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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겨울호에 정식으로 당선이 발표되고 어제 오늘 몇 개 일간지에 기사가 나갔습니다. 필자가 파일을 보내줘 여기 챕터 1과 2를 올립니다. 이 자료는 기본자료실에도 있습니다. --카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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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문학동네 소설상 당선작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
박 진 규
1. 꿈을 갉는 쥐
또 쥐들이 몰려온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다가 운동장에 완전히 뻗어 버렸다. 겨울 해가 머리 위에서 맥없이 비추고 누군가는 의기소침하게 축구공을 걷어찼다. 공은 공중에서 잠시 원을 그리다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어, 저 새끼 자빠졌네?”
“반장, 보건선생한테 데려가라.”
“아, 씨바. 이걸 어떻게 업어?”
“야, 네가 앞다리 맡아. 내가 뒷다리 들게.”
아이들의 그림자가 내 몸 위로 툭툭 떨어진다.
쥐들이 어른거리는 불쾌한 옛 기억 속에 나는 다시 가라앉는다.
“아이야, 쥐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을 아니? 꼬리는 털이 없고 길고 가늘고 끈적하면서 습하지. 그건 깨지 못할 악몽, 피에 젖은 명주실의 감촉이란다. 그만해. 뚝 그쳐. 가만있어. 자, 쥐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어라. 쥐가 네 발로 뛰어다니며 꼬리 끝에 긴 악몽을 매달고 움직인단다. 쥐가 온다, 꿈을 갉는 쥐가 온다, 아가야.”
잠시 정적. 곧바로 천장이 무너질 법한 쥐떼가 달려드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손을 질끈 누르고 있는지 귓구멍을 틀어막을 방도도 없다.
지방에 눌린 작은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가려고 무진장 버둥대야만 했다.
자, 자 침착하자. 현재의 내 자리를 기억하고 암기, 그래 암기하는 거야. 넌 할 수 있다고. 신경호.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쥐들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하느라고 바빴다. 구구단을 외우기도 했고, 눈 쌓인 언덕에 외로이 선 ‘겨울나무’나 ‘도레미송’의 동요가사를 암기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뒤로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의 안내원인 금발 누님들을 부르기도 했다. 누님들은 바스트 사십 이 사이즈의 가슴을 드러내곤 나를 구원하기 위해 노팬티 차림의 원더우먼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그 쥐들 앞에선 비명을 지르고는 다시 도망치기 일쑤였다.
너절한 착오들을 겪은 후에 나는 간결하고 말끔한 대책을 찾게 되었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기분으로 나의 자리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나쁜 기억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갈 때까지만 버텨라.
이름, 신경호.
나이, 만으로 열여덟. 현재 대치동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
신체적 특이사항, 백삼십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 털은 별로 없는 편. 솔직히 아직 겨드랑이 털도 안 났음. 충치는 아홉 개.
정신적인 문제. 가끔 쥐가 달려드는 환청에 시달린다.
첫경험? 있지만 그다지 기억하고 싶을 만큼 찬란하지 않음. 임포는 아님.
몸이 땅 밑으로 꺼지는 감촉에 놀라서 눈을 떴다. 침대 매트리스는 움푹 눌린 상태였다. 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꺼진 게 분명했다. 나는 되도록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몸을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보건선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리를 벌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갈색과 검정이 섞인 체크무늬 모직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 다리는 군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소문답게 튼튼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나는 보건선생이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인 것이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매트리스가 푹 꺼져 얼굴을 붉힐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살그머니 아래로 내려가고픈 귀찮은 유혹 따위가 없어서 좋았다.
거구의 몸집을 지닌 나에게 유혹은 귀찮은 일이었다. 유혹은 노동의 소모를 필요로 했다.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땀을 흘려 셔츠를 축축하게 만들고, 악취를 풍기게 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편하게 살고 싶은 놈이었다. 그렇더라도 젊은 여선생이 눈앞에 있었다면 슬쩍 침대 아래로 내려가서 머리를 숙이고 치마 밑을 보는 대단한 수고를 실천했겠지만.
