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수준의 인테리어 감각을 갖춘 주부라 할지라도 집 전체를 개조할 계획이라면 대개 전문 디자이너가 있는 시공 업체를 찾아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공사를 의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벽과 바닥 컬러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복잡한 시공 절차까지 공사를 처음 해보는 사람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혜정 씨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공 업체만 구해서 직접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집’에 대한 콘셉트를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 단순히 ‘oo한 스타일’로 꾸미고 싶다거나 트렌디한 분위기를 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면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찾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혜정 씨는 집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컬러 매치에서부터 공간 활용에 대한 계획, 가구나 패브릭, 소품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신이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해 무척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해왔다. 오히려 흔들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소신 있게 집을 꾸미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실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셀프 리모델링
한마디로 이 집은 혜정 씨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집’의 실현이다. 캐나다 교포 2세인 그녀는 밴쿠버에서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인테리어 관련 서적과 잡지를 접하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도 책이나 잡지를 보면서 맘에 드는 페이지가 있으면 꼭 스크랩을 해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언젠간 집을 이렇게 꾸며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어른이 될 때까지도 계속 보관해두었던 것. 꾸준히 모아왔던 방대한 분량의 스크랩은 이번 집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가장 훌륭한 지침서가 되었다. 한 번도 집을 고쳐본 적이 없는 주부가 직접 리모델링한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화롭고 완성도 높은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이렇게 오랜 세월의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 |
서구식 주택 스타일로 꾸민 아파트
집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다름 아닌 벽면이었다. 집 안의 모든 벽면을 외국 인테리어 잡지에 등장하는 서구식 주택처럼 페인팅으로 마감한 뒤 다양한 몰딩 장식으로 변화를 주었는데, 집 안이 한층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느껴졌다. 부드럽게 빛을 반사해 실내를 한층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세월이 흐를수록 빈티지한 멋도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페인팅 벽면의 매력이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시공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일반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벽지로 마감하기 때문에 페인팅을 하려면 벽지를 벗겨내고 시멘트 벽면에 다시 얇은 석고보드를 덧대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서구식 주택에 살며 페인팅과 몰딩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혜정 씨로서는 아무리 어려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페인팅은 컬러 선택이 무엇보다 어렵고 중요한데 구체적인 컬러를 정하는 데에는 미술을 전공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거실과 침실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도록 은은한 베이지 컬러를 선택하고, 아이방은 산뜻한 분위기를 살려줄 수 있는 파스텔 블루로, 서재는 따뜻한 느낌을 더해주도록 파스텔 옐로로 페인팅했다. 아이가 아직 어린 만큼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천연 페인트를 선택해 유해 요소를 최소화했다. | |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멋
방마다 컬러도 다르고(거실과 침실은 동일하지만) 가구도 각기 다른데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몰딩의 역할이 크다. 공간에 따라 크기와 디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집 안 모든 벽면에 화이트 몰딩 장식을 덧대어줌으로써 한층 통일감이 느껴지도록 꾸민 것이다. 몰딩은 패턴의 변화 없이 한 가지 컬러로만 마감해 자칫 밋밋해 보이기 쉬운 페인팅 벽면의 단점을 보완하기에도 효과적인 장치다. 이 집에서 몰딩의 입체적 장식 효과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은 거실과 아이방. 비교적 공간이 넓은 거실에는 폭이 넓은 화이트 몰딩을 위와 아래, 중간에 둘러 화려한 느낌을 더했고, 아이방에는 가는 몰딩으로 마치 액자처럼 모양을 만들어 경쾌한 분위기를 살렸다. 물론 집 안 전체의 몰딩 장식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페인팅과 몰딩 장식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집 안에 꼭 맞춘 듯이 어우러진 가구들과 패브릭은 차분한 색의 클래식한 디자인이 대부분. 옷을 살 때도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는 그녀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다만 클래식하더라도 너무 중후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골라 세련된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했다. | |
공간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
이 집에서 베란다 확장 외에 구조적으로 본래의 형태와 가장 많이 달라진 곳은 안방 파우더 룸과 보조 주방이다. 욕실 입구에 위치한 파우더룸의 경우 간이 붙박이장과 화장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중간한 수납공간으로 남겨두느니 차라리 한쪽 벽을 허물고 벽 전체에 딱 맞는 16자 크기의 붙박이장을 짜 넣기로 한 것. 화장대가 있던 곳도 기존의 가구를 없애고 안방 벽면과 동일하게 페인팅과 몰딩으로 마감한 뒤 전신 거울을 놓아 멋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평수에 비해 비좁게 나온 주방의 수납 문제도 보조 주방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면서 해결했다. 빌트인되어 있던 김치냉장고를 없애고 대신 허리 높이의 서랍장 겸 수납장을 짜 넣어 잡동사니 살림살이를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도록 한 것. 주방과 보조 주방 사이를 연결하는 미닫이문도 없애고 주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해 주방이 한층 넓어 보이도록 했다. | |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시간
혜정 씨는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에 대해 세부적인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니 좀 막막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견적서에 대한 개념도 없어 집 주변에 있는 인테리어 업체 2~3군데로부터 견적을 받아 그 내용을 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견적서를 보는 눈이 생기자 지역을 넓혀 저렴하면서도 맘에 드는 업체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집 전체를 도배가 아닌 페인팅으로 마감할 것이었으므로 페인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시공 업체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지인의 소개로 한 시공 업체를 소개 받아 공사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시공팀을 이끌며 직접 공사를 하는 일은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인부들을 다루어야 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처음 집을 고치는 ‘초보’에다가 여자라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고, 조금만 한눈팔면 도면과 전혀 다른 형태로 공사를 해놓고 못 바꿔주겠다고 버티는 때도 있었다. 이쯤 되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여길 법도 한데 혜정 씨는 의외로 힘들었지만 무척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공사하는 3주 동안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집이 완성되어갈 때 느끼는 뿌듯함도 무척 크더라고요.”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컸다는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알고 있고 세밀한 준비 과정만 있다면 누구나 집을 직접 꾸밀 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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