실내용으로는 음색이 뚜렷하고 좀 작은 크기로 울림이 마당판보다는 조금 작아도 될악기를 고르는 것이다. 용도상으로 보면, 상쇠는 치배들의 중간 중간 가락을 잡아주고 판을 지휘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색이 뚜렷하고 높아 전 치배들에게 전달이 잘되는 숫쇠를, 부쇠는 상쇠를 도와 끊김 없이 원박만으로 쳐야 하기 때문에 소리가 부드러운 암쇠를, 그리고 삼쇠 이후부터는 잔가락과 기교를 부리며 판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숫쇠와 암쇠를 번갈아서 쓴다. 또한 이는 꽹과리채의 쓰임에서도 나타나는 데, 마당판에 쓰이는 채는 길이가 길고 강해야 마당판에 어울리는 소리를 잡아줄 수있고, 무대판(특히 앉은반)에서는 짧고 부드러운 채로 치는 것이 가락을 살릴 수 있다.
-고르는법
꽹과리를 처음 고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꽹과리는 무게와 두께에 따라 음색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악기를 치다보면 쇠 틈새가 조금씩 열리게 되면서 처음보다 더 좋은 소리로 울리기도 하고 좋지 않은 소리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제품이 공장에서 처음 나올 때 완성된 악기의 형태로 나오기도하지만 구입하는 사람이 악기를 탄생시켜 나가는 과정도 있다는 것이다. 즉 악기를 자기가 원하는 악기로 지속적으로 사용하려면 악기 구입시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는 꽹과리인가를 확인하고 꽹과리의 무게와 두께에 따라 변해나가는 가능성까지를 확인해야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타의 것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 꽹과리를 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소리로 악기를 고르는 일일 것이다.
-관리법
꽹과리를 잘 관리하려면 소리를 내는 넓은 면적을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징 보관도 동일). 이는 바닥에 꽹과리의 넓은 면적이 닿으면 소리가 변질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꽹과리를 오랫동안 사용하려면 연습용과 공연용을 따로 사용(깨진 쇠도 울림이 있다면 연습용으로 활용해도 괜찮을 듯)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관리 측면에서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보관은 꽹과리 가방에 넣어 보관하거나, 가방이 따로 없을 경우에는 두꺼운 천에 싸서, 소지품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필요하다. 모든 악기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수명이 달라지듯이, 잘 관리하고 길을 들여 처음 손에 잡았을 때보다, 더 좋은 악기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관·관리법이 아닌가 한다.
주) 풍물악기 치수는 尺貫法(척관법 - 도량형법)의 길이 단위인 '자'를 쓰고 있다.(O자 O치 O푼) '자'는 '치'의 10배로 약 30.3㎝에 해당한다. "자에도 모자랄 적이 있고 치에도 넉넉할적이 있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경우에 따라 많아도 모자랄 수 있고 적어도 남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장구
-명칭
장구는 풍물악기에서 북, 소고 등과 같이 가죽악기로 분류된다. 양편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하여 세요고(細要鼓)라고도 한다. 흔히 사람들 중에 장고냐? 장구냐?로 의견이 분분한데, 한자로 지팡이 장(杖)과 북 고(鼓)를 쓰면 '장고'가 맞고, 노루장(獐)과 개구(拘)를 쓰면 '장구'도 맞겠다.
-유래
장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문종 30년(1076년)에 대악관현방(大樂菅絃房)을 정할 때 장고업사(杖鼓業師 : 장구 연주자라는 뜻)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장구보다 작은 크기의 장구를 요고(腰鼓)라 하며, 인도에서 만들어져 중국 남북조 시대를 거쳐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예로 고구려 집안현 제4호 무덤벽화와 신라 상원사 동종의 아래쪽에 그려진 주악도, 그리고 감은사지 청동제 사리기 기단에 그려진 그림(통일신라 신문황2년, 682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장구가 요즘에 쓰이는 형태로 크기가 커진 것은 고려 때로 추측되며, 장구가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 나라로 전해진 것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 한 무제 때 만들어져, 고려 예종왕 9년 송나라에서 새로운 악기가 들어올 때 장고이십면(杖鼓二十面)이 포함되었다는 기록에 의한 설이고, 다른 하나는 장구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쓰여 고려 때 들어왔다는 견해이다.
장고의 크기나 모양에 있어서 거의 비슷한 갈고라는 것이 있는데 양면의 가죽이 다 얇고 그 크기가 같으며, 두 손에 채를 들고치고 음을 조절하는 축수(조임새)가 양쪽에 있는 점이 장고와 다르다(이것을 양장고라고도 한다). 갈고는 고려사에도 비치지 않았고 악학궤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영조 이후의 [진선의 궤]에 이 악기가 더러 보이나, 지금은 국립국악원에 그 악기만 보존되어 있을 뿐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또 장구의 옛날 꼴로 생각되는
물장구, 모래장구도 있었다고 한다.
-쓰임새
『고려사악지』의 당악기조, 향악기조에 각 각 장고가 들어 있고, 조선 세종 때 [악학궤범]에 의하면 장구가 당악과 향악에 어울려 쓴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장구는 처음에 당악(당에서 들어온 음악), 향악(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음악)에 쓰였으며, 지금은 정악, 산조, 잡가, 민요, 풍물굿, 무악 등 거의 모든 음악에 쓰이고 있다. 두손으로 치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내며, 어깨춤이 절로 나게 만든다. 분위기를 흐드러지게 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악기이며, 민요나 춤 장단을 칠 때는 궁편을 손으로 치기도 한다.
-구조
왼쪽(북편, 궁편)은 소가죽, 말가죽을 대어 가죽을 두껍게 해 소리가 낮으며, 오른쪽(채편)은 보통두께가 얇은 양가죽이나 말가죽을 대 높은 소리를 낸다. 가죽으로는 개가죽이 소리도 좋고 울림도 커서 가장 좋게 쳐준다.
옛날엔 노루가죽을 궁편에 대고 개가죽을 채편에 대었지만 요즘은 양쪽 다 개가죽을 대어 많이 쓰인다. 장구통의 재료는 사기, 쇠, 나무, 양철 등을 쓰는데, 현재는 가벼우며 소리에 있어서도 좋은 편인 나무통이 가장 널리쓰고 있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통나무를 쓰는 '통장구'와 나무조각을 붙여 만드는 '쪽장구'가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쓰는 통은 오동나무 장구통이 널리 애용되고 있으며, 무겁기는 하나 다른 나무에 비해 좋은 소리를 내는 소나무통 정도가 쓰이고 있다. 장구 칠에 따라서는, 백통(칠을 하지 않은 통), 유광(有光), 무광(無光), 주합통 등으로 나누고, 통에 색칠이나 자개 등으로 모양을 내기도 한다.
장구통 모양은 궁편 쪽이 넓어 소리 울림이 크고, 채편 쪽은 궁편보다 길고 좁아 소리 울림이 적다. 장구통의 궁통과 채통을 이어 주는 곳을 흔히 조롱목이라 하는데, 조롱목이 너무 넓으면 소리가 헤프고, 조롱목이 너무 좁으면 소리가 되바라진다. 장구 조립은 가죽둘레(철테-원철)에 8개의 쇠고리(쇠갈고리, 구철)를 걸어, 무명을 꼬아 만든 줄(숫바, 홍진사, 축승)로 얽어 매고, 죔줄(축수, 부전)을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장구의 채로는 궁채(궁글채)와 열채(가락채)가 있는데, 궁채는 대나무 뿌리를 잘 삶아서 똑바로 편 다음, 끝부분에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나 뿔을 끼워서 만들고, 열채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다. 장구의 크기는 예전에 비해 폭이 넓어지고, 길이가 짧아진 편이다.
-고르는 법
장구는 완성되어서 판매되는 악기가 아니다. 따라서 장구를 고를 때, 다른 모든 악기가 그러하겠지만 직접 악기 판매하는 곳에 가서 통과 가죽의 음색을 살피어 고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장구의 주재료인 통과 가죽의 고르는 법을 살펴보자.
장구통의 종류로는 색칠에 따른 유광장구, 무광장구, 백장구가 있고, 만든 재료에 따라 통장구, 쪽장구가 있으며, 통모양에 따른 수박장구가 있다. 통을 고를 때 통모양(외모)보다는 장구의 음색(음양)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장구의 다양한 쓰임은 결국 소리의 조화로움에 그 오묘함이 서려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 유의해야 할 것은 나무의 질을 보는 것이다. 나무가 단단할 때 장구 소리도 야무진 소리가 나며, 앉은반 장구인가, 선반 장구인가에 따라 통의 상태와 무게에 신경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
가죽 또한 통과 같이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 궁편 쪽은 음(陽)으로 두께가 두꺼워 소리가 낮고, 열편 쪽은 양(陽)으로 얇고 소리가 높은 음가(音價)의 것을 고른다. 보통 가죽을 고를 때, 여러 가죽 중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질을 골라야 하지만, 가죽에 따라 소리가 뚜렷하게 구분되므로 원하는 궁편, 채편의 소리를 찾고 나서 그 속에서 질을 보는 것이 좋겠다. 가죽을 고를 때는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대)학생 풍물패나 소집단 풍물패에서 흔히 나오는 실수로 악기재료와 음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생기는 경우이다. 장구 가죽 중에 종이처럼 하얗고 두꺼우면서 음색이 낮은 가죽이 있는데, 이것이 소가죽의 내피(內皮, 안가죽)로 만든 '궁현가죽'이다. 이 궁현가죽은, 궁편을 손바닥으로 치는 반주장구(무굿, 소리, 춤 등 궁편보다 채편소리를 살리는 경우)에 흔히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궁현가죽을 풍물장구용 가죽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매어 처음 칠 때는 음색도 낮아 채편과 조화를 이룬 듯 하지만, 궁글채로 계속 칠 경우, 가죽의 탄력이 부족하여 금새 늘어나고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따라서, 채편 못지 않게 궁편을 중시하는 풍물장구는 탄력이 많은 가죽(보통 외피(外皮))을 쓰는 것이 좋다. 흔히 풍물장구용 가죽으로는 소가죽(牛皮/원피-외피)이 가격이 저렴한 편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관리법
악기는 쇠보다 가죽악기가 날씨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통은 조심히 다뤄 깨지지 않도록 하면 되지만, 가죽은 여름에는 습기를 먹어 누굴누굴해지며, 소리가 잘 나지 않고, 겨울에는 날씨가 건조해 수분이 말라 소리가 탱탱거리며 잘 찢어진다.
