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여명편 (黎明篇)
서기 2801년 인류는 지구를 탈출하여 알테바란계의 제 2행성 테오리아로
정치적 통일의 무대를 옮겨 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그 해를 우주력
1년이라 명명한다. 그 후부터 은하계의 가장 깊은 부분과 변두리를 향해
끝없는 확장을 시작하며 은하연방의 황금기를 맞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전란과 무질서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은하제국
루돌프 폰 골덴바움
우주력(宇宙曆) 310년, 은하제국을 일으켜 은하제국 황제 루돌프 1세가 되다.
제국력(帝國曆) 42년에 죽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제국력 467년(우주력 776년)에 태어남. 제국 원수이자 우주함대 사령장관.
아름다운 금발과 날카롭고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공자로서 전쟁의 천재.
안네로제
라인하르트의 누나. 15세 때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들어가
그류네발트 백작부인이 되다.
지그프리드 키르히아이스
라인하르트의 친구이자 심복.
파울 폰 오벨슈타인
우주함대 총참모장. 두 눈이 모두 의안(義眼)으로서 이따금 이상한 광채를
내뿜는다. 냉철하고 예리한 성품의 소유자.
볼프강 미터마이어
용병과 스피드의 제 1인자. '질풍노도 볼프강'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로이엔탈과 더불어 제국군의 양 날개를 이룬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
왼쪽 눈은 검고 오른쪽 눈은 푸른 미남자. 역전의 명장으로서 전쟁시 작전
지휘 능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흑색창기병' 함대 사령관. 맹장이긴 하나 용병에 있어서는 융통성이 조금
부족하다.
칼 구스타프 켐프
본래는 격추왕. 용맹스러운 지휘관이었으나 이젤론 회랑의 전쟁에서
전사하다.
자유행성동맹
우주력 527년(제국력 218년)에 수립된 국가. 은하제국의 전제정치에 반란을
일으킨 공화주의자들이 반세기에 걸쳐 고난과 역경을 거쳐 건국한
민주체제국가.
양 웬리
우주력 767년에 태어남. 동맹군 대장, 이젤론 요새사령관, 주둔함대 사령관.
역사학을 배우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자기 뜻과는 반대로 군인이
되었다. '엘 파실'전투에서 많은 민간인들을 구출해 젊은 영웅이 되다.
율리안 민츠
양의 양자. 전쟁 고아는 군인 가정에서 양육해야 한다는 법률에 따라 양의
피보호자가 된다. 후에 소위로 진급한다.
프레데리커 그린힐
미모와 지성을 고루 갖춘 양의 여성 부관.
알렉스 카젤느
요새 관리 책임자. 양의 사관학교 선배로서 데스크 워크의 제 1인자이며
또한 독설가로 유명하다.
월터 폰 센코프
요새 방어 지휘관.
피셔
우주함대 부사령관.
무라이
참모장.
욥 트류니히트
동맹군의 원수이자 최고평의회 의장.
시드니 시틀레이
전 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암리츠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사임.
알렉산더 뷰코크
우주함대 사령장관.
드와이트 그린힐
국방위원회 검열부장. 프레데리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페잔 자치령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중간에 위치하는 상업 자유무역국가
아드리언 루빈스키
제 5대 자치령주(自治領主). 페잔의 '검은 여우'로 통하고 있다.
지구교 총대주교(地球敎 總大主敎)
인류의 중심을 다시 지구로 돌리려 하는 검은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 루빈스키의 숨은 조종자이기도 하다.
렘샤이트 폰 요펜
본래는 은하제국의 고등판무관이었으나 후에 페잔으로 망명.
프롤로그 : 은하계의 역사
서기 2801년, 태양계의 제 3행성인 지구로부터 알테바란계 제 2행성
테오리아로 정치적 통일의 무대를 옮겨 은하연방의 성립을 선언한 인류는 그
해를 우주력(宇宙曆) 1년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은하계의 가장 깊은
부분과 변두리 쪽을 향해 끝없는 확장을 시작했다.
