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배워야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선 말이 안 통하니 갑갑하기만 하지만
동창생은 좋기만 했습니다.
집안 정리가 어느 정도 된 후에 영어학교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자 정착 관련 기관에 갔더니
우선 영어 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예약된 날짜에 가니, 바로 시험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영어 비디오 테입을 보여주고 질문하는 것으로
내용은 Job Interview 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못하고 인터뷰 같다는 얘기만 했습지요.
다음에는 어떤 상황을 연결한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보라는데
전혀 안되더라구요. 말이……
그리고는 Reading(독해력), 즉 문장을 읽고 사지선다형의 문제를 푸는 것,
다음엔 영작은 자동차를 사려고 하는데 필요한 것을 작성하라는 것 등등...
시험을 마치고 나니 성적표를 주는데 Reading은 8점 만점에 7점,
나머지 Composition과 Speaking은 3점을 받았는데
시험관이 하는 말 "Excellent!"
그리고는 Grade 3 반을 지정해 주는 것이었지요.
* 이곳에서는 이민자들에게 1000시간을 무료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며,
그 기간은 시민권 취득 전까지 유효합니다.
보통 Grade 1은 ABC부터 배우는 과정이고,
Grade 2는 문법과 일상 생활 등을 배우며,
Grade 3은 주로 어떤 주제로 한 토론 그리고
뉴우스등을 녹화한 테입을 보고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과정에 서 컴퓨터 교육도 병행합니다.
필요한 기관이나 각종 행사 때 견학도 가구요.
그리고 직업이나 사업에 대한 상담과 소개도 해주며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도움을 여기서 받았습니다.
갓 이민 오신분들은 도움이 많이 될겁니다
Grade 4는 실질적인 고급 과정으로 Job Interview나
그 밖에 은행이나 의료 서비스등 조금은 전문적인 정보와
어떤 것을 주제로 한 발표도 합니다
그리고 10주를 한학기로 해서 하루에 3시간 공부하는
Part Time반 5시간 하는 Full Time 반이 있습니다.
숙제도 많고 예습 복습 안 하면 따라가기 힘들지요.
더 공부하고 싶으면 다른 영어학원을 찾아 유료로 등록하는데
하루에 2시간 10주가 한학기 비용은 40$ 정도
(요새는 얼마인지 모르겠음)이니 매우 싼 편이지요.
영주권자에게나 그렇고 유학생이나,
여행자에게는 몇 백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공부하는 날 집 근처의 영어학교에 등록(성적표 지참)하고,
배정된 대로 Grade 3 반에 가서, Part Time반을 택했지요.
하루에 다섯 시간하는 Fulltime 은 엄두가 안 났지요.
학기 시작하는 날이라 학생은 약 10명정도,
우선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하고
수업에 들어 갔는데 하나도 안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루종일
벙어리 마냥 앉아 있다가 왔습니다.
주제가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얘기하면 다른 학생이 듣고
나중에 거기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었지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말도 참 잘합디다.
주로 중국계 한국계 그리고 인도계가 많고
나머지 유럽이나 중동 남미계 드문 드문....
그런데 한국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마눌님은 다른반).
젊은 여선생님한테 잘 못하겠다고
했다가 첫날부터 핀잔만 듣고요.
그렇게 해서 고단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숙제도 많고, 예습이나, 복습을 안 하면 따라 가기가 어렵고....
그런데 필기시험만 보면 거의(?) 만점입니다. 원참...
10주의 한학기가 끝나자 선생님 왈
"다른 것은 문제 없으나 Hearing과 Speaking은 좀 더해야 하니까,
다음 학기 때는 Grade 2 에서 공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낙제(?)를 했습니다.
한국의 영어 교육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었지요.
많은 한국 분들이 똑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 아시아 3개국(한국 일본 중국)은 단어나 글을 이해하는데는
그런대로 잘하지만 말을 듣고 말하는 데는 별로지요,
그래도 중국사람, 특히 홍콩사람은 좀 나은 편인 것 같습니다.
인도나 유럽 사람들은 말은 잘 하는데
독해나 단어실력은 떨어지는 것 같았구요.