① 통 ; 통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과 6개월에 한번씩, 가죽과 만나는 통둘레에 채가 맞아 움푹깍여 있는 자리를, 장구를 해체 한 후 사포나 대포로 다듬어 다시 매어 쓰는 것이 좋다.
② 가죽 ; 풍물을 치고 난 뒤, 꼭 가죽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고 보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죽이 조금이라도 찢어져 있을 경우에는 투명한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더 찢 어지지 않도록 한다. 여름에는 연습 후나 모임시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30 분 정도 말려 가방에 보관하고, 겨울에는 장구를 치기 전에 물을 가죽에 발라 치도 록 한다.
④ 채 : 나무로 만들어진 악기채도 여름에는 습기를 먹어 곰팡이가 잘 슨다. 곰팡이가 슬면 물걸레로 곰팡이를 닦아주고, 그늘에 말려서 쓴다.
그 외에도 장구는 되도록 악기 가방에 넣어 보관한다. 또, 가죽이 찢어지는 가장 많은 경우는, 가죽이 오래 되어 낡았다거나 잘못 쳐서 찢어지는 경우보다는 방금 구입하여 쨍쨍한 가죽을 바로 칠 때 찢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악기구입은 되도록 공연 일주일이나 보름 전에 구입해 연습으로 길을 들여 공연을 하는 것이 좋으며, 장구를 바로 샀을 경우에는 부전을 조이지 않고 물이나 막걸리 를 먹여 조금씩, 꾸준히 두들겨서 길을 들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악기는 (특히 장 구, 북 등의 가죽악기)는 숨을 쉰다. 대지와 함께 숨을 쉬는 사람이 날씨나 몸상태 에 따라 건강관리를 하듯이, 무엇보다 악기도 날씨와 쓰임에 따라 상태를 잘 조절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관리법인 것이다.
-수리법
장구악기가 파손된 경우 장구 전체를 새로 구입하기보다는 파손된 부분 부분의 재료를 구입하여 수리하는 것이 좋다. 또 재료를 새로 구입하지 않고 파손된 부분을 직접 수리해 쓸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이제, 장구를 직접 수리하여 쓰는 방법을 살펴보고 사용할 때 유의해야 할 것도 함께 보도록 하자.
① 수리용품 ; 오공본드(나무접착제), 자전거 짐 묶는 줄(또는 고무줄), 면실, 바늘, 양초, 투명테이프(넓은 것), 기타 가위와 같은 문구용품
② 금이 간 통 ; 금이 간 부분을 벌려 접착제(나무용 오공본드)를 발라(안에까지) 10여분 뒤에 통선을 잘 맞춘 후 고무줄로 통을 동여매어 3일 정도를 두었다 고무줄을 풀면 거의 완전하게 다시 붙는다.
③ 찢겨진 가죽 ; 가장 쉬운 방법은 가죽을 말려 안과밖에 넓은 스카치 테이프를 두세겹으 로 붙여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쓰다보면 테이프 주변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기도 하지만 가장 완벽한 것은 가죽을 꿰매는 것이 다. 먼저 찢겨진 주위에 바늘로 구멍(선에서 3㎜)을 뚫은 다음에 바느질을 한다. 바느질을 한 후에 양초를 녹여 바느질 주변을 촛농으로 메운다.
④ 늘어진 가죽 : 가죽이 너무 늘어져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거나, 찢겨진 가죽을 수리하기 전에, 가죽을 하루정도 물에 담가놓았다가 약 3일 정도를 그늘에서 말리면 가죽이 새것처럼 편편해진다.
이러한 여러 수리법 중에 가장 중요한 점은 악기가 조금 파손되었을 때 바로 수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파손된 악기를 그대로 방치하여 계속 사용하다 보면, 수 리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악기가 파손되기 때문이다.
북
-명칭/유래
북의 명칭은 고(대고, 소고), 버꾸, 법고, 외북, 양북(쌍북)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다른 악기와 다르게 북의 명칭은 모양새, 쓰임새, 크기에 따른 각기 다른 이름들이다. 북의 유래는 만들어진 시기가 뚜렷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인간의 역사 속에 가장 오래된 악기로 추측 할 뿐이다. 북은 꾸밈새가 간단한 까닭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고 세계 어디에서나 그 발생을 볼 수 있으며 각 민족의 특징을 지니며 발달했다. 곳과 쓰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풍물굿의 악기 가운데에서 북은 가장 오래된 악기다. 그 까닭은 청동기시대 이전의 목축시대에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악기 때문이다.
-쓰임새
풍물굿에 쓰이는 북은 어깨에 매기가 간편하고 소리가 옹골찬 것을 주로 쓴다. 오동나무나 미루나무의 가운데를 파내고 양편에 소가죽이나 말가죽을 대고 양쪽 가죽을 줄로 엮고 조여서 만든다. 요즘은 오동나무판을 엮어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북은 치는 방법에 따라 보통 왼쪽 어깨에 메고 치는 외북과 북을 허리에 북 끈으로 고정시키고 두 손에 두 개의 북채를 잡고 치는 쌍북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춤 위주의 외북을 치고, 쌍북은 상대적으로 가락에 치중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장구가 발달하여 북소리를 장구의 궁편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으나, 경상도에서는 북이 발달하여 장구의 역할이 감소한다. 따라서 북놀음이나 북가락은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발달되었으며, 전남 진도의 북춤에서는 두 손에 북채를 들고 추는 춤사위가 뛰어나다. 북의 크기도 곳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경상도 북은 크고 넓으며 전라도 북은 작은 편이다. 북치는 사람의 자리도 경상도에서는 꽹과리, 징 다음에 선다.
북과 소고의 중간 형태로 버꾸라고 불리는 악기가 있다. 크기는 북과 소고의 중간이고 형태는 북통에 나무 쐐기 없는 북과 같다. 버꾸는 끈을 짧게 하여 손에 감거나 따로 손잡이를 만들거나하여 손에 버꾸를 고정시키고 친다. 북보다는 가볍기 때문에 보다 힘차고 다양한 춤사위를 나타낼 수 있다. 버꾸는 주로 전라남도 지방에서 많이 쓰인다.
-관리법 및 수리법
북은 가죽악기로 관리법이 장구와 같다. 다만 장구처럼 통과 가죽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통째로 습기가 많은 날씨에는 자주밖에 내다 말려주고 건조한 날씨에는 가죽에 수분을 보충해 주어 쳐야 한다. 북 수리는 보통 통이 깨져서라기 보다는 가죽이 손상되었을 때 수리를 생각하게 된다. 수리는 북상태에 따라 몇 가지로 할 수 있겠다. 가죽이 늘어나 북소리가 잘 울리지 않을 때에 손보는 방법은 쐐기(통 가운데 부분에 줄 사이로 박혀있는 나무토막)가 박혀있지 않은 북은 쐐기를 만들어 넣어주고, 쐐기가 박혀있는 북은 줄을 가로질러(쐐기방향) 세로줄을 엮어준다(가죽을 팽팽하게 당겨주어 소리가 좋아진다). 가죽이 찢겨졌을 때 통과 가죽을 분리하지 않고 손보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넓은 투명테이프로 잘 붙여주면 된다. 좀더 정성껏 손보는 방법은 못쓰는 장구가죽을 찢어진 부분보다 넓게 오려 접착제로 붙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안되면 통과 가죽을 분리해서 수리를 해야 한다. 분리한 통은 가죽과 맞닿는 부분은 사포로 반반하게 밀어낸다. 그리고 가죽은 끈(가죽끈)과 함께 하루정도 물에 담궈 그늘에 말리는데 약간 덜 말린 상태로 통에 멘 후 그늘에 다시 말린다. 이 방법은 장구와 다르게 북가죽이 두꺼워 통과 가죽을 분리해 수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징
-명칭과 유래
징은 고취악 즉 옛 군악에 사용된 연유로 해서 고취징이라 부르며 그 밖에 나, 금, 금라, 금정, 대금 등의 호칭이 있다. 놋쇠로 만든 타악기로 원음은 '정'이었으나 징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또한 징은 꽹과리와 같이 고려 공민왕 때 중국 명나라에서 들어 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쓰임에 있어서의 단순함으로 보아 고려 이전에 사용된 제기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모양과 쓰임새
징의 쓰임은 다양해서 취타를 비롯한 무악, 풍물 등에 쓰이며 절에서도 사용된다. 특이한 쓰임으로는 제주도에서 징과 꽹과리의 중간형태의 크기인 '무구'가 있는데, 징과 같이도 사용되고 꽹과리와 같이도 사용된다. 그 모양새는 각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풍물에서 주로 쓰이는 징은 지름 36㎝(1자2치) 둘레 10㎝(3치)가 평균적이다.
요즈음은 그 보다 작은 징(소징)이 쓰이기도 한다. 징채는 예전에는 대략 30㎝정도 둥그렇게 깍은 나무 막대에 짚을 엮어 만들어 사용했지만 요즈음은 실이나 천으로 감아 마무리는 헝겊으로 감싸서 고무줄로 묶어 사용한다.
-음색
징은 소리가 낮고 은은한 쇠악기로 꽹과리와 음색의 조화를 이루며, 장단의 첫 박을 맞춰주는 중요한 역할과 가락을 감싸안는 울림으로 다른 악기 소리를 받쳐주며, 풍물악기 중 가장 멀리 울려 퍼진다. 굿판에서 징수는 풍물을 가장 오래한 사람이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입할 때와 보관할 때
징을 고를 때는 모양보다는 소리를 중요하게 들어봐야 한다. 징소리는 음색이 일정하며, 울림이 길고, 울림의 끝이 쳐지지 않는 여유 있는 소리로 고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구입한 징을 보관할 때는 꽹과리와 마찬가지로 징 표면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보관하며, 되도록 징가방에 넣어 세워 두던지 징걸이에 걸어 보관해야 한다. 또 징채를 사용하다보면 채 머리가 빠지고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될 정도로 방치하지 말고 징채를 구입한 즉시 머리부분을 다시 헝겊으로 감싸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사용하면 오래 동안 사용할 수도 있고 좋은 소리를 낼 수도 있다.
작은 북(小鼓)
-명칭/유래
소고는 북 종류의 하나로 작은 북(小鼓)을 일컫는다. 명칭도 버꾸(벅구), 법고(法鼓), 매구북 등 북의 명칭과 다르지 않다. 북은 가장 오래된 악기로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지금의 북, 소고처럼 일정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다 보니 크기와 모양새가 다 달랐다고 한다. 그 가짓수는 약 20여개에 가까웠고, 모양새 중에 수박처럼 둥그런 버꾸도 있었다고 한다. 손잡이도 현재 쓰이고 있는 소고는 보통 일자로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나무막대에 삼각형 모형으로 끈을 엮거나, 끈으로 고리를 만들어 손목에 걸어서 치기도 하였다(지금은 큰북을 어깨에 매지 않고 고리를 만들어 손목을 끼워 북을 돌리기도 한다. 터울림 '92, '93년 공연에 고리 손잡이 버꾸가 선보였었다). 하지만, 현재 풍물판에서는 북과 소고가 분리되어 사용된다.