지난 2700년대는 전란과 무질서의 시대였다. 그래서 외부 세계로의 발전이
중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용솟음치는 에너지는 더욱 폭발적이었다.
인류로 하여금 항성간 비행을 가능하게 해 준 세 가지 기술은 아공간
도약항법(亞空間 跳躍航法)과 중력 제어와 관성 제어이다. 인류는 하루가
다르게 이 기술을 발전시키며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우주선을 달려 별들이
무리를 이룬 큰 바다 저쪽으로 출항을 거듭했다.
'멀리, 더욱 멀리!'
이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인사이자 구호였다. 인류 전체의 바이오리듬은
계속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와 눈부신 정열로 모든 일에
도전했다. 곤란한 일에 부딪혀도 그들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로지
밝은 마음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갔다. 당시의 인간들은 어쩌면 타고난
낙천주의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맑고 깨끗한 정신과 진취적 기상이 넘치던 황금시대!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스페이스 파이어렛, 즉 우주 해적의
존재를 들 수 있다. 그것은 서기 2700년대에 인류사회의 패권을 다투던 지구와
시리우스 두 나라의 함대 전투 기술이 낳은 기형아였다. 그 가운데는 자유를
외치는 의적(義賊)과 같은 인물들도 있어, 그들과 그들을 뒤쫓는 연방군과의
대결은 솔리비전(입체 TV) 드라마의 많은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적들은 악덕 정치가나 기업가와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노리는 범죄자 집단이었다. 특히 새로 개척된 별의 주민들에게 있어 그들은
재액을 몰아오는 무서운 존재였다.
해적들이 자주 나타나는 우주 변두리의 항로엔 자연히 취항하는 우주선이
줄어들고, 제때에 물자가 보급되지 않아 최종 소비자들은 엄청나게 비싼 돈을
내고 물건을 사야 했다. 그 까닭은 본래의 경비에 안전 보장비가 보태졌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참으로 심각했다. 피해자들의 쌓이고 쌓인 불만은 연방의 통치
능력에 대한 불신감으로 바뀌어 변경 개발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까지 했다. 그래서 우주력 106년, 은하연방은 본격적으로 우주 해적 소탕
작업에 착수, M. 슈트란, C. 우드 등 해군 제독들의 활약으로 2년 후엔 거의
목적을 달성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은 독설가인 우드 제독의 회고록 중 한 대목이다.
'......나는 내 앞의 유능한 적과 등뒤의 무능한 아군, 이 양자와 동시에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드 제독은 정치가로 전향한 뒤에도 '분별하기 어려운 완고한 늙은이'로
알려졌는데, 그는 부패한 정치인이나 기업가들과 악전고투의 나날을 보냈다.
사실상 그러한 사회적 질환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인류 전체에게 그것은
가벼운 피부병과 같은 것이었으며, 피부에 때가 묻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을 근절시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해 줌으로써 겨우 치명적인 병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상 200여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수술대에 올려지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 왔다.
번영과 발전이 가장 없었던 곳은 종주국인 지구였다. 이 행성은 이미 자원이
고갈되었고,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도 잃고 있었다. 인구도 급격히 줄었으며,
단지 빛 바랜 전통만을 내세우면서 정해진 자치권을 행사하는 노쇠한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지구가 아직 은하계를 지배하던 때에 시리우스 등의 항성 식민지에서
빼앗아 쌓아올린 부(富)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밑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암세포가 증식되기 시작했다. 인류사회에 이른바
'중세적 정체 상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희망과 야심 대신 피로와 권태에 싸여 있었다. 적극적이던 마음이
소극적으로, 낙관이 비관으로, 진취가 후퇴로 각각 바뀌었다. 과학 기술에 관한
새로운 발명이나 발견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적 공화정치는
이권과 정치적 다툼만으로 이어지는 우민(愚民) 정치로 타락했다.
