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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06년 봄호.
<대담 원고>
맹문재 : 안녕하세요. 요즘 한국의 겨울 날씨는 꽤 추운데, 한 시인께서 계시는 미국의 날씨는 어떤지요?
한혜영 : 플로리다의 1월 날씨는 섭씨로 따져서 최저 7, 8도 정도에서 최고 15도 안팎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겨울 내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온화한 곳이어서 요즘 인구가 부쩍 늘어나 있습니다. 북쪽으로부터 추위를 피해 이곳으로 몰려든 유동인구가 많아진 까닭이지요. 이들 가운데에는 특히 노인인구가 많습니다.
맹문재 : 저는 한 선생님과 첫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를 출간하는 일로 인연이 되었는데, 이번에 시집 내는 일로 다시 인연을 맺었습니다. 소중한 인연이라고 볼 수 있지요. 두 번째의 시집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첫 시집을 낼 때와 다른 감회가 있는지요?
한혜영 : 감회라고 하기보다는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첫 시집은 비교대상이 될 만한 기준이 없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에 비교해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요. 제 딴엔 비지땀을 흘리며 차려 내놓은 밥상이지만 입맛이 각각 다른 독자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저는 모두 수용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제게는 필시 도움이 될 테니까요.
맹문재 : 이번 시집이 첫 시집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한혜영 : 첫 시집은 등단 후 8년 만에 엮어진 것이라 변성기의 목소리가 한곳에 수록되었다고 할까요? 거기에 비하면 이번 시집은 목소리의 톤이 조금은 정리된 것도 같고,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변화에 따른 감성이 많이 작용을 했다고 볼 수가 있겠지요. 제 자신은 이런저런 것 염두에 두지 않고, 또한 이런저런 눈치도 보지 않고, 쓰고 싶은 것 그냥 쓰는 편에 속하는 셈인데, 원고를 정리하면서 보니까 도발적이던 그리움이 이제는 자포자기적인 것으로 변해가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웃음)
맹문재 : 이번 시집에는 가족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똥끝」을 비롯해 「그 발바닥 아직도 저기 가네」「어머니와 장롱」「도둑고양이」「외발노루에 대한 기억」「줄에 앉은 새」등 어머니를 제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 특히 많습니다. 작품의 제재인 어머니가 시인의 어머니라고 보는 것은 위험한 자세이지만 저는 그렇다고 믿고 싶은데,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지요.
한혜영 : 맹 선생님이 느끼신 대로 그 시편들의 제재가 어머니인 것 맞습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연발생적으로 쓰지 않고 못 배기는 소재가 어머니겠지만, 제 경우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어요. 옛날 분이라 겨우 한글만 깨우쳤을 뿐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고 이해하는 측에 속하셨지요. 어느 날 다락방에 올라가 ‘시대 와이셔츠’ 상자에 들어있던 어머니의 글을 발견하고 반나절 내내 먼지 냄새 매캐한 그곳에 엎드리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서툰 맞춤법으로 원고지에 써 내려간 내용들이 어머니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내게까지 흘러 내려온 핏줄을 확인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달리 감성이 예민했던 어머니. 마흔 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셨으니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만큼 뜨거운 가슴인들 왜 없었겠나 하는 생각을 제 나이 마흔 셋이 되어서야 비로소 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너무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괴심이 컸지요. 요즘 들어서는 어머니가 병상에서 겪었을 고통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크게 느껴집니다. 「똥끝」「어머니와 장롱」같은 시편들은 그렇게 해서 씌어진 것들이지요. 아무도 동반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뿐이 아니라 머잖아 제게도 닥칠 것 같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밖에 「외발노루에 대한 기억」「줄에 앉은 새」등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생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조명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한때 가족들이 연명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재봉틀에 앉아 일을 하다보면 어머니의 음성을 어김없이 듣곤 합니다. ‘똥끝이 탄다’ ‘줄에 앉은 새 맘 같다’ ‘간이 콩알만해졌다’ 등등은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셨던 어휘들인데, 그런 말씀들이 환청처럼 계속해서 들려오면 저는 더 이상 그 목소리를 거부할 힘을 잃는 것입니다.
맹문재 : 이왕에 가족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가족들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작품들에는 할머니, 아버지, 고모, 조카 등이 등장하는데요.
