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한국시간 8시경)에 연극을 보고 나서는, 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국 문화 센터가 이 동네(카자흐스탄 내, 알마티)에 있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고, 그곳에서 고려인들이 모여, 각종 행사를 하곤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연극을 상연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5시에 공연이 있다는 정보를 가리나 아주머니(오피스텔의 주방 아주머니)로부터 입수한 뒤로 우리는 혹시 이 연극에서 그렇게 아주머니가 자랑하는 카자흐스탄의 재능있는 가수이자 그녀의 딸인 블라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연장에 들렸다. 나까지 3인이 전부인 파견 직원들은 어차피 이 러시아화 되고, 카작화된 고려인들이 설마 한국어로 능숙하고 작품성 있는 공연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반쯤 기대를 접어놓고 센터에 들어섰다.
*고려인들의 자치적 공로 치하
고려인들의 단합하는 힘은 어딜가나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날 행사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고려인들이었다. 약 20%가 카작인이나 러시아인이었고, 유감스럽지만, 한국인은 어쩐지 우리 셋뿐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한국인과 고려인은 약간 이질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번 확인한 일례였다. LG가 후원하는 행사임에도, LG 상사측의 직원들은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
첫 무대는 이 고려인 사회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거나 특별한 일을 한 고려인에게 상패를 수여하는 무대였다. 사회자 및 수여자 모두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가운데, 조금씩 알아듣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 그래 난 진도를 제대로 나가고 있어...'라는 위안이 밀려들어왔다.
그렇다면, 연극도 노어로 진행될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조선말반+한국어반+러시아어 약간의 연극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무너뜨리기라도 하는듯이 연극은 조선말반+한국어반+러시아어 약간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연극에 대한 감상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연극 설명에 앞서 몇가지 배경지식
1. 고려인들은,특히 2세 이후,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우리말에 상당히 서투르다. 한국어 능력 평가 시험이 이곳에서는 진행되고 있다. 3급에 합격되면, 한국에서 3년 동안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2. 조선말 교재가 한국어 교재보다 먼저 보급되고, 더 많이 교육되었기 때문에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대사는 조선어의 말투를 채용하는 가운데 한국어의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무대는 상당히 넓고, 세종문화회관 별관의 3분의 1정도의 크기이다. 공연 환경 자체가 좋다. 4. 카자흐스탄은 17세부터 결혼 적령기가 시작된다. 5. 카자흐스탄 내의 이혼율은 높은 편이다. 40% 이상 6. 카자흐스탄은 유럽과 동일하게 만 나이를 적용한다.
* 신선한 무대의 시작...
연극의 제목이 무엇이었는가는...죄송하다...제목을 읽어볼 새도 없이 20분 늦게 공연장에 도착하여, 혼잡속에서 공연장을 벗어났기 때문에 기억해낼 수가 없다.
연극이 시작되기 직전 관객석 이곳 저곳에서 아이들이 지루함을 참지 못해 움직이는양 무대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무대가 들어서고 막이 올랐는데도 관객석을 비추는 등이 꺼지지 않아..아, 이곳의 공연장치는 참으로 열악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때...
아이들이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앉는 것과 동시에 관객석이 암전되고, 스포트 라이트가 관객석 위로 비추이다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쏘면서 지나갔다. 놀랄새도 없이, 공연이 바로 시작됨과 동시에 일련의 음향과 함께 "마-마(mama), 마-마(mama)..." 라는 러시아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흩어진 아이들이 관객석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관객석 복도를 따라 무대로 뛰어간다. 순식간에 관객들의 주의는 성가시게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아이들과 함께 무대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석 중앙에 파리하게 생긴 까까머리의 자그마한 아이가 그 아이들로부터 뒤떨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무대를 향해 천천히 뛰어올라간다. 무대 위쪽에 붙어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사진을 스포트 라이트가 조명하면서, 그 아이가 무대 위에서 멈춘 순간, 한 점으로 집중된다. 아이는 파리한 모습으로 잠시 관객을 쳐다보다가 무대 안쪽 출구로 사라져버린다.
*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서...
고려인 니나는 16세에 군대에 간 연인 례냐를 배반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뒤 집에서 쫓겨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뒤 외국으로 도피하였다가 17년만에 돌아온 여자이다. 그녀가 성공의 와중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커다란 부분인 아이를 찾아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다는 스토리는 마치, 고도산업화의 와중에서 잃어버려선 안 될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뒤에 다시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나"와 "인간"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나의 관심을 자극한다.
* 아이를 찾는데 걸림이 되는 장애물
고려인 남자인 례냐는 완전히 그녀를 무시하고, 직장 일을 핑계로 사라진다. 고아원 원장은 그녀를 사납게 꾸짖으며,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치지 않는 것이 그녀의 도리라며, 아이의 행방을 찾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아이는 례냐가 양육하여 지금까지 키워온 상황이며, 아이의 이름은 알리야, 귀엽고 참한 아름다운 16세의 처녀인 상황이다.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 약간 천편일률적인 스토리에 양념이 되는 인물들
작고 통통튀는 할머니, 니나의 조력/조언자로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디스코 음악에 몸을 흔드는 장면등을 보여주면서 위트있는 이야기를 아끼지 않는 인물로 등장한다. 례냐 집안의 막내 아들, 러시아어반 조선말 반을 쓰면서 하이톤의 음색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종횡무진하면서, 알리야와 알리야의 구혼자인 키큰 청년을 놀려댄다. 카작인인 키큰 청년 구혼자, 17세의 나이로 고아이다. 16세의 알리야에게 청혼하기로 맘먹으나, 조선말에 서투르다는 사실 때문에 할머니에게 구혼의 말을 받아적고, 례냐의 집으로 뛰어들어 당돌하게 청혼을 한다.
