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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성숙의 길로 접어들고 포도원의 청포도는 어김 없이 익어가는 7월은 분명 열기와 습도가 가득한 달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금년 장마는 마른 장마가 지속되면서 한반도 중심인 서울지방과 그 부근은 메마른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장맛비는 변죽만 울리고 전선마저 형성이 되지 않는 지금은 7월 같지 않은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7월에 출행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님니다. 절기가 우기중심인 관계로 언제 어디서 퍼붓게될지 모르는 장맛비는 출행자들에게는 경계 대상입니다. 불안한 대기의 영향으로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퍼붓는 폭우성 여름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7월이 시작되는 시간부터 기상도를 염탐하고 기압배치에 대하여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우리들이 잡아 놓은 여정 곳곳 일기를 살펴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다시 챙긴 기상정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경기 안성 일죽면 오전9시 ~ 12시 사이 비올 확률 50%, 강수량 5 -40 mm 그리고 걸음 여행을 할 충북 괴산 화양계곡 오전9~11시 가끔 비를 뿌리다 갬 그리고 12시부터 잔득흐림, 이런 일기를 확인한 후 마음이 놓였습니다. 백펙과 돋자리를 넣은 작은 손가방을 챙긴 후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 새롭게 만날 박종호기사와 약속을 한 시간은 오전 8시10분. 처음 조우인데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예의상.... 도착한 시간은 7시45분경. 상가 지하 밴치에 잠시 앉아 있다. 지상으로 오른 시간은 정각8시 그리고 잠시 오늘 함께 할 노란버스와 박종호기사와 조우 한 후부터 걸음여행을 함께 할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청한 32명의 회원들이 모이자 죽산성지로 출발하였습니다. 한 때는 충청도 땅이었다가 다시 경기도로 고려시대에는 죽주라 불렸으며 고려시대 고종때 침공한 몽고족은 삼남에서 올라 올 관군과 의병들의 한양진입을 막기 위하여 죽주에 몽고군은 진지를 세웁니다. 충청, 전남, 경상, 강원도롤 연결되는 교통 요충지인 죽주는 매우 군사전력 요충지였습니다. 유리한 지형을 갖고 쌓아 놓은 죽주성은 몽고군에게 쉽게 함락되지 않습니다. 결국 패퇴한 몽고군 진지가 조선후기에 발생한 천주교박해로 발생된 수많은 순교자들의 처형지가 됩니다. 이진터 한문으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夷 陣地 오랑케군이 막사를 만들었던 땅이라는 뜻이지요. 당시 쇄국정치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대원군은 프랑스와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프랑스선교사들이 죽음을 당하고 강화도 사고를 프랑스군은 강탈을 하고 덩달아 많은 조선인 신자들도 붙잡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한 곡절이 있었지만 북경교구 관활이던 조선은 조선교구가 설치된는 기회가 오므로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사제들을 맡이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 선교사들도 잡혀 갖은 심문과 고문의 과정을 거친 후 순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한 박해의 그늘을 이 죽산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도호부가 있었던 이곳에는 커다란 관청이 있었습니다. 도호부란 당나라 때 만든 행정기관으로서 침략하여 빼았은 땅에 설치한 이 민족을 다스리는 기관이었습니다. 중국은 한 때 평양에 도호부를 설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에 들어서 한양을 지키는 위성보호적 성격인 관청으로 변하게 됩니다. 죽산의 도호부 자리는 지금 죽산 면사무소 자리입니다. 성지에서 약 3-4k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으로 잡혀온 천주학쟁이들은 악형을 받은 후 이곳으로 끌려와 처형을 받게 됩니다. 밝혀진 순교자는 25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순교자 약 200위 가량이 합장되어 있는 곳이 바로 죽산 성지입니다. 외졌던 이곳을 1998년경 도로확장이 되고부터 성지는 비약적인 규모로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순례하던 19일도 많은 인부들과 중장비가 동원되어 종교시설과 조경과 관련된 공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함께하다 보면 소조로 잘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어 단체사진 촬영 후 가난, 겸손, 평화의 셋팀으로 나누었습니다.
가난 팀입니다.
겸손 팀이고요.
평화의 팀입니다.