한헤영 :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일꾼 몇을 데리고 일을 나가셨는데 병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새벽에 군불을 때면서 구워서 드신 복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몇 달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를 위로해 드려야한다는 사명감(?)을 띠고 저는 우리 집과 약간 떨어진 곳에 살던 할머니 댁으로 보내집니다(커서야 입 하나 덜기 위한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만). 그리고 반년 정도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다른 형제에 비해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할머니께선 아버지를 포함해 3남매를 두셨는데 그 자식들을 모두 앞세웠어요. 그러니 그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쓴 시가 「숯불 피는 밤」이고요. 다른 가족 얘기를 하자면 6남매 중에 큰오빠와 언니 둘은 본국에 살고 있고, 작은오빠와 남동생과 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 동생이 첫 시집『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의 주인공인데, 제게는 유일한 동생이라 그런지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시집 제목으로 남동생의 얘기가 나가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제 동생에 대해서 물어오더군요. 그때 하던 세탁소를 실패하고 지금은 남의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해주신 조카는 뉴저지에 살고 있는 작은오빠의 딸이고요.
맹문재 : 이번 시집에서는 또한 ꡒ추억ꡓ이나 ꡒ기억ꡓ이나 ꡒ그리움ꡓ 등의 시어가 다소 사용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입동(立冬)」 「이상한 가게」「오래 묵은 악기」 등의 작품이 그와 같은 면을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한 시인께서는 나이가 듦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요?
한혜영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흔히들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에게 거는 위로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늙어 가는 육신을 부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여자들은 젊고 늙음의 경계선은 남성들에 비해 너무나 확연하지요. 신체적 변화는 물론 마음의 변화가 이때부터 눈에 뜨이게 달라집니다. 제 경우만 보더라도 갱년기라는 몇 년을 사이에 두고 이전에 씌어진 시와 이후에 씌어진 시가 너무도 다릅니다. 첫 시집이 나온 것이 불과 4년 전인데 그 무렵 씌어진 시 가운데 「뜨거운 상상」「봄 노래」의 경우는 상당히 발랄한 목소리로 성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후에 씌어진 「늙은 여왕」「어떤 대화」 따위의 시편들은 매우 침체된 억양인 점을 스스로 느낍니다. (이처럼 분위기가 다른 작품을 같은 시집에 넣으려다 보니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듯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목소리가 작아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제 시 속에 등장하는 추억과 그리움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고, 나이가 듦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것으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는 눈과 귀가 밝아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맹문재 : 추억의 얘기를 좀더 해보지요. 「수학여행」이나 「미친 바람 돌아가고」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ꡒ5학년 3반ꡓ이 무척 궁금합니다. 왜 그 학년과 그 반이 한 선생님께 특별히 각인되는 걸까요?
한혜영 : 저 자신도 이 질문을 받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네요. 그러고 보니까 5학년에 관한 얘기는 첫 시집 가운데「60년대 흑백영화를 보다」라는 시에도 등장을 합니다. 그것은 서울로 이사를 와서 쓴 5학년 여름방학 때의 이야기이고, 「수학여행」「미친 바람 돌아가고」는 서산서 다니던 초등학교 5학년 가을의 얘기예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쩐지 시제착오가 난 듯싶지요? 하지만 좀더 부연하자면 제가 5학년을 두 번 다녔어요. 6학년 초에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어머니 생각에 서울과 시골학교의 실력차이가 있으니까 따라가기 힘들까봐 5학년에다 다시 집어넣은 것이지요. 마침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가 나이도 한 살이 어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5학년이 어째서 제게 유별나게 각인이 되었나를 생각해 보니까 제게 있어 가장 혼란스럽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사춘기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충격적인 일들을 한꺼번에 겪었던 시기니까요. 아버지를 잃은 이후에 닥쳐온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실감할 때였고, 방황의 시작이기도 했지요. 「다시 보는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일명 개구멍치기로 극장에도 드나들 정도였고(「모녀기타」「신문고」「빨간 마후라」 등을 봤음), 시골서 서울로 옮겨왔던 관계로 문화적인 충격을 크게 받았던 때이기도 했으므로, 무의식 세계에 숨어 있던 이때의 충격들이 요즘 들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맹문재 : 한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는 고국의 친구가 있나요? 소개를 부탁드려봅니다.
