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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구대교구 새방골성당 역사
새방골성당은 대구대교구소속 본당으로서 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 559번지<새방로27길 9>에 자리하고 있다. 새방골성당은 초대 대구교회 사제로 임명된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토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을 거쳐 1888년 이곳에 부임하면서부터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대구교회 본당사제이신 김보록 신부가 맨 처음 머물던 곳인 신나무골이 대구교회 첫 본당 터이고, 바로 이곳 새방골이 그 두 번째 본당 터이다. 그 후 김보록 신부에 의해서 대구교회의 얼굴인 계산동 주교좌성당이 설립되면서 계산동성당 관할공소로 되었다가 날뫼에 비산동성당이 설립되면서부터는 비산동성당 관할 새방골공소에서 1963년 준 본당이 되고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새방골성당은 원죄 없으신 성모님(12월 8일)을 주보로 모시며, 관할구역은 상리동 전역(1, 2구)과 이현동 일부이다.
역대 본당사제
초대 김보록(金保祿)바오로<로베르토 아킬레오, 프랑스인>(1888~1919)
02대 베르모렐<프랑스인>(1919~1927) - 이상 계산성당 소속
03대 맹석호(알로이시오)<프랑스인>(1927~1928) - 이하 비산성당 소속
04대 하제안(요한 마리아)<프랑스인>(1928~1929)
05대 이필경(안드레아)<한국인>(1929~1929)
06대 이종필(마티아)<한국인>(1931~1943)
07대 노를뢰(베드로)<프랑스인>(1943~1945)
08대 조문도(레이몬드)<파리외방전교회소속스위스인>(1945~1946)
09대 노를뢰(베드로)<프랑스인>(1946~1948)
10대 이기수(야고보)<이하 한국인>(1948~1950)
11대 정수길(요셉)(1950~1951)
12대 김영제(요한)(1951~1956)
13대 이기수(야고보)(1956~1961)
14대 이창호(안드레아)(1961~1962)
15대 조상익(베드로)(1962~1963) - 새방골 준본당으로 분리 독립
16대 권영조(勸永兆)마르코(1963~1964)
17대 조상익(趙祥益)베드로(1964.7.17~1966.11)
18대 박창수(朴昌壽)요한(1968.11~1969.8)임시
19대 이종흥(李鐘興)크리산도(1969.8.15~1970)임시
20대 곽길우(郭吉祐)베드로(1970.11.25~1971)임시
21대 김규태(金圭泰)디모테오(1971~1974.1.6)임시
22대 정순재(鄭淳在)베드로(1974.1.6~1975.1.3)임시
23대 김경식(金烱式)보니파시오(1975.1.31~1976.3.9)
24대 이대길(李大吉)시메온(1976.3.9~1977.7.5)
25대 임 청(任 淸)베드로(1977.7.5~1979.11.6) 새방골본당으로 분리독립
26대 김규태(金圭泰)지모테오(1979.11.6~1984.1.18)
27대 이종흥(李鐘興)크리산도(1984.1.18~1984.7.26)임시
28대 권혁시(勸赫時)모이세(1984.7.26~1985.10.30)휴양
29대 허 용(許 龍)요셉(1085.10.30~1986.1.18)임시
30대 나원찬(羅元璨)바울로(1986.1.18~1987.6.20)주임
31대 김용길(金容吉)바울로(1987.6.12~1988.7.8)임시
32대 김정환(金正煥)미카엘(1988.7.8~1989.4.4)주임
33대 박병원(朴柄元)필립보(1989.4.4~1989.7.10)임시
34대 박원출(朴元出)토마스(1989.7.10~1992)주임
35대 김두찬(金斗璨)요한(1992~1993.4.1)주임
36대 이종건(李鐘健)시메온(1993.4.1~1993.11.15)임시
37대 이종흥(李鐘興)크리산도(1993.11~1003.12)임시
38대 박덕수(朴德洙)스테파노(1993.12.3~1995.8.18)주임
