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모자란 사람들의 얘기일지 모릅니다. 그것도 다 쉰 살이 넘어……
그러나 팔 박 구일동안 다 걷고 보니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걷는다는 것도 사람 사는 일부이니까요……
늘 그렇듯 눈을 아프게 합니다. 김도수.
남해 바래길 걷기 – 후 (2015.07.20.월 – 07.28.화)
※‘바래’란 남해 사람들이 척박한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물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초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 그 길을 바래길이라 한다함.
김샘이 다섯 시간을 운전해 삼천포항에 도착한다. 매운탕으로 저녁. 박샘,최샘,김샘,나. 남해 창선도가 고향인 장교감님의 시골집이 비워 있어 거길 근거지로 바래길를 걷기로 했다.
어두워졌으니 처음 가는 집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작은 냉방기가 달린 방에, 먼저 내려와 근처 오용리의 땅을 손보고 있는 서샘과 눕는다. 방충망을 닫으면 맞바람이 없어 무지 더운 아랫방엔 네 명이 누웠다. 다들 침낭을 가져와 이불로 한다.
그리고 모기와 싸운다. 오죽 더워 답답했으면 누군가 방충망을 잠시 열었을까? 옛 시골집은 그렇게 더위와 모기로 다가왔다. (냉방기를 끄면 ‘앵‘하는 모기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기와의 사투로 선잠을 잤다. 최연소 남(그래도 쉰이다) 김샘이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 한다. 취사도구 일체를 다 가져와서 우릴 먹여 살린다. 고마울 뿐이다. 운전과 경리까지 몽땅 우린 다 맡겼다.
무심한 선배들이라고는……
서샘이 대문 앞과 마당의 잡초를 낫으로 깨끗이 없앤다. 우린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오용리와 중현리 땅을 둘러보러 집을 나선다. 조금씩 비가 떨어진다.
질러가는 길을 버리고 해안도로로 가니 시간은 걸리지만 경치가 죽이는 드라이브 길이다.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다.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킨다. 아름다운 우리 땅이다. 덤으로 눈이 사치를 한다.
오늘 목적지(가천 다랭이 마을)에 차를 둔다. 서샘이 출발지로 데려다 주고 오용리로 간다. 우리 다섯 명은 점심 무렵에 평산항을 출발한다. 다랭이지겟길이라 이름 지어진 바래길 일 구간을 걷기 시작한 거다.
더우니 반바지 반팔 차림이다. 이게 오늘 고생의 시작이었다. 여름이니 숲속에 난 오솔길은 풀이 무성하다. 길이 잘 안 보이는 데다 엉겅퀴 같은 날카로운 놈들은 무릎 아래를 강타, 생채기를 선사한다. 그래도 이건 참을만하다.
모기란 놈이 사정없이 종아리를 물어뜯는다. 얇은 윗옷을 뚫고도 문다. 쉴 틈 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서라도 계속 걷는다.
그리고 푹푹 삶는 더위! 습도가 높으니 땀이 온몸에 줄줄 흐른다. 아! 이 끔찍한 더위!!
아무 생각이 없이 걷다가도 문뜩 지나온 세월을 본다. 그래! 난 무언가를 많이 잘못했나보다. 그 잘못을 갚으려 이렇게 힘이 드는지…… 그렇게 걸을 수밖에 없다. 고행(?) 걷기가 첫날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흐린 날씨라 멀리 까지는 안 보이지만)가 내게 무어라고 말해 준다. 힘이 덜 든다.
점심으로 삶은 달걀과 막걸리 한 잔. 물을 연신 들이키는데 오줌은 없다. 그렇게 다랑이 논이 많은 가천에 온다. 다섯 시간 반 정도 걸었다. 숙소로 오다 지족에서 이곳 특산물인 멸치 쌈밥을 먹는다. 별미라 먹는다는 기분? 그 이상의 맛은 잘 모르겠다.
숙소 마당에서 남자들끼리니 누가 보거나 말거나 시원하게 ‘알탕’을 한다. 간단히 한잔한다.