소고모양도 소, 중, 대로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모양으로 제작되어 사용되고 있다.
-쓰임새
북은 모양새가 다양한 만큼 판에서도 다양하게 쓰여졌다.경상도 지역은 현재 풍물판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큰북을 사용하였고(장구보다 북이 발달된 지역적 특성 때문에), 장구가 발달한 전라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은북을 사용하였다. 소고를 흔히 부르게 되는데, 이는 판에서 악기의 기능보다 춤-놀이로서 기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춤과 놀이의 기능이 크다보니 소고(악기)는 춤을 추기 위한 소품으로 쓰였다. 소고와 북이 결합된 중간형태인 버꾸는 전라도 해안지역에서 주로 발달되었는데, 음량은 북에 가까웠고, 동작은 소고춤에 가까웠다.
형식적인 면으로 보면 크게 고깔소고와 채상소고로 두 가지 형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채상소고는 머리에 쓴 상모를 위주로 윗놀음의 소고춤이 이루어진다. 긴 천이나 종이가 돌아가는 모양새 때문에 주로 힘차고 강한 느낌으로 표현되어진다. 반면에 고깔소고는 전라도 평야지역과 강원도굿에서 주로 발전되어진다. 전라우도굿은 고깔놀음과 함께 소고놀이가 풍성하고 다양했으며, 오색(지역에 따라 삼색, 일색)종이꽃의 화려함과 발놀음(아랫놀음)위주의 은근하고 흐드러진 춤으로 풍물판의 꽃을 이룬다.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강하고 기교 넘치는 채상소고가 인기를 얻지만 제멋에 흐드러지게 놀 수 있는 굿판에서는 고깔소고가 제격이다.
-고르는 법
소고 크기는 용도에 따라 다르게 골라야 한다. 채상소고는 작은 크기(중-0.7치)의 소고를 주로 사용하고, 고깔소고는 채상소고 보다는 큰(대-0.8, 0.9치)소고를 사용한다. 가죽(소) 종류로는 내피와 원피(외피) 소고로 구분되어 생산판매 되고 있는데, 내피소고는 가격이 싼 반면 가죽이 약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고, 원피(외피) 소고는 가죽이 튼튼한 반면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사용가치로 보면 원피소고가 더 경제적일 것이다.
-수리법
소고는 사용하다 보면 가죽이 늘어나고, 손잡이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과감히 가죽을 분리해 수리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북에 비해 수리하기가 쉽다). 가죽을 물에 불려 그늘에 말리고, 손잡이는 빠지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끈으로 묶거나, 접착제를 발라 단단한 줄로 엮어서 사용하면 오래 쓸 수 있다. 그리고 장구가죽 중에서 늘어났거나 약간 찢겨져 사용을 할 수 없는 것을 소고가죽으로 재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소고가죽보다는 장구가죽이 더 두꺼워 오래 쓸 수 있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재활용도 괜찮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1. 풍물굿에 관하여
1. 들어가는 말
마당에서 펼쳐지는 풍물굿 한마당은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거리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풍물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풀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풍물굿판에 뛰어들어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신명나게 춤추는 마을의 축제판을 이루게 된다. 꽹과리를 잡고, 북을 메고, 장구를 치며, 징을 두드리다 보면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생기가 돌고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정월 초에는 액을 몰아내고 복을 맞이하는 마을제나 지신밟기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빌고, 농사일이 바쁜 철에는 일터에서 두렛일을 하면서 풍물로 피로를 푼다. 백중날에는 농사의 장원(농사일을 으뜸으로 지은 사람)을 뽑고 풍물놀이로 하루를 즐기며, 한가위에는 풍물이 전국 곳곳에 메아리 치는 가운데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한다.
비단 세시풍속 놀이로서만이 아니라 집을 지을 때는 성주풀이를 하고 또 새로 이사온 사람은 집들이로 풍물을 치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사냥을 할 때나 적과 싸울 때도 풍물이 쓰였고, 줄다리기나 씨름판을 벌일 때도 풍물을 쳤다. 또 마을의 공공기금을 마련할 때나 장례 때에도 풍물이 쓰였다.
이렇듯 우리 겨레는 일 년 열두 달 풍물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풍물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오늘날의 문화를 이루어 왔다. 풍물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 보는 것은 뜻있는 일이며, 우리 겨레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또한 자못 클 것이다.
2. 뜻과 일컫는 말들
1) 뜻
풍물굿은 다섯 악기(쇠, 징, 장구, 북, 소고)를 주로 치며, 소고를 들고 다양한 춤을 추는 기능과 극적 짜임을 맡는 잡색놀이 등을 포함하는 공동체적인 놀이형태를 말한다. 이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놀이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양식이다. 풍물의 악기는 원래 신을 부르는 악기였고 잡귀를 몰아내는 악기였기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주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춤과 놀이를 통해 외로움과 아픔을 풀어 기쁨으로 끌어 올리는 가운데 신명이 나온다. 농민들은 활기 있는 노동생활을 위하여 풍물굿에서 신명을 얻어 내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풍물굿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모으려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이겨 내는 재생과 생존의 놀이라 할 수 있다.
2) 일컫는 말들
가장 일반적인 말이 '농악'이며 최근에는 사물놀이패가 생기면서 '사물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 마을에서는 지역과 굿을 하는 목적에 따라 굿, 매구, 매구굿, 풍물, 풍장, 두레, 걸궁, 걸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 왔다. 그러면 이러한 여러 가지 말들이 어떻게 쓰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르게 쓰는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농악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책의 하나인 농업 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라는 책에서였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농악이란 말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1)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의 음악'이라 하여 농사꾼이 하는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하고 농업 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들이 농악이란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풍물굿을 농민만으로 축소하고 대상화시킨 농악이란 말은 풍물을 일컫는 이름으로는 걸맞지않고 말 자체에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첫째, 농악이라고 부르면 농민의 음악, 즉 장단이나 소리만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풍물굿이 가지는 종합적이고 대동굿(놀이)적인 성격을 나타내지 못해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한정시켜 버리게 된다. 물론 음악적인 요소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풍물굿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뜻은 놀이, 춤, 재담, 노래, 연극 등이 나뉘어지지 않고 같은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둘째, 도시 즉 복잡한 산업사회에서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뜻에서 좀더 적극적인 쓰임말이 필요하다. 풍물굿이 본래 농경사회와 함께 하면서 농경사회의 생활과 노동의 율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서로 다른 환경이나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여러 삶의 터(농촌, 도시, 학교, 노동현장, 어촌 등)에서도 공동체문화 형성에 필요한 매개체로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쓰임말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을 이겨 낼 필요가 있다.
(2) 사물놀이
풍물굿에 있어서 사물이란 쇠, 징, 장구, 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에서의 사물(범종, 운판, 법고, 목어)에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남사당패의 놀이 가운데 풍물이 가장 간단한 짜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사물놀이'라는 말이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가운데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갈래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으나, 사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생긴 한국전통타악연주 단체(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자신들 스스로 붙인 단체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였던 셈이다.2)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고도로 무대화된 타악기의 연주형태로 풍물굿의 가락을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한 형태로 봐야 한다. 풍물굿과 사물놀이를 비교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볼 수도 있다.
풍 물 굿
연주장소 - 넓은 마당이나 공터에서 이뤄진다.
연주시간 - 시간 제한이 거의 없다
연주인원 - 많을수록 굿의 맛이 살아난다.
연주목적 - 대동굿(놀이)을 지향한다.
가락특징 - 같은 가락의 되풀이가 많다
관객반응 - 판에 끼어들기가 쉽다.
잡색역할 - 치배와 관객의 다리 역할을 한다.
진 풀 이 - 판에 따라 즉흥성을 살릴 수 있다.
사 물 놀 이
연주장소 - 좁은 공간이나 무대에서도 할 수 있다.
연주시간 - 한 작품당 약 10∼15분 정도이다.
연주인원 - 보통 4∼6명 정도로 할 수 있다.
연주목적 - 짧은 시간에 고도의 기량을 보여 준다.
가락특징 - 대표적인 가락을 이어서 만든다.
관객반응 - 공연할 때에 끼어들기가 어렵다.
잡색역할 - 없는 것이 아쉽다.
진 풀 이 - 작품의 틀이 공연 전에 정해져 있다.
풍물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은 사물놀이는 일반 사람들에게 풍물의 가락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뛰어난 재주를 살리고 발전시킨다는 좋은 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옛날 마을굿이 지니고 있던 대동놀이적인 면을 살리고, 구경꾼과 놀이꾼(연희자)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판을 되살리는 일이다.
(3) 풍장
농사일에 많이 쓰이는 말로 김매기할 때 이루어지는 풍물놀이를 가리킨다. 특히 만두레(벼농사는 김매기를 보통 세 번 하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에 하는 것을 말함)가 끝나는 날 농사가 제일 잘 된 집 머슴을 소 등에 태워 위로하며 노는 것을 농장원, 질꼬냉이라고 한다.
(4) 두레
원래는 우리나라 고유의 마을단위 일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특히 김매기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풍물이 공동체적 놀이로서 일두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풍물을 두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5) 굿
모든 지방에 걸쳐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쓴다. 굿의 의미는 원래 '모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풀어 가며, 공동체적 바람을 집단적으로 빌며 집단적 신명으로 끌어 올려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 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무속에서의 신앙적 뜻만을 가리키는 흐름이 있다.
(6) 매구?매굿?매귀(埋鬼)
땅 밑에 있는 나쁜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묻고 밟는다는 뜻으로 보통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풍물놀이를 매굿이라 한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풍물을 일컫거나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7) 풍물?풍물굿
주로 경기, 충청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모내기할 때 간단한 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신에게 소원을 푼다는 뜻이나, 농사의 풍년을 바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80년대에 들어와서 대학가와 문화모임들이 농악이란 말 대신에 풍물 또는 풍물굿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되었다.
