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9회차 마지막 구간
산행일자: 2005년 04월24일
산 행 자: 六德단독
날 씨 :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41.6㎞(순수정맥 구간: 약35.9㎞포함)
산행시간: 약14시간50분〔순수정맥 산행: 13시간 30분(점심 및 휴식포함)〕
산행코스: 문암리(04:00)- 호서대/만일사갈림길(04:29)-걸마고개(04:44)-성거산(05:21)-우물목고개
(06:37)-위례산(07:20)-부수문이고개(07:56)-엽돈재(08:41)-서운산(10:28)-배티고개(11:21)-421.8m봉
헬기장(11:52)-점심(12:08~12:28)-470m봉 헬기장(13:12)-옥정현(14:15)-사장골정상(15:12)-덕성산
(16:32)-칠현산(17:05)-칠장산(17:50)-관해봉(17:54)-신비저수지(18:27)-미장리/38번국도(18:51)
소요비용: 식 사: 10,000원(2식), 미장리→안성(버스:1,000원), 안성→천안(직행:2,400원),
천안터미널→문암리/백석대(버스: 950원), 고속도로비: 8,200원, 주행거리: 212㎞
산행줄거리:
02:00 오늘은 금북정맥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다른 때보다도 좀 일찍 출발하려했으나 어제 집안
대청소와 낙남정맥 산행지도를 준비하다보니 그만 밤 11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게되어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어제 밤 배낭을 미리 꾸려 차에 넣어두었기에 커피한잔을 타 마시고 쉽게 떠날 수 있었다.
은은히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KTX수준의 속도로 곡예운전을 하며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저러다 사고나면 큰일이지..
걱정하며 3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해 20여분 남짓 진행하는데 그 차가 결국에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03:50 지난번에 내려왔던 문암리 방범초소 옆에 달구지를 주차시키고 예일대학 방면으로 올라서
갈외고개를 향해 올라가는데 중장비로 절개지를 마구 파헤쳐 놓아 애를 먹는다.
절개지를 힘들게 올라서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사람을 살해하여 산에다 매장했다는 뉴스를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혹시 누가 뒤에서 덥석
잡아당기면 어떻게 하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자꾸만 맴돌아 헛기침을 하며 오르다보니 초장부터
뜨거운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물이 부족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기에 이번에는 냉수 3.0리터와 보온물병
그리고 점심도시락과 간식류( 베지밀 1개, 포도즙 3개, 바나나 2개, 쵸코파일 3개, 빵 4개,
쑥떡 6조각, 캔맥주 2개)를 빵빵하게 준비하여 배낭을 꾸린 탓으로 그 무게가 허리를 휘게 만들고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해주는 느낌이다.
04:30 지난번 정맥산행을 접었던 호서대학 만일사 갈림길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정맥산행을 10여분
이어가니 걸미고개인 십자로 안부가 나오고 좌측의 봉을 우회하여 홈통 길로 또 다시 내려서
진행하니 주택은행 연수원 갈림길이 나온다.
05:03 돌탑이 쌓여있고 성거산:1.7㎞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진 만일고개의 안부에 내려섰다 검정색
플라스틱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간다.
05:22 가파른 플라스틱 계단을 반복적으로 오르다 암릉지대를 우로 우회하여 오르니 성거산(579.1m)에
도착되고 시원한 바람이 피로를 덜어준다.
우측의 등산로를 따라 조금 가보니 삼각점(평택-2)이 박혀있고 내림길의 등산로가 이어지며 그 밑에
동굴이 있다지만 진행할 길이 멀기에 그냥 뒤돌아와 좌측의 공군부대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참고: ⑴.성거산(聖居山)의 유래: 고려 태조가 이산을 바라보니 산 위에 오색의 구름이 떠있어
산이겍시는 산이라 하고 조선 이태조와 세종대왕이 온양온천에 갈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함.
⑵.성거산성(聖居山城)은 성거산(聖居山:579.1m)에 쌓은 퇴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550m이고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성이었으나 뒤에 돌로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하며 이 산성을 백제시대 쌓은
위레성의 익성(翼城)으로 추정하여 삼국시대에 쌓은 성으로 보기도 하며 혹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시
목천과 직산현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하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05:30 성거산 군부대 철조망 직전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군부대를 우회하니 사용되지 않는
듯한 약수터가 나오고 20여분 후에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서 다시 공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니
저 멀리 붉은 쇳물과 같은 태양이 용트림하며 올라온다.
