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참여연대 회원게시판에 실린 이옥숙님의 글입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하고 퍼옵니다.
이옥숙님은 한때는 골프와 수영, 그리고 주부교양강좌로 여가를 즐길 정도로 부유한 가정주부였지만,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동안의 삶에서 탈출(?)하여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맹렬여성이랍니다. 중년여성이지만 몇년 전부터 시작한 학습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합니다.(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의미겠지요?)
"어디가세요?"
내가 생긋 웃으니까 나란히 혜화동 길을 걷던 그녀가 묻는 말이다.
"저기요."
높은 깃발들을 치켜들고 대학로를 가득 채운 군중들이 무엇을 위한 집회인가 궁금해 한
다.
"노동자 대회지요...."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필리핀 에서온 노동자며, 성당가는 길이라 한다.
싸구려 홈스팡 반코트와 목도리를 입은 초라한 행색을 보며,
"한국겨울 춥지요, 어려운 점 없어요?" 하고 물으니, 자기네 사장은 아주 좋은 사람이라 귀
국했다가 다시돌아와 한공장에서 모두 6년을 일하는 중이라 한다. 그리고 자기네 사장은 대
학 졸업 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대학졸업했기에 교양있고, 친절하다는 뜻이었다.
안심이었다.
우리는 노동자를 욕하고 때리고, 임금을 떼어먹는 악덕 사장들에 대해 말했다.
친구들 중에 그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좀 있다고 한다.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자 한테 맞아 죽은 사건 알아요?"
그러잖아도 한겨레 21에서 이기사를 읽은 나는 이문제가 화제에 이르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메어져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하여
그저 손을 흔들어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군중 속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22세의 베트남 여인 리아는 반년전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린 딸을 언니에게 맡기고 송출 회
사를 통해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대전의 염색 공장에서 일하였다. 농촌 출신인 리아
는 언니, 오빠도 너무 가난하여 한국 돈 300만원을 빚을내어 송출 회사 수수료와 항공료로
내고 이제 5개월간을 벌어서 200만원을 막 갚았다.
리아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애인인 한국 남자에게 맞아죽었는데, 부상의정도가 눈을 뜨
고 볼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고, 그동안 상습적으로 구타당하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10월 29일 공장 마당에서 추모제를 치를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가
"리아가 "외국인"이 아니고, "여성" 아니었다면 최소한 맞아 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듯
이 일은 개인간의 문제라고 볼 수 만은 없다.
더구나 리아가 베트남 여성이었다는 점은 한없이 내 심금을 울렸다.
오랜 기간을 거쳐 외세 침략을 막아낸 베트남 국민들은 대다수가 불교신자로 원래는 평화를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 온순하기 그지 없는 민족이다. 베트남 전쟁이 그들의 민족 해방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인 것은 이미 다 공인된 사실이다.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박정희는 케네디에게 파병을 제안한다.
이미 한국 전쟁을 통해 어린 나이에 살육을 겪었던 장병들에게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불
행은 모두 빨갱이 때문이며, 빨갱이는 죽여도 좋은 박멸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유격대 활동
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자연촌락은 불태우고, 전선이 없는 전쟁이란 이유로 초토화 작전
을 통해 젖먹이, 어린이 , 여자노인에 대한 대규모의 잔악한 학살이 뒤따랐다. 우리는 이
댓가로 10억달라를 벌어들인다.
한편 미국은 베트남인들의 머리 위에 불의세례를 퍼부었다. 미국이 이들에게 쏟아부은 폭
탄 량은 세계2차 대전 전기간에 걸쳐 모든나라에 사용된 폭탄전량의 2배 였다.
끝내 미국은 패전하여 쫒겨났지만 베트남인 사망은 300만명, 부상자는 대부분 고엽제 피
해자로 400만명이다. 산업시설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농지와 밀림은 황폐하고 베트남인들은
기진맥진 하였다. 초토화된 경제를 재건할 자금이 필요하였다.
군사적 전쟁을 물리친 이들을 기진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새도 없이 맞아야 했던 건
경제적 전쟁이다. 미국 주도의 단일 시장 체제로 편입된 베트남은 세계화의 드센 흐름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한데 이흐름은 농촌을 피폐시키고 도시 노동자들의 생존 근
거를 빼앗는 것이다.
한편 베트남민의 희생으로 벌어들인 달러는 남한의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남한에 가난하고 연약한 농촌출신 리아는 달러를 벌러온 것이다. 아니 춥고도 삭
막한 나라에서의 경제전쟁에 리아는 몰린 것이다.
30년전, 우리 남한을위해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죄없는 베트남인에게 무자비한 가해자가
되었던 국군 장병은 이제 모습을 바꾸어 산업현장에서 다시 베트남여인 리아를 애인으로
만난 것이다. 스스로 달러와의 전쟁터에 병사로 싸우는 남자는 같은 전쟁에서의 약자이며
여성인 리아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정복하고,유린하고 구타하여 살해한다.
남자는 한번 리아를 죽였지만 우린 두 번이나 베트남인들을 학살 한 것이다.
빈들교회 목사님이 이것은 "개인 사이의일"이 아니라고 한 것은 그이유이다.
만약 우리국민 전부가 베트남 전쟁에서의 우리가 저지른 만행을 알았더라면, 이전쟁에 대
해서 진실 규명과 사죄와 과거 청산이 분명하게 있었더라면 이렇게 , 남자가 이무 생각없
이 무지막지하게 베트남의 딸 리아를 유린하고 상습적으로 구타하여 살해 할 수 있었을
까? 사죄,보상해주고 대상이고, 특별히 보살펴 주어야할 베트남인 여성을 말이다. 일본제국 주의에 대한 만행이 일본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일본이 우리민족에대한 과거 청산을제대로 했다면 재일 동포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가능한가와도 같은 이치이다.
얼마전 올부라이트의 가슴에 대한 이정빈장관의 말실수 때문에 세간이 들끓는 것을 보며
더중요한 사건이 무관심속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왔다. 지금 말한 "베트남 여성노동자 리아
사건 "은 이정빈 발언 파문과 거의 동시에 발생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계와 시민 단체에
선 잠잠하며, 언론의 무관심 속에 일반국민이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여성차별화라며, 올브라이트의 가슴에대한 언급에 분노와 울분에 들끓는 여성계와 시민단체
는 왜 이사건엔 이리도 냉담한지 ..
올부라이트장관의 가슴이 베트남 여성의 생명보다 더욱 귀한지..
두사건을 다루는 판이한 이들의 태도를 보며 여성계와 시민단체와 언론에 의한 여성차별에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에서는 일본 위안부들에 대한 일본제국주의를 심판하기
위한 민간 법정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 법정"이 개최된다. 법정은 법적 제재는 없지만
세계각지의 무력 분쟁의 틀속에서 피해여성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목
적이라 하였다. 이제안의 주창자이며 , 어느 피해자 못지않게 자국의 법죄에 대한 진상규
명과 사죄, 배상요구에 적극적인 일본여성계를 본받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