변두리의 성역(星域) 개발은 중도에 취소되고, 무수한
가주행성(可住行星)들이 풍부한 가능성과 건설 중이던 갖가지 시설들을 남겨
둔 채 내팽겨쳐졌다. 사회생활과 문화생활도 퇴폐일로로 치달았다. 사람들은
가치관을 잃고 마약과 술과 섹스와 신비주의의 늪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범죄는
급격히 늘었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검거율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도덕을 비웃는 경향이 만연된 사회였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심히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기말적 퇴폐에 의해
인류가 공룡처럼 참담하게 멸망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수 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인류사회의 상태가 근원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인식했다.
그들 대부분은 그 질환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서,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장기요법이 아니라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즉효약을 투약하는 속전속결 요법을
택했다. 이른바 '독재'라는 극약이었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등장 배경인
것이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우주력 268년,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 역시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우주사관학교에서의 그의 석차는 단연 수석이었다.
사람들은 195cm에 체중 99kg의 거구인 그를 볼 때 커다란 탑을 올려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20세에 소위에 임관되었으며, 리겔 항로 경비대에 법무장교로
부임했다. 그는 배속되자 곧 부대 내의 기강 확립에 착수하여 술과 도박과
마약과 동성애라는 '네 가지 악'을 몰아냈다. 상관들이 저지른 일이라도 군율과
규칙을 내세워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관들은 그를 중위로 승진시켜 먼
곳을 쫓아 버렸다. 페델기우스 방면으로 전출시킨 것이다.
그곳은 우주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어서 위험했지만, 루돌프는 '제 2의
우드 제독'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가차없는 공격을 가해 해적들의 조직을
쳐부수었다. 항복과 재판을 원하는 자들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우주선까지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의 그러한 잔혹함은 일부의 비난을
사기도 했으나, 그러나 그는 많은 영광을 한 몸에 받았다.
폐쇄된 시대 상황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가던 은하연방의
시민들은 이 새로운 영웅을 성대히 맞이했다. 루돌프는 말하자면,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세계에 등장한 빛나는 슈퍼 노바(초신성)였던 것이다.
우주력 296년, 나이 28세로 소장에 승진한 루돌프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군대를 떠나 정계로 진출, 국회의원이 되어 '국가 혁신 연맹'의 지도자로서
종횡무진 역량을 발휘했다. 많은 청년 정치가들이 루돌프의 우산 밑으로
몰려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몇 차례인가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루돌프는 자기 세력을 비약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열렬한 지지와 반발, 그리고 퇴폐적인 무관심이 엇갈리는
가운데 단단한 정치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투표에 의해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헌법에 겸임 금지 조항이
없는 점을 이용하여 의회를 통해 국가 원수로 추대되었다. 불문율에 의해
겸직이 금지되어 각각의 제한된 권력만을 갖게 되어 있었지만, 한 사람이 그
두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놀라운 화학 반응을 일으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루돌프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민중이 자주적인 사고와 책임 의식보다는
명령에 대한 복종과 책임 면제 쪽을 택한다는, 역사상 흔히 있는 예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민주정치에 있어 잘못된 정치는 부적격한 위정자를 선출한
민중 자신의 책임이지만, 전제정치의 경우엔 그렇지만은 않다. 민중은 자기
반성보다, 무책임하게 위정자를 매도하는 쪽을 즐기는 경향이 짙다.'
이는 훨씬 훗날, 역사 학자 D. 싱클레어가 남긴 말인데, 이에 대한 타당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당시 사람들이 무조건 루돌프를 지지하고 칭송해 마지않았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강력한 정치를, 강력한 지도자를, 그리고 사회에 질서와 활력을......'
이렇게 외치던 '젊고 강력한 지도자'가 어느새 비판 세력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 절대적 독재자가 되어 '종신 집정관'의 자리에 올랐다. 우주력 310년에
이르러서는 '신성불가침의 은하제국 황제'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역사의 교훈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무지를 드러냈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전부터 루돌프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해
가슴을 치며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환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당시의 공화파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던 하산 엘 사이드는 루돌프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날, 일기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민중이 루돌프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집무실에까지 들린다. 그들이 악당에게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는 언제쯤이 될는지? 몇 년, 아니 몇십
년?'