3. 뿌리와 변천과정
풍물굿의 기원은 원시사회의 풍농과 안택을 비는 제천의식이나 일의 율동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점차 집단생활 속에서 놀이형태, 축원형태, 연극형태로 발전되고 사람들이 이를 즐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시시대의 제천의식 또는 집단적 바람을 비는 제의형태는 종교적 의식을 주재하고 대행해 줄 무당(샤만)이 나타나기 이전이므로 집단적 신명을 통해 신과 만나고 기원하는 형태였으며,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집단춤과 쉽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타악기를 썼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오늘날의 틀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풍물굿에서의 악기와 연희형태 가운데 불교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이런 악기와 연희형태가 기층민중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조선시대이며, 풍물굿이 농촌의 두레공동체와 함께 커온 것으로 볼 때 두레의 생산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이앙법(모내기)이 들어온 조선시대 이후로 추측할 수 있다.
학자들 사이에 풍물굿의 기원을 풀이한 것으로는 풍농안택기원설, 군악설, 불교관계설 등이 있는데, 이들은 풍물굿의 기원을 풀이한 것이라기보다는 풍물굿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풀이한 것으로 의미가 있다.
1) 뿌리
(1) 풍농안택기원설
농경사회에 있어서 집단적인 바람(기원)은 당연히 농사가 잘 되고 마을에 탈이 없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는 집단적 신명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것을 위해 쓰였던 음악과 춤을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 보는 것이다.
(2) 불교관계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불교가 탄압을 받게 되자 모든 절의 경제적 기반이 어려워졌다. 스님들은 자구책으로 불교음악이나 의식춤에서 나오는 연희형태를 가지고 마을에 내려와 자금을 얻어가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불교음악과 의식춤에서의 악기, 장단, 연희형태들 가운데 민중의 미의식에 알맞는 것들을 풍물굿에 끌어들여 썼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소고를 법고(버꾸)라고 한다든지, 고깔을 쓰고 놀이를 한다든지, 바라를 악기로 쓰는 것 등은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3) 군악설
전통시대에 변방을 지키거나 기타 군대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농민들이었으며, 그들은 요즈음의 예비군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풍물굿패의 옷차림이나 지휘체계 등에는 군대의 것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농민들이 놀이 속에서 군악의 체계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풍물굿이 흐트러짐 없는 짜임과 힘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에도 군대에서 풍물굿(사물놀이) 군악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2) 변천과정
풍물굿의 맨 처음 형태는 생산, 신앙과 관련하여 생긴 축원, 노작형태이며, 축원형태→노작형태→걸립형태→연예형태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각각의 형태가 따로따로 생겼다가 없어지고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남아 있는 풍물굿의 모습을 보고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흐름을 알아 낼 수 있는 것이다.
(1) 축원형태
당산굿, 기우제, 매귀굿, 풍어제, 추수감사제 등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풍요를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종교적 의식으로 행해진 것이다. 풍물굿의 기원에 중요한 뿌리가 된다.
(2) 노작형태
여럿이 함꼐 농사일을 하면서 일의 율동에 맞게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풍물굿을 치는 형태를 말한다. 이는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나아가 능률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앙법이 들어오면서 모내기, 김매기 때 행해지던 형태가 전형적인 노작형태라 할 수 있다. 보통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노동요라 하고 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노래를 들노래(농요)라 한다.
(3) 걸립(걸궁)형태
한 마을 또는 여러 마을을 집집마다 돌며, 그 집에 일 년 내내 탈 없이 많은 복이 들어오기를 빌어 주며 곡식이나 돈을 거두는 형태이다. 마을 단위의 공동자금을 모으는 방법이기도 하고 전문예술인 모임의 먹고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지신밟기(마당밟이) 형태로 진행되는데 집집마다 돌며 돈이나 쌀을 모으는 형식을 가리킨다.
(4) 연예형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전문예인(보통 사당패라 부름)들이 주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두레패 놀이에서 사당패 놀이가 나눠져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4. 지역마다의 특색
풍물굿은 크게 중부 이북지방에서 행해지는 웃다리 풍물굿과 중부 이남지방에서 성행하는 아랫다리 풍물굿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웃다리 풍물굿은 주로 경기지방과 충청 이북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상쇠의 기능이 뛰어나다.
반면 아랫다리 풍물굿에서는 장구와 소고의 기능이 발달하였다. 그러면 각 지역마다의 특색을 짧게나마 살펴보자.
1) 경기도 충청도 풍물굿
(1) 흔히 웃다리 풍물굿이라고 하며 경기, 충청, 강원도 영서지방을 포함한다. 분포지역은 평택, 안성, 이천, 양주, 원주, 홍성, 단양, 제천, 음성, 천안, 대전, 부여, 논산, 영동 등을 들 수 있다. 상호 교류권은 북으로 개성, 해주, 김천, 신천, 평양, 순천 등 황해도, 평안도 지역과 남으로는 경상북도 김천을 포함한다.
(2) 안성에 있는 청룡사는 옛날 남사당패들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직업성을 띤 남사당은 연희종목으로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 외에 풍물놀이에도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3) 소고와 법고(버꾸)의 구별이 없고, 다른 지역에 비해 북을 적게 쓰는 편이며, 특히 느린 가락과 빠른 가락을 고르게 쓰는 쇠가락이 분명하고 암채, 숫채 가락의 변화를 구사하는 짝쇠놀이가 발달했다.
(4) 여러 아이들로 짜여진 무동놀이가 발달하였고 깨끼춤, 쾌자춤이 돋보이며 동고리, 삼무동, 곡마당 등의 다양한 무동타기가 발달하였다.
(5) 판굿의 짜임새가 다양하다. 당산벌림 같은 ㄷ자진, 사통백이, 가새벌림, 좌우치기 같은 진풀이가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6) 경기 풍물에서는 마을굿인 대동굿(당산제)을 하지 않고 지신밟기만을 하며, 여름철에는 두레굿을 하며 걸립풍물이 발달하였다.
(7) 충청도 풍물은 판굿의 짜임이 경기 풍물과 같으나, 충남 일부 지역에서는 전라도 풍물의 영향으로 마을굿인 당산굿을 하며 두레기가 있고 편성에 있어서 잡색에 대포수, 각시, 양반 등이 있고 어른들이 무동놀이를 한다. 경기 풍물의 특징인 무동타기는 별로 없고 무동들의 단체춤인 나부춤(나비춤)이 특색 있다.
(8) 경기 풍물에서는 모든 치배들이 상모를 쓴다. 특히 양사를 위주로 하는 채상버꾸가 발달하였고 충청도 남쪽에서는 고깔을 쓰기도 한다.
(9) 판굿의 구체적 내용은 이 자료집의 경기도 안성 풍물놀이를 참고하길 바란다.
2) 강원도 풍물굿
(1) 한반도의 등줄기가 남북으로 뻗은 태백산맥을 경계로 강원도 풍물은 영서 풍물과 영동 풍물로 나뉜다.
영서 풍물은 원주, 횡성, 춘성 등지로 경기 풍물과 내용과 형식이 거의 같고 영동 풍물은 강릉, 속초, 동해, 삼척, 평창, 정선 등의 지역이다. 상호교류권은 북으로 안변, 함천, 길주 등지의 함경도 지역과 남으로 청도, 부산에 이르는 경상도 일부 및 경상도 동해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2) 영동 풍물은 험준한 산악으로 각기 지역 나름의 고유한 형태와 멋을 지닌 민속놀이, 민요, 토속신앙과 함께 풍물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 영동 풍물은 마을굿으로 당산굿은 별로 하지 않으며 지신밟기가 성행하고, 고사소리가 다양하고, 달맞이굿과 횃불놀이(다리밟기)가 있고, 두레풍물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 풍물과 질먹이기가 있다.
(4) 강릉 풍물굿의 경우, 오월 단오절에 남대천 단오장에 모실 대관령 국사서낭님 신대와 위패를 모셔 오는 사월 보름날, 대관령을 갈 때와 올 때에 친다. 사월 보름날 대관령에 국사서낭을 모시러 갈 때에는 지역 대표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와 주민들이 참석하는데 그때에 풍물굿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서낭을 맞이해 온다.
(5) 영동 풍물의 짜임은 농기 외에도 신대를 사용하며, 사물(쇠, 징, 장구, 북)과 소고, 법고, 무동잽이의 수가 각각 같은 숫자로 4분화되어 있고, 소고와 법고가 구별된다. 장구잽이는 장구를 앞으로 메고 궁글채 대신 손으로 장구 궁편을 치기도 한다.
(6) 영동 풍물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모의 형태가 특색이 있다. 상모와 퍽에 넓고 짧게 자른 한지를 두 장 붙인 상모가 있다. 외사와 양사를 많이 친다.
(7) 경기 풍물과 같이 어린 무동의 수가 많고, 무동은 고깔을 쓰는데 고깔에 붙은 여러 색의 꽃의 수는 40여 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일제 때 서커스단의 영향으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탑을 쌓는 무동타기가 있고, 사람탑 맨 위에서 하는 열두발 상모놀이(때론 상쇠가 상모놀이를 함)가 특색 있다.
(8) 영동 풍물은 일풍물(일하는 사람의 풍물)이라고 하며, 농사짓는 동작을 흉내낸 가래질, 논갈이,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낫갈기, 벼베기, 벼광이기, 방아찧기 같은 농사풀이가 발달하였다.
(9) 판굿 진행에서 가락은 외가락을 되풀이하면서 제자리춤이 없이 허리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혀서(그래야 흥이 난다고 함)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고 진풀이는 정방형, 체조대형, ㄷ자형, 멍석말이 등이 있다. 놀이는 단체놀이에 치중한다.
3) 전라도 풍물굿
(1) 전라도 풍물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때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양으로 파발마가 지나는 길을 경계로 하여 한양에서 전라도를 내려다보았을 때, 좌측 산간지역이 좌도이고 우측 평야지역이 우도이다.
하나는 전라도의 북쪽 지역을 웃녘굿(주로 전북지방), 전라도의 남쪽 지역을 아래녘굿(주로 전남지방)으로 나눈다.
(2) 앞의 좌도굿, 우도굿의 구분은 학계를 비롯하여 일반적인 구분법이다.
(3) 뒤의 웃녘굿, 아랫녘굿의 구분은 옛날 전라도 풍물잽이들 사이에 통해 왔다고 한다.
(4) 이 자료집에서는 앞의 좌도굿, 우도굿의 구분을 적용하였다. 교통의 발달과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좌도굿과 우도굿의 차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5) 예부터 좌도굿과 우도굿을 크게 나누지 않고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4) 전라 좌도 풍물굿
(1) 좌도 풍물굿의 발달 지역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과 전라도 서쪽의 평야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노령산맥 사이인 전라도의 동쪽 산간지역으로, 금산, 무주, 진안, 장수, 임실, 남원, 곡성, 화순, 광양, 보성, 여수 등의 지역이다.