05:58 부대정문의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감시카메라가 도로 우측에서 부릅뜬 눈으로
쳐다보고 도로 좌측으로는 모래 적재함이 만들어져 있다.
정맥길은 이 도로를 따라 가도 되지만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서 진행하니 진달래나무와 잡목들이
옷깃을 잡아당기고 10여분 후에 다시 도로에 내려서 도로를 잠시 따르다 좌측의 군사보안을 알리는
표시판에서 또다시 능선을 따르다 도로로 내려오니 제2줄무덤 성거산 순교성지가 나온다.
06:37 도로를 따라 제2줄무덤 제1줄무덤 성거산 순교성지와 헬기장을 통과하니 우측에 평행봉과
반사경이 설치된 우물목고개에 도착되고 정맥길은 좌측으로 꺾이는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넓은 임도를 따르니 송전탑이 나오고 또 다시 №55번의 큰 송전탑을 통과한다.
송전탑 설치를 위해서 임시로 개설했던 임도는 복구하기 위하여 소나무가 조림되어있고 정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06:50 다시 임도를 만나 잠시 따르다 좌측의 숲으로 들어서 위례산을 향해 가파르게 오르니 묘지가
나오고 진달래꽃나무 사이를 통과하니 위레산:0.9㎞, 우물목고개:1.5㎞, 유성농장입구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계속 오름길을 이어서 올라간다.
07:20 능선 좌측에 넓은 부채모양의 바위를 통과하니 위례산(529.5m)에 도착되고 정상에는 정상석과
위례성을 알리는 안내표시판이 세워져있다.
참고: ⑴.慰禮山의 유래: 백제 시조 온조가 이곳에서 최초로 백제를 세운 위례성의 역사를 안고
있으며 현재 까지도 토성과 석성 적성 층등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산이라 함.
⑵.천안 성거산 위례성(天安聖居山 慰禮城): 이 성은 해발 525.9m 위례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950m 정도이고 성벽은 토.석혼축공법(土.石混築工法)과 석축공법(石築工法)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하며 흙과 돌을 혼합하여 쌓은 부분은 자연암반을 평탄하게 고른 후 1.5m
너비에 2열로 돌을 평행으로 쌓고 그 위에 흙과 잡석 및 기와 조각을 섞어 쌓았다함.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고 돌로 쌓은 성벽은 경사가 급한 4m구간에만 남아있는데 주로 자연
할석으로 쌓았으며 현재 높이는 4m 정도라하며 이성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 백제의 도읍지였던
위례성으로 보기도하나 조사결과 도읍성(都邑城)이라기 보다는 국방을 위한 산성으로 보이며 쌓은
시기도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된다함.
07:38 부수문이고개:2.4㎞ 이정표를 조금 지나 우측으로 오르니 조그마한 돌탑과 삼각점이 박혀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다 Y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진행하면 산판도로를 만난다.
07:55 아스팔트로 포장된 57번 도로 부수문이고개에 도착하니 중장비 한 대가 임도를 정비하고 있고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간다.
좌측으로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와 우측으로 북면 운룡리를 잇는 57번 도로를 가로질러 이동통십탑
뒤로 진행하여 오른다.
08:20 잡초가 무성하고 잡목이 자라고 있는 폐기된 헬기장을 통과하여 우측의 458.8m봉에 오르니
삼각점(76 10-건설부)이 박혀있고 좌측 저 멀리 34번 국도와 청룡저수지가 조망된다.
우측 아래로는 대평광산이 있다지만 확인할 수 없어 다시 정맥길로 돌아와 정맥길을 이어서 내려간다.
08:40 내리막길을 널널하게 내려서니 가파른 절개지나 나오고 절개시 사면에서는 중장비가 절개지를
정비하고 있는데 조금 전 윙윙거리는 소리가 이 중장비 소리였나 보다.
절개지 우측 사면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서 경기도와 충청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엽돈재에 도착된다.
천안의 입장면과 生居鎭川의 백곡면 그리고 안성의 서운면을 잇는 34번 국도의 엽돈재를 가로질러
우측의 절개지로 오르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힘들게 능선에 오르니 좌측으로 연결되는 등로와 합류하게되고 좌측의 사면으로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는데 엉뚱한데 힘을 쏟은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09:03 능선의 봉에 올라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여 올라간다.
