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2005년 7월호.
실버들의 강물 소리
맹문재(시인, 안양대 국문과 교수)
너의 손끝에서는 밤새 뒤척이며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나는 새벽마다 윤슬처럼 빛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하늘같이 어려운 지도를 풀어 나가지
제철소의 용광로 연기를 밤새워 마시는 동안에도
너의 강물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름 범벅인 피장갑을 아껴서 끼었네
먼 길에서 못 돌아오는 사람들을 떠올렸고
사랑하는 골목길에 연애편지를 부쳤네
기미독립선언서를 큰소리로 외웠고
수학 문제를 풀 듯 일기를 썼네
노동법을 새끼줄 같은 밑줄을 치며 읽었고
철조망 가에 붙은 현수막들을 눈여겨보았네
너의 손끝에서 들리는 강물 소리에는
배신할 수 없다는 눈빛이 들어 있지
황사바람 속에서도 겨울 벌판에서도 늙어가면서도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의 해진 신발을 꿰매어주지
오늘은 나의 아이와 함께
너의 손끝에서 들리는 강물 소리를 듣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엔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따라 부르며
하늘같이 어려운 지도를 다시 읽네
어느덧 나의 손끝에 새 잎이 돋아나네
*) 희자매의 노래 「실버들」의 가사임.
“한갓되이 실버들/바람에 늙고/이내 몸은 시름에/혼자 여의네~.”
아니, 지호야! 그 노래 어디서 배웠니? 외갓집에 다녀온 여섯 살 된 작은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놀란 반응에 아이는 순간 대답을 못하고 아빠를 그냥 쳐다보고 있다. 혹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때 큰아이가 얼른 대답을 해준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여서 외삼촌이 드라이브할 때 틀었는데, 지호가 들어서 배운 거라고.
「실버들」, 얼마 만에 듣는 노래인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불렀으니까 거의 30년 만에 듣는 것이다. 나는 강둑에서 강물이 흘러내려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이 노래를 불렀다. 강둑에는 실버들이 길게 늘어져 일렁이고 있어 나의 어린 가슴을 흔들었다. 더욱이 실버들 사이를 뚫고 길 저쪽에서 한 여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지나가곤 해, 나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서리가 내린 늦가을 날에는 그 둑길을 걸으며 나의 장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시골 학교 국어 선생이 되어 좋아하는 시와 소설을 마음껏 읽으려고 했던 나.
어느덧 그러한 날들이 안개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가볼 수도 없게 되었다(충주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물속에 잠기는 운명이 된 것이다). 실버들 길을 지나면 우시장, 다시 골목길, 다시 중학교,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자취하던 방…….
작은 아이가 「실버들」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노래가사의 의미보다는 노랫가락이 좋아서일 것으로 보인다. “실버들을 천만사/늘어놓고/가는 봄을 잡지도/못한단 말인가/이 몸이 아무리/아쉽다기로/돌아서는 님이야/어이 잡으랴/한갓되이 실버들/바람에 늙고/이내 몸은 시름에/혼자 여의네/가을바람에 풀벌레/슬피 울 때에/외로운 밤에 그대도/잠 못 이루리”(김소월의 시 「실버들」)라는 가사에서 보듯이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노랫가락에 인생의 애환까지 담겨 있다. 누구나 겪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힘듦이 노래의 음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 살 된 아이도 살아가기가 힘들어 이 노래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이에게 「실버들」 노래를 들려줄까 물어보았다. 아이는 좋아라고 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음악검색을 통해 노래를 찾아 틀었는데, ‘희자매’의 구성원이었던 가수 ‘인순이’가 부르는 노래가 나왔다. 나와 아이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소 서글픈 노래였지만 서로 웃으면서 불렀다. 나는 30년이란 세월이 참으로 그립고 아쉬워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지만 참고 웃으며 불렀고, 아이 역시 제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즐겁게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