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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는 말
이번 발표 주제가 禪宗이여서 禪宗에 관한 것만 기술하려 했으나 다양한 불교 종파 중에서 단순히 선종에 관한 것만을 말한다는 것은 심오한 불교 철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선종에 대해서도 피상적인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론> 부분에서 대략적인 불교 선의 성립과 철학적 개념들, 원리에 대해 살펴보고, <본론> 부분에 들어가 중국 선종의 성립과 발전의 역사, 또한 선종의 철학.사상적 의미 등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는 중국 불교의 선사상이 중국 사상에 미친 영향과 현대에 있어서의 선의 의미를 재해석하겠다.
⊙ 서론
1. 佛敎禪 성립의 인도적 배경
원래 佛敎는 禪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성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선'이라는 것도 인도의 요가(yoga)에서 유래한다. 요가, 즉 선은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인도의 여러 사상이나 종교, 철학등 모든 사유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요가는 어떻게 성립된 것일까? 현대인도 인종의 대부분은 아리안(Aryan)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안 민족의 原住地는 현재 소련의 코카서스(Caucasus)지방의 북방으로 추정되는데, 원래는 白色人種으로 처음부터 아리안 족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원주지를 떠나 이주하면서 동서로 나뉘어 졌는데, 한쪽은 서유럽 쪽으로 이동하여 유럽피언 語族이 되었고, 또한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서부 중앙아시아(Tukistan)의 초원 지대에서 수세기 동안 거주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살고 있었던 민족을 특히 아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도를 침입하기 전의 아리안족은 일반적으로 종족 제도를 채용하고 목축업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유목민이었으며, 또 鐵器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였으며, 싸움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고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아리안족이 침입하기 전에 인도에는 문다(Munda)족과 드라비다(Dravida)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리안 족은 이들을 정복하여 노예로 삼고 그들을 지배하면서 촌락 사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농경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들은 그들의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인종에 따른 신분과 계급적인 구별인 신분제도를 만들게 되는데, 이 신분제도를 바루나(Varna)혹은 자띠(Jati)라고 하며 카스트(Caste)제도라는 말은 영국인들이 만든 말이다. 이 신분제도는 四姓階級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계급 브라만(婆羅門; brahmana, 司祭者) - 사제계급
제2계급 찰제리(刹帝利; ksatriya, 王族武士) - 왕족, 무사 계급
제3계급 베 사(吠 舍; vaisya, 農工商의 庶民) - 농공상 계급
제4계급 수드라(首陀羅; sudra, 奴隸) - 노예 계급
이런 카스트 제도에 의해 인도에서는 아리안족 중심의 지배 체계가 골격을 갖추게 되었고 브라만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禪이라는 독특한 사유 방식이 아리안족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주민들에 의해 그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리안족이 만든 인도 最古의 종교 철학서인 '리그베다(Rg-Veda)'문헌에는 요가의 명상법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으나, B.C. 800년에서 B.C.600년 경 전후에 만들어진 '우빠니샤드(Upanisad; 奧義書)'에 현재 실행되고 있는 요가 선정의 실천법과 거의 똑같은 수행법이 보이고 있음으로 잘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禪(yoga)이 인도에서만 발생하게 된 것일까? 바로 지형과 기후등으로 인한 풍토가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인도는 몬순(Monsoon)이라 불리우는 서남 계절풍이 부는 雨期地域에 위치하고 있다. 몬순은 반년을 주기로 하는 계절풍 지대로 4월부터 7-8월까지의 약 3-4개월간의 雨期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 비는 인도 지방뿐만이 아니라 농경 사회에 있어서 대지와 생명의 감로수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인들은 이 대자연의 섭리와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것이 끝날 때까지 3-4개월 동안 가만히 요가를 통한 명상의 세계에 들어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인도에서 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철학적 문화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문화와 종교를 지리적, 환경적, 풍토적인 배경으로 하여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로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다. 그 성립적인 배경에서 불교를 포함한 동양의 종교를 숲의 종교로 하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은 사막의 종교로 구분할 수 있다. 