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 선수들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은 이 땅에서보다 바다 건너 타지에서 훨씬 더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는 느낌이다.
김택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양의 탁구 강국을 순방할 때면 어딜 가든지 김택수는 팬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탁구 선수가 팬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려? 이해가 안 된다. 프로 야구 선수도 아니고 프로 농구 선수도 아닌 탁구 세계 탑 랭커한테 사인을 받아? 대만의 한 팬은 대만에서 열렸던 한 국제 대회의 현지 중계방송을 시청하는 도중 TV 화면에 나온 김택수의 얼굴을 다시 카메라로 찍어 김택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김택수의 집에서 보았던 수백장의 사진 속엔 적지 않은 수의 중국 여성 팬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 때문에 부인 김조순의 바가지도 피해갈 수 없었다.
현 여자 탁구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왕란 선수의 취미 생활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면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택수가 한창 펄펄 날기 시작했던 95년, 그러니까 왕란 선수가 학생시절부터 그녀는 틈만 나면 김택수의 경기 장면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여가 선용'을 한다. 대부분의 신예 중국 선수들의 '탁구 히어로'는 발드너와 김택수로 꼽힌다고 하니 기뻐해야 할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김택수에 대한 대외적인 관심은 동양권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 최강의 프로 탁구 리그인 분데스리가의 명문 탁구클럽 '그랜저우' 팀은 지난 97년 5월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 어깨부상으로 남자단식 32강전에서 탈락한 김택수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러브콜을 보내왔다.
10개월 임대 형식으로 연봉 15만 달러라는, 당시 탁구 선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한 것이었다. '그랜저우' 클럽은 삼소노프, 공링후이, 류궈량 등, 대부분 당시 세계 랭킹 10위 권에 속해 있던 탑 클래스 선수들을 보유하고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던 강팀이었고, 김택수까지 영입해서 '펜홀더 전형'까지 보강하려는 의도였다. 소속팀 대우증권 역시 팀의 기둥이었던 김택수를 '좀 더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기량을 향상시킨다'는 취지에는 동감했지만, 여러 가지 민감한 팀 사정 때문에 결렬되고 말았다. 유럽 측의 끈질긴 '김택수 스카우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8년 9월에는 프랑스의 1부리그 클럽인Caen(까엥)에서 10개월 임대 조건으로 1억5천만원을 제시했다. 98년 10월부터 99년 5월까지 까엥 팀 소속으로 탁구를 좀 쳐달라는 얘기였고, 그 기간 동안 국가대표 소속팀 복귀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었다. 태극마크는 언제라도 달게 해 줄 테니 '비는 시간'에 와서 라켓 좀 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결국 김택수는 10여년 만에 다시 한번 유럽으로 복귀한다.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까엥에 적을 두었던 기간 동안 김택수는 아마도 일생일대 가장 감정적으로 up 되어 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진출 2개월 뒤인 98년 12월엔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의 기적적인 금메달 잔치가 있었고 그의 천년배필 김조순과의 교제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도 역시 그가 프랑스 까엥 소속으로 운동을 했을 때니까 말이다.
김택수의 길지 않은 일대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필자는 한 가지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의 스포츠 영웅 타이거 우즈, 안드레 아가시, 마이클 조던 등이 세게 스포츠 마케팅의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선수였다면, 김택수 또한 '우리가 모르는 동안' 세계적인 탁구 용품사의 간판 얼굴로 활동하고 있었다. 일본의 버터플라이 사는 스웨덴의 '발드너 시리즈', '페르손 시리즈',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프리모락 시리즈'에 이어 얼마 전 펜홀더 전형 전용 라켓인 '김택수 시리즈'를 출시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현존하는 세계 시장의 탁구 라켓 중에 가장 비싼 제품 중에 하나라고 한다. 다시 한번 굳이 탁구를(Table Tennis)를 테니스(Tennis)에 비유한다면, 김택수의 지속적인 세계 랭킹을 토대로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국내 그 어떤 선수가 자기 이름을 건 라켓이 세계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단 말인가… 몰타의 탁구 팬들이 들으면 '경기'할 소리가 아니란 말인가…
철저한 '탁구 이야기'를듣기 위해 소속팀 담배인삼공사의 훈련장인 상무 체육관으로 한 번 갔었고, 김택수의 '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송파 보금자리를 찾았다.
