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회의 참석 겸 울산 고향 방문 1막 2일 단편기
어제는 새벽 3시반에 일어 났지요. 보통 1시 2시에 정도에 자는 사람이라서 잠깐 눈이 붙었는데 새벽 첫 차를 타야 되는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이 시간에 깨어 났지요. 하지만 평소 늘 아침에 2-4시간씩 제 블로그에 새로운 뉴스로 DB 데이터를 쌓고 또 지난 밤에 온 메일을 읽고 답장하거나 좋은 정보를 추려 내어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의 시간 때우기로 금새 5시 반이 되었답니다.
성남에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 첫 차가 아침 6시반 출발이라서, 미쳐 머리까지는 못 감고, 토끼 세수만 하고서는 집을 나섰지요. 부산 시청에 도착하니 11시 20분. 안내를 받아 점심을 먹고 2시부터 회의가 시작되었답니다. 회의가 1시부터인 줄 알고 아침의 다음 차 출발이 1시간 후라서 점심 시간이 좀 애매해서 미리 나섰던 거였지요.
이 회의는 부산시의 장래 유비쿼터스 도시 발전을 기획하시는 분들과 우리 서울 중앙에서 활동하는 기술전문가들인 ip-usn 포럼 기술/표준 분과위원들과 U시티 협회 기술분과 위원들과의 합석 회의 자리로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청취 교환하는 자리였지요. 한 30-40명이 모인 것 같았습니다.
큰 회의장에 빔프로젝트로 부산시의 계획 및 추진 현황도 브리핑 받기도 했는데 토론은 좀 깊게 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짧은 회의 시간, 그리도 서로가 다른 의견도 문제였지만, 나중에 어느 분과 따로 오늘 회의 평가를 했었지만, 무엇보다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오늘의 회의가 기술에 대한 주제인데, 부산시 입장은 그런 기술적 주제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만 기발한 서비스 모델에 대한 중요성과,
또 지금 건교부에서 계획 시행에 들어간 U에코시티와 행자부의 새정보화사업과, 지금 부산시가 수립하는 자체 계획과 이중 충돌에 대한 염려 - 따라서 중앙의 계획에 처음부터 지자체의 의견과 지금 사업 방향이 반영되어야 된다는 그런 주장이 있었답니다. 당연한 주장인 것 같습니다. 수요자 없는 계획은 그냥 구름일 뿐이고 결국 예산 낭비일 뿐이지요. 더구나 U에코 사업의 "기획 설계 사업비만 1,400억원 정도" 됩니다. 대부분 교수분들이 이 사업 연구를 합니다. 이미 국무위원회에서 통과된 거지요. 하여튼 대한민국에 돈이 남아 돕니다.
저녁을 부산 광안리 해변의 어느 횟집에서 먹었습니다. 광안리 대교도 보고요. 이 광안리 해변은 제가 약 30년 전에 먹으러 간 일이 있는데, 그 때는 광안리 주변이 허허 벌판에다, 해변에 아침 통통배가 고기를 잡아서 들어 오면 아줌마들이 큰 대야를 이고 가서 소매로 받아 와서, 해변가에서 팔았는데, 우리는 그걸 사다가 근처 포장촌 "초장집"으로 사가지고 가서 술 한잔 하는 거 였지요. 30년 만에 다시 가보니 정말 온통 시멘트와 광고 불빛으로 그리고 붐비는 사람들과 차로, 하여튼 많이 바뀌었더군요.
부산에는 "노포동"이라는게 있습니다. 해운대, 광안리, 부산대 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고속버스터미널과 또 지하철이 있습니다. 부산에는 지하철이 3개 노선이 있더군요, 1999년 Non-IT 즉 제가 하는 임베디스시스템 부문의 y2k 대란 예방을 위해서 제가 민간 전문가로 관민 합동 점검반애 편성되어 이곳 부산시청과 부산 롯데월드(?)를 시설 점검한 일이 있었는데 그 떄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더군요.