“선생님, 저 일어났는데요.”
나는 침대에 앉아 담요를 끌어안은 채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
보건선생은 손등으로 입가를 슥 문지르고는 몸을 비척대며 눈을 떴다.
“어, 그래 깼는가? 잠깐, 어디 한 번 볼까.”
보건선생은 성큼 다가와서 내 이마를 짚었다. 운동과 군사훈련을 통해 다져진 굳은살의 감촉이 손바닥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그나마 보건선생이기에 망정이지 체육선생만 되었어도 애들 몇은 뼈를 추렸을 손이었다.
“열은 없군. 이 식은 땀 좀 보게. 너 왜 그런지 알아? 이게 다 비만 때문에 그래.”
보건선생은 되돌아가서 책꽂이에 꽂아둔 파일 몇 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찌부둥해 목을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침대머리 위로 난 창을 보게 되었다. 보건실 내부의 스팀 탓에 유리창은 뿌옇게 흐려진 상태였다.
“너 딱 체형을 보니까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겠구나. 너 낳을 때 엄마 고생 좀 했겠다.”
“선생님, 무슨 말씀. 저 아기 때 별명이 치와와였거든요.”
“치와와?”
“애가 너무 볼품없이 마르고 눈만 퀭해서요.”
“치와와? 전혀 실감이 안 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표지와 내부가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앨범에 사진 몇 장이 남아 있긴 했지만 어릴 때 일이란 운동화를 빨고 난 뒤의 비눗물처럼 아련했다.
아직 열여덟 밖에 안 되었지만 내 또래 애들도 다섯 살 이전의 일들은 까맣게 잊고 살아갔다. 기억난다 해도 온갖 불쾌한 것들뿐이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발가벗겨져서 쫓겨났거나, 혹은 마루에서 떨어져 머리통이 찢어진 따위의 일들. 그래서 부모들은 다 큰 자식들을 보고 좌절하기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눈을 마주치고 옹알이하고 까르르 웃어대던 때의 일은 기억 못한다.
나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너무 까마득해서 당최 보이지가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 아른거리는 한 여자가 있긴 했다.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쓴 듯 손과 양팔만 나타났다 사라졌고 얼굴과 몸은 가물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손가락에 매듭진 곳이 없으며, 검고 긴 털도 보이지 않으니 분명 여자의 손이기는 했다. 그리고 쥐들이 달려들기 전에 항상 들려왔던 여자의 목소리도 생생했다.
“여기 있다. 중고생을 위한 비만탈출 프로그램.”
보건선생이 파일에서 홍보전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교육청과 보건소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청소년을 위한 비만 탈출 식이요법 캠프였다. 전단에는 푸른 무용복을 입은 여자애가 원색의 훌라후프를 양손으로 쥐고 생크림 요정처럼 생긋 웃고 있었다. 다리는 살짝 꼰 포즈였다. 허리는 너무 가늘어서 꽃다발의 손잡이 부분이 연상되었다.
“선생님, 제가 언제쯤 이런 여자애의 알몸을 관찰하고 안을 수 있을까요?”
“뭐?”
순간, 손에 쥔 보건선생의 주먹이 들어왔다.
“아,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동정심 유발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저 같이 뚱뚱하고 코도 납작하고 못생기고…… 그런 놈이 이렇게 예쁜 여자애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인 거죠.”
“걱정 말아라. 여자가 남자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줄 아니? 여자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지.”
“네, 여자들은 모두 복잡하군요.”
나는 전단지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입 밖으로 발기 시에도 페니스가 십 센티미터 미만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심각한 고민은 혼자 삭여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삭이고 또 삭여도 삭여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열여덟 소년에게도 품고 있는 근원적인 ‘한’이 있었다. 어쩜, 그 한이 나를 비만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욕구불만은 곧장 지방질과 탄수화물과 당분으로 위안 받으니 말이다. 나는 전단지를 반으로 접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로, 그거였다.