한혜영 : 물론 지금까지 교류하는 친구들은 여럿 있습니다만 문학을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안부 정도나 챙기는 사이가 되어버린 셈이고, 지금까지 교류라고 할 만한 분들은 모두 문단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입니다. 제가 시를 쓰기 전에 동시조로(『아동문학연구』, 1989) 먼저 등단을 했거든요. 그때의 인연으로 스승이셨던 백수 정완영 선생님과 얼마 전에 작고하신 서벌 선생님 외에 시조시인 몇 분과 교류하였고, 아동문학가로는 엄기원 선생님 외에 몇 분이 계십니다.
맹문재 : 「두런대며 여름은 지나가고」를 읽으면 이국에서의 외로운 삶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미국에 갔는지요? 그곳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고, 현재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한혜영 : 1990년에 미국으로 왔으니까 16년째 접어드네요. 이민으로 미국에 왔는데 이곳에 와서 사회생활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흔히 미국에 오면 정신 차릴 사이도 없이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과는 달리 저는 몸만 미국으로 옮겨왔을 뿐 정신적으로는 고국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셈이지요. 본국서 시조로 등단하고 일년 뒤 미국으로 왔는데, 그때부터 막연하게 혼자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곳 플로리다는 그때만 해도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 거의 없었어요. 최근에야 마종기 선생님께서 은퇴 후 플로리다로 오셨고 임혜신 시인도 같은 주에 살고 있어 심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이곳엔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본국으로부터 구독하고 있는 『현대시학』 하나만 가지고 시를 공부하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들을 보냈어요. 이민 초기만 해도 인터넷 보급이 겨우 이루어지는 단계였고, 또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할 줄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제게 문학이 없었다면 아마도 미국생활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다행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문학에만 매달릴 수 있어 제가 원하는 길을 지금껏 걸어오긴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런 생활이 걸림돌이기도 했습니다. 몸소 나가서 부닥치고 그래야만 미국 사회에도 빨리 적응하고 이민자로서의 절박함도 체험했을 텐데 실상을 경험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이쪽에도 저쪽에도 편승하지 못하고 고국이란 양수(羊水) 속에 지금껏 갇혀 지냈던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외로움과 소외감은 미국생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외로움과 소외감이 지금까지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준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요.
맹문재 : 「뱀 잡는 여자」는 여성성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이밖에도 이번 시집에서는 「幼年으로」「홍녀」「그리운 송희」 등 여성성이 나타난 작품들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궁금하네요.
한혜영 : 여성에게는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크리스털처럼 상처받기 쉬운 여성성과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모성적 측면이지요. 두 가지 중에 어느 것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인 만큼 여성에겐 중요한 의미이자 삶의 존재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녀」「그리운 송희」두 작품에서 나오는 여성성을 언뜻 보면 크리스털처럼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만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모성의 끈질긴 애정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여성에게 있어 이 점만큼은 시대가 달라져도 크게 변하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뱀 잡는 여자」의 경우는 사실을 그대로 진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먼저 살던 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뱀이 흔했거든요. 워낙에 혐오스러운 동물이기도 하지만 저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뱀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뱀이 저 혼자 있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타났으니 도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삽을 들고 뱀을 처리하는 장면을 그대로 전달하고 나서 ‘뱀 한 마리/잡는 사이에 나는 부쩍 늘어버린 여자였다’라고 독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혐오하던 뱀을 스스로 잡을 정도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여자가 아니고선 가당하겠느냐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한 셈이지요. 그런데 이 시를 어느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성적인 묘사가 담긴 작품으로 해석을 해버리더군요. 그때서야 찬찬히 살펴보니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게 읽히는 작품이긴 했습니다. 아무튼 제 작품 속에 상당수 여성성에 관한 노출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나이 탓이라고 봐야겠지요. 젊은 여성이 이런 종류의 시를 자주 생산해내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오거나 하는 풍토 때문에 눈치를 보던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셈이라고나 할까요?
맹문재 : 이번 시집에서 한 선생님께서 가장 아끼거나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요?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한혜영 : 역시 어머니에 관한 시로 「똥끝」「어머니와 장롱」입니다. 한 편의 시가 씌어질 때 감성과 적당한 이성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감성 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육친에 관한 시가 자칫 감상적이 되기 쉬운 점도 결국은 감성의 분배를 지나치게 하는 탓이겠지만, 그럴수록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시 속에 녹아 있는 진정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밖에 제 시 가운데 혹 좋은 시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독자들이 더 잘 짚어주실 걸로 압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을 때 그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는 따로 있게 마련이니까요.