이 일기는 훗날 제국 당국에 의해 발매금지 처분을 받는데, 그날은 또한
우주력이 폐기되고 제국력(帝國曆) 1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로써
은하연방은 깃발을 내리고 새로운 국가인 은하제국, 즉 골덴바움 왕조가
탄생되었다.
인류 통일 정권이 수립된 이래 최초의 전제군주, 은하제국 황제 루돌프
1세가 된 이 사나이가 남달리 비범한 재간을 지녔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그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지도력과 강인한 의지로 기강을
바로잡았으며 행정 운용의 능률을 높여 부패한 관리들을 내몰았다.
루돌프가 설정한 기준에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퇴폐하고 타락한 오락이나
생활양식이 자취를 감추었고, 가혹하리만큼 엄중한 사법 활동으로 인해 범죄와
미성년자들의 탈선이 크게 줄었다. 그로써 인류사회를 뒤덮고 있던 나쁜
풍습들이 거의 근절되었다. 그렇지만 '강철의 거인' 루돌프 황제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지향하는 일상적 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통제되고 관리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그에 따른 행동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루돌프에게 있어 그에 대한 비판자나 반대자는 사회의 통일을 방해하고
질서를 교란시키는 이단자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는 반대 세력에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제국력 9년에 공포된 열악 유전자
배제법(劣惡 遺傳子 排除法)이었다.
"우주의 법칙은 약육강식에 있으며, 적자생존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자가 이기고 저급한 자는 지는 법이다......"
루돌프는 그렇게 서두를 꺼낸 다음 자기의 신념을 피력했다.
"인류사회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비정상인이 일정 숫자 이상으로 늘어난
사회는 활력을 잃고 쇠약해지게 마련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번영이다. 따라서 인류를 허약하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인류의
통치자인 나에게 있어 신성한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구체적으로 신체 장애나 빈곤층, 즉 '우수하지 못한' 자들을
단종(斷種)시키고 정신이상자를 안락사시키며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루돌프에게 있어서는 '약하다'는 것 자체가 허용할 수 없는
죄였고, '약자임을 내세워 보호받기를 원하는' 자는 증오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이 법안이 공식적으로 제의되자 그동안 루돌프를 숭배하고 따르던
민중들마저 어처구니없어 하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기가 우수한
인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이건 너무한 게
아니냐'는 원성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민심이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 일부가 들고일어나 황제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모두가 헛수고였다. 루돌프가 이에 대해 철저히
반격을 했던 것이다. 그는 즉각 국회를 해산시켜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제국 내무성에 사회질서유지국을 두어 정치범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루돌프의 심복인 에른스트 팔스트롱 내무장관은 사회질서유지국의
국장을 겸임하면서 법률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 판단에 따라 체포, 구금, 투옥,
징벌을 예사로 했다.
그것은 이를테면 권력과 폭력의 결혼이었다. 그 사이에서 공포정치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으며, 그 아이는 극히 짧은 기간에 거대하게 자라서
인류사회를 삼켜 버렸다. 당시 은밀히 유행하던 블랙 유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사형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절대 경찰에게 잡히지 말라. 차라리
사회질서유지국에 잡혀가라.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결코 사형을 시키지는
않으니까......'
사회질서유지국에 체포된 정치범이나 사상범 가운데 정식으로 사형에
처해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없이
제거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된 자,
고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 불모의 유형성(유형지가 아니라 다른 별)에
보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자, 전두엽(前頭葉) 제거수술을 받거나
마약중독으로 폐인이 된 자, 옥중에서 병이나 다른 사고로 죽은 자 등등 그
총계는 40억 명 이상에 달했다. 그렇지만 제국 인구 3,000억 명에 비하면 그
수는 불과 1.3%에 불과하다면서 사회질서유지국 당국자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사회의 절대다수를 위해 한 줌도 안되는 위험 분자를 제거한 것이다.'