* 헤피엔딩인가? 아닌가?
감정의 굴곡이 처연하게 다가오지만, 아이를 찾는 니나의 모습은 집요하고 강렬하다. 지난 시절의 한국적 사고방식이나 멜로드라마 스토리는 이 부류의 연극에서 과장된 헤피엔드나 지나치게 가슴이 뭉클한 아픔을 선사했었던 것에 반해, 이 연극은 색다른 클라이맥스와 결론을 선사할 준비를 이미 마치고 있었다.
알리야에게 밤을 새워 만든 드레스와 구두를 선사하고, 례냐의 집에 들어선 니나는 례냐를 붙잡고, 알리야와 함께 집을 나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고, 적극적으로 달려든다(끌어안는다). 례냐의 아내는 그런 그들을 목격하고선, 례냐와 니나를 냉엄하게 공격하다가 "기른정"을 내세워서, 그리고 16년간 "마마"로 불리웠음을 강조하며, 례냐와 니나가 둘다 집 밖으로 나가는 대신 자신에게서 "알리야"는 데려갈 수 없다고 당당히 맞선다. 파국은 점점 커져, 례냐는 절대로 알리야를 포기할 수 없음을 내세워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때, 내내 광대 역할을 수행해주었던 할머니와 막내 아들, 카작인인 키큰 구혼자가 등장한다.
* 결국은 광대가 문제를 해결하는가?
키큰 구혼자는 조선어를 적은 쪽지를 들고 자신이 비록 고아이나, 알리야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임을 "읽어내리다가" 막내 동생으로부터 "제가 하는 조선어는 우리 집안 식구들 모두 알아듣지 못한다"라고 쫑코를 먹고도, 끈질기게 군대에 가기 전에 확실히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러시아어로 말한다.
이순간 니나는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밝히면서, 그 아이의 엄마로서 지금 결혼한다는 것은 너무 이르다라는 말을 하고,이에 례냐의 아내도 동의한다.
그러나 례냐의 남편은 어느새 젊은이의 순수한 애정에 동의하게 되고, 알리야 역시 자신이 결혼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다.
기른 정이고, 키운 정이고 자신의 거취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이다 "내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가족들은 동의하며 니나는 집밖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 카자흐스탄의 현실을 한껏 반영
인생의 선택권은 결국 자기가 쥔다. 이것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회적 진리이다. 젊어 마리화나를 피웠든, 연애를 했든, 결혼을 하든 그것은 본인의 의사이고 선택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해로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게 누구에게 따로 달려있어서 그걸 따라야만 할뿐이라면, 그게 처음부터 자기 인생이 맞단 말인가?
연애의 문제에 이른다면, 사람이 온 평생을 기울여 오직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란 사실상, 단 하나인 첫사랑일뿐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자신이 책임지는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그는 첫사랑 다음에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라는 공식에 이르게 되고, 사랑 그 자체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은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조혼의 풍습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편의적으로 구성한 현대사회의 위악내지는 위선을 한꺼플 걷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연극의 또 하나의 미덕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무료 연극은 사회적 현실을 향해 뛰어들고 있다.
결국 니나는 자신의 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일자리가 있는 나라로 돌아가려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자신을 움직여 나갈지 알 수 없다라는 괴로움을 할머니에게 토로한다. 그때 례냐의 가족들이 마지막 송별의 인사를 나누러 공항에 온다. 눈물 겨운 마지막 포옹..."니나 아줌마, 우리 둘이 의논해서 결혼은 몇년 더 기다리기로 했어요..."그리고 마지막 아쉬운 인사...떠나려는 순간,
시그널 뮤직이었던 "마-마...마-마..."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다시 무대 앞으로 어느새 관객석에 흩어져 있었던 아이들이 모여들고, 파리한 모습의 러시아 아이에게 스포트 라이트가 비추어진다...그리고 잠시 모든 것이 스톱모션으로 멈추어있다가...그녀가 깨달은 듯이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가 러시아 아이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아이를 껴안는다.
아이를 낳는 의미, 키우는 의미에 목마른 그녀에게 있어서 남을 수 있는 최후의 대안...그것은 다른 아이...자신이 버렸던 아이처럼 버려진 아이에게 사랑받는 기쁨을 돌려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고려인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이미 배제되어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공연장에서는 이미 사라진 문화적 행위,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에 어느덧 나도 한명으로 끼워져 있었다. 언어를 넘어서서, 러시아인도, 카작인도, 고려인도, 한국인도 함께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 연극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인가?
결국 민족간의 혼합. 카작인 구혼자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양자를 받아들이는 고려인이 출연하고 고려인이 만든 이 연극의 세계는, 고려인들의 깨달음을...세계에 대한 각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율이 높고, 버려진 아이들이 많은 사회 현실을 타개하는 모습에 예시인 것이다. 결국 고려인이 이 카작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대안은 남달리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감이라는 그 자체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의 고려인은 남다르게 성장하였고, 보다 각성된 자신의 세계관을 우리 한국인과는 또다르게 확장시켜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또다른 변종의 세계 속에서...나의 것을 찾고 싶다라는 생각을 다시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