원래는 김택수와 소주를 한잔 하려고 했었다. 상무체육관에서 김택수와 얘기를 나누는 도중, 왠지 모르게 '이 사람 술 한잔 들어가면 진짜 재미있는 사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녁 약속을 했지만, 그가 급하게 지방 대회에 출전하는 바람에 소주 약속은 무산되고 그의 신혼살림 집을 대신 찾았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김택수의 반려자는 바로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김조순이다. 사실, 필자의 성격이 고약해서인지 '김택수-김조순' 정도의 스타 커플이라면 무엇보다도 '연금'이 궁금했었다. 둘이 합쳐서 도대체 얼마나 받는지 말이다. ^^ 이미 김택수의 1차 인터뷰를 통해 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히 들었기 때문에 그의 집을 찾았을 땐 그냥 아주 거침 없이 '연금 커플'이란 표현을 쓸 수 있었다. 이에 받아 치는 김조순의 멘트가 더 압권이다. "우리 연금 '만땅' 커플이예요… ^^
김택수와 김조순은 98년 6월, 태릉 선수촌 합숙 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대표팀 선수들의 최대 악몽 중에 하나였던 '불암산 합동 등반' 당시 두 사람은 모두 부상 때문에 '도보조'에 속해 있었고, 하산길에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된 김택수와 김조순은 '불꽃이 찌링찌링' 하는 그런 첫 만남은 아니었지만, 둘의 첫 만남은 하여튼 그렇게 이루어졌다. 내려오는 길에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둘 다 잘 기억은 못한다. 하지만 (필자 역시 그를 만나고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김택수 특유의 '입담'에 김조순은 호감이 갔던 것 만큼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저 친한 '운동 선후배' 사이였지만, 같은해 12월 방콕 아시안 게임에 두 사람 모두 '동반 우승'을 하면서 둘의 사이는 좀 더 끈끈해 진다. 전화, 편지, 삐삐를 통해 서로 격려하며 응원하고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 보다도 상대방의 금메달 소식에 더 감격한 걸 보면 제 아무리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사건'은 터졌던 것이다.
이제 막 불꽃을 당기려던 두 사람에게 시련도 없지 않았다.
2000년 봄, 좀 더 홀가분한 상태에서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결혼 계획을 발표했던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언론의 관심 그리고 인터뷰 요청으로 인해 먼저 나가 떨어진 사람은 바로 김조순이었다. 극도의 집중력과 심적 평정을 요구하는 양궁 선수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결과는 시드니 올림픽 예선 탈락. 김조순의 올림픽 2관왕 꿈은 그렇게 무너졌고 김조순의 충격으로 인해 김택수 역시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흔들렸다.
단식 1회전 탈락, 복식 8강 탈락… 잘 나가던 스타 커플이 꿈꾸던 최대의 결혼 선물,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명예로운 은퇴'는 그렇게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함께 위로하며 극복했던 것이 오히려 둘의 사이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 12월23일 올림픽 파크텔 결혼식장에서 둘은 황영조의 사회로, 그리고 김운용 회장의 주례로 화촉을 밝힌다.
김택수와 김조순은 아주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매달 꼬박꼬박 200만원씩의 수입이 보장되니 사는 게 재미없을 일도 없겠지만… 송파에 자리한 그들의 보금자리는 말 그대로 깨소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여느 신혼살림과 다를 바 없었다. 김택수와 5년 차이가 나는 김조순 역시 이제 아줌마 냄새가 폴폴 나서 그런지, 운동 선수 특유의 수줍음과 낯가림 보다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하게 잘 웃는 그런 시원스런 성격의, 그리고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수박을 내 놓으며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김택수는 며칠 전 상무 체육관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필자가 소주 자리에서 찾고자 했던 그런 김택수의 '끼'가 발동 걸리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옆에 있는 자리에서도 은근히 '왕자병' 증세를 보이며 꺼내 놓는 중국의 '극성 (미모의) 여성팬' 이야기에서부터, 카타르의 교민 아줌마들과 골프 라운딩까지 해야 할 정도로 어딜 가나 '탁구 계의 얼굴 마담' 노릇을 해야 한다는 넋두리, 그리고 마루에 진열되어 있는 빈 양주병 3병을 하룻밤에 비워버린 이야기까지…
감히 누가 김택수를 이런 사람이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탁구대 앞에선 물불 가리지 않는 냉철 'Hitman 김택수' 일런지 몰라도, 사석에서의 김택수는 샤프한 이미지만큼 날렵하고 재치 넘치는 위트를 발휘하는 대단한 재담꾼이었다. 김택수가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동안 김조순은 옆에서 웃음을 멈출 줄 모른다. '신참 부부' 김택수와 김조순이 놀고(?) 있는 모습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좋아보였다.