물론 그 절대다수 속에 40억의 희생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게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한편, 루돌프는 '우수한 인재'들인 귀족 계급에게 특권을
주어 제국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귀족들은 모두 백인이었으며 옛 게르만
민족의 성씨를 하사받았다. 이것은 어쩌면 루돌프의 지적 쇠약 증세를 드러내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팔스트롱에게는 백작 칭호가 주어졌는데, 어느 날 집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공화파의 중성자 폭탄 테러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루돌프는 1만 명이 넘는 용의자를 전원 처형하여 공신(功臣)의 넋을 위로했다.
제국력 42년, 루돌프 대제는 83년간의 생애의 막을 내렸다. 세월이 흐를수록
거대한 체구는 더욱 단단해졌으나 결국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음에
이르고 만 것이다.
황제가 만족한 생애를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황후 엘리자베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자식은 모두 딸이어서 자기 뒤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 만년에 그가 총애한 후궁 막달레나가 아들을 낳긴 했으나
태어날 때부터 백치여서 역시 대를 잇지 못했다.
그 일에 대해 제국의 공식 기록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후
막달레나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형제, 그리고 그녀의 출산에 관여한 의사,
간호원까지 죽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항간에 유포된 그 소문이 진실일
것은 거의 확실했다. 그리고 그 것은 열악 유전자 배제법을 공포하여 우수한
인류의 발전을 추구하던 루돌프 자신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실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루돌프의 신념이 지켜지기 위해 막달레나는
죽어야만 했다. 백치를 낳을 유전적 자질은 루돌프 대제에게 있는 게 아니라
막달레나에게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루돌프다 죽은 뒤 은하제국의 제 2대 왕관을 물려받은 자는 루돌프의 맏딸
카타리나의 아들 지기스문트였다. 25세의 젊은 황제는 그때부터 아버지인
노이에 슈타우펜 공작의 보좌를 받으며 은하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루돌프 1세의 죽음을 계기로 제국의 각지에선 공화주의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루돌프의 지도력과 개성이 상실된 오늘의 제국은 당장 붕괴될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극히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루돌프가 40여 년간에
걸쳐 심복으로 길러 놓은 귀족, 군대, 관료들의 삼위일체제는 공화파
지지자들의 희망적 관측과는 달리 훨씬 단단한 껍질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 체제를 확고한 신념으로 통솔하는 자가 있었다. 황제의 아버지이며
제국의 국무총리직에 오른 노이에 슈타우펜 공작, 이른바 요하임이라 불리는
철혈(鐵血) 인간이었다. 그는 루돌프가 사위로 맞아들일 만큼 지혜가 뛰어난
인물로서, 침착하고 냉정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반란군을 달걀 껍질 밟아
버리듯 분쇄해 나간 인물이었다.
그는 반란군 5억여 인민들을 살해했고, 100억이 넘는 그들 가족의 시민권을
박탈하였으며 그들을 모두 농노 계급으로 전락시켰다. 반대 세력은 가차없이
처형한다는 제국의 국시(國是)는 루돌프가 죽은 뒤에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셈이었다. 공화주의자들은 봄을 열지 못한 채 다시 길고 긴 겨울잠을 자야
했다. 강력한 전제정치 앞에서 매서운 겨울은 영원히 계속되는가 싶었다.
그후 요하임이 죽자 지기스문트가 나서서 정사를 보았고, 그도 죽자 그의
맏아들 리탈트가 황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그도 일찍 죽고 그의 맏아들
오트프리트가 뒤를 이었다. 권력은 루돌프의 자손에게만 계승되었고, 권력의
이동은 세습적인 방법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두꺼운
얼음 밑에서 흐르는 물이 소리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력 164년, 반란군들의 친족이란 이유로 농노가 되어 가혹한 노동형에
처해졌던 알타이 성계(星系)의 공화주의자들이 스스로 만든 우주선을 사용하여
탈출에 성공했다.
그들의 계획이 몇 세대에 걸쳐 용의주도하게 짜여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한
식의 계획은 십중팔구 실패하게 마련이었고, 따라서 그런 계획을 시도했던
많은 공화주의자의 무덤이 늘어났으며, 사회질서유지국의 음산한 조가(弔歌)가
울려 퍼지곤 했다. 그같은 탈출 기도가 끝없이 실패만 하다가 이번에야 드디어
성공했던 것이다. 그 계획은 발상된 지 불과 3개월만에 실행되었다.