“선생님…….”
“왜 또 여자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좋아.”
사실 보건 선생을 보고 여자에 대한 궁금증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내 기준에선.
“아니, 그런 건 아니구요. 선생님, 저기 실은 모든 게 쥐를 통해서 생겨난 문제인 거 같습니다.”
“쥐?”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내가 겪어온 상황들을 설명했다. 몇 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는 눈치이긴 했지만 보건선생은 의외로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쥐 때문에 가위눌림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거나, 가끔 기절까지 한다 이 말이구나?”
“네.”
“녀석, 사내자식이 체격에 맞게 놀아야 할 것 아냐?”
보건선생은 고개를 들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담의 상징이 없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어쨌든 이 관계는 좀 개선될 기미가 보였다.
“잠깐만, 그래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간다.”
“네?”
“오늘 있잖아,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한 번 물어보렴. 범인은 식구 중에 한 명일 거야. 대학 다닐 때 아동심리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네 기억 속의 그 여자는 실제의 사람이 아닐 것이야. 식구들 중 한 명일 텐데, 노끈을 가지고 쥐꼬리라고 널 놀렸을 게 분명해. 너는 그 일에 심적인 충격을 받은 거지. 하지만 가족들을 폭력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를 스스로 거부했을 거야. 그래서 그 거부당한 존재가 가족 아닌 미지의 여성, 혹은 환상으로 각인된 거지.”
“오호.”
쥐떼가 몰려오는 환각에 시달리는 열여덟의 청소년을 바라보는 삼십대 후반 독신 여성의 새로운 견해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 가족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선생님, 전 그럼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전단 꼭 챙기고 가렴. 그리고 가족들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어린 시절의 상처란 치유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는 간단히 목례를 했지만 보건선생은 인사도 받지 않고 손걸레를 들고 유리창에 뿌옇게 서린 김을 닦기 시작했다. 겨울 햇빛이 곧이어 쏟아져 내렸고 보건선생의 뒷모습에 그림자가 졌다. 어디서인가 많이 본 기억이 있는 풍경.
창문을 닦던 여자의 손, 그리고 그 목소리.
이제, 우린 끝났어. 네가 도와주는 수밖에 없어.
“아, 식모.”
“뭐?”
보건선생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죄송하지만요. 잠깐, 아까 그 자세 다시 취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네, 네…… 엉덩이는 뒤로 좀 빼주시고요. 분명 그 여자의 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선생님, 쥐를 흔들던 여자는 우리 가족이 아니었어요. 바로, 식모. 우리집의 식모였다고요.”
걸레가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와 내 얼굴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2. 책장 안에 숨은 식모들
집안에 남자가 셋이나 되었다. 형이 가출하지만 않았어도 넷이었다. 하지만 이삿짐을 싸기 위해 동원된 인력은 달랑 나 혼자였다. 초등학교 삼 학년인 동생은 수학 영재스쿨에서 저녁 늦게까지 수업을 들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늘 그러하듯이 컴퓨터가 있는 내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내일 포장 이사 부르면 되지, 내가 왜 이런 작업에 동원돼서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돼? 디립다 억울하네.”
나는 수입접시들을 신문지로 겹겹이 싸며 투덜대었다. 엄마는 그걸 받아 비닐 포장을 덧댄 박스 안에 쌓았다.
“이게 얼마짜린데 그 놈들을 믿니? 혹시 깨먹으면 어쩌려고. 아니, 스리슬쩍 빼돌리고 나 몰라라 그럴 수도 있어. 그래 봐라. 속만 펄펄 끓지, 누구한테 따져? 궁시렁거리지 말고 손이나 빨리 놀려. 열두 시 안엔 끝내야지.”