올 늦가을이면 김택수는 아빠가 된다. 김택수-김조순 커플의 태교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꿈 같은 신혼살림집에서 1년에 6개월도 채 못 사는 김택수가 집을 비울 때면, 김조순은 아무리 심심해도 전자파 우글거린다는 인터넷 접속도 삼가고 있다. 비록 임신 5개월 째지만 태아의 발차기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김택수의 경기 비디오를 태교 삼아 시청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집 아이는 뭐가 될는지 더 궁금해 진다. 유전자로만 따지자면 잘못 나와도 '칼 루이스는 기본' 같다.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탁구 선수도 괜찮을 것 같다는 김택수의 의견에 김조순은 골프 쪽을 지지한다. 김택수는 곧 바로 받아 친다. '애 골프 시킬 돈 되겠냐?'고… '연금 만땅 커플' 맞는지… 아니 그러다가 자식까지 연금 받게 되는 건 아닌지… ^^
' 아무리 좋은 취지로 조직이 되어도 한국 사람들 여럿 모이기만 하면 결국은 파벌 싸움하고 갈라지는 꼴 보기 싫어서' 일체 스포츠인 모임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김택수-김조순 커플이 유일하게 활동하는 모임이 하나 있다.
바로 OB 스포츠인들이 모여서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함께하는 사람들' 이란 봉사 활동이다. 현역 선수의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다른 사람들만큼 왕성한 활동은 못 하고 있지만, 그 모임만큼은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김택수의 지론 덕택에 골프면 골프, 바둑이면 바둑, 김택수는 못 하는 게 없다. 골프 실력도 싱글 수준이라고 하니 프로 선수처럼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탁구 선수 김택수가 이런 만능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 이었는지 그 누가 알았을까? 김택수의 인간적인 측면은 분명 일대 '발견'이었다.
어찌 보면 김택수는 실속파 중에 실속파이기도 하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여느 프로 선수처럼 빚을 내어 외제차를 끌고 다니지 않아도 김택수는 챙길 것 다 챙겨가며 인생을 enjoy 하고 있다. 남 부럽지 않은 삶이다. 5살 연하 이쁜이 와이프에게 '2006년 아테네'를 강조하며 '올림픽 금메달 한(限)풀이'를 다짐하는 김택수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미소를 머금는다.
후추 명전을 한번씩 쓰는 동안 필자 역시 '선정 기준'에 대한 판단이 가물가물해 질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옳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김택수의 경우는 달랐다. 열흘 가까이 그를 지켜보고 그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그의 경기 장면을 분석하면서 '김택수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택수 같은 국제적인 보배를 아직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직접 가서 응원해 주고 파이팅을 외쳐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김택수는 오늘도 한국 탁구의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내년쯤이면 은퇴를 하지 않을까 싶은 필자의 예측을 "아테네까지 해야죠." 라는 한마디로 일축하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년에 큰 부상을 입어서 본의와는 달리 은퇴를 할지도 모르지만,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란 무언의 전제가 더더욱 대견(?)하다. 그래 맞다. 탁구란 종목이 '메달권 효자 종목'이 더 이상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나이든 노장 선수가 순수히 그 스포츠를 enjoy 하는 차원에서 라켓을 계속 잡는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몇일 전 어느 골프대회에서도 김택수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Eagle을 칠 정도로 그의 골프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국제 대회에서 비추어지는 김택수의 모습과 유니폼을 벗은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삶을 즐기면서 살 줄 아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여유 있고 정감 있고 사근사근한 김택수를 보면서'과연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토록 무서운 승부욕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서른 두 살짜리 '노장 선수' 김택수가 탁구에 있어서 더 이상의 목표는 없다고 얘기할 지 몰라도 필자는 느낄 수 있다. 김택수의 탁구 시나리오 속엔 '마지막 랠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마지막 반격'이 남아 있다는 것을…
현역 초반 유남규의 그늘에 가려 아직까지도 '2인자'의 누명을 쓰고 있는 김택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남자 탁구의 1인자임을 후추가 나서서 공표하려고 한다.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아닐지언정,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아닐지언정, 후추는 김택수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라켓을 휘둘러 왔지만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탁구사를 장식해 온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쳐두고 후추는 자랑스럽게 '현역 김택수'를 불러낸다. 그가 은퇴한 후에나 인정하고 박수 쳐 주는 그런 팬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