39대 박영식(朴永植)야고보(1995.8.18~)주임
40대 이상해()스테파노()주임
41대 김용민()안드레아()주임
42대 소요한()요한()주임
43대 김봉진()안드레아(~2008.9.5)주임
44대 김윤호()토마스 데 아퀴노(2008.9.5~2011.8.26)주임
45대 김종률()스테파노(2011.8.26~)주임
역대 본당수녀
01대 박영자(朴英子)요세피나(1994.2.4~1996.2.18)
02대 서정실(徐貞實)요안나(1996.2.18~1999.2)
03대 김보영(金寶英)프란체스카(1999.2~1999.11.30)
역대 공소회장
01대 이장언(李章彦)방지거
02대 이규성(李圭成)다미아노(?~1920)
03대 박문규(朴文圭)베드로(1920~1930)
04대 전봉립(全鳳立)발라바(1930~1933)
05대 박문규(朴文圭)베드로(1933~1938)
06대 이종화(李鐘華)바울로(1938~1963; 이규성의 아들)
역대 본당회장
01대 이일우(李一雨)히뽈리도(1964~1997.11; 이종화의 아들)사목회장
02대 박윤식(朴潤植)라우렌시오(1994~1998.1)평협회장
윤태수(尹太守)에드왈도(1997~1999.10)사목회장
03대 조영식(趙永植)막시모(1998.1~1999.10)평협회장
04대 이상권(李相權)베드로(1999.10~ ; 이일우의 아들)총회장
이청진(李淸進)토마(1999.10~)평협회장
05대 김갑수()()총회장
()()평협회장
06대 이상배()(이상권의 아우)총회장
강삼태()평협회장
07대 이태기
08대 김갑수
09대 이상권(李相權)베드로(2011.10~ ; 이일우의 아들, 이상배의 형)총회장
강삼태()평협회장
전사
새방골은 와룡산(臥龍山)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부락이다.
현재의 상리1동으로 전설에 의하면 달성군 신당리 금호강하류에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날아와 떨어져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새방골이라 한다. 처음 함양조씨(1가구)가 개척하고 살았으나 임진왜란 때 왜란을 피해 진주강씨가 정착하게 되어 그로 인해 새로 집이 생겼다고 해서 새방골이라 한다.
그 후 함안조씨, 옥산전씨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해서 경주이씨, 경주김씨 등이 모여들어 부락을 형성하고 ‘새방골’이라 칭했다.
새방골은 원래 달성군 달서면 상리1동에 속했으나 1930년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1837년 김현상 요아킴(김찬수의 증조부)이 나이 38세에 부인 김발바라, 장남 응배 요한(12세), 둘째아들 진배 가를로(6세), 장녀 아가다(9세)를 데리고 경성을 떠나 신동의 신나무골과 한티에 와서 살다 죽었다(한티 묘지발굴에서 그의 시신이 확인됨). 김현상의 가족들은 경신박해(1860)때 한티에서 새방골로 이사 왔다. 장남 요한은 새방골에서 경신박해 때 두 번이나 체포되어 매를 맞았다. 그의 비신자 친구 손대여가 대구감사 서헌순에게 부탁하여 요한을 석방시켜 주었다. 아가다는 서철순의 아내가 되어 서상돈(徐相燉)아우구스티노(대구본당의 초대회장)를 낳았다.
새방골에는 1860년부터 이재영(李載榮)고스마, 그의 4촌 이권필(李權畢)과 아들 이규혁(李圭赫; 족보에는 李圭復)시몬이 살고 있었다. 이재영은 1868년(무진년) 병인3차 박해 때 31세의 나이로 서익순(38세; 서상돈의 3촌)과 정 바오로(25세)와 함께 절두산 한강에 익사당하는 순교의 영광을 받은 이 공사가(뮈텔주교의 1895년 일기)의 4촌이다.
이재영의 아들 이장언(李章彦,1861~1934)방지거는 대구읍내 뽕나무골(대구 계산성당부근) 이방지가(절두산 순교자 이 공사가의 여동생; 최정복의 외조모)의 당질(堂姪)이요, 이규혁은 대구읍내 뽕나무골 서의관상정(徐議官相定)의 합부인(閤夫人) 이마리아(서병무의 모친)의 생질이며 종훈(鐘勳) 아나다시아(동촌 거주)와 종해(鐘海)야고보(신암동 거주)와 종각(鐘珏)벨라도(신암동 거주)를 자녀로 두었다. 이장언은 아들 이종칠(李鐘七), 이종열(李鐘烈), 이종덕(李鐘德)과 4명의 딸을 낳았다.