욕지도를 가기 위해 통영 터미널로 한 시간여 간다. 배타기 전에 속 알맹이는 없는 충무 김밥(왜 비싼지 모르겠다)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배가 연화도를 들러 욕지도에 도착, 바로 야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욕지도의 능선을 걸으며 바다를 보는 좋은 길인데 날씨 탓에 주변이 흐려(안개?) 바다를 조망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능선상의 오솔길을 걸으며 간혹 해안절벽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만이었다. 맑았으면 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둘째 배로 들어와 마지막 배로 나가야 하니 태고암으로 내려가 부둣가로 간다. 약 네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해물 짬뽕이 유명한 한양 식당에 가니 두 시 반에 끝났단다. 근처에 밥 먹을 때도 마땅치 않아 생맥주와 닭 두 마리로 점심을 해결하고 네 시 반 배로 나온다.
작은 섬에서의 걷기(산행)이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모기와 더위와의 싸움 결과는 이렇게 달콤했다. (어제의 교훈으로 긴팔 긴바지를 당연히 입었다.)
아침에 김생이 브릿지한 이가 흔들려 서울로 올라간다. 오늘은 바래길 이 구간인 앵강만을 일주하는 코스. 그러나 출발 초입을 찾는데 삼십여 분을 허비한다. 남해군에서 자세하게 안내해 주면 좋으련만……
간혹 걷기 길을 가다 보면 만들어 놓고 사후 관리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담당 공무원의 안일함 같은 생각이 든다.
시작부터 힘을 빼고 풀숲을 걷는다. 땀은 비 오듯 한다. 그래도 묵묵히 걸으며 오른쪽에서 울리는 파도의 외침을 듣는다. 세게, 약하게, 아예 무음으로……어떤 때는 날씨가 저 멀리까지 못 보게 만든다고 불평만 하는 내 목소리만 들린다. 세상은 감사함으로 가득한데도……
월포 해수욕장을 지나다 평상에 시골 아줌마 몇 분이 앉아 계신다. 근처에 자장면 집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시켜 드려요? 하며 친절하게 전화해준다. 덕분에 옆의 평상에 앉아 간짜장을 시켜 먹는다. 걷는 중에 배달 음식이라……작은 人情을 본다.
고급 팬션만 모여 있는 데 미국 마을이라니 (당연히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 을 지나온다. 바닷가 시멘트 포장의 작은 길을 걸어 원천 마을에 다섯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택시를 불러 차를 찾으러 간다. 최샘이 일곱 시 막차로 서울 가니 남해읍으로 간다. 같이 저녁을 하지 못하고……셋만 남는다.
벽련 마을에서 시작하는 바래길 삼 구간 구운몽길을 시작한다. 서포 선생의 유배지인 노도를 보며 지나니 그런 이름을 붙였단다. 팔선녀와 노닐었던 ‘성진’보다 땀만 흘리고 있는 우리가 더 행복한 건 아닐까? 걷기가 주는 즐거움이리라.
해안가의 숲길(이 숲길은 대부분 전에 해안 경비를 하던 초소를 연결하는 작은 오솔길이다)은 풀이 무성하고 모기도 많고 습하여 땀도 많이 난다. 그래도 탁 트인 바다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는 맛이란 그만이었다.
드디어 그 유명한 남해 상주 해수욕장이다. 아직 덜 북적인다. 근처 국밥집에서 밥과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 여긴 멀쩡한 날씬데 비 온다는 예보에 손님이 없다고 국밥집 주인이 울상이다.
그러면서 뼈있는 말을 한다. 특히 남해는 십오 년 전부터 너무 비싸게 받아 이제야 그 벌을 받는다고……일리 있는 말이다. 하긴 제주도를 빼곤 바가지가 극성인 곳이 부지기수니 다시 올 리 만무하다.
박샘이 대표로 잠시 흐린 날씨지만 해수욕을 한다. 남해 음식은 ‘개밥‘이라는 택시 기사 말을 들으며 차를 찾으러 간다.( 유난히 이 구간만은 표시 말뚝은 없고 표시 리본만 달아 놓아 길 찾을 때 주의해야한다.)
토요일 -처음으로 해가 났다- 첫차로 박샘 사모님, 이샘, 집사람이 내려온다. 남해 터미널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바래길 사 구간 섬노래길 출발지인 천하마을로 간다. 하동이 고향이어 일찍 내려온 박샘의 친구 분인 유샘(지금 산청에서 근무)과 한 시에 만나 걷기로 한다.