작은자의 몫 순례 단장 세베리노도 평화의 팀으로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분류 후 잠시 안내판 앞에 모여 성지와 관련된 내용을 설명 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죽산 성지는 천진암을 개발하고 있고 경기지방 일대에 아름다운 성지를 만든 수원교구 소속입니다. 설명을 마친 후 성지중심에 있는 무명순교자 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죽산성지의 특징은 광활함에 있습니다. 일 죽과 죽산 사이에는 광활한 평야가 잘 발달하여 고려 시대에 이곳을 이용하여 진지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평지에서 죽 주성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사방을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이라 진지로서 좋은 조건인 곳입니다. 중앙 입구에 설치된 솟을대문 그리고 양옆으로 장미를 심어 로사리오 기도처를 만들고 그 안부에 광활한 잔디를 조성한 후 계단을 만들어 그 단 위에 25위 순교자와 200여 명의 무명 순교자 합장묘를 설치하였습니다. 솟을대문은 순교자들의 지고지순한 신앙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신앙심을 순례자들은 기억하라고 곧고 긴 중앙의 길을 걸어 순교자들 묘역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커다란 화강석을 깎아 만든 돌 묵주 끝에 매달린 십자가 형태가 바로 성지 중앙에 모신 순교자 묘역입니다. 작은 자의 몫 순례단은 조촐한 제물을 준비하고 겸양 되고 섬기는 마음으로 순교자들 묘역을 참례를 늘 준비하는 순례단입니다. 오늘도 조촐한 제물을 올리고 참례를 시작하였습니다.
봉분에 자란 푸른잔듸 그넘어로 보이는 순례자들의 모습과 성지중앙 길과 숲에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배향을 한 후 성가와 기도로서 순례자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함께 절로서 참례의식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마침 아름다운 나리꽃이 무명순교자 묘역 뒤에 피어 있어 찍어 무영순교자 묘역에 받치겠습니다. 주님께서 보시어 이들의 아름다운 순교정신을 사랑하신다면 저희들이 본받아 겸손하고 가난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참례를 마친 후 계단에 모였습니다.
평화의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참례를 마친 후 11시에 있을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소성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오늘은 미사는 소성당에서...
해학이 깃든 강론과 그 속에 숨어 있는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이철수 성지 주임신부님께서는 꺾인 갈대를 꺾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불꽃에 숨이 깃들 수 있도록 숨을 넣어 살려 주고. 그리고 죽산성지 이름을 빌려 죽어야 산다는 의미 전달로 자신을 언제나 겸손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언제나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로서 신부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미사봉헌을 마친 일행은 발길을 성지 중앙 대문 앞 그늘막에 모여 앉았습니다. 될 수 있으면 도시락을 준비하라 하는 뜻이 있습니다. 매식하면 간편하고 번거로운 도시락 싸는 일도 없어 좋겠지만 각자 만들어 온 밥과 찬을 앞에 놓고 정담을 나누며 먹는 일이 바로 친교의 마당입니다. 자신은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는 찬에 대하여 이웃에게 정보를 얻기도 하고 서로서로 조금씩 나눔 하며 먹는 점심 안에는 배려와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얼마나 다정하고 평화로운 모습입니까!! 좁은 식당에 앉아 주인이 직업적으로 내주는 음식을 급하게 들고 일어서야 하는 환경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자연 안에서 나 스스로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연출하는 자연의 모습이 좋으신지요. 도시락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성지에 핀 아름다운 백합과의 원추리 꽃입니다. 여름꽃의 대표적인 꽃입니다. 여러 종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서양에서 백합이라 부르는 꽃은 우리나라 6.25동란에 참석했던 외국병사 (네델란드)가 나리꽃을 갖고 나가 개량하여 만든 꽃입니다. 백합의 어머니는 우리나라 나리꽃입니다. 점심을 마친 후 걸음여행을 할 곳인 화양구곡으로 떠났습니다.
