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월을 그리며 추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말장난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자리할 상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쪽지 하나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써니〉는 추억에 대한 반추(反芻)라고나 할까?
25년이 지난 후 잘나가는 남편과 살고 있는 나미(유호정)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허나 무언가 마음이 허전하고, 2%부족한 날들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우연히 춘하(진희경)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춘하로부터 2개월 밖에는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서 학창시절 써니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한다. 그 뒤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간다.
사투리 때문에 첫날부터 날라리들의 놀림감이 된 전라도 벌교 전학생 나미(심은경)는 예사롭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진덕여고의 의리짱 춘하, 쌍커풀을 만지작거리는 소녀 장미, 욕을 해도 밉지 않은 욕쟁이 진희,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항상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소녀 복희,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다 못해 소름까지 끼치는 수지,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로 영입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찬란한 1980년대의 써니는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언제나 찬란한 순간만 함께 할 줄 알았던 그들은 뜻밖의 사고로 학교축제 때 하기로 한 공연을 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함께하자는 맹세를 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약속 또한 지키지 못하고 세월은 흘러 흘러 25년 후…… 나미는 써니의 멤버를 한 명씩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여고시절 눈부셨던 써니의 기억을 새록새록 피우기 시작한다.
영화<써니>는 정말 웃긴 영화다…… 실제로 영화 상영시간 내내 많이 웃었으니까…… 결코 억지스러운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을 관객들에게 무더기로 투하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를 비꼬는 것은 물론 CF 패러디를 연상케 하는 장면은 관객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으면서도 박장대소에 이르는 웃음을 선사해낸다. 게다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행동은 정말이지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줄 만큼 에너지가 대단하다. 나미의 딸이 불량 여고생들에게 삥(?)을 뜯겼다고, 직접 나서는 써니 멤버들의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통쾌했다. 슬로우 모션 속 나오는 행동들과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빠지지 않는 유머러스함은 어색하지 않게 극에 아주 잘 녹아들었다.
영화<써니>의 장점은 영화OST 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추억의 팝송이 영화 속 곳곳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LP판에서 흐르는 음악, 라디오 방송을 타고 들려오는 ‘종환이 오빠’의 목소리에 심취에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을 쓸어안았던 기억은 그 시절 여학생이라면 누구나가 다 가졌을 아련한 추억이다. 보니 엠의 'Sunny'는 흥겨운 율동과 어울려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고,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는 영화 속 첫 키스 장면을 더욱 풋풋하게 만들어준다. 조이의 'Touch by touch'는 전투경찰과 학생시위대와 함께 드잡이하는 써니와 핑클의 재미를 한층 더 업시킨다. 그 시절 인기 팝송이 영화 전반부에 흐르면서 칠공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추억에 잠김과 동시에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영화<써니>의 힘은 스토리보다 캐릭터에 조금 더 힘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모두가 개성이 넘치기 때문이다. 주․조연할 것 없이 누구나 어느 영화를 가서 주연을 꿰찬다 할지라도 부족함이 없는 배우들. 이들의 연기는 물오른 듯 모두가 최고의 연기를 선사해 낸다. 여고생역할부터 캐릭터를 거론한다며 주인공 나미역의 심은경은 한층 더 성장한 연기를 보여준다. 다소 어리버리하지만 항상 정의를 선도하며 서울말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소녀시대와 써니의 대립 장면 중 보이는 심은경의 신들린 연기는 가히 최고로 여겨진다. 써니의 리더인 의리짱 춘하역의 강소라는 영화<4교시 추리영역>으로 얼굴을 알리긴 했지만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허나 이 영화를 통해 아마 관객들에게 충분히 각인되었으리라. 남자가 봐도 멋있는 그 터프함과 의리 있는 장면은 저런 리더라면 나도 믿고 따를텐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욕쟁이 진희역의 박진주는 신인 같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욕은 미운게 아니라 오히려 계속 해줬으면 하는 할머니 욕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금옥역의 남보라는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의 순진함속의 숨겨져 있는 욱하는 모습은 더욱 돋보인다. 쌍커풀에 살고, 쌍커풀의 죽는 장미는 톡톡 튀는 개성으로 재미를 한층 더 배가 시키고,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역의 김보미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차갑다 못해 소름끼치는 수지역의 민효린은 작은 배역에도 말 한마디의 강력한 포스를 내뿜는다. 이처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성인연기자로 바통을 이어간다.
나미역의 유호정은 가족을 위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카리스마 넘치는 숨겨둔 모습을 잘 표현해내고, 럭셔리 사모님으로 변신한 성공한 사업가 욕쟁이 진희역의 홍진희의 연기 또한 대단하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춘하의 카리스마는 죽지 않는다. 보험설계사로 고군분투하는 장미역의 고수희 연기 또한 말이 필요 없고, 금옥역의 이연경, 미스코리아를 꿈꾸던 복희역의 김선경 또한 매끄럽게 극에 녹아난다. 이처럼 영화<써니>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물론 여고생에서 성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영화<써니>는 파란만장했던 여고시절을 스크린에 아주 유쾌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가슴 찡하게 선사한다. 친구가 부자든 가난하든 그들은 친구다…… 나미의 대사 중 “우리가 왜 친구겠어?”라는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난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7명의 인물들이 참 부러웠다. 저렇게 멋진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말이다…… 문득 나도 친구들이랑 마음 편히 깔깔거리며 어딘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랬다가는 몇날 며칠 늘어놓는 아내의 불평에 귀가 시끄럽겠지만. 그래서 영화<써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다. 향수와 재미와 감동을 아주 잘 버무린 영화<써니>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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