맹문재 「어린 무당」을 읽으면 시인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 시인께서는 시인으로서 갖는 자부심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요?
한혜영 : 시인을 무당에다가 비유한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가 찾아와 끊임없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지 않는 시인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시인과 무당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단지 비유할 다름이지요. 무당은 제게 찾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수준이지만, 시인은 스스로 대상을 불러들이는 주술사이자 그 소리를 고통스럽게 품었다가 날개를 달아 세상에 내어놓으니까요. 어디든지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한단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시의 생명성일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한 시가 탄생하여 높고도 멀리 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 다음에 거론될 문제라고 여겨지고요. 시인으로서 갖는 자부심에 대해서 질문을 주셨는데, 사실 그 점에 있어서는 제 자신이 회의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단순 무당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 말이지요. 그렇지만 시가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고마운 존재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맹문재 : 한 선생님께서는 좋은 작품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요?
한혜영 : 딱히 꼬집어 이런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정 계열이든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든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전달방식이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소화시키기 곤란하다 싶은 작품에 대해선 굳이 그것을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고집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의자 하나를 밟고 올라서서 선반 위에 것을 끄집어내리는 정도라면 기꺼이 작업에 임하겠는데, 사다리를 방안에까지 끌어들여야 할 정도라면 그 시는 미리부터 곤혹스러워지게 마련이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요즘 일부 시가 점점 엽기적이고 어려워지는 것 같아 당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빠르게 변모해 가는 디지털시대의 흐름이라고 봐야할까요? 시를 이해하는 제 안목이 허약한 탓도 있겠지만, 엽기적이라고 할만큼 자학적이거나 가학적인 시,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무리한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는 시에 대해선 일부러 무관심한 편입니다. 일부 평론가들이 친절하게 포크까지 찍어주면서 권하기도 합디다만 속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맹문재 : 고국에 있는 시인이나 작가들 중에서 작품을 쓰는데 영향 받은 분이 있나요? 또 교류하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한혜영 : 특별하게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내세울 만한 시인이나 작가는 따로 없습니다. 저는 본국의 문학잡지를 여러 가지 구독하면서 지냈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방법으로 문학을 해왔으니까요. 장르를 넘나든다고 하면 공연히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스스로 드러내긴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저는 그동안 여러 장르를 꾸준히 해왔어요. 시조는 물론 1998년에 ‘계몽문학상’에 장편동화 「팽이꽃」이 당선된 이후 5권의 장편동화를 출간했으니 결코 적은 분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밖에 장편소설 『된장 끓이는 여자』(문이당, 1999)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시를 쓰는 분들은 더러 느끼기도 하겠지만 제 경우엔 시의 그릇에다 담을 수 없는, 즉 서사구조를 가진 것들이나 산문이 아니고선 안 되는 것들이 넘쳐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해주신 스승은 그 동안에 구독한 수많은 문학잡지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교류라고 할 만한 시인은 『현대시』로 등단한 권애숙 시인과 『시안』으로 등단한 강유환 시인이 있습니다. 권애숙 시인과는 여러 가지로 같은 점이 많아요. 나이도 그렇고 등단 시기도 비슷하고, 시와 시조를 함께 쓰는 점이나 성격이나 생김새까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닮은꼴인데, 저에겐 많은 용기와 위로를 주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강유환 시인과는 몇 해 전부터 알게 되어 지금까지 자매처럼 꾸준히 안부를 챙기는 사이인데, 참으로 과묵하면서도 진솔한 사람이지요.
맹문재 : 혹 미국 현대시의 흐름이나 특징에 대해서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얼마 전에 임혜신 시인이 출간한 『오늘의 미국 현대시』(바보새)란 책을 받아보았는데,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서 소개해주시면 고맙겠네요.
