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진항)-하조대(2009년 8월 28-29)
기차 여행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어딘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아직도 설렌다. 기차 시설이 매우 현대적이라 정각 정시에 청량리를 출발했다.
cafe 시설 칸에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젊은 처녀 총각들은 맥주 캔을 비우며 즐거워했으며, 나이 좀 드신 분들은 창가 간이 의자에 앉아 사위 어두운 밖 풍경에 눈을 두고 있는데 기차는 철커덩 팔당댐을 지난다.
점점들 마음이 부드러워졌는지 자신들의 말소리에 진실이 묻어난다. 한 동네 사람들인지 누나 동생하며 일 하는 곳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소주잔을 비우며 애환을 달래고 있다. 옆에는 과자 한 봉지를 무던히 먹으며 남자 친구와의 오늘 소원한 감정을 달래는지 연신 핸드폰에 열중이다.
내 옆에는 6살 꼬마소녀가 난간을 잡고 제주를 피운다. 기차가 양평을 지나자 제법 승객들이 내리고 차안이 한가해졌으나 빛이 없는 어둠 속으로 내 몸은 달려간다. 알밤 한 봉지에 꼬마 소녀의 성명도 알아보고 아빠랑 산에 많이 가는지 등산 배낭에 익숙하다.
원주에서 소녀도 내리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좌석에 가 눈을 붙인다. 들 뜬 승객 몇은 계속 이 밤을 즐기는데 열차는 태백을 갈지자로 넘고 있다.
언뜻 잠이 들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정동진역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젊은 쌍들은 그것을 즐기며 뿔뿔이 흩어진다. 새벽 4시 50분에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이 종착역인 강릉역에 도착했다. 공선생도 기지개를 편다. 피곤한 몸이 비로 정신이 들어 우리는 택시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6시 30분 속초행 버스에 몇이 올랐다. 비에 젖은 도로가 휙휙 지나갔으며 우리도 서서히 생기를 찾아갔다.
사진항 입구에서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일회용 비옷 하나 입고 한가한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맨해튼 월가의 황소를 누가 또 이곳에 갔다 놨는지 도로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좁은 길목을 나오니 떼배가 기다린다. 200원에 스스로 철줄을 당겨 넘어간다. 북한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 마을 입구에 송혜교 영화 포스터가 주위를 환하게 만들고 있다. 다천 식당에 들러 국밥 한 그릇에 허기를 채운다. 첫 손님인지 주인 할머니의 상냥한 목소리가 듣기 좋다. 소주 반주가 비에 잘도 넘어간다.
청호 대교를 바라보며 방파제 위를 걸어간다. 좌로는 성난 파도가 요동을 치는데 우로는 납작 엎드린 집들이 비에 조용하다. 오늘은 얼마만큼 걸어야 하나, 하지만 우린 떠든다. 아마도 일 년치를 오늘 다 떠들 것 같다.
속초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는 춤을 추나 백사장은 텅 비어있다. 그 많은 해수욕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열했던 태양과 젊음 그리고 바닷가를 걸으며 맹세한 사연들은 바닷물에 지워지고 지금 가랑비만 내린다. 바다는 말없이 두 나그네를 달랜다. 그저 주저앉아 바람 바다를 바라보니 갈 길이 멀다.
외옹치항을 지나며 연신 카메라를 누르는 공선생의 표정이 우습다. 소풍 나온 초등학생 마냥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주말 오전의 대포항은 비로 썰렁하다. 우리를 호객하나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수많은 항구에서 정보를 얻었기에 그들의 교묘한 수법도 별거 아니다.
설악산 입구 속초해맞이공원에서 잠시 멈춘다. 두 인어 연인상이 전설을 말해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슬프나 이곳에서 맹세한 연인들은 이루어진다는 역설은 잘도 만들어졌다. 남북으로 마주하는 손끝 동상에 우리 초병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설악해수욕장을 지나 낙산사로 들어갔다.
불탄 흔적들, 누워있는 범종, 베어진 소나무 그루터기, 그 많고 유서 깊던 사찰은 온통 새것으로 개벽하고 옛것의 향기는 그을음으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공선생은 절을 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의상대가 온전히 남아 높은 파도를 굽어보고 있다. 헌데 파도와 비로 인해 의상대 귀퉁이가 위태롭다. 속히 보수를 해야 할 것이다. 낙산사는 지금 파도에 묻혀 있다.
낙산해수욕장 앞에서 물회를 시켰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시장 끼로 단숨에 먹어치웠다. 배불리 먹고 계산을 하니 물회 한 그릇에 만 오 천 원이란다. 아무리 관광지라고 해도 피서철도 지나고 뜸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거진항에서 먹은 물회는 이보다 더 풍성하고 인심이 후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불찰에 더 화가 난다. 못된 상술들, 하루 장사로 그 얼마나 부자가 될까? 입맛이 씁쓸하다.
투덜거리는 발걸음은 낙산대교 위에서 풀렸다. 차 뜸한 대교 위에서 유유히 흐르는 물 아래로 거슬러 오르는 커다란 물고기를 본 것이다. 맑은 물에 그리 깊지 않은 곳을 거슬러 오르는 그 유영은 어느 도사의 걸음 같다. 감탄을 하며 또 없나 보지만 설악에서 내려온 물은 조용하다.
잠시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에 들렀다. 바다를 배경으로 수렵과 어업을 병행했을 그들의 자취는 유물로 남아 후세에게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족하며 그 옆은 갈대숲으로 보기 좋다. 길은 언덕을 오르며 보행에 지장이 많아졌다. 경광등을 켜고 차를 정면으로 대향하며 걷는 습성은 나에게 익숙하나 공선생은 어떨지 궁금하다. 아닌게 아니라 종종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간을 끝내고 작년 사고 후에 체력이 무척 떨어진 듯싶다.
양양 국제공항으로 경비행기가 난다. 말 많고 탈 많은 이 공항은 국제공항에 어울리지 않게 경비행기만 뜨고 내리는 것 같다. 남북 대치로 나중 큰 효용이 있을지는 몰라도 엄청 국민 혈세는 줄줄 세고 있는 것 같다.
길은 길게 이어지고 우리의 대화도 점점 뜸해지고 있다. 발품을 파는 나그네들에게 목적지는 멀다. 하조대의 넓은 해수욕장 안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백사장에 걸터앉아 목적지를 가늠하는데 앞의 모텔(알프스비치)이 유혹한다. 값도 적당하고(오만 원) 무엇보다도 하조대를 굽어보고 있어서 고개 넘어 기사문항에서 오늘을 접기로 했던 계획에 변경을 불러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가자미회를 곁들여 하루를 마친다. 술에 취하고 파도에 취하고 나도 취하고 그도 취한다. 하조대의 하룻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낙산사 앞 바다 -
첫댓글 편안한 분과 아름다운 여행을 다녀오셔ㅆ군요. 주말에 모처럼 돈버느냐 출근했습니다. 장비나가는거 지켜보며 세월엔 누구도 장사가 없단 생각이 듭니다.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가는 맢물결같은 어느새 그리된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고 생각하는 시간이 자못 많습니다. 근자에....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치만 선배님 위에 선배님이 계시는 걸 ..., 8개월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지만 양해를 구합니다.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