09:20 올라선 봉(395.2m추측)에서 좌측으로 다시 내려간다.
09:38 홈통 길로 오르니 묘지 1기 나오고 그 뒤로 가파르게 올라서 호젓하게 걷다가 다시 올라선 봉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좌측으로 약 50-60m진행하여 직진의 길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 진행하기 좋음: 독도주의!!!!)
09:50~10:08 다시 가파르게 봉에 오르니 우측의 청룡사 방향에서 오르는 일반 등산로와 합류하게
되고 이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2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 후 가파르게 내려간다.
10:14 우측의 청량사 갈림길에 도착하니 청룡사:2.2㎞, 서운산:0.9㎞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있고
우측 아래로는 묵은 논이 산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어린애의 손을 잡고 오르는 일반등산객과 나물을 뜯는 아주머니들을 바라보며 가파르게 올라간다.
10:28 헬기장에 도착하니 많은 일반등산객들이 올라와 게임을 즐기고 있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좌측의
서운산성을 들러보지 못하고 우측의 서운산 정상으로 진행한다.
서운산(547.4m) 정상에 오르니 큰 정상석이 세워져있고 그 뒤 전망바위에 올라서 서운면을 잠시
내려다본다.
참고: 서운산성은 "북산리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차령산맥에서 우뚝 솟아 오른 서운산 언저리의
산봉우리를 둘러싼 토성이다 남쪽에는 차령산맥을 관통하여 직산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은
협탄령이라는 고갯길이 있는데 산성은 이 교통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하며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이 지역의 의병장으로 활동한 홍계남(洪季男)장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왜적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함.
성은 산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쌓아 말안장 같은 모습이라 하며 성벽은 토축 또는 토석혼축으로
쌓았으나 남벽과 동벽의 일부구간에는 석축의 흔적도 발견된다함.
북쪽 성벽의 일부 구간은 가파른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성벽을 쌓지 않아 성의 전체 둘레는 1,228m
이지만 성벽을 쌓은 곳은 450m정도이다.
성안에는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다.
북쪽가 남쪽에 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남문터 옆에는 편평한 터가 있고 북동쪽의 흙으로 쌓은 높다란 곳은 관측을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우물터가 5개나 있어 물은 비교적 풍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해발고도가 높아 접근이 어렵고 험준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기법으로 보아 방어용의
산성으로서 대략 고려시대에 쌓아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것 같다함.
10:36 서운산 정상에서 뒤돌아와 배티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니 삼각점이 박혀있는 봉우리를 지나게되고
석남사;1.3㎞, 서운산정상:0.5㎞, 배티고개:1.4㎞라 쓰인 이정표를 지나 진달래꽃 길을 호젓하게
통과하니 우측 아래로 벌목되어 확~트인 곳에 진달래꽃이 다시 만발하고 저 멀리 지나온 마루금이
시야에 들어온다.
10:57 배티성지충정묘, 서운산정상:1.2㎞, 배티고개:0.7㎞라 쓰인 이정표 가 세워진 갈림길에 도착하니
중년의 남녀등산객 2명이 벤취에 앉아 내 모습이 이상한 듯 힐끔 쳐다보지만 그러나 말거나 좌측으로
진행한다.
11:00 우측 아래 6인 무명 순교자의 묘지에 내려가 안내표시판을 읽어보고 다시 올라와 정맥길을 따른다.
11:11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니 길도 희미한 꼬불꼬불한 내림길이 이어지고
잡목 숲을 가파르게 내려가니 무지막지한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는다.
절개지 위에서 절개지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니 다래넝쿨이 우거져있고 다시 가파르게 올라
가시덩굴을 뚫고 진행하지만 이미 몸은 지쳐있고 힘들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시 뒤돌아 잠시 후퇴하여 내려왔던 절개지 사면을 또 다시 오르려니 더욱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차라리 절개치를 치고 내려가기로 작심하고 절개지 밑을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려온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스틱을 먼저 밑으로 내던지고 암벽용 장갑을 꺼내어 끼고서 뒤돌아 낙석방지용 철망을 붙들어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니 지나가던 승용차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고 위험하다 큰소리를 친다.