한혜영 : 저는 영어권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미국 시인들과 교류할 형편이 못됩니다.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얘기지요. 그런 저에 비해서 임혜신 시인은 이곳에 와서 대학생활을 했으므로 비교적 영어에 능통합니다. 임혜신 시인이 출간한 그 책에 실린 내용들은 『현대시』에 몇 년간 게재했던 것이라 그동안 읽어본 내용들이긴 하지만, 다시 봐도 좋은 시들을 소개했다고 여겨집니다. 제게는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되는 것 같아 더욱 소중한 그 책을 본국의 시인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맹문재 : 근래 한국의 작품 중에서 관심 있게 읽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또 근래에 관람한 영화나 드라마가 있나요?
한혜영 : 최근에 읽은 시집으로는 이경림의 『상자들』을 인상 깊게 읽었고요. 근래 잡지에 발표된 시 가운데 정영경의 「아버지의 왼쪽 눈이 웃고 있다」(『현대시』 11월호)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신인다운 긴장감이 제법 느껴지는 이 시는 어두운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게 읽혔어요. 화자의 아버지가 백내장이나 그밖에 사고로 한쪽 눈을 실제로 실명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점점 떠밀리는 가장의 역할을 그러한 이미지로 형상화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설적으로 제목을 잡은 것만으로도 이 시는 충분히 읽는 맛을 더했습니다. 황학주의 「쇠귀나물」(『시안』 가을호)이 한참이나 가슴을 울리더군요(제 가슴을 울리면 일단 좋은 시라고 생각함). 배배꼬인 연애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한 채 쇠귀나물 뽑힌 논에서 모를 심던 누나를 버려지면 아무렇게나 이름이 불린 쇠대나물, 쇠태나물, 쇠택나물에 비교되는 것을 보면서 누나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제게로 감염돼 오는 것을 느꼈어요. 이밖에도 좋은 시를 많이 읽었는데 갑자기 찾으려니까 안 보이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준비를 좀 해두는 건데.
그리고 근래에 관람한 드라마나 영화를 질문하셨는데, 저희 집은 한국방송을 보기 때문에 한국서 유명세를 탄다 하는 드라마는 모두 시청을 합니다. 물론 두어 달 본국보다 늦기는 하지만.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로는「장미빛 인생」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열심히 보는 중이고요. 영화는 최근「Walk The Lain」과 「킹콩」을 봤습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듯이 영어가 충분치 않아 모두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덕분에 늘어난 눈치 9단쯤 되는 실력에 도우미(대부분 남편의 역할인데 이번엔 딸이었음)가 틈틈이 통역을 해줘서 어려운 부분은 해결을 했지요. 내용을 잠깐 소개하자면 「워크 더 라인」은 2003년에 당뇨병으로 타개한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쟈니 캐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써 ‘와킨 피닉스’와 ‘리즈 워더스푼’이 주연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깨우쳤습니다. 마약에 찌들은 ‘쟈니 캐쉬’를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준 카터’ 이들은 마침내 결혼하여 35년을 함께 살았는데, 그의 아내 ‘준 카터’가 세상을 떠나자 넉 달 뒤에 ‘쟈니 캐쉬’도 아내를 따라갔다는 자막이 맨 뒤에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하대요. ‘킹콩’에 대해서는 본국에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아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상을 그리는 한편 동물과 인간과의 끈끈한 감정교류를 성공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접목시켜 관객들의 심금을 충분히 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맹문재 : 앞으로의 시작 활동이나 다른 활동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요?