계획의 발단은 아이들의 장난에서 비롯되었다. 혹한의 알타이 제 7행성에서
몰리브덴과 안티몬 채굴 작업을 하고 있던 노예들의 자녀가 감시인의 시선을
피해 얼음을 깨어 만든 작은 배를 물에 띄워 놓고 놀고 있었다.
무심히 그것을 보고 있던 청년 알레 하이네센의 뇌리에 하늘의 계시가
번뜩였다. 이 버려진 행성에는 우주선의 재료로 쓰일 만한 것들이 무진장 쌓여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이 절대 부족한 제 7행성에는 얼음보다도 천연의 드라이아이스가
풍부했다. 하이네센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떤 계곡을 온통 뒤덮다시피 한
드라이아이스의 거대한 덩어리였다. 길이 122km, 폭 40km, 높이 30km나 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산이었다. 그 중심부를 뚫어 안에다 거주
공간과 동력 공간을 설치하여 우주선을 만들어 비행하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이네센은 궁리에 잠겼다.
그때까지 탈출 계획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우주선 재료를 어떻게
입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비합법적으로 재료를 입수하는 데엔 필연적으로
무리가 따를 것이고, 사회질서유지국이 냄새를 맡으면 가차없는 탄압과 살육의
폭풍이 불어닥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국의 주의를 끌지 않을 천연의 재료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절대
영도인 우주 공간에서는 드라이아이스가 기화(氣化)될 염려가 전혀 없었다.
동력 지역이나 거주 지역으로부터 열을 차단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장기간의 비행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성간 물질(星間物質)이나
무인 행성에서 필요한 항성간 우주선의 재료를 구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주로
나갈 수만 있다면 드라이아이스 비행기로 비행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었다.
백색으로 반짝이는 그 우주선은 '이온화제가스호'로 명명되었다. 얼음으로
작은 배를 만든 소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40만 명의 남녀가 이
우주선을 타고 알타이 성계를 탈출했다. 후세의 역사가가 '1만 광년의
장정(長征)'으로 이름 붙인 긴 여로의 첫 출발이었다.
은하제국군의 끈질긴 추격과 수색을 피하여 한 이름 없는 별의 지하에 몸을
숨긴 그들은 그곳에서 80척의 항성간 우주선을 건조한 다음, 다시 은하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운행해 갔다. 그곳은 거성(巨星), 왜성(矮星),
변광성(變光星) 등으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조물주의
악의가 탈출자들의 머리 위에 연이어 덮쳐 내린 격이었다.
고난의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은 지도자 하이네센을 사고로 잃고
말았다. 그러자 그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 구엔 킴 호아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항해를 계속했다. 그렇게 항해하는 중 세월은 흘러갔다. 호아가 나이들어
실명할 무렵, 그들은 드디어 위험 지대를 탈출하여 안정된 장년기의
항성군(恒星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알타이를 떠난 지 실로 반세기를
지나서였다.
신천지의 항성군에는 고대 페니키아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바라아트,
아스테이트, 메르카르트, 하다아드 등이다. 바라아트의 제 4행성이 그들의
근거지로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지도자 하이네센의 이름을 붙여 그 공적을
영원히 기리기로 했다.
1만 광년의 장정이 끝난 것은 제국력 218년이었지만, 전제정치의 멍에에서
벗어난 그들은 제국력을 버리고 우주력을 부활시켰다. 여기에는 자기들만이
정당한 후계자라는 긍지가 배어 있었다. 루돌프 일당은 민주제도를 깨뜨린
배신자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우주력(SE) 527년에 자유행성동맹의 성립이 엄숙하게
선언되었다. 초대 시민은 16만여 명뿐이었는데, 그것은 오랜 장정 기간 동안에
동지들의 절반이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인류 사회가 둘로 나뉘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작은 존재였지만,
자유행성동맹의 건국자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정열적이었다. 그들의
세력은 급속하게 확대되어 갔다. 다산을 장려하여 인구가 증가되고 국가
체제가 정비되는 한편, 농업과 공업의 생산력도 점점 늘어났다.
