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하오. 요즘 당신 무척 힘든다는 것 잘 알고 있소. 언젠가 말하지 않았소. "모송론"에 나온 얘길 들려주며,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나는 자식이니, 그 때를 대비해서 마음 굳게 먹어라고.... 그랬긴 하지만 나도 지금 마음이 편한 건 아니오. 나는 애비된 도리로 여태껏 한다고 했지만 당신이야 어디 내게 견주겠소.
준희 애비 유학 결정할 때만해도 나는 반대했잖소. 그건 미래를 예측했었기 때문이오. 이미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내가 뒷바라지를 할 능력이 부쳤기 때문이었소. 신영동학원을 끝내고 내가 벌 수 있는 게 고작 얼마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준희 애비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걸로 아오. 그때 내가 "모송론" 얘기를 한 것 같소.
그 날 이후 당신은 음식점 개업 준비를 했고 결국 미금에다가 '이자까야'를 내지 않았소. 우리 식구들...특히 시골 작은 아버지의 뼈 있는 말이나 누나들의 물장수론을 일축하며 오늘로 6년째 밤 네 다섯 시까지 일해온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 나는 잘 아오. 바로 준희 애비 유학비 마련이었잖소. 누가 비웃어도...심지어 당신을 좋아하던 선생님들까지 당신을 외면할 때도 당신은 굿굿했었소. 그건 당신의 자랑이자 생명인 맏아들의 성공을 믿었기 때문이었소.
당신 오빠의 비아냥과 참기 어려운 모욕을 견뎌 온 힘도 바로 같았을 것이오. 그때마다 이젠 고인이 되신 당신 어머니의 헌신적인 물심양면의 격려가 지금까지 당신을 버티게 한 힘이었는데.... 이제 어쩌면 좋겠소. 그 두 힘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오늘로 사흘 밤을 꼬박 새며 둘째와 경애를 데리고 분풀이하듯 이것저것 마구 삼켜대는 당신이 나는 걱정스럽소. 낮에 준희가 왔을 때, 설마? 했었소. 준희 애미가 정말 오지 않을 줄은 ...나는 그 애의 교양을 믿었었는데.... 그게 국수 한 양푼을 눈물로 섞어 삼킬만큼보다 더 섭섭하다는 걸 나는 아오.
아이들 연애시절부터가 쭉 주마등처럼 스치는 건 울다지쳐 쓰러진 당신의 애처러운 모습과 겹쳐져서 까닭 모를 비애가 이 새벽에 나를 엄습하오.
그러나, 당신!
벌써 애들과 헤어져 산지가 몇 년이오. 준희 애비도 애비지만 그 애미도 힘들긴 마찬가지 아니었겠소.
그리고 비록 애들이 큰 성공을 해서 금의환양한다고 한들 우리가 바랄 게 뭐 있겠소. 당신과 나는 그 애들 뒤에서 박수만 보내면 되는 거요. 가시고기 아비가 생각나오. 종내는 자신의 주검마저도 자식들에게 헌신하고 가는 가시고기 아비의 일생이 우리 삶과 무엇이 다르겠소. 우리는 그저 박수만 보냅시다.
며느리야 얼마나 충격이 컸겠소. 우리 실상을 보니까 빈껍질뿐이니 그 실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 않았겠소. 그렇다고 비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둘째와 셋째도 뒷바라지 해야 하는 거니 오죽 답답했겠소. 부모자식간에도 물질이 넉넉해야 원만할 거라고 당신이 스스로 말하지 않았소. 그러면서도 은근히 우리 자식들은 예외이거니 한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겠소.
이제 5시 40분이오. 스무날이나 계속 되던 장맛비가 그치고 오늘은 햇빛을 볼 수 있기를 바라오. 당신 소원대로 나는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부지런히 벌어서 우리 자식들에게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남겨주고 가겠소. 내 약속하리다. 맏이 아니면 둘째, 둘째 아니면 셋째도 있잖소. 그저 셋 중에 한 눔이라도 당신의 눈물어린 노고를 알아만 준다면 우리 그걸로 만족합시다.
사랑하오.
당신,
지금 가슴이 너무 뜨거워 이만 멈추려고 하오. 당신의 고왔던 손이 .... 험해질 때마다 내 가슴이 더 아프다는 걸 당신도 알 게요. 내 꼭 보답하리다...꼭....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