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1/ 07/ 12 [목] 오후 03:41 번호 1531
글쓴이 전민용 (gca027@hitel.net)
불소 찬성과 반대가 지나치게 편향되어 전달되고 있으므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중재를 하시려고 하는 한면희선생님의 글을 한번 보세요.
무엇이 쟁점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환경정의로 본 수돗물 불소화 논쟁
- 미국 수돗물 불소화 현장 답사기 -
한면희 (환경정의포럼 공동 운영위원장,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
1.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처음으로 다가가다!
필자가 미국의 불소화 지역을 방문하여 불소화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은 2001년 4월 중순경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가 미국 수돗물 불소화 현장 방문을 계획하면서, 민주노총, 환경연합 및 환경정의시민연대 등 사회환경 단체에 방문 참여를 요청한 것이 배경이다. 마침 한국환경회의가 수돗물 불소화 논의를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에서, 금년도 환경회의의 간사단체를 맡게 된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사안의 성격상 윤리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아, 환경윤리를 전공하였고 또 환경정의포럼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가 적격이라고 판단하여 나에게 방문 참여를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사무처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그 시점에 나는 수돗물 불소화 논의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어 인지하는 정도였지 구체적인 글 한편 읽어보지 못해서 전혀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이에 나보다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분이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나도 검토하겠다고 답변을 하였다.
당시 새만금간척사업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는 상태에서, 동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나와 의견을 자주 나누는 사람과 의논을 하였다. 먼저 필자와 함께 천주교 환경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환경 문제에 지극한 정성을 갖고 동참하고 있는 치과의사 이인석 닥터와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이닥터는 녹색평론을 애독하고 있던 터라, 필자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의대생 시절 의학 교과서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당연한 것으로 배웠지만 녹색평론의 수돗물 불소화 반대 주장을 읽어보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으니, 차제에 분별 있게 논쟁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므로 현장을 보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었다.
이어서 의견을 물은 것은 자주 환경 화제에 대해 의논을 함께 나누는 환경정의 캠페이너 윤종호씨였다. 수돗물 불소화 논쟁 전반을 개략적으로 들려주면서, 갈 것을 권유하였다. 윤종호씨는 나와 함께 많은 환경 부정의 현장을 다녔기 때문에, 필자가 현장 방문을 좋아하고 또 현장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는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현장성이 결여된 이론은 자칫 말의 성찬으로만 끝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현장 중시적 맥락에서 결국 나는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현장 경험이 종종 이론의 건조함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방문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현장 방문은 몇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첫째, 이론 속에서 소홀히 넘길 수 있는 그 어떤 내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둘째, 이론 가운데 현실과 상치하는 그릇된 것을 바로 잡게 해준다. 셋째, 현장은 이론적 검토를 넘어서서 감성적 절박성을 전해준다.
방문단에 동참하기로 통보하자, 곧바로 수돗물 불소화 논쟁 자료를 구입해 읽기로 했다. 아무래도 현장 방문시 불소화의 필요성과 불소화 시행 지역의 안정성 위주로 보게 될 것 같아서, 먼저 불소화 반대 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고, 그 자료를 구입해 달라고 윤종호씨에게 부탁을 했다. 곧바로 녹색평론사로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저 관련 자료를 보내줄 것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불소화 반대 관계자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직접 만났으면 한다는 전갈이 왔다. 녹색평론사가 대구에 소재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대구가 반대의 본산인 듯했고, 따라서 대구서 서울로 온다는 것이었다. 마침 수업이 연이틀 이어지는 상태였고 또 대학원 환경 수업은 환경고전명저 강독이라서 준비를 해야 할 것도 있어서, 자료를 주시는 것만으로 고맙게 읽겠노라는 답변을 전하도록 했다. 그러나 꼭 보았으면 한다는 이야기에 목요일 오후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녹색평론 편집장과 수돗물불소화 반대 사무국장, 그리고 대구생명민회 사무국장을 만났다. 불소화 현장 방문단이 구성된다는 소식에 깊이 우려가 되어서 이 일로 일부러 찾아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불소화 찬반 논쟁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음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5월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을 열흘간 비우게 되는 까닭에 용인 난개발 저지를 위한 환경정의시민연대의 대지산 나무위 시위 현장을 찾았고 또 새만금 문제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현안을 추스리면서, 짬짬이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수돗물불소화논쟁검토위원회」가 1999년 8월에 펴낸 논쟁 검토 보고서를 가장 먼저 읽었다. 다소 불소화 추진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느꼈지만, 향후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문제를 보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 시기였다. 오래 전부터 친하게 교류하며 정담을 나누던 불교환경교육원의 유정길 사무국장으로부터 출발 삼일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녹색평론의 반대론자 진영에 서있는 탓에 다소 걱정하는 말을 전해왔다. 특히 내가 불소화 추진 쪽의 편향된 일정 속에서 얻게 될 결과를 토대로 치우친 글을 쓰고, 이것이 환경운동 진영에 미칠 다소간의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과거 한국에서의 환경 논쟁 가운데 일부가 필자의 환경윤리적 접근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이 보였다. 황소개구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1997년 봄 퇴치를 결정하면서, 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생명운동인 환경운동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와 관련해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IMF 환란에 따른 생명의 숲 살리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간벌과 나무 솎아주기를 하고 숲을 헤집고 다니는 데 대해 일부 반대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 전국환경활동가워크?의 발표와 불교환경교육원 및 환경연합 특강에서 필자의 환경윤리적 해법이 제시되자 대체로 논란이 수그러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을 유정길 국장은 알고 있었기에 불소화 반대쪽에 서있는 자신의 입장에서 필자의 현장 방문이 은연중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불소화 문제가 이런 것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는 윤리적 옳고 그름과 가치관의 문제에 앞서 유해하냐 무해하냐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의 문제가 선행하는 것이고, 그 영역은 필자의 전문 영역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유정길 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 날이었다.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자 불소화 반대의 장본인인 김종철 교수께서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직접 전화를 해오셨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존중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녹색평론은 환경 진영에 끼친 바람직한 영향이 적지 않았다. 필자도 존경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정중하게 경청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방문단 참여를 수락한 데 대해 사과 말씀을 드리면서, 기왕의 현장 조사시 객관적으로 꼼꼼히 분별하겠노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바로 이 때는 녹색평론 특별자료집으로서 나온 『수돗물불소화의 문제』에 실린 김종철 교수 및 반대론자의 글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필자가 수돗물 불소화 필요성에 대한 자료를 받아든 것은 출발 당일 공항에서였다. 