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메이저리그 노장 전성시대, 젊은 선수 압도-
메이저리그의 요즘 판도는 한마디로 노장 전성시대다. 피칭과 타격 각 분야에서 최고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30대 후반의 베테랑들이다. 30살이 넘으면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으로 간주하는 스 포츠계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강타자 배리 본즈의 나이는 올해로 만 36 세. 그러나 본즈는 올시즌 자신의 선수시절을 통틀어 가장 빠른 페이 스로 홈런을 쳐내고 있다. 본즈와 함께 내셔널리그 홈런 부문 1, 2위 를 다투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거포 마크 맥과이어 역시 36세 다.
시속 160㎞의 강속구를 1회부터 9회까지 줄기차게 뿌려대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랜디 존슨도 36세의 노장이다. 존슨은 현재 다승· 방어율·탈삼진 등 투수 3개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적으 로 내셔널리그 1위에 올라 있다. LA 다저스의 에이스 케빈 브라운 역시 35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을 받으며 방어율·피안타 율에서 존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올시즌 13승 2패로 아메리칸리그 다승 1위인 데이빗 웰스(토론토 블 루제이스)도 8월이면 37세가 되는 선수이며 시애틀 매리너스의 동갑 내기 4번타자 에드거 마르티네즈는 아메리칸리그 타점 1위와 타율 5 위에 랭크돼 있다. 지난해 암치료를 받느라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올시즌 복귀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4번타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앤드레 갤러라가는 무려 39세다.
노장들이 이처럼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야구가 농구나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다른 종목처럼 격렬한 몸동작과 쉴틈없는 러닝을 요구하지 않는 운동이라 는 특성이 오랜 선수생활을 가능케 하는 요소다.
스포츠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탁월한 효능의 의약품 개발 역시 선수 생명 연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선수보호와 운동능력을 극대화시 키는 체계적인 훈련 방법의 개발과 지명타자 제도 도입 등도 노장들 의 입지를 강화시킨 요인이다. 그러나 이같은 외부적 도움과 야구환 경의 발달은 선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지만 노장 선수들이 젊은 선 수들을 압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야구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젊은 선수들의 특권인 힘과 순간 폭발력 에만 의존하지 않고 심리전과 수읽기가 가미된 복잡한 경기다. 이 때 문에 선수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체력적 한계를 충분히 극복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풍부한 실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쌓인 연륜과 젊은 선수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고난도의 기량을 가진 노장 이라면 충분히 젊은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콜로라도 록키스의 선수관리 담당 코치인 브래디 앤드레스는 “야구 선수의 운동능력과 기술 습득의 함수관계는 은행 잔고를 유지하는 것 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야구선수의 힘과 체력은 나이가 32세 정도 에 도달하면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30대 이후에는 풍부한 경 험을 바탕으로 체득한 기술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한 몸 관리로 빈 잔 고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명하게 선수생활을 하면 누구나 40대 중반까지 야구판에서 젊은 선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앤드레스 코치의 지론이다. 실제로 풍부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30대를 넘긴 이후 갑자기 도태되는 선수들은 평소 기량발전에 쏟는 노력이 부족했던 경우가 대 부분이다.
시속 150㎞대의 강속구를 펑펑 던져대던 투수가 어느날 갑자기 피칭 스타일을 바꿔 맞춰잡는 투구로 힘들이지 않고 경기를 이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80년대 탈삼진 부문에서 항상 선두권에 올랐던 데 이비드 콘은 94년 시즌을 고비로 삼진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방 어율은 오히려 더 좋아진 대표적인 경우다. 콘은 당시 “1∼2개의 공 으로 아웃카운트를 하나 늘리는 것이 이처럼 재미있는줄 미처 몰랐 다”고 술회했다. 이처럼 한 차원 높은 야구에 새롭게 개안(開眼)을 하고 힘이 아닌 기량으로 젊은 선수들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몸관리와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년 선수가 팔팔한 젊은이를 압도하는 경우는 야구에서 새로운 현상 이 아니다. 다만 비약적인 의약 발달과 과학적 훈련 방법에 힘입어 요즘엔 그런 경우가 좀더 흔해졌을 뿐이다. 놀런 라이언은 46세까지 현역 투수생활을 했으며 ‘왼손의 마술사’ 워렌 스판은 30∼44세 사 이에만 277승을 거뒀다. 타이 캅과 스탠 뮤지얼은 40세가 넘은 나이 에 시즌타율 3할 이상을 쳤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철저한 자기 관리와 기술개발을 위한 부단한 노력, 그리고 ‘생각하는 야구’로 체력적 한계를 극복한 전 형적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힘과 재능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꾸준히 존재해왔던 노장들의 화려한 말년이 잘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