아시아권의 이민자들이 교육수준은 높은 것 같았습니다.
중국사람은 왕왕거리고, 인도사람은 너무 굴리고,
우리 한국이나 일본사람은 딱딱하고…
결국 Grade 2로 내려가서 그 다음 학기에 다시 Grade 3 로
그리고는 학교를 옮기어 Grade 4 까지 갔습니다.
결국 약 600시간 정도만 공부를 끝냈을 때 사업체 구입이
어느 정도 성사되어 학교를 그만 두었지요.
아쉬웠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어 실력도 짬밥(?)순 이었습니다.
특히 듣는 데에서는 즉 누가 먼저 왔나 하는 거구요,
남자들 보다는 여자 분들이 적응이 빨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동창생이 제일이었습니다.
학교에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몇몇 한국 분이 계셨지요.
반도 다를 때도 있고 때로는 같은 반에서도 만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고 반가운 건 동포 뿐이라고 할까요.
수업을 마치고 커피 한잔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한국서 살던 얘기, 애들 얘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등등...
이렇게 시작하여 서로들 집도 방문하고,
같이 놀러도 가고, 정보도 교환하고,
하긴 하는 일 없는 백수이고 보면
그런 일 말고 따로 할 일도 없었지요.
지금은 나름대로 정착해서 열심히 살고 있고 서너달에
한번은 돌아가면서 집에서 만나고는 하지요.
2000년 여름에는 모두들 같이
캐나다 동서 대륙횡단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그 해 봄부터 사업체 구입이 구체화되어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데 여행가기도 쉽지 않지요.
서로들 벌려 논 일들이 있으니까요.
이제 100,200KM 거리는 마실 간다고 합니다.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또 만날 때를 기다리니까요.
동기들 중 50대 중반의 C씨, 저희들 사이에 회장님(동창회장)
또는 형님으로 불리며 컴퓨터에는 전문가 수준으로,
지금은 Edmonton에서 Grocery Store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보다 서너 살 위인 N 씨는 한국의 건설 회사에서
플랜트 사업 계통에서 종사한 Engineer로 여기 정유 회사에
고용되어 한국에서의 두 서너 배의
연봉을 받으며 성공적인 정착을 했지요.
영관 장교 출신의 K씨, 전직이 군인이었던 관계로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할 수도 있었지만 집과 너무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싫어서 경비 회사에 취직되어
안정된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비니니스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유통업에 종사했던 저와 같은 연배의 Y씨,
객실 30여개 규모의 모텔을 경영하며 마나님과 꼭 붙어 살지요.
남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P씨,
한국에서 소를 키우다 절망을 하고,
이곳에 와서 주유소와 편의점이 딸린 가게를 하며 살지요.
농사일이 좋아 그린하우스를 지어 각종 채소를 기르며
주변에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제가 항상 하는말 "형씨 복받을겨."
또 한국에 사업체를 두고 왔다 갔다 하는 W씨,
어느날 나타났다 바람같이
사라지곤 하는 몸과 마음이 바쁘지요.
저 따라 1년 뒤 이민 온 S씨,
한국에서 토목 설계회사를 경영하던 제 친구.
직장에 있는 것보다 사업이 이민 생활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족쇄가 됐다고 푸념하다가 지난 2월에
아주 정리하고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사업체를 알아 보다가
작년에 스토아를 시작한 다른 K씨,
너무 재지 말라고 주위에서 말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덥석 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저(주유소 쥔 아저씨).....
이렇게 우리는 동창으로서,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로 별로 인연이 없었지만 새로운 인연이 되어,
누가 누가 잘 사나 하면서………………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에도
영어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신청하면 선생님을 보내줍니다.
물론 주변에서 고용된 선생님이지요.
주로 연세가 지긋한 은퇴한 교사들을 선정합니다.
저는 가게가 바빠 공부를 계속 못하고 있지만
모텔을 하는 Y씨는 공부는 물론 궁금한 일이 있을 때
도움도 많이 받고 있지요.
학생은 단지 부부뿐.....
다시는 할수 없을 줄 알았던 학교생활
이렇게 보냈습니다.
똘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