기내에서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걱정하는 일련의 전화 속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불소화 추진론자와 반대론자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깊을 뿐 아니라 또한 감정상의 골이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내에서 잠시 눈을 감고 단상에 젖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쟁취를 위해 모두가 애쓰던 시절 나 또한 길거리 시위 현장과 노동 현장 그리고 민주 청년의 장례 현장에서 옳기 때문에 참여하면서도, 사안의 성격상 늘 마음은 무거운 편이었다. 그나마 환경 전문가로 특화하면서 울산과 구미, 양양, 여천, 광주, 군산, 부안 등 환경 조사 현장을 다닐 때에는 그래도 마음 고생이 덜한 편이었지만, 피해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렸었다. 이번 불소화 현장 여행은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일정에 참여하겠다는 것이 애초의 생각이었는데, 그 기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과거의 동지를 오랫만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1990년에 발족한 업종노동조합대표자회의의 일원이었던 허영구 전 전문노련 위원장 (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및 양건모 전 병원노련 위원장 (현 보건의료노조 의료개혁위원장)과 함께 동행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전국대학강사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세 단체를 비롯한 13개 사무전문직 민주노조가 당시 업종대표자회의 (의장 권영길)를 구성하고 있었고, 이 단체는 전노협 (위원장 단병호)과 사안별로 연대를 하다가 1990년대 중반 현 민주노총으로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은 이번 방문을 주최한「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 관계자가 이번 현장 방문에 셋이나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행 일정 내내 허영구 부위원장과 룸메이트가 되어서 같은 방을 썼으므로,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은 많았다. 아무래도 불소화에 대해 전문적 검토를 하지 않은 허부위원장은 내게 질문을 했고, 나는 불소화 반대 자료를 먼저 읽었던 탓에 불소화에 대한 부정적 문제점을 제시하는 편이었다. 이런 나의 태도는 초기 전체 회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일부 참가자는 필자처럼 불소화의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온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편안한 현장 방문으로 생각하고 동참한 다수는 예기치 않게 형성된 긴장감에 다소 당혹해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통상 중대 사안이 아닐 경우,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한다. 반면 학술적인 경우를 포함하여 중대한 사안의 경우 일단 반증주의(falsificationism) 전략을 구사한다. 특정 명제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반대 증거나 논박이 가능한 가를 꾸준히 추구하면서 일련의 결정적 논박 사례가 나타날 경우 애초 명제나 주장을 비판하고, 그런 논박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받을 소지가 없을 경우 수용한다. 물론 잠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며, 후일 논박 여부에 따라 뒤집기나 수용이 계속된다. 특히 과학의 경우 이런 태도를 취한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과학은 수많은 검증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보편 명제가 정당화되지 않고 가설 연역적 방법에 의해 잠정적으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비록 필자가 이런 학술적 접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간혹 언어적 표현을 통해 드러나는 반증주의 태도 때문에 초기에 방문단 다수에게는 긴장과 부정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선상에서 다소 당혹해하던 허부위원장은 내게 민주노총이 건강연대에 참여하게 된 인식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수돗물 불소화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로 표현함)가 추진하고 있다. 둘째, 건치는 과거 민주화를 위해 함께 애쓴 재야 동지 단체로서 불소화로 인해 이익을 보기보다 오히려 재정적 손실을 입더라도 국민건강을 위해 추진하고자 한다. 셋째, 수돗물 불소화는 생활의 여유가 없거나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저소득층 노인과 아동의 충치 예방에 효과가 탁월하다. 넷째, 불소화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점이 밝혀진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사회정의 차원에서 의구심 없이 수돗물 불소화는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불소화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 얘기를 듣고 보니 걱정이 된다는 심정을 표현했다. 이런 분위기는 양건모 위원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났고, 곧이어 "현장 조사와 문헌 검토를 한위원장이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입장을 정리하면 그것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내게 넌지시 던지는 것이었다. 서로 신뢰하는 과거 동지간의 교감도 있었다고 보여지지만, 예기치 않게 무거운 문제로 부상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 심리적 부담을 더는 자연스런 형태의 지나가는 이야기였다고 여겨진다.
2. 수돗물 불소화 배경과 입장
이번 현장 방문을 기획한 분은 건치의 신동근 닥터였고, 전체 일정을 주관하며 통역을 맡은 분 역시 전 한국수돗물불소화연구회장인 건치의 김광수 닥터였다. 우리 일행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애틀란타에 있는 미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청(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이하 CDC로 약칭)을 방문했다. 거기서 받은 간행물에 의하면, 수돗물 불소화의 역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 젊은 닥터 맥케이(F. S. McKay)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업하여 진료를 하던 중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상당수에게서 '콜로라도 갈색 반점'(Colorado Brown Stain)이라 부르는 얼룩 반점치를 발견하고, 1908년부터 이 문제를 연구하게 된다. 1920년대에 먹는 물 속의 무엇인가가 이 반점치의 원임임을 알았고, 또한 놀랍게도 이 반점치가 나타난 사람의 치아에는 충치(치아 우식증)가 나타나지 않음도 발견했다. 그리고 1931년에 반점치를 야기하고 충치를 억제하는 먹는 물 속의 요소가 바로 불소(fluoride)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발견을 토대로 불소화를 추진한 것은 미 공중보건원(U.S. Public Health Service)의 닥터 딘(H. T. Dean)이었다. 그의 주도로 1930년대에 특정 지역 식수 속의 불소화와 치아 우식증 감소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그리고 그것이 확인되는 선상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다른 지역에도 실시할 경우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최적 상태인지를 결정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1936년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1.0ppm 정도의 불소화 농도는 반점치를 야기하지 않으면서 충치 예방에 적정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마침내 콕스(G. J. Cox)는 치아 우식증 예방을 위해서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자는 제안을 최초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1945년 1월에 시험적으로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서 처음 불소화가 진행되었으며, 같은 해 5월에 뉴욕주 뉴버그, 6월에 온타리오주 브랜트포드에서 실시되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현재 62.2%가 수돗물 불소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북아일랜드 등의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고 총 3억 명을 상회하는 정도가 수돗물 불소화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수돗물 불소화란 무엇인가? "불소화는 치아 우식증의 예방을 통해 공중 건강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되, 과학적 및 의료적 지침에 의거하여 자연에서 발견되는 원소인 불소를 분별 있고 적절하게 상향 조절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치아 우식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수돗물에 적정한 농도(0.8-1.2ppm)의 불소화합물을 첨가하여 공급하는 사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주장하는 건치의 견해를 논증으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가-1) 아동을 비롯한 사람 모두의 충치 예방은 국민건강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청된다.
가-2) 불소화가 인체에 무해하다.
가-3) 불소화가 아동을 비롯하여 사람 모두에게 충치 예방의 효과가 크다.
가-4) 수돗물 불소화가 자연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가-5) 한국 상황에서 다른 조건에 변화가 없다면, 국민의 치아 건강은 비용에 비해 가장 이익이 많은 수돗물 불소화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만족되어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므로
가-6) 수돗물 불소화를 실시해야 한다.