이재영(李載榮)고스마는 최정복(대구천주교회사,37쪽)의 기록과는 달리 새방골에서 신자가 되지 않고 경북 칠곡군 동명면 송산동의 대치부락(어골)에서 신자인 아내 김마리아의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이재영의 증순자 [이화우 안토니오1911년9월30일생]의 증언). 이재영은 아내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알고 집안이 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내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김마리아는 신앙을 버리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몰래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이재영은 결국 그것을 알아내고 작두에 목을 갖다 대라고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아내는 태연자약하게 목을 작두에 갖다 대면서 죽는 한이 있어도 신앙을 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의 목을 자르지 못하고 아내의 이러한 신앙에 감명을 받아 온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인이 되고 경신박해(1860)를 피해 밤에 새방골의 송골로 피신해 와서 살았다(김구정, 영남교회사627~628쪽; 마백락, 경상도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1989년, 364쪽).
새방골의 지역구조에 대한 설명
새방골은 비록 와룡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부락이나, 수많은 작은 지명을 포함하고 있는 곳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자연부락에도 널리 통용되는 관습으로 집집마다 그 집의 이름(宅號)이 따로 있어 구별되는 것처럼, 구역도 잘게 나누어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 그 지역을 정확하게 구분하려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따라서 새방골 안에는 다음과 같은 작은 지명(자연부락)으로 또 나뉘어 부르는데, 그 명칭은 각각 다음과 같다.
현재 성당이 있는 곳을 옛날에는 미나리 밭이 있던 곳이라 하여 ‘안깡뚝’으로 부르고, 성당 남쪽은 얕은 야산의 아래이어서 ‘언덕 밑’으로 부른다.
그리고 성당 앞은 ‘막골’이며, 성당에서 서쪽으로 와룡산 기슭에 더 들어간 곳은 ‘웃골’이다. 성당에서 고속도로 건너편은 ‘안산 밑’이며, ‘안산 밑’의 서쪽은 ‘당 너머’이다. ‘당 너머’는 원래 ‘당산너머’인데 말을 줄여 발음하는데 기인한다. 그리고 현재 무학사 쪽이 ‘대치골’이며, 경원고등학교가 있는 곳이 ‘상남골짜기’이고 경원고등학교 아래쪽이 ‘옻밭골’이다.
‘옻밭골’에서 고속도로 건너편으로 내려온 곳이 ‘덕골’이며 ‘덕골’과 ‘안산 밑’의 사이에 ‘송골’이 있는데 이곳에 김보록 신부님의 사택이 있었다.
이 사택이 있던 자리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현재 상리공원이 들어서 있으며,
‘송골’의 바로 아래에는 옛날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못은 현재 메워져서 도시가스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상리공원입구에서 서쪽이 옛날 샘이 솟는 곳이라 하여 ‘샘숫골’이고, 그리고 메워진 그 못의 건너편에 ‘대밭 골’(죽전)이 있었다.
김보록 신부님의 사목시기에는 이 대밭 골에 말을 메는 곳이 있어서 나귀나 말을 이용하시던 김보록 신부님은 이곳에서 말(나귀)을 메어두고 새방골(송골)로 올라가시곤 하였다. 교회사 기록에 더러 보이는 “성사를 마치시고 신부님은 새방골의 죽전으로 가셨다.” 하는 대목이나 “새방골의 송골로 가셨다.” 하는 대목은 바로 이런 지형의 구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연부락 전체를 통 털어 새방골이라 이름 하여왔는데, 죽전은 본래 대구부 서상면 지역으로 대밭이 있었으므로 ‘죽전’ 혹은 ‘죽박골’이라고 했으며, 1915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대구시가 직할시와 광역시로 거듭나면서 도시계획의 필요성에 의해 신시가지를 넓게 형성하면서 새로 들어서는 마을의 이름을 새방골에서 가장 가까운 부락의 이름인 ‘대밭 골’ 즉 ‘죽전’을 원용하여 이름붙이면서부터 교회 안에서 더러 새방골이 죽전동이 아니냐하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술하였다시피 ‘새방골의 죽전’은 아직도 여전히 상리동이며, 현재의 죽전동은 평리동과 중리동에 걸쳐 있는 대구의료원의 건너편에 새로 생긴 지역에다 그 이름만 따서 붙인 신흥지구로 전혀 타당하지 않은 지역이다.