팔십 년대 중반 아버지가 한창 건축자재 사업으로 잘 나갈 때 엄마는 기고만장했다. 우리집에 있는 고가의 수입품들은 대부분 그때 들여온 물건들이었다. 엄마는 도깨비 시장을 두루 다니면서 백화점으로도 들어오지 않는 식기류 따위를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지금은 유행에 뒤쳐져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지만 어깨에 뽕이 들어간 팔십 년대 풍의 여성용 정장도 여러 벌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서울이 온통 자기 땅이라도 되는 양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돌아다니는 걸 즐겼다. 어쨌든 팔십 년대는 이모저모로 과시의 시대였다. 그런 버릇이 남아서인지 아버지는 아직도 해질 무렵에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걸 즐겼다.
“한강다리에서 바라본 저녁놀 죽였다. 꿈이 없는 잔챙이들이 알 턱이 없다. 그때, 서울은 태양의 도시였다.”
물론 식구들 중 그 말에 집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뮬레이션 하녀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는 식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해왔다.
반면에 엄마는 아직도 돈암동 구식 양옥집에서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기억한다. 이사 전날 친척이면 친척, 친구면 친구 온통 전화를 돌려 이제 구십 년대에는 강 건너에 새 세상이 올 거라며 재잘대며 떠들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주 쟁쟁댄다.
“엄마, 그때 전화했던 친구분들은 뭐해? 지금 서울 어느 곳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했나? 우리보단 나을라나?”
“낸들 아니. 얼마 전에 경애인가가 위암으로 죽었다고 전화 오긴 했더라.”
엄마는 박스 안에 그릇을 집어넣다 말고 분홍 매니큐어가 벗겨진 손톱을 이빨로 깨물었다. 그리고는 대뜸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생각에 친구란 거는 잘난 척 할 때 필요한 거 같아. 이제 와서 내가 뭐 생색낼 게 있다고 연락을 하겠니.”
엄마는 잠시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아파트 실내를 둘러보았다. 시공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난 대치동의 아파트는 그다지 말끔하지는 않았다. 리모델링을 미룬 지 오래여서 천장에는 습기가 찼고, 낡은 전선의 유령들처럼 곰팡이가 긴 줄로 엮여진 상태였다. 화장실도 좁은데다가 변기가 낮아서 아침마다 일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이 단출한 아파트가 엄마에겐 희망의 신전이었음엔 분명했다.
건축 자재 사업이 부도가 나고 피라미드 회사에 들어가서 돈만 날리고, 이제는 게임 속 하녀와 호흡하며 집안 돌볼 생각을 않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이미 예전에 정이 떨어진 지 오래일 테고 기댈 곳은 오직 재개발을 기다리는 이 아파트와 천재 소리를 듣는 늦둥이 동생밖에 없었다.
엄마는 시댁에 병문안 갈 때마다 늦둥이 동생을 무릎에 앉혀놓고 자랑하기 바빴다.
“어머님, 얘가 큰 인물이 되도 될 거라고요. 얼마나 대단한 태몽이었나 몰라요. 내가 예전에도 한 번 말했는데……. 폭포가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바위계곡이었어요. 제가 거기서 목욕을 하고 있었어요. 글쎄, 지렁이 두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오는 거 아니겠어요. 어머, 징그러워라. 이러고 있는데요. 세상에, 웬일이래?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오색찬란 용 한 마리가 치솟아서는 나한테 덥석 달려드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깜짝 놀라 깼는데, 어쩜 그게 태몽인 거 있지요?”
시어머니는 이 영특한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되어 입이 돌아간 채로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어머니 앞에서 자식새끼 자랑하느라 여념 없는 며느리라니, 우리 엄마도 대단하긴 했다. 할머니가 풍으로 누워 있던 일 년여 동안 엄마는 매번 그 짓을 계속했다. 하지만 워낙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는 몇 십 년이나 지속된 으르렁거림이 있었다. 그 냉전은 뿌리를 들추어보면 썩은 무처럼 구질구질했다.