결국 건치가 판단하기에, 수돗물 불소화는 적정 기준에 의거하여 시행할 경우 어느 누구에게도 안전하며, 어떤 다른 방도에 의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이용 과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하며, 그리고 아동을 비롯하여 인간의 치아 우식증 예방 효과가 확실하므로, 수돗물 불소화는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연유로 건치는 의견을 같이 하는 다른 사회단체와 함께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여 전국적으로 불소화를 추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 녹색평론과 수돗물 불소화 반대 입장
한국에서 수돗물 불소화의 반대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은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이 외국의 문헌과 인터넷 자료에 근거하여 1998년 8월 녹색평론 특별자료집 『수돗물 불소화의 문제』를 펴낸 데서 비롯된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구강 관련 관료였던 치과의사 존 코훈(John Colquhoun)은 오클랜드시의 경우 불소화 지역과 비불소화 지역간의 충치 발생률의 차이가 없으므로 불소가 치아 건강과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불소화가 유해하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불소화 추진론자였던 자신이 반대론자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특히 그는 불소화가 알려진 것과 달리 뼈의 약화를 초래하여 골절을 일으킬 수 있고, 동물실험에서는 수컷 쥐에게서 나타난 암 발생과 관련되어 있으며, 중국에서는 불소화 지역의 아동에게서 지능지수 저하 현상이 나타났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불소화 반대 입장에 서있는 일부 과학자들은 치과의사단체와 관련 정부기관으로부터 협박과 압력을 받고 있으며, 불소를 판매하는 기업이 정치적으로 막강한 로비를 펼치고 있다고 추정한다.
잡지 기자인 베티 하일먼(Bette Hileman)은 "미국 공중보건원과 미국의사협회 및 미국치과의사협회와 같은 의료당국이 불소화에 관한 부정적인 과학적 정보를 억눌러왔다"고 비난하면서, 미 환경청 한 과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환경청의 불소화 관련 문헌 속에는 "불소가 돌연변이 유발물질임을 시사하는 돌연변이에 관한 문헌의 90%를 생략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전한다. 공중보건학 분야의 박사인 게리 널(Gary Null)은 야모야니(J. Yiamouyiannis)와 버크(D. Burk)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불소가 납보다 더 유독하고 비소보다는 독성이 약간 덜하며, 매년 1만 명 이상의 암환자가 불소화와의 관련 속에서 사망하고 있다고 전한다. 물론 뼈불소증과 치아불소증, 골절, 불소중독을 초래하고, 수많은 연구가 불소화와 암의 관련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불소라는 독성 폐기물을 상품화하게 된 데는 기업의 이윤 추구 때문이라고 밝힌다. 심지어 기자인 그리피스(J. Griffiths)와 브라이슨(C. Bryson)은 수돗물 불소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으로 원자탄 개발 계획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화학회사 듀퐁이 원자탄 생산에 필수적인 불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부 피해를 입은 주민의 소송이 제기되었고, 이에 원자탄 개발을 주도한 맨하튼 프로젝트 팀은 불소에 대한 두려움을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독성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문헌과 자료를 접하게 된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소박한 심성 탓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불소가 비소 다음으로 독성이 강한 물질임을 독물학 사전이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불소가 약이 아닌 필수 영양물질이라는 미치과의사협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을 수돗물에 타서 무차별적으로 만인에게 복용토록 하는 것은 독선적인 자세라고 질타한다. 따라서 불소화 추진에 반대하는 녹색평론 진영의 반대 논증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나-1) 아동을 비롯한 사람 모두의 충치 예방은 절실하게 요청됨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2) 그러나 불소화가 인체에 유해하다.
나-3) 불소화가 아동을 비롯하여 사람 모두에게 충치 예방의 효과가 없다.
나-4) 그리고 수돗물 불소화가 자연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5) 더 나아가 아동을 비롯한 사람 모두의 충치 예방이 요청된다고 하더라도, 무차별적인 수돗물 불소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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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6) 수돗물 불소화를 실시해서는 안 된다.
이후 이런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는 주장이 첨부되었다. 1999년 9월에 녹색평론의 『수돗물 불소화 관계 신자료집』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김종철 교수는 수돗물 불소화는 "궁극적으로 권력과 돈과 거대한 관료주의 조직의 뒷받침을 받는" 것이라는 기자 하일먼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수돗물 불소화는 20세기 최대의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수원대 환경공학과 안혜원 교수 또한 불소화와 원자탄 계획을 결부지은 그리피스 기자의 견해를 전하면서, 중국의 지능지수 저하 내용과 암 유발설을 언급하고, 그리고 불소화에 사용하는 불소 화합물인 불화나트륨과 불화규산의 불소가 용해되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이 즐겨 마시는 차와 음료수의 불소 농도를 조사하여 발표하면서, 이미 다양한 경로를 거쳐 불소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불소의 인위적 공급이 필요한 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순천대 금속공학과 반봉찬 교수도 거의 비슷한 논조를 펼친다.
그런데 한국 학자의 불소화 반대는 거의 외국 반대론자의 견해에 토대를 둔 것이다. 실제로 녹색평론의 신자료집에도 윌리엄 허지와 조엘 그리피스, 존 애쉬턴, 필립 써튼 등의 글이 실려 있다. 그들의 견해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한국 학자 모두가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오리무중의 진실게임과 신뢰성 문제
필자는 불소화 추진론과 반대론의 입장을 논의의 편의상 간소화해서 논증 가)와 나)로 정리했다. 여기서 가-1)과 나-1)은 건강과 관련된 사실의 문제로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같은 입장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2),3),4)와 관련된다. 즉 불소의 인체 유해성 여부, 충치 예방의 효과 여부, 환경에 미치는 영향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일반 국민과 국가 보건정책의 입장에서는 주로 첫째와 둘째 사항이 문제가 되고, 환경주의자는 셋째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체 유해성 여부와 충치 예방 효과 여부는 건강 관련 사실과 관련된다. 필자는 건강 관련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학문적 권위는 결코 아니다. 물리적 사실 여부는 권위 있는 물리학자에 의거해서 판단해야 하듯이, 건강 관련 사실은 권위 있는 의학자 또는 보건학자 집단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옳다. 다만 비록 소수라고 하더라도 같은 집단 내에서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면, 그리고 관련된 또 다른 전문가의 반론이 발생한다면, 사실과 관련된 정황을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사실을 보는 시각, 즉 가치관과 세계관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오랫동안 논리학을 가르친 철학자로서 사실 정황에 대한 논리적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 특히 건강 관련 사실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상반된 사실을 주장하는 경합 상황에서 부득불 주장의 신뢰성 여부를 논리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더군다나 반증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까닭에 불소화 반대 주장의 글 전체에 흐르는 신뢰성 여부를 중시할 것이다. 개별 주장의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고육지책 때문이다. 따라서 글의 전반적 분위기가 신뢰할 만한 권위를 형성하는가 여부에 살필 것이다. 또한 환경윤리학자로서 사회와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시행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가리며, 그리고 어떤 가치관이 환경 친화적인지를 가릴 것이다. 결국 필자는 관련된 필자의 전문 영역에 대한 판단을 함께 내리고자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사실 문제는 결국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글은 한계가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채택된 접근법은 반증주의이다. 주류를 이룬 한 주장에 대해 그것을 입증하는 여러 사례가 있다고 해서 또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 주장이 참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모든 다이아몬드는 보석이다"는 주장의 참임을 정당화하고자 할 때, 이 보석상과 저 보석상 등 수많은 상점에서 보석인 다이아몬드를 아무리 많이 제시해도 그것으로 주장의 참임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석이 아닌 공업용 다이아몬드 서너가지 반대 사례만으로 그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나기 때문이다.
