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계(持戒)의 향이여, 선정(禪定)의 향이여, 지혜(智慧)의 향이여, 해탈(解脫)의 향이여, 해탈지견(解脫知見)의 향이여, 이 거룩한 향을 사루어 올립니다.
∴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의 다섯가지를 오분법신향 또는 오분향이라 합니다. 이 오분향은 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갖추고 있는 광대한 무량공덕을 가리킵니다.
<계향>은 계율의 향기를 말하는바, 계율을 잘 지키면 혼탁하고 무질서한 사회가 밝고 명랑하고 깨꿋한 사회가 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저절로 향기가 풍겨난다는 의미입니다.
<정향>은 <계향>이 잘 이루어지면 저절로 오는 것으로써, <정>은 ‘안정’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계향>이 각자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라면, <정향>은 모든 것이 멈춰진 고요한 안정의 상태를 말합니다. 개인의 안정은 물론 집안의 안정과 나아가 사회의 안정까지를 통틀어서 말합니다. <정향>은 자기가 처한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는 사람은 결국 안정을 얻을 것이며, r런 사람에게서 저절로 향기가 뿜어 나논다는 의미입니다.
<혜향>은 ‘지혜의 향기’를 말합니다. 이 때 ‘혜’는 반야를 말하며, 곧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볼 수 잇는 지혜가 반야입니다. 선정을 통하여 마음의 물결이 고요해지고, 고요함 속에서 모든 번뇌의 찌꺼기들이 가라앉으면 물은 차츰 맑아지고 맑아진 물은 다시 밝아지고, 밝아지면 모든 것이 그대로 비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물 속까지도 여실히 관찰할 수 있게 되는바, 이렇게 안과 밖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는 지혜가 반야입니다.
이와 같이 <계향>, <정향>, <혜향>을 불교에서는 삼학(三學)이라고 하며, 이는 불교의 기본 가르침을 말합니다.
<해탈향>은 해탈에서 얻어지는 향기를 말합니다. <해탈>은 모든 장애, 고통, 어려움, 문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생로병사를 위시해서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개인적인 모든 문제를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바,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해탈이란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이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창조하고, 구상하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말함으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새롭고 밝고 맑은 마음으로 성장시키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해탈지견향>은 해탈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견>이란 ‘지혜’라는 말과도 통하며, <해탈지견>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해탈의 경지로 이끄는 중생제도를 뜻하는바, 이는 불교가 자신의 해탈과 함께 다른 사람의 해탈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전법(傳法)을 통한 중생제도가 필수적임을 나타냅니다.
光明雲臺 周遍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 광명의 구름대(臺)가 법계에 주변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불․법․승께 공양합니다.(지혜의 광명 온 우주 법계에 충만하여 시방삼세에 한량없는 불․법․승 삼보님께 공양 올립니다.)
∴ <광명운대>에서 광명은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말합니다.
오분향이 불교인의 인격완성에서 오는 다섯가지 덕을 말한다면, 광명은 광명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써 오분법신향을 몸소 실현하는 삶을 나타냅니다.
<주변법계>는 온 우주의 세계에 두루두루 펼쳐져 있다는 말로서, 진리의 구름덩어리가 온 법계(온 우주)에 두루 가득하여 없는 곳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공양시방>에서 공양이란 흔히 꽃․음식․초․향․음악․춤․의복 등 부처님께 이바지하고 도와주는 모든 사물과 행위를 일컫는 말로써, 부처님께 올리는 모든 것을 공양이라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양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양이란 말을 씁니다.
시방은 불교의 공간개념을 나타내는 말로써 온 우주 전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써, 여기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항상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량불법승>은 한량없는 불․법․승 삼보라는 말로써, 불․법․승은 부처님과 진리와 불교단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곧 이 말은 온 인류, 모든 만물에게 모든 진리의 빛이 펼쳐지도록 한다는 뜻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온갖 만물에게 진리의 빛이 골고루 펼쳐져 바람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獻香眞言
헌향진언「옴 바아라 도비야 훔」(3번)
⇒ 향을 사루어 올리는 진언
옴! 금강소향존(金剛燒香尊)이시여, 훔.
∴ 향을 올리는 진언(참된 말)으로써, 여기서 향은 부처님이나 불보살의 완성된 인격체를 다섯 가지 덕으로 표현한 오분법신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향을 꽂음으로써 우리도 부처님처럼 우대하고 원만한 공덕을 갖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향을 하나 꽂더라도 <계향>, <정향>, <혜향>, <혜탈향>, <혜탈지견향>의 마음으로 꽂아야 하는 것입니다.
<옴>은 모든 진언의 모체가 되는 진언 중의 진언으로서 모든 법문의 어머니이며, 상대를 지극히 찬탄하는 극찬구(極讚句)이며, 모든 소리의 근원이며, 상대를 섭복(攝伏)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옴>은 우주의 핵심이며, 피안에 이르는 범선(帆船)이며, 우주와 삼라만상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와 삼라만상은 <옴>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아라>는 <바즈라>라고 하며, 일명 ‘금강(다이아몬드)’이라고 하는데, 금강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으며, 금강으로는 다른 모든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금강과 같은 견고한 지혜를 금강반야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지혜는 그 어떤 탐․진․치 삼독이나 번뇌 망상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 그 자체를 깨뜨릴 물건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도비야>는 ‘소향존(燒香尊)에게’라는 말이고, 끝의 <야>는 ‘~에게’라는 위격조사입니다. 소향존이란 향을 사루어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금강과 같은 지혜의 향을 사루는 분이 소향존입니다. 그 소향존은 지혜로, 광명으로, 오분법신으로 무장된 소향존입니다. 급강의 지혜가 마음 속에 간직된 소향존이기 때문에 그 향으로써 이 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훔>은 ‘이구청정(離垢淸淨)’이란 뜻인데, 진언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정형구로써, 더러움을 벗어난 청정의 세계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옴 바아라 도비야 훔>을 해석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훌륭한 마음으로 향을 올리는 존귀한 분을 지극히 찬탄하면 이 세계가 청정해진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부처님의 공덕은 향과 같이 이 세계를 청정하게 만들고 있음을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