숲의 종교는 大地性인 대자연의 농경 문화를 생활풍토로하여 성립된 종교로 풍부한 자연속에서 촌락 사회를 형성하며 요가 등의 명상과 사유를 통하여 인간 각자의 참된 삶의 가치와 인격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 중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막의 종교는 天日性을 바탕으로 하는 절대자인 神중심의 종교이다. 사실 사막에서의 유목민들은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축업을 경제생활의 수단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물과 초원을 찾아 이주하는 안정성 없는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사막에서의 물은 인간의 생사를 결정짓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생명수인 물은, 즉 하늘에서 내려 준 신의 은총인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절대 복종은 물론 신의 은총과 섭리에 따라야 하며 이에 반항할 때에는 신의 가혹한 저주만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막의 종교에서는 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고가 형성되었으며, 신이 내려 준 생명수와 은혜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타인.타부족 간의 격렬한 피의 역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 차이는 그 가치 기준과 세계관에서도 볼 수 있다. 가치 기준에 있어 숲의 종교에는 인간 각자가 윤리적인 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명예나 부끄러움(恥辱)의 자각으로 형성되고 있는 인간의 '名과 恥의 문화'를 이루는데 반하여, 사막의 종교에서는 인간의 행위 전부를 신의 입장에 그 가치 기준을 두고 있다. 즉, 인간 개인의 어떤 나쁜 행위인 罪가 반드시 신에 의해서 심판(罰)받게 된다는 사고가 다름 아닌 사막의 종교에서 발생한 '罪와 罰의 文化'인 것이다. 또한, 세계관의 차이에서도 숲의 종교는 圓環的인데 반해 서양은 直線的이다. 즉, 농경 사회 속에서 계절의 변화와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생활 풍토에서 輪廻思想같은 사고가 나타날 수 있었다. 한편, 사막의 종교에서의 직선적 세계관은 신에 의해 창조된 천지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어떤 종말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관점이다.
사실 이러한 세계관은 사막의 풍토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행동과 판단에 근거를 둔 생활 기준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막에서는 A나 B 그 한쪽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절박한 길에서 A나 B이냐는 즉각적인 결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오직 절대 유일의 神思想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숲의 종교에 있어 A나 B, 혹은 선과 악의 명확한 판단은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며,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善도 없고 惡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은 相對的이므로 석과 악의 성급한 판단은 좁고 천박한 인간의 행동인 것이다. 이것은 숲이라는 자연 배경이 사막과는 달리 어느 한길을 선택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선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던 인도, 넓게는 동양적 배경에 대해 어느 면으로는 두서없이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이 불교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 부분에서 선을 중심으로 불교의 敎祖인 붓다의 사상을 개략적으로 알아보겠다.
2. 붓다 즉 불교 사상의 근본원리
사실 불교 사상의 원리라는 것이 그 요체가 복잡다단하며 2000년 넘게 내려오면서 온갖 經과 그에 대한 해설이 다양하여 도저히 개략적으로 살펴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가능 한한 붓다가 원래 생각한 사상을 선과 연결시켜 중심적인 요체만을 설명하겠다.
인도의 고대 종교인 브라만교(Brahmanism)는 '브라흐만 Brahma (영원.절대.불변의 원래[梵])'을 우주의 제일 원리로 삼는 多神敎였다. 이 브라흐만이 겉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종종 인격화되어 '브라흐마 Brahma(신, 大我)'라 불린다. 모든 인간 존재는 '아뜨만 Atman(小我)'을 지닌다. 브라흐마와 아뜨만, 즉 大我와 小我는 하나이며, 동일한 본질에 속한다. 그러므로, 바라문교는 자신의 자아인 아뜨만(小我)을 연구함으로써 궁극적 원리인 브라흐만(大我)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에 대해 붓다는 브라흐만과 아뜨만만의 실재를 부정하고 새로운 '아나뜨만 Anatman(無我)'론을 전개하였다. 즉, 그는 모든 사물이 항상 변하고 있으므로 절대 불변의 원리라든가 영원한 자아를 찾는다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주장의 요체는 "모든 사물은 無我"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천지간의 모든 사물은 우리가 그들의 근원적 자아라든가 진짜 시레라고 부를 만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을 예로 들면 인간은 스스로 참된 自我라고 간주할 수 있는 핵심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은 존재해 있지만 자신의 핵심, 즉 진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존이란 『일련의 인과관계에 따른 실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에 의해 모든 것이 거기에 실재하며, 인과 관계의 효력이 소멸할 때 그것은 사라지게 된다.