노포동에서, 울산까지는 약 40분 정도 가까운 거리랍니다. 울산 고향에는 아버지와 두 동생이 아직까지 있지요. 각 각 따로 살고요, 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 가시고 아버님은 지금 86세 아니면 84세?. 우리나이 또 만 나이도 있고 해서 또 제 아버지 경우는 양력으로는 1월인데 음력으로는 전해 12월이라서 좀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좀 복잡해서 차라리 정확하게 잘 모른겠다고 합니다.
식당하는 막내 동생에게 가서 마지막 손님을 보낼 때가지 한 30분 동안 앉아 있는 동안, 맥수 2병 마시고, 아주 짧은 대화를 했죠. 나는 이 막내 동생의 재수씨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아무래도 아버님과 가장 가까이 있으니 특히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제일 고생이 많답니다.
특히 나는 장남에 장손인데, 서울에 좀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 핑게도 있고 형편이 어렵다는 핑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로 미안하고 나로서도 이 나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은 큰 며누리인 내 마누라의 근본적인 불경심과 크게 착각하고 있는 자기의 기독교적 신앙관이라고 봐요. 오랫 동안 함께 살면서 해결하지 못하는 점은 바로 이것 뿐이지요.
이게 나로서는 엄청 고난이랍니다. 반대로 또 다른 입장에서 보는 제 마누라 생각도 있겠지요. 하여튼 매우 풀기 어렵고 항상 나에게 시련을 주는 일이 기도 합니다. 더우기 제가 고향을 방문해서 아버님을 뵐 때나 동생들을 만날 때 특히 그렇답니다.
설날에는 차비까지는 해결하겠지만 조카들 세배 돈 줄 돈도 없고 마누라도 위의 말처럼 같이 안 내려 갈려고 하고, 마음도 편치 않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에 설날 안부 전화도 안하고 그냥 내 못된 놈이다 배 배째라 하고 그냥 안 내려 갔답니다.
좀 서운하셨겠지만 그래도 나의 변명은 작년 9월말, 10월 초에 그리고 봄에 명절이나 제사 때가 비록 아니었지만 다른 일로 얼굴 봤으니 그래도 제 사정을 이해하고 덜 섭섭햤으리라 생각하죠.
미리 울산 도착을 말씀드리고 아버지 집 문을 열고 들어 서니 침구를 다 깔아 놓고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자식으로서 부모님 잘 못 섬긴 죄에 대한 부담도 있고, 또 주무시다 일어나 앉으신 아버님과 얼굴 맞대며 대화하기가 어려워서 , 특히나 아버님은 전직 교장이라서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전등을 하나 꺼고 분위기를 어렵게 만들었죠. 그리고는 조금 전 엘레베이터로 올라 오면서 사가지고 온 맥주 팻트 한 병과 냉장고에서 꺼넨 안주를 먹으면서 마시면서 대화 시간을 가졌었죠.
제 아버지 말은 너무나 뻔하죠. 요즘 어떻게 지네노 부터 시작해서 내 대답에 꼬리에 꼬리를 물로 이어지고, 나는 또 혹시나, 비록 내 마음 속으로는 짜증이 나면서도 대충 이해하기 쉽게 제가 지금 하는 일과 생황의 문제점 등을 설명하고는, "아버지. 이제 잘랍니다" 하고 승락을 받고 내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지요.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올 때는 아침상을 준비하고 같이 먹자고 하지요. 평소에는 나는 좀 짜증스럽게 나는 아침을 잘 안 먹는다는 둥 또는 간혹 속이 좀 어짢을 때에만 람녀을 먹는다는 둥의 변명으로, 어버지와 아침상을 마주 하기를 파하곤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좀 그렇지가 않았지요.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아버지께 어느 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어요. 여자분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들렸어요.