은하연방의 황금시대가 다시 열릴 것 같았다. 우주력 640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전함(戰艦)들이 충돌함으로써 두 세력은 처음으로 접촉을
가졌다. 언젠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던 동맹과는 달리
제국측으로선 청천벽력이었다. 전투는 동맹측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제국측의 전함은 중성자포의 직격탄을 맞아 불덩어리로 사라지기 직전에 제국
본성(本星)으로 긴급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은하제국의 관리들은 옛날 기록들이 입력되어 있는 컴퓨터를 통해 1세기
이전에 알타이로부터 도망친 노예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비행
도중 우주에서 죽지 않고 엄연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제국에서는 토벌군이 편성되어, 대함대가 반역자들의 근거지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적의 실력을 앝잡아본 토벌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숫적으로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완패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들은 장거리 원정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더구나 전쟁 물자의
보급이 쉽지 않았다. 또한 지리에 어두웠고 상대의 실력과 사기를 과소
평가하여 전략 구상에 소홀했다. 뿐만 아니라 제국군과는 달리 동맹군에게는
유능한 지휘관이 있었다.
동맹군 총지휘관 림 파오는 용사 중의 용사였다. 영웅 호걸은 주색을
좋아하듯이 림 파오도 호색한에다 술꾼이었으며 한술 더 떠서 엄청난
대식가였다. 그 때문에 고대의 청교도적인 절약을 신조로 삼는 위정자들에게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용병술에 있어서는 가히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그를 보좌하는 참모장 유습 트파로울은 '잔소리꾼 유습'이라는 별명처럼
매사에 불만과 투정이 심했다. 그러나 '숨쉬는 전술 컴퓨터'라 할 정도로
치밀한 전술가였다. 두 사람 모두 30대였는데, 이 두 사람이 다곤 성역(星域)
외곽부에서 사상 최대의 포위 섬멸전을 벌여 건국이래 최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자유행성동맹은 양적으로도 크게 팽창되었다. 제국에 대항하는
독립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국내의 이단자들이 안주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대규모로 탈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돌프 대제가 죽은 후
3세기에 걸쳐 그토록 완강했던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데다가
사회질서유지국의 세력도 약해져 제국내의 불만이 점차 높아졌다는 것도
팽창의 한 이유일 것이다.
자유행성동맹은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라는 정신으로 오는 사람들을 무조건
무한정 받아들였는데, 탈출자들 중엔 공화주의자들만이 아니라 궁정내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황족과 귀족들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자들까지
포함되어 양적 팽창을 했으므로 자유행성동맹이 점차 변질되어 간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최초의 접촉이래, 골덴바움 왕조가 지배하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간엔
만성적인 전쟁상태가 계속되었지만, 때로는 일시적인 평화가 깃들기도 했다.
그 평화는 페잔 자치령을 통해 이뤄졌다. 이곳은 두 세력의 중간쯤에 위치한
행성으로 일종의 도시국가였다.
페잔은 은하제국 황제의 관할 아래 있으면서 해마다 조공(朝貢)을 바쳤다.
그러나 내정에 관해서는 완전한 자치권이 부여된 소국가로 자유행성동맹과의
외교 통상도 허용되었다.
은하제국은 스스로를 인류사회의 절대 유일의 지배자라 자칭하여 '외국'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유행성동맹에 대해서도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공문서 따위엔 언제나 반란군이란 명칭을 썼다. 동맹의 통치자가 되는 최고
평의회 의장은 반란 세력의 두목이라 불렀다.
이와 같은 국시에 따른다면 외교나 통상 따위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구 출신의 대기업가인 레오폴드 라프의 열의로 특수한 성격을 지닌
자치령이 성립되었다. 탄원과 설득, 그리고 무엇보다도 뇌물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었다.