원점회귀 길이라 차를 송정 마을에 댄다. 먼저 망산을 올라야 하는데 초입을 찾다 못 찾아 되돌아왔다 다시 찾는 약 삼십 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땀만 흘리고 소득은 없고……내가 좀 더 확실하게 아까 물었어야 하는데……난 어물쩍이 병이다.
역시 더위, 모기와 싸워야 한다. 문자로 미리 집사람에게 알렸건만 반팔에 얇은 토시 그리고 얇은 바지를 입고 가니 모기의 밥이다. 모기 퇴치제 뿌려야 소용없다. 가뜩이나 모기에 잘 물리는 데 부실한 준비로 부풀어 오른 모기 물린 자리가 집사람 팔뚝에 여러군데 생긴다. ‘에이∼’
한번 쉬고 삼십 여분 계속 오르니 정상. 오늘은 날씨가 갰다. 와! 펼쳐진 바다. 그래 고생 끝에 낙이……미조항 쪽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길다. 천천히 내려가 항 옆의 작은 마을 슈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술통 담는 빡스를 엎어 차린 상에서 먹는 막걸리, 오이 소백이 안주가 끝내준다. 이 맛 아무나 못 느끼는 겨!
설리해수욕장에서 해변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 내려오는 길인데, 전망대에서 방향 표시 말뚝이 반대로 돌려져있다. 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세우고 큰 돌을 괴어 움직이지 않게 한다. 역시 바다를 향한 전망은 땀 흘려 올라와 볼 만하다.
천하 마을 쪽으로 가는 길이 공사 중이라 설리해수욕장으로 다시 나가 찻길을 따라가야 한다. 공사 중이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바래길 홈피에 공지해 놓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 공무원은 만들면 끝 아닌가?
오는 차 안에서 누군가 말한다. 우린 좀 모자란 거 아냐? 이 더위에 사서 고생하니……누군가 답한다. 苦盡甘來!
생각은 각자 몫이다. 걷기를 좋아하든 아니든……
한잔 후 난 마당에 친 김샘 천막에서 혼자 잔다. 오히려 달린 모기장 덕에 모기 걱정이 없어 덥지만 잠은 잘 온다.
삼천포 항으로 가 사량도를 가기로 한다. 일요일이고 휴가철이라 아침은 배에 내려서 먹기로 하고 일곱 시 첫배를 타기로 한다. 여섯 명이 십오 분 전에 도착한다.
표는 파는 데 안전하게 두 시 배로 나오란다. 가는 사람도 우리 말고 없다. 그런데 잠시 후 해경이 와서 안개 때문에 출항 금지하란다. 한참을 기다린다. 올라오는 태풍 때문에 먼 바다 풍랑 주의보란다. 못나올 수 있다는 말에 표를 물린다.
다음에 통영에 숙소 정하고 섬 순례(대,소 매물도, 사량도, 연화도, 욕지도, 여수 금오도 등)를 걷기로 한다.
숙소로 다시 와서 못잔 아침잠을 잠시 벌충한다. 열시 좀 넘어 서샘이 수박 한통을 들고 두 아들과 들린다. 참외랑 수박을 먹으며 정을 나눈다. 올라가다 청도에 들린단다.
점심은 방송을 탄 수타 자장면 집으로 간다. 사람이 많다. 짬뽕, 짜장 다 맛있다. 먹고 오 구간 화전별곡길 중 편백나무 휴양림에 간다. 전망대까지 약 왕복 약 오 킬로 길을 걷는다. 차가 다니는 임도라 걷기는 좋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눈을 아프게 한다.
어쩜 저렇게 섬과 바다가 잘 어울려 아름답게 놓여있을까……
휴양림 찬물에 목욕하다 허리를 삐끗했는지 김샘이 서울 올 때까지 허리를 제대로 못 편다. 선배들이 너무 부려 먹었나?
그 유명한 남해 금산 보리암으로 간다. 기도발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란다. 사십 여 분을 기다려 구불구불 길은 차로 올라가고, 십 여분 걸어 암자에 간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분들이 많다. 금산 정상이 이백 미터지만 안가고 한 바퀴 절을 돈다.