"모든 불소화합물은 적정 선으로 복용하면 인체에 해가 없다"는 주장은 일련의 의미 있는 반대 사례가 출현할 때 거짓으로 논박되지만, 그런 일련의 반대 사례들을 제시하려고 애써도 별로 없다는 것이 확인될 때, 잠정적으로 참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물론 해가 없다는 입증 사례가 많이 출현할수록, 그 주장은 확률적으로 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것은 귀납논리가 보증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반대 주장을 언급했다. 그런데 한국의 중요 반대론자가 건강과 관련해서 권위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영문학자인 김종철, 환경공학자인 안혜원, 금속공학자인 반봉찬 교수 모두 해당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필자의 경우처럼 관련된 일부 영역에서는 전문가일 수 있다. 어찌되었든 그 글을 읽어보면 한 마디로 두렵게 여겨지는 건강 관련 반대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알고 보면 참조한 외국 글의 반대 주장이 무섭게 진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로 비화될 수 있다. 글을 싣는 잡지나 신문이 학술적인 것이 아니고 대중적인 것이어서, 출처를 정확하게 달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나마 김종철 교수는 각주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본문에서나마 성의껏 출처를 대략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통상 출처가 정확히 명시되지 않을 경우, 그것이 전문가의 객관성 있는 주장인지 아니면 어떤 비학술적 의도에 의해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됐는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한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할 뿐 자신의 반대 주장에 대해 상대방이 학술적으로 반론을 펼 기회를 닫는 것이 되어서, 공정한 토론 게임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추정만 하게 되고, "∼라 카더라"는 설만 난무하여 증폭하게 되어 제3자에게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며,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는 비합리적 비난으로 일관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내편이냐 아니면 상대편이냐를 가리는 획일적 편가르기가 진행된다. 수돗물 불소화 논쟁도 대중에게 비슷한 형태로 다가가게 되면서, 약간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반대론자의 글이 녹색평론에 의해 자료집으로 편집되면서 외국 문헌과 함께 묶여져 있어서 그 출처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본래는 독립된 글로 먼저 녹색평론과 과학동아, 말지, 일간 신문 등에 실렸고, 일반 대중은 그런 단편적인 글만 보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보여진다. 반대론자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글을 싣는 잡지나 신문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사태를 왜곡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쟁점 가운데 현저하게 문제가 되는 대목을 살펴보자. 첫째는 불소화가 충치 예방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존 코훈의 글은 그가 뉴질랜드의 치과의사이자 전 치과 행정관료였던 까닭에 신뢰성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불소화 지역인 오클랜드시와 인근 비불소화 지역인 오네흥가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불소화 사업이 아동의 치아 우식증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코훈의 논문에 대한 반론을 살펴보자. 건치의 김광수 닥터는 이 논문 발표 이후 검증을 위한 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신뢰에 현저하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하고 있다. 예컨대 오네흥가 어린이의 38%가 오클랜드로 통학하는 어린이였으므로 학교에서는 불소화된 물을 섭취했을 것이고 그리고 오네흥가는 비불소화 지역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적극적인 충치 예방 처치를 해주고 있었으며,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제한적으로 한층 강화된 학교구강보건사업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집단의 조사 결과 차이가 별로 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반론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코훈 주장을 신뢰할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로 가서 확인할 방도는 없다. 그리고 역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으므로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고 다른 견해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코훈은 여러 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 상당수가 다른 학자나 반대론자의 주장을 재론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불소화 영향으로 인해 반점치가 나타난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더 낮은 지능지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논문이 실린 출처가 잡지 Fluoride이어서 현장 방문 길에 CDC에 문의를 한 결과, 반대론자들이 자신들의 글을 싣기 위해서 만든 정기 자료집 형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의 학술적 신뢰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불소화와 지능지수 저하 상관관계는 아주 오랫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규모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임에 비추어볼 때 역시 그 관련성을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코훈의 글에서 주목을 끄는 두 번째 대목은 불소화와 관련해서 가장 두렵고 눈길을 끄는 암 유발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1991년 미 연방보건청(US Public Health Service)의 자료에 근거하여, "희귀한 골암이 미국의 불소화 지역에서 - 비불소화 지역이 아니라 - 9세에서 19세에 이르는 소년들에게서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에 의하면, 코훈이 내용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즉 연방보건청은 이런 연구 자료가 있어서 정밀 조사를 한 결과, 오히려 "이러한 관련성이 불소화 사업 시기와 관계가 없고, 따라서 수돗물 불소화와는 상관이 없다"고 결론을 짓고 있는데, 그는 검토된 문제를 전후 설명 없이 사실인양 일방적으로 다룬 것이다. 이에 필자는 CDC를 방문한 길에 원 출처를 받아서 살펴본 결과, 코훈이 의도적으로 곡해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코훈 글의 신뢰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코훈의 입장에서는 미 연방보건청이 전적으로 부도덕한 집단이어서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완전히 뒤집어버리기 때문에, 그 자료 속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 말도 믿을 수 없었다면, 차리리 그 자료 속의 내용을 인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적 정직이다.
또한 코훈은 불소화합물에 다량으로 노출된 수컷 쥐에게서 희귀한 골암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마침 공중보건학 박사인 게리 널은 야모야니 박사와 전 국립암연구소 화학자 버크 박사가 "미국에서 매년 1만명의 암 사망자와 불소화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를 공동으로 내놓았다"고 전하면서, "불소화를 추진하는 기관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연구 발견을 거부하거나 은폐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불소화 반대론자 대부분은 암 관련 주장과 불소화가 충치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할 때, 야모야니를 인용하고 있다. 존 애쉬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종철 교수도 야모야니를 저명한 불소화 반대 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궁금증은 야모야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소화 추진론자들은 "야모야니는 일정한 직업 없이 미국에서 사이비 의료기구 판매업자들의 돈을 받아 가면서, 이들이 조직한 단체(National Health Federation) 소속으로 유인물을 만들고 불소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만을 일삼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온 대표적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높은 악명으로 인해 치과대학 교재에서도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이쯤이면 보다 구체적인 검토가 향후 필요하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필자조차도 오리무중의 진실게임에 현기증이 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쟁점으로 중요하게 거론한 암에 관한 한, 반대 주장이 아직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느껴지지만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세 번째 쟁점 사항으로 이행해 보자. 바로 마주치는 것은 음모설이다. 수돗물 불소화가 충치 예방에 효과가 없고, 불소 중독에 따른 골절 위험이 있으며, 암을 발생시키고, 또한 불소가 흔히 사약으로 쓰이면서 발암물질인 비소보다는 약해도 납보다 독성이 더 강한 물질인데, 왜 구태여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꼭 국가가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필경 숨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전문 저널리스트 조엘 그리피스는 미국 사회에는 지배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집단이 보이지 않는 정부를 구성하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좌우한다고 폭로하면서, 불소가 가장 강한 독성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불소화가 추진되는 까닭을 밝히고 있다. 원자탄 제조에 불소가 필요한데, 불소 생산 과정에서 주민에게 입히는 피해로 인해 원자탄 제조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민중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산업 폐기물인 불소를 돈 받고 팔고자 한 기업의 이윤 동기가 합세해서 수돗물 불소화가 추진되었다고 지적한다.
