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 시인
오하룡
박종해 시인과 함께 울산에서 잉여촌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알게 된 이준웅 시인, 이즈음 왜 생각나는가. 그도 우리 나이 또래 여서 금방 친해졌는데 언제던가 그와 내가 한차에 타고 한참을 움직일 때였다. 내가 가족에 관해 물었던가 어쨌던가. 그에 대한 대답이 좀 길었다. 자동차가 흔들리고 소음도 들리고 하여 명확하게는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대충 헤아리건대 내용인즉 부인의 가출이 계속되어 집안이 영 안정이 안 된다는 그런 취지였다. 왜냐고 물을밖에 없었다. 그도 울산서 인쇄손가를 하는데 사업이 신통찮아 어쩔 수없이 부인이 맞벌이에 나 설밖에 없었다고 한다. 착한 아내는 열심히 집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귀가 하지 않았다. 찾아 헤맨 끝에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귀가를 종용했다. 바람이 난 것도 아니고 무슨 금전적인 잘못을 저질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는 집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계속 고집하는 것이다. 이준웅은 자신의 무능으로 하여 아내를 고생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생활전선에 나섰다가 일어난 일이어서 아내만 이해한다면 무슨 방법을 쓰서라도 집안에 들여앉히고 싶었다. 울면서 하소연도 하고 자녀들을 앞세워 모성본능에 호소하는 등 갖은 방법을 썼으나 끝내 귀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 들은 이야기는 이 정도였다. 언제 조용히 그를 만나면 막걸리라도 한잔 하면서 그의 후일담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하여 울산 소식이 들릴 적에는 그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그도 생활 때문이겠지만 작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민족작가회의 쪽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느 때는 시민단체에 관여하여 데모도 종종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얼굴이 갸름하고 피부가 맑아 준수해보이던 이준웅 시인, 그가 벌써 이승을 떠난 지가 꽤 되었다는 소식에는 멍청해질밖에 없네.
잉여촌 2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