수능기도 백일에 십만 원이라 쓰여 있다. 기도 초 한 자루에 삼천 원, 기도 쌀 얼마 등 돈을 좆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절도 교회도 불쌍한 중생 구제와는 멀어 보인다. (이러면벌받나?)
토종닭 두 마릴 사서 백숙을 한다. 작은방에 냉방기가 있으니 한잔 하며 닭다리 잡고 뜯어 뜯어다. 난 집 떠나 고생인 가운데 얻는 작은 행복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좋은 사람들과의 여행이니 즐거움이 두 배 아닐까?
이샘이 오후 근무라 첫차로 올라간다. 육 구간 말발굽길을 간다. 죽방렴(竹防簾
-일명 대나무 어사리라고 하는데, 참나무나 대나무를 개펄에다 박고 주렴처럼 엮어서 그물을 조류와 역방향으로 설치하여 그 속에 갇힌 고기를 간조시에 걷는 전통적인 어업 방식.)을 보며 걷는다. 편한 마을길이다.
땡볕에 걷는 우릴 본 어느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 하신다. ‘꿉느라고 걷능교’ 우린 웃음으로 답한다. 네 에∼∼
추섬 공원쯤에서 박샘이 어제 서샘이 보낸 문자를 이제야 본다. 마음이 짠하다고 말한다. 나도 핸드폰을 켜서 본다. 역시 마음이 찡하다
서샘이 어제, 가장 친한 친구(일패동 농장주 – 난 몇 년 박샘네와 같이 농장주가 분양해준 텃밭을 가꾸었었다. 십 여 년 동안 여러 번의 해외여행도 같이 갔었다.)가 잠들어 있는 청도 남지장사의 주목나무에 들른 소회를 문자로 보냈다.
‘넓은 채소밭 곱게 가꾼 잔디밭 다 두어 두고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땅 꽃 잔디 손에 들고 심을 곳 없어 한숨짓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광 좋은 곳이건만 도회지 풍의 진구는 얼마나 답답해할까 깊은 산중 홀로 남겨두고 돌아오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네요.’
그때(지난 유월 중순에) 난 송기숙님의 「堂祭」를 막 다 읽었다. 수몰되는 마을로 가는 그 입구, (멀리 이사도 안 가고) 재 바로 아래에 작은 집을 장만하고 써 붙인다. 한돌 영감 내외의 의용군 끌려간 큰 아들이 돌아올 때 혹시나 집을 못 찾을까봐서다. 마지막 문장. ‘부님이 아배 이름은 김진구다’
제기랄 소설엔 살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이래서 슬프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막 모레가 사십구재라고 서샘이 문자를 보냈다.)
찡한 마을을 한참 안고 콘크리트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맨땅 작은 산길도 걷는다. 사람도 없다. 새소리 듣고, 진한 노랑나비도 본다. 작은 포구도 내려 본다. 키위가 포도처럼 달려 있는 과수원도 본다. 이렇게 아주 편하게 걷는 힐링 길이다. 추천하고 싶다. 이렇게 적량까지 약 다섯 시간을 걷는다.
허리 아파 못 걷는 김샘이 우릴 데리러 온다. 냉장고의 수박과 참외도 갖고 온다. 걷기하다 이런 호사를 누가 부려 보았을까? 하하.
점심 먹고 서울 가는 날이니 일단 짐을 꾸린다. 약 한 시간만 걷기로 한다. 칠 구간 고사리밭길이다. 창선면 모두가 고사리를 재배하는지 온통 고사리 밭뿐이다, 어제 끝 적량부터 오늘은 가인까지만 한 시간 반여 바다를 보며 고사리 밭을 보며 숲속 맨땅 길을 걷는다. 아! 좋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강추!
정리 다 하고 서샘이 추첨한 읍내 식당에서 백반으로 점심 먹고 상계동에 오니 일곱 시. 뒤풀이로 닭 세 마리를 먹는다. 팔박 구일의 ‘고생 아닌 고생의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 한다.
같이 해준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내에게는 더 말 할 필요 없이 고마울 뿐이다.
이천십오년칠월삼십일일.금.늦은저녁. 未山
첫댓글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