비로소 반대론자가 보는 수돗물 불소화의 동기가 드러난 셈이다. 만일 사정이 이와 같다면, 치과의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교과서에서 배운 불소화 찬양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고, 그리고 설혹 일부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저항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음모에 동참하고 있으며, 심지어 불소화의 효과 없음과 유해성을 알면서도 고의로 은폐하고 있다는 비난과 혐의를 받게 된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도 그러하며, 특히 양심적 집단이라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 집단도 불소화 추진에 앞장서고 있는 한 같은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불소화를 추진하는 기관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와 그 산하 CDC이다. 그런데 불소화에 따른 책임 단위는 수돗물을 관장하는 환경청(EPA)에 있다. 마침 환경청 노조 부위원장 윌리엄 허지는 1999년 5월에 "우리의 노조는 이곳 워싱턴 디씨의 환경청 본부에 근무하는 대략 1500명의 과학자, 변호사, 엔지니어 및 기타 전문직능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그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밝히고, 미국에서의 불소화 지역과 비불소화 지역간의 충치 발생률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야모야니의 글을 인용하면서, "국가의 식수체계를 인산비료산업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용하는 일의 즉각적인 중지를 요구한다." 글의 제목에서 보듯이 미 환경청 노조에 소속된 과학자 집단이 반대한다면 그 이유와 근거가 있을 터이고, 이것은 불소화 반대론에는 엄청난 원군일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 글에 무게중심을 두었지만, 역시 많은 부분에서 다른 글에서 제시하는 것을 서로 돌려가며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문한 CDC 본부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허지는 마치 환경청 노조에 속한 과학자 모두가 불소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을 환경청에 문의한 결과 허지를 비롯한 소수만이 불소화 반대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전체 동의 없이 개인 서신이 일방적으로 샌디에고 반대론자 집단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허지는 명백히 과장을 했다고 여겨진다. 물론 필자는 환경청을 방문해서 허지와 그 외 사람들을 만나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한다. 그러나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그럴 수 없었고, 그런 한계 속에서 정황을 판별하며 쓰는 글임을 고백한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타국에 대해 권위적이고 종종 억압적이다. 환경과 관련해서는 군 주둔 과정에서 남의 나라 땅이 병들어 죽든 별로 괘념하지 않고 독극물과 폐기물을 대충 버려댄다. 그러나 자국 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라는 점도 있겠지만, 일부 건강한 구성원이 썩는 것을 막고 건강한 싹이 자라도록 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권력은 대외적으로 폭력적이고 부정의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내부에 인종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차 민주주의가 가장 잘 정착되어 있고 그리고 창의성과 관계성, 자율성을 존중하는 소수 개개인 덕분에 건강성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진지하게 검토해도 불소화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닌데, 조직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한국의 건치 집단은 어리석게도 그런 짓에 동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필자는 함께 동행한 김광수, 신동근 닥터에게서 그런 부도덕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느낄 수 있는 것은 열정이었다. 국민 건강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고, 일행 대다수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애틀란타에 이어서 캘리포니아 주도가 있는 새크라멘토시의 민간 단체를 방문하고서, 수돗물 불소화가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주는 1998년까지 다수의 지역도 불소화가 안 되고 있을 정도로 불소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곳이었는데, 행정기관과 의회까지 너무 소극적이어서 불가불 몇몇 민간 재단 (대표적으로 Dental Health Foundation, California Wellness Foundation 등)이 기금을 조성하여 주의회에 불소화 사용 용도로 지정 기탁을 하여 불소화를 추진 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정부의 숨은 의도 속에서 불소화가 추진된다는 음모설과 대비되는 사례를 본 것이다.
나는 다시 자료를 검토하면서, 논리학자로서 또 다시 황당한 표현과 논리 전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 그리피스는 1933년에 벨기에 뮈즈벨리 환경 재난으로 수천명이 병들고 60명이 죽었다고 하면서, "불소의 위험에 관한 세계적인 지도적 권위자 카지 로흘름은 그 재해의 원인이 대기중의 불소 배출에 있다"는 지적을 전한다. 또한 미국에서도 대기 중에 불소가 "어떤 대기 오염물질보다도 많이 발생"했다고 하면서, "불소는 독성의 산업 오염물질"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결국 인체에 유해한 불소를 먹는 물에 타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는 결론으로 이행한다.
이런 논조는 나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치의학자 필립 써튼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그 역시 "지난 30년 동안 교육을 받아온 의과 및 치과대학 졸업생 중 다수가 그들의 스승들에 의해서, 그리고 의사 및 치과의사협회 간부들이 내놓는 거짓된 정보에 의해 세뇌되어 왔다"고 하면서, "평생동안 날마다 이 소량의 독성물질을 섭취하도록 계속하여 강제될" 것인데, "불소화합물은 희귀 맹독성 가스인 불소원소의 구성요소인 불소이온을 포함한 물질"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아는 한, 벨기에 뮈즈벨리 사건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 대기 중의 불소는 불화수소(HF)이며, 인간에게 유해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불소는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서 다른 원소와 만나면 쉽게 결합해서 불화규산 등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수돗물 불소화에 넣는 물질은 불화규산(H2SiF6)이나 불화규소나트륨(Na2SiF6), 불화나트륨(NaF)이다. 그렇다면 그리피스와 써튼은 수돗물에 타는 불화물(예 불화규산)이 유독한 데, 그 이유는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불화수소에 든 불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논리적으로만 떼어내서 표현하면, 이산화탄소(CO2)가 유해한 까닭은 인체에 유해한 일산화탄소(CO)에 든 탄소(C)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또는 에틸알콜(C2H5OH)이 유해한 이유는 인체에 유해한 메틸알콜(CH3OH)에 든 탄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격이다. 일산화탄소나 메틸알콜은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이산화탄소나 술(그 화학식이 에틸알콜임)을 그 자체로 독성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탄소 그 자체를 독성물질로 규정하지 않는다.