(2) 모든 치배들이 상모를 쓰는 경우가 많고 웃놀음이 발달하였다. 상쇠는 부들상모(개꼬리상모)를 쓴다.
(3) 쇠옷(치배의 옷차림)은 비교적 간소하다. 평상복을 입다가 얼마 전부터 쇠옷이 발달하였다.
(4) 쇠와 장구가 중요시되며, 가락은 원박 위주로 빠르고 투박하면서 힘이 있다. 가락이 빠른 만큼 치배들의 동작도 빠르고 단체놀이에 치중한다. 상쇠와 부쇠가 가락을 주고받는 쇠놀이가 발달하였다.
(5) 소고잽이의 채상모 소고놀이와 박진감 있는 두루거리(자반뒤집기)가 뛰어나다.
(6)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전라 좌도 진안 중평굿을 참고 바란다.
5) 전라 우도 풍물굿
(1) 우도 풍물굿의 발달 지역은 전라도의 서쪽 평야지역으로, 전라도 서해안에서 동쪽의 노령산맥 사이로, 북에서 남으로 익산, 군산, 정읍, 김제, 부안, 이리, 전주, 나주, 함평, 영암, 장흥, 목포 등의 지역이다.
(2) 쇠치배들은 뻣상모를 쓰고 다른 치배들은 고깔을 쓴다.
(3) 쇠옷(치배의 옷차림)이 화려하게 발달하였다.
(4) 장구가 중요시되며, 가락은 주로 느린 가락이 많으나 빠른 가락도 곁들여 있어 비교적 가락이 다채롭고, 개인놀이가 발달하였다.
(5) 장구잽이의 장구놀이(설장구)와 쇠잽이의 부포놀이가 발달하였다.
(6) 윗놀이에 치중하지 않고, 발림(발짓)을 중시하는 아랫놀이가 발달하였다.
6) 경상북도 풍물굿
(1) 경상북도 풍물굿은 청도 차산 풍물과 비산 풍물, 금릉의 빗내 진굿이 현재 전해지고 있고, 안동, 예천, 영주, 영천, 영덕, 군위, 달성 등의 지역에도 나타난다.
(2) 안동이나 영주와 같은 동북지방은 영동 풍물의 특색이 나타나고, 김천, 선산 등의 지역에서는 경기?충청 풍물의 특색이 나타나고 있다.
(3) 북을 많이 사용하여 가락이 힘차고 박진감이 있다. 치배의 짜임에 있어 징 뒤에 북이 선다.
(4) 모든 치배들을 두 패로 나누어 모의 전쟁놀이를 하며, 상모놀이의 발달로 소고잽이의 채상 놀이가 뛰어나다.
(5) 느린 가락에서 시작하여 차차 몰아가는 빠른 가락을 자주 쓰는 편이다.
(6) 지신밟기가 발달하여 다양한 사설을 가지고 있다.
(7)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경북 금릉 빗내 진굿을 참고 바란다.
7) 경상남도 풍물굿
(1) 경상남도 풍물굿의 분포는 진주, 삼천포, 함안, 함양, 마산, 통영, 거창, 고성, 합천, 밀양, 울산, 부산, 양산, 동래, 진해 등의 지역이다.
(2) 함양, 진주, 삼천포, 마산, 통영, 거창 등의 서남지역 풍물굿과 밀양, 울산 등의 동북지역 풍물굿, 그 중간 형태로 부산, 양산, 진해 지역의 풍물굿으로 나누기도 한다.
(3) 경북 풍물과 같이 군대의 지휘체계와 일사불란한 단체행동을 중요시하고 있다.
(4) 북이 많이 쓰여 북가락과 북춤이 발달하였으며 보통 북이 징 뒤에 선다.
(5) 지역에 따라 고깔을 쓰기도 하는데 상모놀이가 발달하였다. 채상모의 소고춤과 자반뒤집기가 뛰어나다.
(6) 옷차림은 경북 풍물과 비슷하다.
(7) 서남쪽으로 갈수록 전라 좌도굿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8)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나발 종류의 악기가 있어, 굿이 진행되는 동안 독특한 음향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대나무로 만든 땡가리(부산 아미 풍물굿), 나무로 만든 고동(청도 차산)이 있다.
용어설명.
ㄱ)
가새진 : 2열 종대로 마주서서 사람 사이로 빠져 나가면서 전진하는 놀이. 가새는 가위의 사투리이다.
각간치배 : 풍물굿에서 각각의 치배(풍물 구성원)를 일컫는 말.
개꼬리상모 : 판굿에서 쇠잡이가 부들상모를 뒤로 젖히고 발짓으로 부포를 개꼬리와 같이 이리저리 흔드는 놀이. 이것은 부들상몰에만 있고 뻣상모에는 없다.
각기목 : 경상도에서 쓰이는 말로, 호적이라는 뜻.
개인놀이 : 판굿의 뒷판에 한두 잡이가 놀이판 가운데 나와 그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놀이를 개인놀이라고 한다. 개인놀이에는 쇠놀이, 장구놀이, 소고놀이, 잡색놀이, 무동놀 이 등이 있는데, 쇠놀이와 소고놀이(벅구놀이)에서 쇠잡이나 법고잡이들이 송모짓 하는 상모놀이가 유명하다.
걸궁패 : 걸립농악을 하는 농악꾼.
걸립굿(걸궁굿) : 집집이 돌며 고사를 지내주고 쌀이나 돈을 걷는 것을 '걸립한다' 혹은 ' 걸궁한다'고 한다. 또 농악을 치며 갈립하는 의식을 걸립굿·걸궁굿이라 부른다. 걸 립굿은 마을에 들기 전에 치는 들당산굿·문굿, 마을에 들어가 치는 당산굿·샘굿, 집안에 들어서 치는 문굿·마당굿·조왕굿·천륭굿·고방굿·외양간굿 등이 있다. 이밖 에 뜰에서 치는 도둑잡이굿이 있고, 마을에서 나갈 때 치는 날당산굿이 있다. 집안 고사에는 따로 고사소리나 성주풀이를 부르기도 한다.
걸립패 : 집집이 돌며 걸립굿을 치는 농악대. 모(某) 갑(甲)이의 신분에 따라 낭걸립패, 절 걸립패, 신청 걸립패로 나눈다.
겐지겐굿 : 12/8 박자로 이루어진 가락으로 자진모리와 한배가 맞으며, 좌도영산굿에서 쓰 인다.
겹박 : 박자가 겹으로 연주되는 것.
고동 : 영남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긴 나팔을 말한다.
고동진 : 멍석말이. 통영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고방굿 : 곡식을 저장하는 고방이나 창고에서 치는 고사굿
고사반 : 걸립패가 고사굿에서 부르는 소리를 고사반이라 부른다. 고사반에는 고사소리군이 길게 부르는 고사소리, 짧게 부르는 고사반, 구호처럼 외치는 고사반이 있다.
고사소리 : 걸립패의 고사굿에서 고사소리굿이 집안의 안녕을 비는 소리로 경기·전라도에서 는 매우 길게 부른다. 고사소리에는 신세풀이, 과거풀이, 액풀이, 농사풀이, 성주 풀이와 같은 것이 있고, 경기도에서는 따로 뒷염불이라 하여 평조염불(회심곡)이나 반맥이를 부른다.
구정놀이 : 개인(個人)놀이를 말한다.
군고(軍鼓) : 군진법(軍陣法)을 위주로 하는 농악의 개념에서 보는 '농악'이라는 뜻이다. 군쇠 : 밀양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잽이들이 멋을 부린다는 뜻.
군총 : 군진(軍陣)풀이를 주로 하는 농악.
굿 : 흔히 무의식을 굿이라 부른다. 무의식에 따른 연희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풍물을 굿 이라고 부르며 풍물치는 것을 '굿친다'고 한다. 풍물에서 굿은 샘굿·당산굿의 경우 와 같이 의식을 가리키기도 하고 3채굿, 5채굿 길굿과 같이 쇠가락을 가리티기도 한다. 또 오방진굿·도둑잡이굿과 같이 연희를 뜻하는 등 두루 쓰인다.
굿물 : 굿에 쓰이는 기물을 가리킨다. 즉, 농악에 쓰이는 악기, 기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 인다. 또 풍물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궁글채 : 장구에 있어서 왼쪽의 낮은 음이 나는 채.
금고(金鼓) : 옛날에는 농악을 금고(金鼓)라 했다. 꽹과리·징을 금(金)이라 하고, 북·장구· 소고 등을 고(鼓)라고 하는 데서 연유한다.
길군악 : 풍물에서 행진할 때 쓰이는 쇳가락의 총칭. 일명 질굿촵길굿촵질매구촵길꾸내기촵 엇모리형 장단과 자진모리형 장단으로 대별되는데 전자가 고형이다. 경북촵경기촵 경남농악의 길군악, 경기농악의 마당일채, 길군악7채, 호남 우도농악의 오채질굿촵 좌질굿은 엇모리형이거나 이의 변주형으로 전자에 해당하고 호남 외마치질굿과 다 른 고장의 질굿은 후자에 해당 한다.
길군악7채 : 경기도 풍물에서 행진에 쓰이는 쇳가락의 하나. 3분박과 2분박이 3+2 3+2 3+3 3+3 3+2 2+3 3+2로 구성되며 꽹과리는 '깽- 갠지갱 깽- 갱- 갠지갠 갱 -개깽-' 징은 7점을 친다. 이 쇳가락은 경기도 농악의 독특한 가락이며 경기도 강원도 영서 충청도 북부지방에 두루 쓰인다. 행진음악과 판굿에서 멍석말이에 쓰이며 매우 씩 씩한 느낌을 준다.
길굿 : 길놀이로 치는 농악.
꼰두쇠 : 전문적인 풍물잽이. 경기도에서 쓰이는 말이다.
꽃수건 : 고깔 안에 동여맨 수건. 경기도 이천에서 쓰인다.
꽃트림 : 백중(百中)날 농악꾼을 사서 마을사람들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호남농악에 서 쓰인다.
꽹맥이 : 꽹과리. 주로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꽹쇠 : 꽹과리.
ㄴ)
나비상모 : 벙거지에 종이를 가늘고 길게 여러 겹으로 된 것을 단상모라 하며, 옛날에는 그 냥 상모라 했다. 부포상모와 채상모가 새로 생기면서 옛것은 나비상모 혹은 나비상 이라 부른다. 지금은 부포상모, 채상모로 바뀌어 다시 쓰이지 않는다.
나팔 : 쇠로 만든 긴 나팔.