물론 요약본에서는 다분히 휴먼 다큐멘터리 냄새가 난다. 엄마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와 결혼했다. 빌미는 뱃속의 아기였다. 무슨 이유인지 결혼 직후 첫 아이는 유산되었고 그 후 형을 나을 때까지 오 년이라는 제법 긴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자식된 도리로 눈물이 날 법한 이야기기도 한데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럴 마음은 싹 가셨다.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 벌어졌던 우리 집안의 복잡다단했던 과거사들은 그다지 멜로드라마 같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사기와 협잡의 역사에 가까웠다고 부끄럽지만 말할란다. 내가 요약본 밖에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귀는 뚫려 있었다.
특히 할머니가 세상을 뜨던 날 모든 사람들이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협잡과 반목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다져가며 밤을 새었다. 모두들 내가 잠들었을 거라 여겼겠지만 나는 몽땅 다 듣고 말았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형과 나를 낳았지만 둘 다 기대에는 별로 못 미치는 것들이었다. 형은 일곱 살 때까지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그 후로는 그저 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는 골목대장에 불과했다. 나도 별 볼일 없는 편이었다. 오직 아이엠에프가 터지기 몇 해 전 뒤늦게 본 버블 베이비 막내만이 엄마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 주고 있었다.
별로 정이 안 가는 녀석이었지만 막내는 제법 투자가치가 있었다. 세 살 무렵 신문을 또박또박 읽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두 달 만에 영어와 구구단을 독파하셨다. 피라미드에 빠져 한창 넋이 나가 있던 아버지도 막내 앞에서는 이빨이 환히 드러나는 웃음을 짓고 얼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막내가 아버지를 거부하는 초유의 하극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정말 안 믿겨. 어떻게 여기까지 내가 버텼는데. 다시 어떻게 그곳으로 가니? 남들은 이사 가도 공기 좋고 살기 좋은 분당으로 간다는데. 나도 다른 집 엄마들처럼 부동산이나 알아보는 건데. 저 인간 믿고 산 내가 등신이다.”
엄마는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던 희망의 떡 두 개 중 하나를 내려놓은 셈이었다. 집안에 일하는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면서도 재개발을 기다리며 아파트는 팔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이 바뀌는 바람에 이제 아파트를 쥐고 있어봤자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천재는 구십구 퍼센트의 노력보다는, 그만큼의 돈이 좌우하는지 영재교육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엄마는 결국 아버지를 거실로 내쫓고 안방에 드러누워 고민하던 차에 눈물을 머금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장동의 한 아파트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 연어도 회귀본능이 있듯, 우리집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드네.”
엄마는 내 말을 무시하고 쌩하니 일어서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독일제 접시 하나를 신문지로 싸다가 베란다로 나갔다. 초겨울 바람이 으슬으슬했다.
아, 맞다.
나는 다시 식모를 떠올렸다. 이제는 그녀의 직업이 분명히 기억이 났지만 얼굴은 아직 검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식모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장례식장에 참석한 여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집에서 마지막까지 일했던 식모는 칠 년 전쯤 떠났다. 잭슨파이브 시절의 마이클잭슨처럼 머리카락을 볶은 육십 대의 할머니였다. 줄무늬 폴로셔츠를 자주 입었고 바지는 몸빼바지 아니면 복숭아뼈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남색바탕의 꽃무늬 치마였다. 할머니 옆으로 가면 항상 오래된 수세미에서 풍기는 주방세제 냄새가 나곤 했다.
“어여, 우리 장군님 왔네. 사이다에 설탕 타줄까? 아니면 도넛 만들어 줄까나.”
변명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비만의 일등공신은 그 분이셨다.
하지만 보건선생의 뒷모습을 보고 떠올린 식모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우선 손부터가 너무 달랐고 귓가에 들렸던 목소리도 노인 특유의 가래 끓는 음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그처럼 친절하던 할머니도 끝이 좋지는 않았다. 아버지 사업이 최종 부도가 나자마자 두 손을 탁탁 털고 나갔다.