불소를 포함한 어떤 불소 화합물, 예컨대 불화수소가 유독하다고 해서 불소나 불소가 포함된 다른 불소 화합물, 예컨대 불화규산이 유독하다고 말하는 논의 전개는 논리적으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를 범한 것이다. 한 범주의 성질을 다른 범주에 그대로 이행시켰을 초래되는 오류다. 다만 여기서 논의 전개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불소 자체의 무해함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불소화 현장 방문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정서적 느낌에 비추어 불소화 논쟁을 검토한 결과, 불소화 비판에 적지 않게 과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에서 행해진 일부 과장과 논리적 비약은 글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임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불소화 반대론의 견해가 모두 허위라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중에는 일부 진실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치과 영역에서 불소는 충치 예방효과나 치료효과를 인정받으며 기적의 원소로 알려져 있는 반면에, 생화학 실험에서 불소는 효소저해제(모든 효소의 활성을 저해하는 비특이적 효소저해제)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는 안효원 교수의 지적은 반대론에도 적지 않은 진실이 담겨져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5. 환경정의와 수돗물 불소화의 대안
건강 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동기에 의해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했다고 생각된다. 필자도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여러 부문 운동단체와 함께 작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 동참했을 때, 의사로서는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 및 건치와 함께 한 기억이 있다. 따라서 당시와 마찬가지로 건치의 의도를 그저 순수하게 볼뿐이며, 나의 이런 확신은 아직 옳다고 여긴다. 만일 불소화가 추진된다면, 그 이익은 아동, 특히 저소득층 아동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에 따른 이익이 치과의사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 왜냐하면 불소화는 예방의학의 일환으로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치과의사 수입에 저해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치과의사는 상당히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충치로 인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다소 경제적 이익을 덜 보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즉 인도적 견지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그렇게 추진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불거지는 환경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1990년을 전후로 하여 여러 환경 단체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 여러 환경주의자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필자를 비롯한 생태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인위적인 것을 꺼려한다. 그리고 기존 과학에 대해서도 별로 신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의 환경 위기를 초래한 것은 산업사회의 동력으로 작동한 과학기술이 대표적 주범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주의자로서 존경을 받는 김종철 교수는 가장 먼저 외국 문헌에서 불소화에 따른 문제를 보았고, 시간상 일일이 확인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명확한 반대 목소리를 먼저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어서 후속 논의가 뒤따랐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건치의 불소화 사업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외국 문헌에 의존하여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사실과 다른 것도 언급하게 되었고, 이것이 건치에 마음의 상처를 입혔다면 나를 비롯하여 필자의 의견에 공감을 느끼는 환경주의자는 진심으로 사과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역으로 김종철 교수를 비롯하여 반대론자의 글에도 진실은 상당수 담겨 있다. 치과의사의 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아서일 뿐이다. 녹색평론 진영 역시 국민 건강을 위해 순수한 동기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행한 것에 대해 일부 찬성론자가 역시 상처를 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한 것도 잘못이다. 대표적으로 김종철 교수를 극단적 논리에 빠진 극단주의자로 지칭한 것은 비이성적 비난일 뿐이다. 반대론자가 선전과 선동의 수단으로 비유를 잘 구사한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논리적으로 비유는 상관적 적합성을 지니면 지닐수록 참일 확률이 높은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도덕 규범이 존재한다. 그러나 구성원이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자기 주장을 계속 고집할 경우, 합리적 해결은 불가능해지고 오직 힘에 의한 역학관계에 의해 종결이 지어진다. 이런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불소화와 관련된 두 집단에게서는 어떤 이기적 동기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명한 해법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또한 불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생태주의자는 종종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나 아나키즘적 사회를 꿈꾼다. 이것은 중요 사안에 대해 구성원간의 합의 도출이 가능할 경우에만 성립한다. 만일 민중이 우매하거나 자기 중심적이어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면, 생태주의 사회는 공염불이다.
플라톤은 민중의 무지와 이기심이 철인 소크라테스마저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됨을 보면서, 도덕적 철인이 통치하는 이상국가를 선택했다. 필자는 권력의 속성이 철인마저 부패시키리라고 본다. 따라서 철인정치를 바람직한 모형으로 보지 않는다. 철학자는 민중으로 하여금 바른길로 가도록 하는 진리의 길잡이 역할만 하면 된다. 수돗물 불소화 문제 해결은 생태주의 사회로 가는 시금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여기서 어렵더라도 합의를 찾아가는 길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것이 그릇된 것일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최고 덕목은 황금률 정신이자 역지사지다. 성서가 말하듯이 남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갖는다면, 서로 순수한 동기를 가졌을 경우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칸트에 의하면, 어떤 행위도 순수한 동기에서 유발된 것일 경우 그것은 결과에 관께 없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다. 다만 이 사안의 경우 결과의 폐해가 크게 우려될 수도 있으므로, 불소화 결과에 따른 이익과 해를 염두에 두는 접근법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수한 동기를 존중하는 선상에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불소화 강행이냐 아니면 전면 제지냐 아니면 또 다른 해법이냐를 검토해야 한다. 나는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수돗물 불소화에 첨가되는 불소화합물이 인공 화학물질이냐 아니면 자연 화학물질이냐를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자연의 흐름에 역행한 인위적 행위는 생태계를 현저하게 왜곡하고 교란시킴으로써 자연적 존재를 병들고 죽게 하며,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인간에게도 질병과 죽음을 드리웠고 또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 방문에서 이것을 염두에 둔 필자는 마지막 방문지인 로스앤젤레스 정수장(LA Aqueduct Filtration Plant)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의 5대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불소화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가 1999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정수장은 이 지역 수돗물의 75%를 공급하는데, 원수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건너편인 모노 호수(Mono Lake)와 오웬스 계곡 호수에서 장장 338마일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수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위도상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옆의 모노 호수에서 출발하여 그랜드캐년과 그 아래 세콰이어 국립공원의 옆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산맥을 넘어 오는데, 본부의 상황판에는 중간 과정의 세부 내용이 점검되고 있었다. 그런데 최초 원수인 모노 호수의 물에 이미 자연적 불소가 함유되어 있었는데, 2001년 5월 11일 당시 상황판에는 0.45ppm이 명시되어 있었다. 정수장은 그렇게 흘러온 원수에 농도를 조금 더 높여서 기준인 0.8ppm에 맞추어서 공급하고 있었다.
불소는 불안정한 원소라서 다른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물을 만나면 불소 음이온으로 독립해서 유리되고, 바로 그것을 재는 것이다. 이때 농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 액체 상태의 불화규산이나 분말인 불화규소나트륨을 사용한다. 그런데 불소는 자연 화합물의 형태로 암석에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암석으로 인산비료를 만들 때 부산물로 발생한다. 물론 부산물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석유 정제할 때와 비슷한 공정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인공적인 것이지만, 자연물질을 쓰고 남은 형태의 것이라면 자연적인 것이다. 구체적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필자가 들어본 바로는 후자 유형에 속하기 때문에 값도 싸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 사람 당 평균 비용은 일년에 0.5달러 든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600원이면 된다. 음모를 꾸미기에는 너무 적은 돈이고, 또한 비료를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
생태주의자로서 필자가 주안점을 둔 불소의 자연물질 여부는 불소의 독립적 불안정성 때문에 다소 혼란을 초래하지만 자연물질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에서 보듯이 반대론자 안혜원 교수도 한국인이 흔히 마시는 차 중의 불소 농도를 재서 발표한 바 있다.