정맥을 하다보면 이런 철조망이나 절개지 암벽 등은 거뜬하게 해결해야 되는 법 아닌가.
철망 안쪽에서는 잔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철망은 휘청거려 그 옆의 와이어를 함께 붙들고
힘들게 내려서는데 누가 사진 한 장 찍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의 웃음을 짖는다.
이 모습을 아내가 보았다면 나는 아마도 등산화와 배낭을 다시 만져볼 수 없었을 그런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지고 내려선 그곳에서 좌측으로 낙석방지용 옹벽 뒤를 따르는데 가시덩굴이
훈장을 달아준다.
참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던지 아니면 절개지 사면까지 내려왔다면
좌측으로 진행하면 쉽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스릴 넘치게 진행하려면 철망을 붙잡고 뒷걸음질로 내려오는 것도 그리 위험하지는
않으니 모험심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기분 짱 이다)
11:21 안성과 진천을 잇는 313지방도인 배티고개에 내려서니 좌측 고개에 검정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정맥군의 차가 아닌가 추측되어진다.
고개 정상을 오르기 전 좌측의 넓은 공터로 도로를 가로질러 우측 능선의 급 오름을 오르는데 길은
희미하고 발걸음은 덜어지질 않는다.
악으로 깡으로 급 오름을 올라서니 능선에 선명한 등로가 이어지고 우측 아래로 골프장 진입로인 듯
삼거리가 보이고 우측 능선 아래로 중앙CC진입도로가 이어진다.
11:48~11:56 저 앞에 나뭇가지 사이로 통신탑과 시설물이 보이고 우측 아래로는 골프장 진입로가 계속
이어지며 등로에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1이라 쓰여있고 3분 후 헬기장에 도착된다.
421.8m봉으로 추정되는 헬기장에 오르니 할미꽃이 군데군데에서 삐쭉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12:06 헬기장에서 1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 후 가파르게 내려서 골프장으로 내려서니 우측 아래로
골프장의 건물이 보이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납골당으로 올라선다.
12:08~12:27 延安李氏 납골당 우측에는 정자가 있고 그 뒤로는 골프장의 넓은 그린이 펼쳐지고 주위에
벚꽃이 하얗게 만발해있다.
오랜만에 좋은 휴식처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맨날 묘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납골당 옆 정자에서 편안하게 점심을 먹다보니
낮잠이 그리워져 잠시 누워 허공을 바라보다 갈 길을 재촉하여 №53번 송전탑과 №35번 송전탑 밑을
연이어 통과한다.
12:35 우측의 무제산(573.7m)과 옥녀봉(466.5m)으로 이어지는 능선분기점인 430m봉에 올라 좌측의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10분 후 십자로안부를 통과한다.
12:59 등로 좌측 능선으로 간간이 박혀있는 숲길을 통과하여 완만하게 봉에 오르니 깨진 사각의
시멘트에 나사모양의 십자형 삼각점이 박혀있다.
13:12 희미한 십자로 길을 통과하여 올라서니 철판이 깔린 넓은 헬기장의 470m봉에 도착되고 헬기장
우측에 는 삼각점이 박혀있으며 넓은 조망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맥길은 헬기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13:20 직진의 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내려가 5분 후 십자로 안부에 내려서니 조그마한 돌탑이
만들어져있고 우측 아래에 묵은 논이 있으며 원두막 하나가 흉물스럽게 쓰러져 있다.
13:36 홈통 길을 가파르게 올라 좌측으로 이어 진행하다 우측으로 꺾어 진행해 내려가니 우측 아래로
절이 보이고 예쁜 노란 야생화가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13:46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우측에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져있고 그 너머로 청룡골프장이 가까워 보인다.
14:05 봉에서 내려서 조그마한 돌탑을 통과하니 삼각점이 박혀있는 410m봉에 도착되고 다시 내려간다.
14:14~14:25 좌측으로는 안성과 우측의 진천을 잇는 387번 지방도인 옥정현에 내려서니 우측 아래로
휴게소 비슷한 건물이 나오고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에 올라서 묘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캔 맥주
하나를 비우고 좌측으로 오르니 절개지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고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14:34 가파르게 올라선 봉에서 다시 내려서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너덜바위들이 간간이 보이는 봉을
올라서니 전천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새벽에 산행을 출발해 진행하시다 등로에서 낮잠을 3시간 자는 바람에 현재 서운산 근처에 오셨고
금북정맥 졸업을 접고 배티고개에서 하산을 하신단다.