다만 죽전성당의 신자들이 기록에서나마 동일한 지명인 그 이름(죽전)이 거론되던 김보록 신부님의 영성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우리 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원래 ‘신 평리 성당’으로 이름 하였다가, 한국교회200주년이 되면서 그 이름을 우리 교구 제2의 주보이신 이윤일 성인의 이름을 따서 ‘윤일성당’이라 이름하고부터는 이윤일 성인에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갖게 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일 것이다.
본당 사목위원회의 설정
1. 전례위원회 : 1963년 준 본당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
2. 선교위원회 : 1982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준비의 해에 설립
3. 교육위원회 : 1982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준비의 해에 설립
4. 재무평의회 :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설립
5. 청소년위원회 :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설립
6. 시설환경위원회 :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영선분과로 설립되었다가 2011년 9월 이름변경
7. 구역 협의회 :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설립
8. 사회복지위원회 : 2000년 설립
9. 가정위원회 : 2011년 9월 신설
10. 여성위원회 : 2011년 9월 신설
새방골성당 본당 사도직 단체의 설정
요 셉 회
1. 설립연도 : 1980년 3월 1일
2. 설립목적
본당의 어르신 모임 가운데 남성단체로서, 성 요셉의 영성을 본받고, 새방골성당의 사목방침에 따르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또한 성경공부 등을 함께 함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성화를 다지고, 미력하나마 본당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안 나 회
1. 설립연도 : 1980년 3월 1일
2. 설립목적
본당의 어르신 모임 가운데 여성단체로서, 성녀 안나의 영성을 본받고, 새방골성당의 사목방침에 따르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또한 성경공부 등을 함께 함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성화를 다지고, 미력하나마 본당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성 모 회
1. 설립연도 : 1990년 2월 25일
2. 설립목적
본회는 가정생활 속에서도 성모님을 본받아 구원사업이 계속될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웃에 전하는 복음 전교활동, 본당 내 여성신자들의 신심강화 및 각 구역 성모회의 활성화에 기여하며 사랑과 봉사로써 본당 내 모든 활동에 적극 협력함을 목적으로 한다.
자 모 회
1. 설립연도 : 1991년 3월 1일
2. 설립목적
본당의 주일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가운데 어머니들의 모임으로서, 주일학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협력하는 단체로서,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의 정신을 본받아 한 여성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높이고 본당 신자간의 친목도모와 신심함양을 위해 활동하며 본당의 각종 행사와 사목 방침에 따라 봉사활동을 하는데 목적이 있다.
성 지 회
1. 설립연도 : 2004년 9월 1일
2. 설립목적
본당의 청장년을 중심으로 모인 사도직 단체로서 본당의 중추적 역군이라는 사명감을 인식하고 본당의 대소사와 운영의 전반에 걸친 활동과 참여를 목적으로 하며, 새방골성당의 사목방침에 따르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신앙인으로서의 성화를 다지고, 본당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연 령 회
1. 설립연도 : 2004년 11월 2일
2. 설립목적
본당의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일한 단체로서 임종을 앞둔 본당의 모든 신자들의 선종을 도우며, 위령기도와 장례전반의 봉사는 물론 일정액수의 회비를 모아 필요시 집행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단체로서, 새방골성당의 사목방침에 따르며, 교우 및 교우 가족 중 비신자, 예비신자가 초상을 당하였을 시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연도)를 드리고 장례절차에 따른 모든 사항을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사회의 좋은 표양을 보며 복음전파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레지오마리애
1. 샛별 꾸리아
가) 꾸리아 승인일자 : 1988년 9월 11일
나) 쁘레시디움별 승인일자
① 바다의 별 : 1983년 6월 2일
② 사랑하올 어머니 : 1975년 9월 16일
③ 평화의 모후 : 1994년 6월 23일
④ 정의의 거울 : 1992년 9월 3일
위 글은 고인이신 이 혁우 시몬님의 컴퓨터 자료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