화양구곡에 있는 암서재입니다. 죽산성지 참례 후 걸음여행지를 화양구곡으로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은 선비(士)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였습니다. 선비란? 지식이 있고 어진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신분적으로 선비를 이야기할 때 대부(大夫) 붙여 사대부(士大夫))라 불렀으며 인격적으로는 군자(君子)를 붙여 사군자(士君子)라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양반과 상반으로 구분되던 사회였기에 하는 직종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하던 계급사회였습니다. 농업, 상업, 공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각자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에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각자 자신의 몫으로 살아갔지만, 선비의 정신을 망각한 무리는 정계에 입문한 뒤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따라 당을 만들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봉사적 관료가 되기보다는 붕당정치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 의식이 있는 지식인들은 뼈저린 자기 성찰과 함께 실학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며 대오각성을 하기 시작합니다. 실학이란 유교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유교 안에서 뼈저린 반성의 결과에서 얻어진 양심 있는 선비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그 선두에 반계 유형원이 씨앗을 뿌렸다면 뿌리를 굳건하게 내리고 싹을 키운 이는 바로 성호 이익입니다. 안산 출신인 이익은 부근에 있던 호수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사용하며 실학의 거두로서 후학들 이끄는 선봉이 됩니다. 이때부터 성호 학파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성호 이익의 다음과 같은 사상에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붕당이란 이(利)를 욕구하는 데에 시작된다. 이(利)가 하나고 사람이 둘이면 당이 두 개 생기고, 이가 하나고 사람이 넷이면 바로 당이 네 개가 되는 것이다. 이들에 이해가 절실하면 당은 뿌리가 깊어지고 이해관계를 지속하면 당의 결합이 공고하게 되는 것은 필연의 형세이다”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노예제도를 없애버려 농업생산 인구를 늘리고 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정치가들에게도 직접 생산에 참여시켜야 한다.
동사강목의 저자인 사학 안정복, 천문 황운대, 지리 윤동욱, 경학 권철신, 경학, 사학 이가환, 지리 택리지 저자 이중환 등등이 이익의 제자가 되지만 서학의 해석과 받아들이는 생각에 따라 안정복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와 권철신 중심의 진보파로 갈리지만, 경세치용의 사상은 이가 환과 이승훈을 통하여 정약종 형제들에게 전해져 더욱더 발전하게 이루며 특히 권철신 서학을 받아들여 천주학에 대한 강학을 열고 철저한 신자가 되며 천주의 씨앗을 내리는 첨병이 된다. 실학을 통하여 개혁하려는 고뇌에 찬 선비들이 있었던 반면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며 국수적 보수로서 붕당정치에 열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자신이 주자가 되고 싶었던 우암 송시열은 자신의 성 뒤에 자를 붙여 송자라 불리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을 보던 그는 낙향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청을 거부하며 북벌을 효종과 함께 꿈꾸던 우암은 세상을 등지고 화양동으로 들어와 아홉 개의 바위에 이름 달아 줍니다. 그 이후로 화양구곡은 송시열의 서재가 되어 많은 책을 저술하고 후학들을 양성하는 서원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숙종에 의하여 세자책봉의 문제로 귀양 가 다시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됩니다. 그러나 그 후학들은 유교를 위한 순교라 보고 더더욱 존경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우암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조선 시대 후반 북경으로부터 흘러들어 온 새로운 문명에 대한 정보와 서학은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사대부들이 받아들이면서 개혁과 관련된 저술에 몰입하여 수많은 양성을 만듭니다. 조선 시대 내내 이끌어 온 왕권과 사대부들의 정권유지를 위한 붕당정치의 폐해는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고 개혁의 기회를 놓친 조선의 체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유교 안에서 실학을 태동시키며 개혁을 하고자 노력했던 사람 중에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과감하게 사랑과 평등이란 천주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정치상황마다 박해는 일어나고 그 여파가 수많은 상놈 신분이었던 사람들을 순교의 길로 나서게 한 것입니다. 의식이 있는 사대부들도 천주의 길로 나섰지만 대부분 백성의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보수와 개혁이란 의미를 되새기고자 개혁의 소산이었던 성지순례 후 스스로 주자가 되고 싶었던 유교의 거대한 사상가였던 우암이 은거하던 화양구곡을 찾게 된 것입니다.
화양구곡에 도착한 회원들은 걸음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옛길에 심어진 느티나무 곁을 지나며 세월의 풍상을 경험하고 이름에 걸맞은 암석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 속으로 물 흐르듯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람, 물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짖는 소리와 무겁게 내려앉은 여름 구름 사이로 보이는 화양구곡은 다 아름다웠습니다. 첨성대 바위 앞에서 걸음여행자들을 두 조로 편성하였습니다. 계곡 걸음여행자들과 산 걸음여행자로 나눈 후 각자의 걸음여행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계곡은 총무님께서 산은 세베리노가 안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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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바위가 서 있는 출발점은 암반으로 이어져 있어 철 구조물로 계단을 만들어 길은 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은 철계단 오름부터 산행은 시작되게 됩니다. 가파름이 깊어 오르기 부담스러운 곳입니다. 그러나 시작에 그런 과정을 경험하게 되면 오히려 다음이 쉬워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은 걷기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숲길입니다. 그러다 다시 또 두 번의 막바지 철계단 길 그리고 올라서면 도명산 사방이 호쾌하게 다가옵니다. 속리산이 근거리에 있고 문경새재가 지척에 보이고 선유동계곡도 보입니다.