난장쇠 : 장터에서 치는 농악이라는 뜻인데, 경기농악에서 쓰이고 있다.
낭걸립패 : 서낭을 받은 서낭기를 들고 걸립하는 걸립패.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에 많다.
너름새 : 가락을 멋있게 치라는 뜻.
내드림 : 시작선율을 일컫는 말. 드름이란 가락이란 뜻이며, 내드름이란 내는가락이란 뜻이 다. 판소리.산조.풍물과 같은 음악은 처음에 제시한 선율형 또는 리듬형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다가 맺고(景) 풀어(解) 종지한 후 다시 다른 가락을 내게 되는데, 처음에 제시하는 가락을 내드름이라하며, 시작될 음악의 성격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놀이 : 굿을 할 때 행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신성(神聖)한 놀이라 할 수 있다.
농기(두레기) : 두레패에는 영기라 부르는 작은 기와 대기라 부르는 큰기가 있다. 두레패의 대기는 농기 또는 농상기, 덕석기, 두레기라 부르며 걸립패의 대기, 즉 서낭기 또는 낭기보다 크다. 대여섯 길되는 긴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고, 그 끝에 꿩꼬리로 만든 꿩장목을 깃봉으로 달고 그 밑에 긴 깃폭을 단다. 기폭에는 '神農遺 業' 또는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며, 용을 그리는 경우에는 용기, 용당기, 용둣기 라고도 부른다. 용기는 동제의 신대와 같은 것으로 농신이 내리는 기능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퇴화해 버렸다.
농기패 : 勞作農樂을 할 때 흔히 쓰이는 말로서 農旗를 든 농악꾼.
농사풀이 : 농경모의를 하느 몸짓이나 춤. 한편으로는 농식(農式), 또는 농사굿이라 하기도 한다. 영동(嶺東)과 경상도 동해안 지역의 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ㄷ)
다드래기 : 쇠가락의 하나. 3분박 매우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거나 2분박 매우 빠른 4 박자(4분의 4박자)이다. 매우 빠른 가락을 모두 다드래기라 부른다. 쇠가락 끝에는 다드래기로 몰아간다. 구성지고 씩씩한 가락이다.
다드걸립패(나루걸립패) : 지역 유지들이 다리·나룻배를 보수하기 위한 자금을 걷기 위하여 조직된 걸립패.
다리굿 : 걸립패기 지나다가 다리르 건너기 앞서 치는 고사굿. 고사반은 '앗다, 그 다리 잘 놨다. 치렁치렁 건너가자'하고 구호로 외친다.
대금(大金) : 징을 상징한다.
대삼 : 움직임을 크게 하라는 뜻.
덧뵈기꾼 : 부산지역 농악에서의 농악꾼.
덧배기친다 : 농악을 한다. 부산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덩덕궁이 : 쇠가락의 하나. 3분박 조금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다. 고사굿·판굿에 두루 쓰이며 상모놀이에는 이 가락이 주가 된다. 매우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이다.
도둑잽이굿(도둑잡이굿) : 풍물굿에서 연희적인 성격을 띤 거리로 흥미로운 내용이 전개된다. 판굿 끝판에 상쇠와 대포수의 재담으로 엮어지는 놀이. 대포수를 도둑으 로 가정하여 상쇠가 영을 내어 도둑을 잡고, 목을 베어 영기에 꽂고 개선한다는 내 용이다.
도청 : 호남지방에서 농악대를 지도하는 어른을 말한다.
돌돌이 : 마을을 돌아 다니는 것.
돛대 세우기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앞으로 나가면서 부포가 오래 서있게 해 배에 돛대 가 서 있는 모습과 같이 하는 재주.
두렁쇠 : 논두렁에서 농악을 친다는 뜻인데, 경기·충청농악에서는 비전문적인 마을 농악을 말하기도 한다.
두레굿 : 두레패들이 치는 농악. 두레패는 들에 나갈 때, 논에서 논으로 이동할 때, 들에서 마을에 들어올 때 두레굿을 친다. 그러나 호남지방에서는 논에 들어가 김매며 치는 농악을 두레풍장이라 부른다. 풍장에는 들풍장, 도돌이풍장, 잦은풍장, 날풍장이라 하여 논에서 김매기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쇠가락이 달라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호남지방에서 논에 들어가 치는 풍장은 꽹과리, 장구, 소고로 편성되며 소고 잡이는 풍장옷에 어사화를 쓴다.
두레패 : 농촌에서 농민들이 협동으로 일하기 위한 노동 조직체를 두레라 부른다. 두레를 조직하는 것을 '두레한다'고 한다. 일감에 따라 김메기 두레, 풀베기 두레, 삼삼기 두레가 있다. 김매기 두레는 논에서 김을 매기 위해 짠 두레이고, 풀베기 두레는 퇴비로 쓸 풀을 베기 위해 짠 두레다. 또 삼삼기 두레는 실을 뽑기 위해 짠 두레이 다. 김매기 두레에는 두레굿, 두레풍장이라 하여 김매며 농악을 친다.
뒷손 : 꽹과리를 잡은 왼손.
뒷풀이 : 농악이 끝나고 구경꾼들과 합세하여 춤추는 것.
들당산굿 :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동구 밖에서 치는 굿. 주로 호남지방에서 쓰인 다.
등맞추기 : 쌍쌍이 등을 대고 일제히 앉았다 섰다 하는 놀이.
뜬쇠 : 남사당패의 농악에서 쓰이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ㅁ)
마당굿 : 걸립패들이 집안 마당에서 벌이는 조그만 판굿.
마당밟이(답정굿·지신밟기) : 정초에 농악대들이 집집마다 돌며 치는 농악. 농악을 치며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면 '터를 누른다'하여 지신을 진정시키고 잡귀가 물러가며 가신 의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 마당밟이와 걸립굿은 같은 것이나 걸립은 목적으로 하는 고사굿을 따로 걸립굿이라 부른다.
마을문굿 : 들당산굿에 딸린 문굿. 그 마을에서 걸립패의 솜씨를 가늠해 보고자 할 때, 동 구 밖에서 걸립패들이 벌이는 판굿의 일종. 마을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는 적차가 따른다.
매구 : 섣달 그믐날 잡귀를 쫓는 굿. 이러한 굿은 주로 호남지방 농악에서 볼 수 있다.
머리장단 : 상쇠가 장단을 넘길 때, 새로 장단을 주는 것을 말한다.
멍석말이(방울진·고동진·도래진) : 잽이들이 1열횡대로 서서 나선형으로 행진하는 것으로 원(圓)을 말았다 푸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진풀이이다.
메나리토리 :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충청도 동부지방 민요와 경상도 동북부, 강원도 동 부, 함경도 지방 무가(巫歌)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선율 형태. 일명 메나리조. 선율 의 구성음은 미솔라도레이고, 주요음은 미라도이며 미 또는 라로 마친다. 경상도에 서는 통속민요와 무가의 선율은 물론이고 민속기악곡촵토속민요촵곡소리촵장사꾼 외치는 소리 등에 메니리토리가 두루 쓰인다. 민속기악곡에 메나리토리 허튼가락으 로 연주할 경우에는 니나니가락 이라고도 한다. 민요 가운데 쾌지나칭칭촵옹헤야촵 강원도아리랑촵정선아리랑촵한오백년촵신고산타령촵궁초댕기, 영동촵영남 풍물의 호적가락, 경상도촵강원도촵충청도의 고사소리, 범패 등에도 메나리토리가 널리 쓰인다.
면돌이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운 다음 부포를 쓰러지지 않게 가누며 얼굴을 돌려 부포도 함 께 돌게 하는 재주.
모가비 : 농악대의 총무. 주로 경남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무동놀이 : 판굿에서 무돌들이 춤추는 놀이. 경기·전라도에서는 어린 소년에 성인의 어깨 위에서 춤을 추고,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땅 위에서 춤을 춘다. 경기도 남서당패 들은 '사미'라 하여 승복을 입은 소년들이 사미놀이를 하기도 한다.
무동춤 : 어른무동과 어린이무동들이 추는 춤을 말한다.
문굿 : 입동(入洞)할 때나 집돌이 때 문간에서 치는 굿.
미지기(밀치기) : 잡이들이 몇 쌍씩 마주서서, 한편이 나서면 다른 편이 물러서고 한편이 물러서면 다른 편이 나서는 놀이
밑놀음 : 상체운동(下體運動), 즉 고갯짓을 하지 않는 춤.
ㅂ)
반멕이 : 고사(告祀)소리의 하나. 낭걸립패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 마을의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이다. 독창과 합창의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일정한 장단 은 없으며, 미 솔 라 도 레 미의 5음계로 구성된다.
발림 : ①판소리 연주에서 창자(唱者)가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손 발 온몸을 움직여 소리나 이야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 일명 과(科) 너름새 사 페라고도 한다. 요즈음 판소리계에서 사체라고 흔히 불리는 발림이라는 명칭은 조 선말기 고종(1864∼1907)때만 하여도 너르매라는 말로 쓰였고, 구한말이나 일제 때 부터 쓰인 듯하다. 신재효(1812∼1884)의 '광대가(廣大歌)'에 의하면 근래 발림의 뜻으로 쓰인 너름새가 인물 사설 득음과 함께 소리광대의 네 가지 필수요건 중 하 나로 지적되었다.
②전통 미속 놀이의 춤연주에 나타난 특정한 춤사위를 뜻한는 말. 농악무 중 장구 놀이에서 장구 연주자가 한 장단을 치고 춤추는 동작을 할 때 그 춤사위를 가리키 기도 하고, 송파산대놀이에서 전복자락을 양손으로 쥐고 활개를 폈다 내렸다. 하는 춤사위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경기촵서도 지방의 산타려을 부를 때 소고(小鼓)를 치며 추는 춤을 일컫기도 한다.
방구 : 모내기를 할 때의 소고놀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 못방구 또는 못방고라도 한다.
배밀어기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운 다음 고개짓과 발짓으로 부포 끝을 밀어내 부포가 퍼지게 하는 재주.
버슴새 : 버슴새는 남사당패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치배들이 아기를 연주하다가 극도에 오 르게 되면, 망아의 경지에서 갖는 치배의 본질적 모습이다. 그래서 선인(善仁)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악인(惡人)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예술의 경지를 드러내는 용어이다.
법고 : 소고 또는 매구북이라 하는데, 농악에서 법고라 함은 절걸립 때 나온 말이다.
법고놀이(소고놀이) : 판굿에서 법고잡이들이 나와서 소고를 치며 춤을 추고 여러 채상모놀 이와 연풍대, 허궁잡이를 하는 놀이. 법고잡이가 고깔을 쓰고 상모 놀음은 없고 춤 사위로 판을 짠다.