차중의 불소 농도
감잎차, 설록차에 각각 0.42 및 0.583ppm이 함유되어 있다. 가장 좋은 물로 알려져서 즐겨 음용되는 설악 오색약수와 경북 달기약수, 충북 초정약수에는 각각 1.3, 1.24, 0.66ppm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 상태의 바다에도 1.2-1.5ppm이 함유되어 있다. 불소 자체가 농도에 관계없이 독성이라면, 우리는 늘 독성물질을 마시며 산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위해로부터 벗어나려면, 자연에 존재하는 독성물질 불소를 모두 제거하는 장치를 설치한 후, 마셔야 한다. 이런 자가당착에서 벗어나려면 자연상태의 불소를 무조건 독성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정도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일부 의사가 비타민C의 만병통치적 효능에 대해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방송에 보도가 나간 이후, 불과 일주일 사이에 약국의 비타민C 제품은 모두 동이 났다고 한다. 물론 비타민C는 필수 영양물질이고, 감기에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것 이외에도 항산화 작용으로 암을 예방하고 효소 활성화와 신진대사 촉진, 철분 흡수, 괴혈증 예방 등등에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한 알에 20㎎ 단위의 포장이 최근에는 1000㎎ 단위로 포장되고 있고, 일부 사람은 하루에 서너개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래 일일 성인 권장량은 70에서 90㎎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펜실바니아대의 블레어 교수는 세계적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기고한 글에서 일일 200㎎ 이상의 지속적 복용은 DNA를 손상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을 형성하는 촉매제로 쓰인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비타민C는 필수 영양물질이면서 암 유발 독성물질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정확히 구분할 때 단순히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정도에 알맞은 비타민C의 복용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정도를 과도하게 넘을 경우 독으로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흔히 약은 정도에 맞으면 약으로 효능을 발휘하지만, 정도를 과도하게 넘어서면 독으로 변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녹차나 약수나 치약에 들어 있는 불소도 정도에 알맞게 복용하거나 양치하면 인간의 치아 우식증 예방에 효능이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독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렇다면 불소나 일부 불소화합물이 자연물질이고 또 정도에 알맞게 복용할 경우, 단기적으로 인체에 별다른 해를 미치지 않으면서 충치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수돗물 불소화에 찬성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추가로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 있고, 더 나아가 수돗물 불소화는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개개인의 자유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문제를 띠기 때문이다.
먼저 불소화를 연구 검토한 대한의사협회는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개인의 자율성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저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찬성론자들은 개인의 선택적 기호를 침해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적 약자들 -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의 경제력이 없는 빈곤계층, 어린이, 노약자 등 - 의 편에 서야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정의란 분배의 정의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적절하게 배분되어야 하고 "그 배분의 원칙은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수돗물 불소화 추진이 정의인 것으로 비춰지게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작은 비용을 들여서 가장 큰 효과를 보게 하는 것은 정의(justice)의 입장이 아니다. 그것은 비용-이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라는 한 방법일 뿐이다. 이 방법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 정신에서 편의상 도출한 한 분석 방법이다. 고전적 공리주의는 한 행위나 정책이 영향받는 최대 다수에게 최대의 행복이나 이익을 줄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한 행위나 정책은 그것이 실시되기 전의 고통 대비 즐거움(또는 불이익 대비 이익)의 총량이 실시된 후에 늘어날 경우, 그것을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승인하다. 따라서 수돗물 불소화 정책이 영향받는 일부 집단에게 별 다른 해 없이 또는 다소간 해를 준다고 하더라도 다수에게 행복과 이익을 준다면, 총량 대비 행복과 이익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국가는 통상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빈번하게 공리주의를 정책 기조로 채택하고, 그 효율적 방법으로 비용-이익 분석을 사용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많은 경우 유용하다.
그러나 고전적 공리주의는 총량에 준해서 도덕적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부정의(injustice)를 낳을 수 있다. 예컨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100인인 작은 집단이 있으며, 이 사회는 공리주의를 도덕 규범과 사회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마을에 우환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눈이 멀 지경이고, 누구는 심장이 나빠져서 이식 수술을 받지 않는 한 곧 죽게 되고, 누구는 신장 이상이고 등등이라고 하자. 이 때 약자인 한 건장한 청년을 희생시켜 다수에게 장기 이식을 시킴으로써 마을 사람 다수에게 행복과 이익을 주는 행위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자. 이런 행위는 공리주의에서 원리적으로 허용되는가? 허용된다. 왜냐하면 소수에게 주는 불이익과 불행에 비해 다수에게 미치는 이익과 행복이 총량 대비로 훨씬 크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이렇게 소수자의 생명과 자유, 건강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부정의를 허용할 수 있다.
정의가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에는 소극적 권리와 적극적 권리 둘이 있다.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s)는 결코 침해를 당해서는 안 되는 것들로서,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다.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s)는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할 것으로서 적절한 식량을 공급받을 권리, 기초교육을 받을 권리, 건강상의 혜택을 입을 권리 등이 포함된다. 수돗물 불소화는 그것이 피해 없는 혜택만을 줄 경우 적극적 권리에 부응하는 것이 되는 반면, 일부 사회 구성원에게 건강상의 위해 가능성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할 소지가 있다면 결코 범해서는 안 되는 소극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정의는 행복 및 불행과 관련된 사회적 자산을 분배할 때 먼저 소극적 권리 그리고 그 다음으로 적극적 권리에 부응하는 형태로 진행하되, 형평에 맞도록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는 일방적으로 특정 집단에게 주로 행복과 이익이 그리고 또 다른 집단에게 주로 불행과 불이익이 초래되는 배분 형태를 부정의하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잡고자 한다.