사표가 되시는 두 자매님의 끈기와 의지는 감탄스럽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며 격려와 배려로 응원해 주신 모니카 자매님과 파스칼 세례자요한 형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꾸 신경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선두 일행을 보낸 후 기다리다 다시 조우하고 살피다. 탄복하며 다시 나가다.. 다시 조심스럽게 살피다 다시 나가고... 감탄하고..
가파른 철계단을 과감하게 오르시는 자매님!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도미나 자매님도 정상에 오르셨습니다. 대단한 끈기 감탄으로 박수와 함께 마중해 드렸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그리고 다 함께 정상, 인증 사진을 찍은 후 하산을. 그리고 옛적 암자와 석굴, 불상이 있던 약수로 모두 갈증을 해소한 후 여름철마다 나타나는 스콜이 30분간 퍼부었습니다. 시원한 물줄기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 수였습니다. 피부에 닿는 청량감과 시원한 소나기가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는 너무 근사한 음악적 화음이었습니다. 빗줄기의 리듬을 타고 내려선 학소대, 운해가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청학의 날갯짓처럼 만들어 놓은 다리 상판에 서서 인원을 점검하니 시작 걸음과 같음을 확인한 후 다시 걸음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8곡, 7곡, 6곡, 5곡. 4곡, 순으로 짚어가며 걸음여행에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총무님과 연락하여 모두 하산을 알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부탁하였습니다. 다슬깃국으로 걸음여행 여독을 풀고 아주 늦은 시간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함께 신앙적 기쁨과 걸음여행의 아름다운 행복을 공유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파천으로 이어지는 학소대의 비온 후 풍광 ....
첫댓글 즐거웠던 걸음여행이였습니다. 걸으면서 소나기를 만나는 선물 산행도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무사히 평화를 누리며 하행했음에 모두모두 기쁨에 찬 귀가가 되었읍니다. 다음 번개는 평일날이나 토요일에 잡아주시는거겠죠. 기대하겠습니다. 길잡이님. 감사합니다. ^.^
귀가의 길이 머언 동선이라 늘 신경이 쓰이는 자매님이십니다. 잘 들어 가셨는지요? 다들 종종걸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성지미사 시간이 9-10시경이면 딱좋은데... 참 아쉬운 시간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21 11:1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22 17:25
혼자라면 꿈도 못 꿀 그 아름다운 산의 정상, 도명산 해발 643m
유난히도 훤하고 번듯하게 잘생긴 바위와 멋지게 뻗어나간 소나무 곡선이 어우러진
그림 속을 드나드는 느낌으로 오르면서도 "참 좋다,참 멋있다" 를 소리내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먼저 길을 내신< 걸음여행> 단장님
고맙습니다. 꾸벅~~~
죽산성지 이철수 신부님 편안한 가운데 작은자의 몫 순레 팀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웃음가득하신 강론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화양구곡 걸음여행에 참석한 우리모두 행복한 시간 이였습니다
끝까지 산 걸음여행에 참석하신 형님들 멋찌십니다
안 쌤님 감사합니다.....
요번에도 수고 많이하신 총무님~~ 꾸벅입니다. 감사하다며 화양구곡에서 인사를 보내 왔습니다. ㅎㅎㅎ
위에 주황색꽃은 나리꽃이아니고요 원추리꽃이랍니다 이 여름에 원추리꽃이 아주예뻐요 여러분들께 걱정끼친점 죄송스러웠습니다 다행이 아무렇지않게 멀정해졌어요 다음에는완벽하게 준비해서 실수가 없도록해야죠 열심히 참여할게요 좀 힘들었지만 좋았습닉다 감사합니다
건강 괜찮으시다니 다행이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추리꽃 맞습니다.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를 만나도 즐겁기만 한 산행이었습니다. 계곡팀은 산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무사히 다녀오시길 기도했다하니 산행 팀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계곡 팀은 심심해서 어찌했나 걱정 했다며... 배려해서 행복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심심함을 족욕으로 산수를 즐기며 보내셨다면서요 ~~~ 모두들 행복하셨다니 인솔자도 행복합니다..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