.. ("아침에 날씨가 추워서요" 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 (느린 목소리로) '아~ 잘~안왔어요~. 서울에 사는 큰 애가 지금 집에 와 있습니다~~ (아마도 말로만 들은, 아니 한번 할마버지 기념비 제막식 행사장에서 오신 그 분 아버지 여자 친구인듯) .. 큰 애, 오늘 오후에는 올라 갈 겁니다~~ 자주 집에 놀러 오시는 어떤 할머니가 몇 년전부터 계신다는 말을 동생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다. 또 간혹 전에도 내가 있을 떄 통화한 적도 있고 또 제막식장에서 한번 소개 받은 적이 있는 그 분들 일행 중 한 분인 것 같다.
집을 나서기 위해 가방을 싸는걸 보고, 아버지가 이것 저것 가저 가라고 내놓는다. 안 받으면 섭섭해 하길 것 같아서 이런 저런 것을 받았다. 이게 그 목록이다. - 배낭 : 아마도 내가 지금 가지고 간 가방의 패션이 좀 천해 보였는지 좀 세련되었다고 치고 내게 준다. - 양말 새 것 3 컬레: 아직 포장이 그대로 인것 보아 선물 받은 것 같다. - 하얀 런링구 포장된 거 하나 - 검정 가죽 자켓 하나 : 아주 고급스러운거. 내 동생이 선물했다고..
그리고, 차비해 가라고 " 현금 3만원 !!! " 내가 아무리 뿌리쳐도, 지금 가진게 이 것 밖에 없다고 그냥 강제다.
그리고 나서도 안타까워서 어디로 전화를 거는데 계속 팩스에 연결된 음만 들린다.
- 아버지. 지금 그 전화 팩스로 연결된 거에요. - (그래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건다) - (계속 바로 거니, 전화 메세이지가 '이 통화가 끝나면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목소리를 들을 모양이다) - 지금 다시 신호가 가네. 그리고 또 안들이네. - 아버지. 지금 그 전화 번호는요 팩스번호라서 기계하고만 연결되고 사람에게는 안들려요. (사실 이 표현은 내가 잘 못 전한 것임을 직후 꺠닳았음)
아마도 아버지 수첩에 적혀 있는 전화 번호를 누르는데 계속 이런 현상이 일어 난 모양이다. "전화가 되면 좋을탠데.."하며 이리 저리 어떤 곳을 뒤지드니 명참 한장을 들고 왔다. .. 니 이 사람 누군지 아나? .. (명함 주인인 누군지 대충 알았다) 예 .. 니 이 사람에게 찾아 가서 한번 돈 좀 빌려 달라거나 니 사업 도와 달라고 부탁 한번 안해 볼라나? .. 아이 싫어요. ,, 와? .. 어찌 지금 이런 일로 그 분에게 찾아 가요? .. 그래도 있지. 한번 찾아 가서 부탁해 봐라. (실은 이 분은 아버지와 4촌(6촌?) 관계로 커텐을 생산하는 꽤 큰 중소기업 사장. 아마 지금 70-75세 정도)
아버지는 그래도 내가 자존심 안 꾸기고(?) 한번 찾아 가서 도와 달라며는 도와 줄 수 있는 상황 설명을 해준다.
.. "니 아저씨뻘 되는 이 사람이, 아주 옛 날에 그 해방 그 해에, 니 할아버지에게 와서 크게 한번 신세 진 일이 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니 할아버지가 "적산 가옥(건물?)"을 인수하는걸 해결해 주고 크게 한번 도와 줘서 그 재산으로 사업을 하고 그 밑천으로 지금 이렇게까지 사업 발전을 안 했나. 그러니 찾아 가서 부탁해도 되는 처지라" .. "아버지. 전에도 몇 번 들은 말인데요. 안 찾아 갈레요, 찾아 가봐야 뻔하고요. 그 때는 그 때고. 괜히 찾아 가서 그 아저씨께 부담만 드리는 일이니 안 갈레요" .. (내 태도가 무척 섭섭한 모양이다)
아파트 문을 열고 엘레베이터까지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계속 아버지는 말을 건다. 나를 무척 걱정하는 소리인 것 처럼 뒤에서 들리는데 이제 곧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곧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목소리 처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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