“그 꼬라지나, 내 꼬라지나 그기 그거 아닌가? 내가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
“참, 할머니 너무 하시네요. 그 동안에 아무리 일 부리는 사람이었지만 제가 시어머니 모시듯 깍듯이 대접해 드렸는데요.”
할머니는 앞치마에 대고 힘껏 코를 풀었다.
“하이고, 그렇게 시어머니 모시면 바로 소박감이지. 그나저나, 오늘까지 일한 몫은 쳐줘야 쓰겄지?”
엄마는 그 날 자기 전에 두통약을 세 알이나 삼켰다.
나는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부하러 들어왔냐?”
“아, 아버지 아니에요. 그냥 앉으세요.”
마우스 옆에 놓인 재떨이에는 부러진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재떨이를 비울 때마다 엄마는 ‘죽어라’와 ‘뒈져라’를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아마 담배꽁초가 아버지의 분신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눈치였다. 내가 보기에도 둘 사이에 닮은 점이 있기는 했다. 거무튀튀한 얼굴, 약간 굽은 등, 무엇보다 온몸에서 풍겨나는 패배한 자들만의 무기력한 찌든 내.
사실 나는 아버지 덕에 방안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워도 현장을 들키지 않는 한 들통 날 염려가 없어 좋았다. 방안에 워낙 니코틴과 담뱃진 냄새만 가득했으니까.
아버지는 오랜만에 나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지만 막상 할 말이 없는지 손톱으로 연신 뒤통수만 긁었다.
“저기, 아버지 말이죠? 식모, 그러니까 우리집에 젊은 식모가 있었습니까?”
아버지는 잠깐 눈을 찡그렸다.
“하녀 말이냐?”
“뭐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고요.”
“아, 돈암동 양옥집에 있을 때 젊은 애 하나가 있긴 했다. 스무 살 좀 넘었을라나. 네가 다섯 살 되기 전에 여기 있었다. 뭐, 별로 예쁘지는 않았고. 나이는 어린데 너무 펑퍼짐해서…… 아줌마 테가 좀 났지.”
문제는 해결되었다. 쥐를 가지고 날 협박한 사람은 그 식모였단 뜻이었다. 하지만 그 까닭이 뭔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어쩜, 엄마의 변덕 탓에 일자리를 잃어 홧김에 그 따위 복수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래된 집에서 쥐를 잡기는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막내 동생이 집에 들어와서야 엄마는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방안에서 내내 울었는지 눈가가 좀 부어 있었다. 엄마는 막내가 보여준 수학 문제집을 그저 감탄 어린 눈길로 보았다. 막내는 천재라는 특성에 걸맞게 글씨도 악필이셨다. 어찌나 대단하신지. 엄마는 막내의 저녁을 먹인 뒤에 다시 이삿짐 싸는 일을 시작했다.
“아들아.”
그릇을 넣은 박스를 테이프로 밀봉한 후에 엄마가 나지막하고 다정스러운 어감으로 불렀다. 놀랍게도 아들이란 호칭은 나에게만 부여되었다. 형은 그 놈 내지는 그 새끼였고, 막내에게는 온갖 미사여구가 다 들러붙었다. 나만 간단히 아들이었다.
“왜?”
“실은 이게 내가 가지고 나가는 유일한 사치품이야. 옷은 유행이 지나서 아무리 비싼 거라도 못 입을 거 같고, 보석은 팔아치우다 보니 모조만 남았단다. 아파트 값이 거기는 훨씬 싸니까 그리고 전세로 들어가는 거니까 당분간 생활비를 쓸 수야 있겠지만.”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넓지 않은 거실을 배회했다. 거실이 좁아진 데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큰 소파나, 장식장, 책장 탓도 있었다.
“이제는 턱없이 부족하고 슬픈 삶이 이어질 거야.”
엄마는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 같은 포즈를 취했다.