자치령의 대표자가 되는 영주는 황제의 신하로서 자신의 영역을 통치하며
동맹과의 교역을 감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관의 역할도 맡아 했다.
교역을 독점 지배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따라서 비록 영토는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국과 동맹, 두 세력간에 화해와 수교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국력 398년, 즉 우주력 707년에 즉위한 황제 맨프레드 2세는 선왕
헬무트의 많은 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암살자의 저격을 피해 소년
시절을 자유행성동맹에서 지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그가 즉위하자 두 세력간의 평화와 대등 외교,
제국내의 정치 개혁 등이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맨프레드 2세는 즉위 1년만에 암살 당해 오히려 두
세력은 더욱 적대적이 되었다.
맨프레드 2세를 암살한 주범은 반동파의 귀족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배후엔
교역권의 독점 유지를 꾀하는 페잔이 개입했었으리라는 설이 제법 근거 있게
떠돌기도 했다.
우주력 8세기 말, 제국력 5세기 말에 이르자 규모가 큰 만큼 규율과 통제가
잘 안되는 제국과 , 건국 당초의 이상이 바래진 동맹이 페잔을 가운데 두고
타성적인 대립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경제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3자간의
국력의 비는 은하제국 48, 자유행성동맹 40, 페잔 자치령 12였다.
또한 은하연방이 전성시대를 누릴 때 3천억을 헤아리던 인구수는 오랜
기간의 혼란으로 인해 400억으로 감소되고 말았다. 인구 비율은 제국 250억,
동맹 130억, 페잔 20억이었다.
'뭔가 되었으면 좋겠는데'라는 바람이 '아무것도 될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인
상황으로 돌변한 것은, 발타라계 제 3행성 오딘 - 고대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의 이름을 가졌던 루돌프가 천도한 바 있는 은하제국의
수도성(首都星) - 에 한 젊은이가 나타나면서부터이다.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미모와 적의없는 표정을 지닌 그 젊은이의 이름은 로엔그람
라인하르트 백작이었다.
라인하르트의 본디의 성은 뮤젤이었다. 그는 이름뿐인 가난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비참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제국력 467년(우주력 776년), 그가 열 살 되던 해에 다섯 살 위의 누나인
안네로제가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이 되면서부터 그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황금색 머리카락과 냉정한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 젊은이는 15세에 이미
근위 사단의 소위로 임관되었다. 누나 안네로제에 대한 황제의 총애와 그
자신의 재능에 의해 그는 가속적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20세에 이르러서는 로엔그람 백작의 칭호를 받았으며 은하제국의 상급대장
직위에까지 올랐다. 전제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인사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위엔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문벌 좋은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했다. 단순히 후궁의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실력가였어야
했다.
한편, 거의 때를 같이하여 자유행성동맹도 한 사람의 뛰어난 전략가를
얻었다. 우주력 767년생으로 20세 때 군대에 들어온 양 웬리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본래 군인 지망생은 아니었으나 우연히 군에 입대하여 군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으로 군인이 됨으로써 양 웬리는 새로운
미래를 보장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역사의 창조자가 아닌 한낱
관찰자로서의 생애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될 일과 안 될 일은 따로 있는 법이다.'
이것이 양 웬리의 지론이었다. 그는 운명에 대해선 라인하르트보다
수동적으로 운명을 더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는 전쟁이나 그것을
수행하는 군인이란 직업에 대해 항상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대에서의
지위를 버리고 은퇴하고 싶다는 욕구 속에서 살았다.
우주력 796년, 제국력 487년 초엽, 라인하르트는 2만 척이나 되는 대함대를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다. 자유행성동맹이라 칭하는 반란군들을 발 밑에
꿇어앉히고, 그 공적으로 자기의 지위를 확립하고자 스스로 지휘봉을 잡은
것이었다.
동맹군은 4만 척의 대함대를 재편성, 라인하르트를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양 웬리도 그 참모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로엔그람 라인하르트 백작은
20세, 양 웬리는 29세였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1권만.^^
호응이 좋으면 연재 게속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