변 : 농악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암호말.
별달거리 : 12차에서 사용하는 가락으로 달리 영산다드래기, 자브랑갱이라고 부르며, 12/8 박자로 빠른 박자이다.
복색(服色) : 농악꾼의 옷.
복판치기(해바라기) : 산치기로 부포를 세웠다가 고개짓으로 부포의 복판(중등)을 꺾는 재 주.
부들상모 : 상모의 물체를 부드럽게 하여 부포를 이리저리 흔들 수 있도록 만든 부포상모. 본래 상모는 부들상모였으나 뻣상모가 생긴 뒤, 예전 것을 부들상모라 부른다. 영 남과 호남 좌도풍물굿에서 써왔으나 차츰 뻣상모로 바뀌어 가고 있다.
부포놀이 : 농악대의 쇠잡이가 부포상모를 쓰고 이리저리 재주부리는 놀이를 부포놀이, 부 포짓이라 하며 호남농악에서 발달되었다. 부포놀이에는 일사(외상모), 이사(양산 모), 사사, 퍼넘기기, 전치기, 전조시, 산치기, 연봉놀이, 불모디기, 돛대세우기, 이슬털이, 면돌림, 복판치기, 배밀어기 등이 있다.
부포상모 : 쇠꾼들이 쓰는 상모. 깃털로 꽃처럼 만든 상모. 고니의 날개가 깃털이 가장 좋 다. 부포상모가 쓰는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먼저 시작한 것 같으며, 부포를 다는 물 체의 형태에 따라 뻣상모와 부들상모가 있다.
북시말이 : 완도(莞島)지방 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상모놀이'라는 뜻이다.
불넘기 : 판굿의 끝판에 농악수들이 농악을 치며 차례로 모닥불을 뛰어넘는 놀이.
붙힘새 : 장단에 맞게 리듬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엇붙힘, 임아걸이, 완자걸이, 교대죽 등 이 있다.
비조리 : 경기도 이천에서 쓰이는 말로, '개인놀이'라는 뜻이다.
뻣상모 : 상모의 물체를 뻣뻣하게 하여 부포를 세우도록 만든 부포상모이다. 호남 좌도농악 의 쇠잡이가 쓴다.
ㅅ)
사물(四物) : 북·장구·쇠·징 등의 네 가지의 기본 악기.
사미놀이 : 사미는 중애라고도 부른다. 승복의 어린 소년으로 경기도 판굿에서 무동놀이에 사미를 무동에 세우고 이리저리 던지는 놀이가 있다.
사사(사사윗놀이) : 왼편에 두 바퀴, 오른편에 두 바퀴씩 교대로 상모를 돌리는 상모놀이.
4통배기(4진굿) : 네 군데서 차례로 도진을 짜는 놀이, 세 군데 짜면 삼통배기, 다섯 군데 짜면 오통배기가 되고 두 군데 짜면 쌍진굿, 좌우각진, 두통배기가 된다.
삼채 : 풍물에서 징을 3점 치는 쇳가락을 일鱁쑁컫는 말. 느린 것은 긴 삼채 또는 느진삼채, 빠른 것은 자진삼채 또는 된삼채라고 하며 대개는 박으로 구성된 다. 그 명칭과 쇳가락은 판굿의 종류, 지역, 변주방법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며, 동 리삼채·벙어리삼채·응매깽깽 등이 이에 속한다.
상모 : 돌모, 꼬꼬매라 부른다. 농악대의 쇠잡이나 법고잡이가 쓴다. 꼬꼬매는 상모를 꼬꾸 라미라 부르는 데서 나온 것 같다. 상모는 형태에 따라 나비상모, 부포상모, 채상 모, 12발상모가 있다.
상모놀이 : 농악수들이 상모 달린 벙거지르 쓰고 상모를 이리저리 돌리며 재주를 부리는 놀 이. 상모놀이에는 부포상모를 쓰고 부리는 부포놀이, 채상모를 쓰고 부리는 채상모 놀이가 있다.
샘굿 : 걸립패가 마을 공동우물이나 집안 우물에서 치는 고사굿. 농악을 치고 나서 경상도 에서는 '이 샘물이 좋소. 벌떡 벌떡 잡수시오. 만인문 먹더라도 수명장수 비나이다 '하고 경기도에서는 '뚫어라, 뚫어라, 샘구녁만 뚫어라' 고사반을 외친다.
서낭 : 밀양농악의 큰 기(旗)
서낭옷 : 서낭기(城隍旗)의 기폭.
선반 : 서서 연주하는 풍물굿의 형태를 지칭한다.
설장구 : 판굿에서 장구잡이가 놀이판 가운데 나와 장구를 독주하며 여러 가락과 춤 솜씨를 보여 주는 놀이. 옛날에는 상쇠, 상장구가 서로 마주서서 쇠가락을 주고 받았으나, 정읍지방에서는 장구를 혼자 치는 설장구가 생겼다. 설장구가락은 구정놀이, 덩덕 궁이, 굿거리 등 여러 가락을 엮어 나간다. 설장구는 즉흥적인 가락을 치는 것이 나, 요즘은 판을 짜서 설장구, 5장구를 세우기도 한다.
성진 : 통영농악의 원진(圓陣)을 말하는데, 전쟁에 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성주굿 : 성주신을 모시는 굿.
성주풀이 : 전라도 신청걸립패에서는 고사소리군이 삼현육각의 반주로 성주풀이를 고사소리 에 이어서 부른다. 이 성주풀이는 민간에 퍼져서 민요화되었다.
성황기(城隍旗) : 경북지방의 근 기(旗)
소금(小金) : 꽹과리.
소리굿 : 판굿 가운데 잡이들이 둥글게 서서 일제히 소리 부르는 놀이. 경기도에서는 '상사 소리'를 부르고 전라·경상도에서는 '에헤야 소리'를 부른다.
소삼 : 움직임을 작게 어르라는 뜻.
쇠가락 : 농악 장단을 쇠가락이라 부른다. 농악의 음악은 상쇠의 쇠(꽹과리)가 주도하기 때 문에 이렇게 부른다. 흔히 쓰이는 쇠가락에는 길굿(길군악), 덩덕궁이, 다드래기, 굿거리 등이 있다.
쇠놀이 : 판굿에서 상쇠, 부쇠, 종쇠 등 쇠잡이가 하나씩 나와 갖가지 가락을 치며 여러 가 지 상모놀이를 한다. 경기도에서는 쇠발림을 하기도 한다.
쇠발림 : 상쇠가 추는 춤. 판굿의 쇠놀이에서는 쇠잡이가 상모놀이를 한 다음, 꽹과리채를 거꾸로 쥐고 쇠채수건(너설)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경기농악에서 볼 수 있다.
쇠옷 : 농악에서의 복장.
수령수 : 영기(令旗)를 든 사람.
신농원업(神農遺業) : 전북 충청농악의 큰 기(旗).
신청걸립패 : 호남지방 세습무들이 영기를 들고 그들의 당골판에서 시주를 걷는 걸립패. 전문적인 예인들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잡이 솜씨가 훌륭하다. 삼자육각·고사확대가 딸려 고사창과 성주풀이를 부른다.
쌍장구놀이 : 판굿에서 장구잡이 둘이 놀이판 가운데 나와 서로 마주서서 설장구와 같이 노 는 놀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세우고 판을 같게 짜면 손놀림이 함께 움직여 보기에 좋다.
ㅇ)
앉은반 : 풍물을 칠 때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을 지칭한다.
양사(양상모·양상모놀이) : 왼편, 오른편 RYEI로 한 바퀴씩 상을 돌리는 상모놀음.
얼림굿(어림굿) : 농악에서 농악대들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얼르는 쇳가락이나 판굿의 명 칭. 농악을 시작하기 전에 상쇠가 농악대들을 모아 놓고 정해진 장단없이 "덩덩덩 덩……"라고 연타하면 다른 잽이들도 이와 같이 따라치는데, 본래 서낭대나 영기 (令旗)를 세워놓고 신(神)을 받는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엇부침 : 장단을 하나 먹고 들어가는 것. 따라서 장단과 장단 사이에 노는 것을 말할 때 이 렇게 말한다.
역진 당산굿 : 농악꾼들이 문굿을 하려고 입동(入洞)할 때 뒷걸음으로 들어가는 것.
연봉놀이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운 다음 발짓, 고개짓으로 부포를 놀려 부포가 마치 연꽃 봉 오리가 피었다 오무렸다 하는 모습과 같이 하는 재주.
연풍대 : 좌우로 도는 춤사위. 검무와 승무 같은 춤에도 쓰인다. 농악에서는 매우 빠르게 도는 사위를 쓴다. 판굿에서 법고잡이 또는 장구잡이가 연풍대를 많이 한다.
12발상모 : 채상의 길이를 매우 길게 만든 상모를 12발이나 길다 해서 12발상모라 부른다. 12발상모가 달린 상모는 고사굿이나 길굿에서는 쓰지 않고, 판굿의 개인놀이 중 12 발상모놀이에서만 쓰인다.
열채 : 장구에서 있어서 오른쪽의 높은 음이 나는 채.
영산 : ①호남풍물굿에 쓰인 쇳가락의 하나. 길군악·품앗이굿·된삼채·일자신굿·인사굿과 함 께 우도굿의 들당산굿에서 사용되었으며, 좌도굿에 쓰인 영산이란 가락은 연주되는 속도에 따라서 늦인영산·자진영산·조른영산으로 나뉜다. 좌도굿에서는 영산가락에 맞추어 농악대원들이 노는 놀이를 영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놀이에서 상쇠와 부쇠 가 소쩍새가락을 연주하면서 서로 교대로 춤을 춘다. 앉은영산·돌림영산 같은 농악 놀이도 연주되는데, 이때 상쇠는 늦인삼채를 치면서 상쇠와 부쇠는 마당의 중앙에 서 멋진 가락을 주고 받을 때 다른 농악대원들은 환진(環陳)으로 돌며 춤을 춘다. 그리고 상쇠가 소쩍새가락을 치면 부쇠가 춤을 추고, 부쇠가 소쩍새가락을 치면 상 쇠가 춤을 추는데, 이때 소고잽이는 나비상을 하면서 논다. ②경남풍물굿에 쓰인 쇳가락의 하나. 황일백의 연주에 의하면 풍물굿 12차 중에서 열두번째의 가락이름 으로 쓰였다.