“어쩜 직접 내가 몸으로 뛰어야 될지도 모르고. 식당에서 일하거나, 남의 집 살림이라도 맡아줘야 하는 일까지 생기면 어쩐다니. 이제야 겨우 주부습진도 고쳤는데.”
엄마는 우리 형제들이 전직을 모르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막내는 몰라도 형과 나는 알 건 다 알았다. 엄마는 열 살 정도 되는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할아버지 집에서 식모 생활을 했다. 그러니 그 집에서 십 년 넘게 일한 후 아홉 살 차이인 아버지와 둘이 결혼을 말했을 때 당시 관습상으로 할머니가 길길이 뛴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먹고살려면 손에 물 묻히는 방법밖에 없지. 누가 이렇게 참혹한 오십이 될 줄 알았겠니. 끔찍해서 돌아가실 지경이다, 난.”
엄마는 기운이 없는지 책장에 등을 기대었다.
“그나저나 저건 어쩔 건데?”
나는 손가락으로 엄마가 기대어 있는 책장을 가리켰다. 유리문 안에는 동화책 전집이나 백과사전 류 따위. 혹은 한반도의 대역사, 한국문학대계 등등 주로 양장본으로 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엄마가 그릇이나 가구로 허영을 채웠다면 아버지의 대리만족은 전집류의 책들이었다.
“아, 이거. 이거, 뭐 팔아도 얼마 안 되고 그냥 버리고 가야지, 뭐. 짐만 되잖아. 솔직히 너나 나나 언제 책 읽고 살았니? 폐지니까 누가 주워가겠지.”
나는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한글을 깨치지 전까지 틈틈이 책을 펴놓고 엄마가 읽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 후로도 종종 나는 책장의 책들을 한두 권씩 빼서 읽어보곤 했다. 물론 몇 장 읽다가 졸려서 다시 넣어두긴 했지만 말이다.
“나 어렸을 때 그 일 기억나시나?”
엄마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왜 내가 아주 어렸을 때니까 한글도 미처 몰랐을 때거든. 아마, 이 집이 아니라 돈암동 집이었는데 엄마가 마룻바닥에 나 앉혀놓고 동화나 백과사전 읽어주고 그랬던 거 말이지.”
“아들아, 나 그런 적 없다.”
“엄마, 그럼 식모는 아나?”
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는 엄마에게 물었다.
“야, 내가 그 할멈 생각하면 이가 갈려.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
“아니, 그 할머니 말고. 왜 우리 돈암동 살 때 젊은 식모.”
“무슨 소리야. 우리가 그때 무슨 식모를 써?”
엄마는 물컵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잠이나 청하려다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벽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는 책장은 제법 우리집 거실을 기품 있게 보이게 하는 힘이 있긴 했다. 이제 내일이면 이 책장 안의 책들은 모조리 폐지가 될 터였다. 내 유년기가 그렇게 무너지는 거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휑해졌다.
그래, 내 책의 장례식은 내가 치러주자.
나는 빈 박스 몇 개를 더 챙겨왔다. 책들의 관으로 쓸 박스들이었다. 그리고 책들을 하나하나 빼어서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물론 박스에 던져 넣기 전에 책표지를 하나씩 확인해 보는 예의를 갖추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어이구, 잘하는 짓이다. 내일이면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치울 텐데. 하여튼 먹는 건 왕창 먹으면서 엉뚱한 데 힘만 쓰는구나.”
엄마가 뭐라고 하건 묵묵히 책들을 박스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성경책을 한 권 발견했다. 엄마는 한때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로는 하느님 보기가 망신스럽다며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이거, 성경책인데 버려요?”
“됐다. 내가 지금 와서 누구한테 기도를 하겠니.”
엄마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성경책도 박스 속에 넣었다.
두 번째 책장을 정리하다가 나는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쓰던 수첩인 줄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한창 잘 나갈 때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보려고 수첩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숫자들 대신 식모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