수돗물 불소화가 전혀 무해하며 오직 이익만을 제공한다면 적극적 권리의 하나를 공급하는 것이 된다. 일부 집단이 자신들에게 좋은데도 전문적 식견이 없어서 거부한다면, 생명의료윤리의 차원에서 온정적 간섭주의가 요청되고, 따라서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의사의 간섭 행위가 허용된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자녀를 위해 다소 간섭해서라도 시행하듯이,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환자가 거부하고 있고 그것의 결여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치명적이라면 불가피한 경우에 온정적 간섭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의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선행의 원칙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면 수돗물 불소화가 영향을 받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입힐 수 있는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된다면, 그것은 소극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제 거의 마지막 쟁점으로 넘어가게 된다. 불소화가 전혀 무해하다면 적극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 의사에 반하더라도 간섭적 형태로 시행될 수 있지만, 소수에게나마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건강 악화로 인한 생명 위협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극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불소는 누구에게도 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불소화 농도가 일정한 정도를 넘지 않는다면 대체로 무해하면서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선다면, 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도에 대해 치의학자 사이에도 편차가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달리 섭취하는 불소량을 감안해서 수돗물 불소화의 적정 기준치를 1.5에서 2.0ppm으로 잡기도 하고, 또 1936년에 불소와 치아 우식증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닥터 딘과 그의 동료들은 1.0ppm을 상향선으로 잡았다. 여기서 김종철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것은 몸 속에 들어온 불소의 50%가 보통 체내에 잔류·축적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최소한 뼈 골절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반대론자가 제기했고 또 찬성론자도 승인한 대목이다. 대다수가 치과의사여서 추진론으로 기운 수돗물불소화논쟁검토위원회도 불소화가 "골절을 유발시키는 일반적인 위험요인과의 상호작용, 총 불소폭로량 등에 따라서 인구집단 별로는 실제로 골절이 증가할 수 있는 생물학적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는 반증주의에 입각해서 불소화에 대한 반대론의 논거가 일리가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부 견해가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름을 지적했다. 비록 이것이 일부 반대론의 견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대론의 견해 모두가 그릇된 것임을 뜻하는 것이 아님도 분명히 했다. 왜냐하면 반대론의 견해 가운데 일부 의견은 존중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학자 존 애쉬턴과 존 로라는 『진보의 위험』이란 저술에서 사람의 생활 양태에 따라서 불소 섭취량이 권장치의 4-6배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자칫 인간의 세포와 신체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는 혈중 불소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녹차를 많이 마시는 사람, 불소 함유 식품을 많이 복용하는 사람들에게 수돗물 불소화가 끼칠 잠재적 악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불소 섭취는 안전 문턱을 넘어 위험 단계로 돌입하는 독이 된다.
비타민C에 대한 연구가 수백년 전부터 있어서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이라고 했지만, 문턱을 넘어서는 어느 순간 암을 유발하는 데 관여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다. 어떤 과학자도 잠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어도 근원적으로 장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소도 어느 정도 충치 예방의 약으로 기능하겠지만, 어느 순간 독으로 변모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아는 한, 불소나 염소, 브롬, 요오드 등은 할로겐원소로서 반응성이 매우 뛰어나다. 구체적으로 불소나 염소는 음이온 상태의 원자로서 다른 양이온 물질과 결합하여 새로운 분자구조를 구성하는 강력한 성향을 갖는다. 예컨대 염소 결합물 가운데 하나가 독성을 띤 클로르포름(CHCL3)인데, 발암성을 띤 트로할로메탄 계열에 속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불소 자체를 발암물질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연이든 인체든 결합 과정에서 염소 음이온(Cl) 대신 불소 음이온(F)이 차지하고 들어가 암을 유발하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미래를 우려하는 대목에 이르러 과학과 세계를 보는 시각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산업사회와 과학기술이 초래한 지금의 문명을 바라보면서, 현 문명을 비판적으로 보는 생태주의자라면 늘 신중하고 우려하는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필자가 취하는 이런 입장에서는 수돗물 불소화가 인간의 소극적 권리를 침해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즉 그것이 축적된 형태로 체내에서 잔류하면서 골절을 비롯하여 다양한 건강상의 위해 요인이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생명에 위협을 주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될 인간의 생명에 대한 소극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가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한 근본 동기도 바로 이런 것을 우려해서이다. 결국 무차별적 수돗물 불소화는 인간의 소극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환경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생태주의자로서 불소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현실화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현실화할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란이 분분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경우 자연과 세계를 보는 시각 차이가 노출된다. 즉 이런 단계에서 세계관과 가치관의 차이가 노출된다. 과학자는 통상 과학적 성과가 인간에게 혜택을 주는 다수의 증거가 포착되고 그리고 단기적으로 해를 입히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으면 무해하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생태주의자는 인간의 인위적 행위가 필경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형태로 나타나서 인간과 자연적 존재를 병들고 죽게 하는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본다. 생태주의자가 유전자 조작을 일삼는 생명공학을 우려하는 이유는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이 인간이 자연적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를 지속화할 때 그것이 재앙을 초래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불소 화합물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해도 결코 안심할 일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적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탄소 화합물을 인간이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자연의 흐름을 왜곡하여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석유와 석탄의 과다 소비는 온실가스 과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 등 각종 재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각 등에 함유된 불소 화합물이 수돗물 불소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과다하게 자연에 노출될 경우 그것이 장기적으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과도한 수돗물 불소화가 장기적으로 환경적 안전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환경정의에 위배된다고 본다.
일반적 환경주의자는 수돗물 불소화 반대라는 지점에 머무르기 쉽다. 이런 경우,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치아가 부식되고 또 충치를 앓게 되었지만 치과에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회정의는 또한 우리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누구나 최소한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적극적 권리에 부응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정의의 입장을 취할 때, 우리는 저소득층의 아동이 충치로 인한 고통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도주의의 실현이다. 이제 우리는 정의로부터 아동의 충치 예방 요구에 적극 부응하라고 요구를 받게 된다. 이것은 건치가 부응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선의 현실적 해법이자 대안은 인간의 소극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무차별적인 수돗물 불소화를 실시하지 않으면서도, 적정 정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아동의 충치 예방에 적극 부응하는 불소화 방도를 찾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불소화도 인체에 위험하다는 신빙성 있는 조사가 나온다면 당연히 불소화 자체를 금지시켜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한 현 시점에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소극적 권리에 근거하여 국민 각자의 건강 자율성을 지키도록 하는 선상에서 사회적 약자의 적극적 권리, 즉 아동의 치아 고통 예방에 부응하는 형태가 된다. 물론 각급 학교에서 아동의 충치 예방을 위한 구강보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선상에서 필자는 유럽과 남미 일각에서 실시하고 있는 소금 불소화법을 제한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일반 소금과 불소화 소금을 구분하여 불소화 소금이 저소득층에게 무상으로 공급되거나 시장에서 유통비만 받고 저렴하게 팔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병행해서 저소득층에게는 불소치약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보건의료 체계도 갖추도록 한다. 물론 소금 불소화에 따른 비용과 불소치약 무상 배급, 그리고 학교의 구강보건 체계 구축에 드는 비용은 사회가 복지체계를 구축하여 공적으로 감당토록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건치의 본래 목표가 수돗물 불소화가 아닌 국민건강 증진과 예방이었던 만큼, 그 본래 목표에 부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많은 환경주의자가 우려하는 무차별 불소화에 따른 만일의 피해를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끝으로 필자는 열린 자세로 문제에 임하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는 어떤 비판도 수용할 것이고, 그에 따라 나의 의견은 변화된 정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도 밝힌다. 다만 염려되는 점은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무리 비판적 안목으로 보았다고 하더라도 불소화에 유리한 현장 조사만을 다녀오고, 그 반대론자가 제시하는 현장 상황을 살피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은 다소간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배운 것처럼, 오직 진리와 진실의 눈으로 보겠다는 것을 다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