영산다드래기 : 경상도 남부지방 쇳가락의 하나. 또는 판굿의 한순서, 박자. 굿거리 장단에 맞는다 , 판굿에서 영산다드래기 순서는 우물놀이 다음에 행하여지는데 집이들이 영산다드래기가락을 치면서 상쇠와 소고수들이 외상쇠놀음·양산쇠놀음·사사놀음·전 치기웃놀음·쌍전웃놀음 등 여러 가지 상모놀음을 하고 반다드개기가락으노 쇳가락 을 치다가 자진다드래기가락으로 더욱 모아쳐서 마친다.
오방진 : 동서남북, 중앙 오방에 방울진(달패이진)을 짜는 놀이.
오채질굿(우질굿) : 호남 우도농악 판굿의 첫머리에만 연주되는 쇳가락으로 징이 다섯 점 들어가는 행진가락이란 뜻. 오른편으로 돌며 쇳가락을 치기 때문에 우질굿이라 부 르기도 한다. 매우 빠른 3박과 2박이 2·3·3·2, 2·3·3·2, 3·2·2·3, 3·3·3의 혼합박 으로 형성된다. 이때 첫 강박에만 징이 들어간다. 그리고 매 첫 강박을 징만 치고 꽹과리가 치지 않고 쇠게 도리 때는 벙어리오채라 한다.
외양간굿 : 마굿간에서 치는 고사굿. 경기도에서는 '매었네 매었네 금송아지 매었네', 경상 도에서는 '신농임 본을 받아, 대오임 본을 받아 연년 농사 잘지기르 소원 성취 비 나이다'하고 고사반을 부른다.
용기 : 용을 그린 기를 용기 또는 용당기, 용둣기라 부른다. 두레패의 대기, 동제 굿패의 대기에 용기가 쓰이며 군기에도 용기가 있다.
용솟음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발짓, 고개짓으로 부포를 놀려 연봉놀이처럼 부포를 폈다 오무렸다 하는데, 이 부포를 힘있게 늘였다 당겼다 해 용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 습과 같이 하는 재주.
용트림 : '之(지)'자로 걸어가면서 춤추는 것.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
윗놀음 : 말뜻 그대로는 상체(上體)놀음이나, 실제로는 꽹과리나 소고잽이들이 하는 고갯짓 (상모놀이)이다.
음양성 : 음양의 소리.
이슬털이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다시 제쳐서 풀잎이 이슬을 털어내는 시늉을 내는 재주.
일광놀이 : 호남농악에서 하는 연극놀이.
일사(외사·외상모·외상모놀음) : 부포상모·채상모·상모를 한 방향으로 돌리는 상모놀음. 상 모놀이를 배울 때 먼저 배우는 기초적인 동작이다.
일진(一進)·이진(二進)·삼진(三進) : 완도(莞島)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陣을 싼다는 뜻이다.
ㅈ)
자질굿 : 호남 우도풍물굿 판굿에 쓰이는 쇳가락의 하나. 오채질굿에 이어서 잽이들이 왼쪽 으로 돌며 치는 가락에서 붙여진 이름. 3박자와 2박자가 2·3·3·2로 섞인 10/8박자.
잡색(雜色) : 대포수·창부·각시·양반·무동 등 농악대 뒤를 따르는 연기자들.
잡색놀이 : 판굿에서 잡색들이 쇠가락에 맞추어 춤도 추고 재담도 하는 놀이. 대포수놀음과 조리중놀음이 유명하다.
잽이 : 농악 편성의 한 배역을 말할 때 쓰이는 말로, 일종의 농악꾼이라는 뜻.
전조시 : 전치의 한 가지. 적자로 벙거지의 전을 여기저기 쪼아가는 재주.
전치기 : 전이란 벙거지의 모양을 가리킨다. 상모의 적자로 벙거지의 전을 치는 재주를 전 치기라 한다.
절걸립패 : 절에서 낸 영기를 들고 절을 중창할 시주를 걷는 걸립패. 탈박승이 화주로 딸리 기도 한다.
조왕굿 : 걸립패들이 부뚜막 앞에서 조왕신에게 치는 고사굿.
좌우치기 : 도형을 그리고 선 채 전후, 좌우로 몇 발짝씩 장단에 맞우어 일제히 들고 나는 놀이.
중매구 : 절 일을 보는 농악.
지와밟기 : 전원이 1열횡대로 엎드려 서면, 뒤에서 한 사람이 사람 등 뒤를 밟고 건너가는 놀이. 지와는 기와의 사투리이다.
진법놀이 : 판굿에서 농악대 잡이들이 열을 지어 여러 가지 도형으로 움직이는 놀이. 진법 놀이에는 멍석말이, 오방진, 사통배기, 가새진, 당산벌림, 호허굿, 소리굿, 미지 기, 을자진, 달이치기, 좌우치기, 등맞추기, 콩동지기, 지와밟기, 원진 등이 있다.
진쇠 : 경기도 남부지방의 무무(巫無)반주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진쇠춤의 반주에 쓰이며, 부정놀이에 이어서 치거나, 넝김채·겹마치·덩덕궁이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진풀이 : 일종의 군진법(軍陣法)놀이로서 각종 행진법(行進法)과 대형(隊形)을 만든다.
집돌이 : 가호순방(家戶巡訪).
집안문굿 : 걸립패가 집안에 들며 대문에서 치느 굿. 농악을 치고 나서 '주인 주인 문 여 소, 문 안 열면 갈라요' 혹은 '문 여소 문 여소. 수문장군 문 여쇼' 고사반을 외친 다.
짝드림 : 잽이들이 교대로 연주하는 것.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짠지패 : 경기·충청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농악꾼이라는 뜻.
쩍쩍이 : 경기도 풍물굿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일명 쩍쩍이. 조금 느린 박자가 3개 모여서 한 리듬 악구를 이루는데, 첫 장단은 징을 3점치고, 둘째·셋째 장단은 첫 박에 1점 만 치기 때문에 오채라 부르기도 한다. 무동(舞童)을 어깨 위에 세우고 추는 춤인 동리(동고리)에 쓰이는 가락이란 뜻이다.
ㅊ)
채와 마치 : 가락.
채상모(채상) : 종이로 가늘고 길게 채 모양으로 만든 상모를 채상모라 부른다. 채상모는 법고잡이가 쓴다.
채상모놀이(채상놀이) : 법고잡이들이 판굿에서 채상모를 이리저리 돌리며 춤추는 놀이. 쇠 잡이의 부포놀이와 같이 일사, 양사, 사사, 산치기, 돛대세우기 등과 같은 놀이가 있다. 연봉놀이, 용솟음과 같은 놀이는 채상모놀음에 없다.
챗손 : 꽹과리를 잡는 오른손.
천륭굿(뒤안굿) : 집안에 있는 텃주가리 앞에서 치는 고사춤.
치배 : 농악구성원. 농악꾼.
치복 : 농악의 의복.
ㅋ)
콩동지기 : 등 맞추기와 같이 쌍쌍이 등을 대고 서서 교대로 업었다 놓았다하는 놀이.
ㅌ)
탈복굿·허치자굿 : 판굿의 맨 끝에 구호를 부르며 쇠가락을 치는 놀이. 판굿을 끝내고 잠자 리에 들기 위하여 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탈복굿이라 한다.
ㅍ)
판 굿 : 걸립굿이나 남사당패들이 구경군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놀이판에서 치는 농악. 남 사당패는 판굿만을 치며 걸립패는 걸립하는 사이에 치고, 특히 밤에 마을 사람들에 게 구경시키기 위하여 모닥불을 피우고 판굿을 친다. 판굿은 잡이들이 이리저리 열 을 지어 움직이는 놀이를 먼저하고 한두 잡이들이 장기를 자랑하는 놀이를 나중에 한다. 앞에 것을 진법놀이, 뒤에 이것을 개인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퍼넘기기 : 상모를 양사로 돌리다가 부포상을 세웠다가 뉘었다 하는 재주. 이쪽에 뉘었다가 세웠다가 저쪽에 뉘었는가 하면, 마치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퍼넘기는 것 같다 고 해서 퍼넘기기라 한다.
풍 물 : 풍악에 쓰이는 기물, 즉 농악에 쓰이는 악기와 기구를 가리킨다. 일명 '굿물'이라 부른다. 농악을 연주하는 것을 '풍물친다'고 한다.
풍악 : 농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풍장 : 풍악과 같은 말로 농악을 가리키던 말.
ㅎ)
허궁잡이(자반뒤지기) : 연풍대와 같이 좌우로 도는 춤사위. 몸을 공중에 날려 비스듬히 도 는 춤사위이다.
협률사 : 구한말에 창설도니 극장 이름. 1902년 가을, 고종 등극 40주년을 맞이하여 칭경예 식(稱慶禮式)을 거행하기 위해서 건립한 극장.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궁내부(宮內 府)에 협률사(協律司)라는 직제를 설치가고 주무에 장봉환을 임명하여 칭경예식을 위해 기생·재인 등을 교습시켰다. 협률사는 그 뒤에 일반 오락기관으로 바뀌면서 명칭도 애초의 희대(戱臺)는 사라지고 협률사극장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통칭 협 률사(協律司)로 불렀다. 위치는 그 당시 봉상사(奉常寺)의 일부로서 현재 새문안교 회 뒷켠이다. 당시 이곳에서 상연하뎐 것은 춘향가·심청가·흥부가 등의 판소리를 비롯해서 기샹의 가무 등이었다. 국창 박기홍과 김창환·이동백·송만갑이 중심이 되 어 공연하다가 1907년 궁재구락부가 들어서고 건물 명칭도 원각사(圓覺寺)로 바뀌 면서 주로 지방공연을 전전하다가 1914년 이후 없어졌다.
호도래기 : 장구를 빠른 가락으로 치는 것.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이다.
호미씻이(호미걸이, 술매기, 파접하기) : 7월 백중날을 전후해 날을 잡아 두레패들이 음식 을 장만하고 농악치며 즐기는 놀이. 김매기가 끝나 호미를 씻어둔다 하여 호미씻이 또는 호미걸이라 부른다.
호적 : 작은 나팔. 새납·태평소 또는 날라리·어산이라 하기도 한다.
호호굿 : 판굿에서 쇠가락 사이에 한 박자를 쉬며 '호호'하고 구호를 부르는 놀이. 호호굿 에는 호호굿초두, 호호굿, 자진호호굿 등이 있다.
홑박 : 원박(原拍)치기
화복 : 농악의 의복.
화주(化主,花主) : 농악단의 총무 또는 중계자.
흔들치기 : 상모를 이리저리 흔들어 돌리는 재주.
흘림 당산굿 : 간단하게 약식으로 치는 가락. 주로 호남농악 에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