한혜영 :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른 장르도 꾸준히 병행해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만, 제 문학의 토대가 시에서 출발했던 만큼 앞으로는 시 작업에 보다 충실하고 싶습니다. 몇 년 뒤부터는 본국과 미국을 왕래하면서 각각 반년씩 체류를 할 예정이니까 지금까지 쓰던 시하고는 뭔가가 달라질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러한 대답이 막연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는 이러한 막연함에 기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시인의 감정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뱀 잡는 여자 외 4편
한혜영
혼자 있는 저녁 무렵 뱀이 들어왔다 베란다에
자살테러범처럼 毒을 품고 잠입한 독사
놀란 새들은
새장을 떠메고 허공 높이 화르르 날아오르고
함께 날아올랐으나 이내 추락했던 나는
엉겁결에 움켜잡은 삽자루를
미친 듯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한껏
끌어당겼다 놓아버렸던 팽나무 가지처럼
탱탱하게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뱀
그 보다 조금 더 높게 솟구쳤던 삽날
섬뜩하게 내리꽂히는 순간 똬리
탁! 풀어지면서 노을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세상에…… 세상에…… 저 진홍빛……
무장해제하고 축 늘어져 있는
녀석을 보고서야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도대체
여자나이 몇 살이면 뱀을
때려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뱀 한 마리
잡는 사이에 나는 부쩍 늙어버린 여자였다
어떤 첼리스트의 노동
연주자는 꽃잎을 불러모으거나
깃털을 불러모으는 마술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므로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란
깃털로 만든 이불을 덮고 누워
꽃잎에서 추출한 향기를 맡는 것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방금 전에서야 연주자들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이없이 깨달은 것이에요
炭脈을 찾아 끝도 없이 내려가는
鑛夫라는 거, 삽 한 자루가
전재산인 저 첼리스트를 보란 말이지요
땀 뚝뚝 흘려대며 필사적으로 놀려대는
저 삽질
어지간해서는 가슴 더워지지 않는
뭍 영혼에게 땔감 대주는 일이란 얼마나
고단하고 숨막히는 작업인가요
진작에 땔감 떨어진 무쇠난로처럼
싸늘하게 식어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있던
내 가슴에 석탄 한 삽을 막 집어넣고 돌아서는
첼리스트의 등허리가 그 사이 부쩍 휘었군요
立冬
몸집에 비해 유난히 가느다란 다리로
삐뚤빼뚤 궁둥이를 놀려대며 걸어가는
저런 닭들
어디서나 흔히 봤다
재래식 시장 혹은 유원지 화장실
늘어진 네 박자로 삐뚤빼뚤 걸어가다
한 목청 쑥 뽑아 올리던 늙은 닭들
비로소 자유롭게 궁둥이 흔들어대며
떠나가는 닭들을 본 적이 아주 많다
깃 세울 일도
볏 세울 일도 더는 없는
털 반쯤이나 듬성듬성 빠져버린
저 닭!
저 붉은 털을 가진 단풍나무 뒤를
삐뚤빼뚤 따라와서
나 오늘아침 立冬에 당도한다
무수한 닭들
지나가다 한번쯤은 서성였을
이상한 가게
변기를 사러 갔는데,
변기 파는 가게는 아니었어요
여보 뭔가 이상해요
복화술을 쓰는 것처럼 벙긋벙긋
떠다니는 입술 속에 우리는 갇혀 있었어요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다가
키스를 하다가도 문득 죽일 듯이 싸워대는
관 뚜껑 같은
썩은 이빨을 슬쩍슬쩍 내보이기도 하는
늙고 젊고 뚱뚱하고 깡마른
변기들이 쉴새없이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음식냄새 풀풀 풍기는
식당에 우린 앉아 있는 거였어요
끝도 모를 허방 캄캄한 곳에
청춘이란 청춘은 다 밀어 넣고도
펠리컨처럼 쩍쩍 벌어지는
서럽게도 커다란 입을 가진 우린……
두런대며 여름은 지나가고
새벽 1시고 2시고 베란다에 나가보면
아파트 옆 개인주택 앞마당에 사람 서넛
어김없이 모여 앉아 두런대다 껄껄댔습니다
희미하게 새나오는 차고 불빛
키 작은 정원나무 적당하게 가려져서
백인인지 흑인인지 코가 큰지 눈이 큰지
알 수 없는 양키들 그림자를 눈 거만하게
내리깔고 바라보는 재미가 얼마나 좋았는지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다가 동백아가씨로
어린 가슴까지 빨갛게 저며놓던 과수댁 경환엄마
곱사춤을 잘 추었던 복진엄마랑 광주리장수 광복엄마
웃기만 웃던 우리엄마랑 노총각 석봉아저씨가
두런대다 폭죽 같은 웃음을 와르르 터트리며
(나라는 달라도 웃음소리가 같다는 건 정말 다행이지)
여름 내내 양키네 앞마당에 모여 앉아 노는 것이었어요
보리밥 알갱이 같던 고향 별들은
바싹 마른 얼굴로 기웃기웃 모여들고
지금은 다 돌아간 옛날옛적 사람들이 어쩌다가
양키네 앞마당까지 끄덕끄덕 흘러왔던 것인지
대나무 평상 그 조그만 쪽배가 여름 내내 정박해있던
양키네 차고 불빛이 꺼지자, 가을이 왔습니다
<약력>
1954 충남 서산 출생. 1994년 『현대시학』추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출간.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에 거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