함께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쉬움이 남는 소식이었고 아마도 금북이가 나보다는 전천후님을
더 보고 싶으셨나보다.
14:50 첨성대 모양의 돌탑이 있는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여 무이산(462.7m봉) 능선분기점에 올라서니
돌에 흰 페인트로 뭐라 쓰여있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15:12 고만고만한 봉 2-3개를 넘어 사장골정상에 도착된다.
15:23~15:35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십자로 안부에 돌탑이 정교하게 세워져있어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파르게 또 오른다.
15:50 능선을 가파르게 올라서 첫 번째 봉에 도착되고 다시 2번째 봉인 454.9m봉에 도착하니 삼각점이
박혀있고 좌측 능선 안부로 멧돼지들의 흔적이 보인다.
좌측 저 아래로는 벌목지가 흉물스럽게 조망되고 우측 저 아래로는 임도가 이어진다.
16:15 가파르게 봉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몇 번 반복하다 다시 오른다.
16:28 병무관:3.5㎞, 무술마을:2.2㎞, 칠장사:5.2㎞라 쓰인 이정표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우측의 덕성산을 들려보기로 한다.
덕성산(521m)에 도착하니 표지석에는 519m라 표기되어 있고 돌탑과 덕성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며 우측 아래로는 광혜원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칠장산을 향해 재촉한다.
16:55 곰린정상에서 좌측으로 이어 진행한다.
17:05 정상석과 돌탑이 세워진 칠현산(516.2m)에 도착한다.
17:18 피곤함도 잊고 곧바로 칠현산을 출발하여 산죽밭을 통과하고 또 다른 돌탑을 하나 통과한 후
긴 산죽밭을 통과하니 좌측으로 세븐힐CC가 계속 이어진다.
17:24 돌탑으로 만들어져 세워진 부부탑 칠순비를 통과하여 마지막 사력을 다하여 칠장산을 향해
오르니 헬기장을 통과하게되고 칠장산이 지척에 가까워 보인다.
17:46 드디어 작년 가을에 통과했던 한남정맥과 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의 삼 정맥 분기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도착되고 다시 좌측의 칠장산으로 오른다.
17:50 칠장산에 도착하여 지나온 마루금들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뭉클했던 그 무엇이 발산되어
칠장산에 울려 퍼진다.
짙게 잠겨버린 목소리와 뜨겁고 벅찬 감동의 눈시울이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강하게만 느껴졌던 六德이의 육신도 벅찬 감동 앞에선 감동의 눈시울로 대신할 뿐이다.
내가 왜!
뭣 때문에 이곳까지 이렇게 달려와야 했단 말인가!
택시 안에 흘려버린 자동차 열쇠 때문에 마음조리고, 운명을 달리한 장형님의 비보를 접하고도
산행을 강행해야 했던 일, 우중산행에 예비등산화까지 준비하여 마루금에 올라섰다 나도 몰래
원점으로 뒤돌아 가버렸던 황당한 사건, 쏟아지는 졸음과 지친 육신으로 올라서야 했던 백월산 길....
나혼자서 묵묵히 걸으며 느껴야 했던 그 모든 순간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번의 백두대간 종주와 그동안 단독으로 진행했던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북정맥 그리고 단체로
진행했던 낙동정맥의 끝자락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 뜨거운 감동을 이곳에서 혼자 느껴본다.
아~~
바라보이는 저 마루금에 내 뜨거운 땀방울과 불같이 뜨거웠던 족적들이 남아있으리라...
복받쳐 오르는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의 고마움에 감사를 표한다.
그 동안 금북정맥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산우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2-3시간의 짧은 수면으로 새벽 2시에 집을 나서 자정 넘어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가슴 조이며 애태웠을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뜨거운 사랑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이 가슴 뭉클했던 끝맺음은 또 다른 미답의 길을 찾기 위한 시련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이제 낙남정맥으로 발길을 옮길 예정입니다.
그 동안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교통사정을 고려하여 미장리로 하산을 시도하니 인적이 없는 길이기에 멧돼지들의 흔적이 많고 길을
잘 찾아 진행하여 홈통길을 요리저리 따라 내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