수면에 파도는 존재한다. 그러나 파도가 물(水)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파도는 바람이나 흐름이 있는 동안에만 실재한다. 각 파도는 바람과 흐름, 그리고 방향과 강도가 인과 관계로서 결합될 때 독자의 특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과 관계가 소멸하면 파도는 더 이상 파도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과 관계와 무관한 독립된 자아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피아와 자아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모두가 인과 관계에 의한 현상적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을 고집하려 애쓰거나 자기 중심적 견지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진실로 독립되어 있을 수 없으므로 모든 일을 中道的 관점에서 판단하고 진정한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사물이 일련의 인과 관계 속에서 실재한다면, 그들의 실재는 일시적인 것이므로 영원하거나 독자적인 단 하나의 사물도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가 없음(無我)'에서 확장되어 당연히 "모든 사물은 無常(anitya)하다"는 다음 단계의 이론으로 나아간다. 즉,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시공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다. 또한, 인간이 인과 관계 속에 얽매여 이 시공 안에 갇혀 있다면 우리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인과 관계의 순환 고리를 깨고 한없이 완전한 자유의 세계를 찾는 것이 불교 교리의 기본이자 붓다의 가르침인 것이다.
⊙ 본론
1. 중국 불교의 선사상
(1) 중국 불교의 전래
인도에서 깊은 명상을 통해 성립된 자각의 종교인 불교가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의 대지에 전래되어 점차 중국인들에게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晋나라의 원굉(遠宏; 328년-379년0이 편집한 「後漢書」 제 10권 「孝明皇帝紀」에는 明帝의 永平 13년에 일어난 楚王 英의 謀叛事件을 기록한 뒤에, 그가 이해한 불교의 대요를 기술하고, 또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된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후한 명제가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신을 大月氏國에 파견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永平 10년(B.C.67년)에 迦葉摩騰과 竺法蘭이 낙양에 오게 되었다. 그들은 백마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왔기 때문에 그들이 머문 곳을 白馬寺라고 이름했는데, 이는 중국 불교에서 처음 세워진 사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비교적 명확한 기록으로 「三國志」의 「魏志」 제 30권에 인용된 위나라의 魚 이 찬술한 「魏略」 西戎傳의 가사이다. 즉, '옛날 前漢 哀帝의 元壽 元年; B.C. 2년)에 博士弟子인 景盧가 대월씨국의 사신인 伊存의 浮屠經(佛經)을 口授받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 다른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은 西曆紀元 前後頃에 실크로드의 隊商의 왕래와 함께 이미 북쪽 지방의 황하 유역에 침투되어 민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장안.낙양등지의 後漢의 왕족 일부도 신봉하게 되었다.
(2) 선의 의미와 분류
보통 선에는 小乘禪과 大乘禪으로 나누며 중국 선종에서는 如來禪과 祖師禪으로 나누고 있다. 이 분류는 그밖에도 다양하고 모호하여 크게 확정지을 수는 없으나 크게 소승선에 대해 언급하고 여래선과 조사선에 대하여는 뒤에 기술하도록 하겠다. 먼저 소승선이라 하면 정신 통일을 얻는 것이며 無念無想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인도의 yoga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禪적인 경지에 오르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에 반해 대승선은 단순히 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수단으로 하여 중생 제도와 불교적 진리의 탐구를 체득하려는 것이다.
나중에 중국 선종은 見性成佛을 위주로 하는 선을 주장한다. 즉, 단순한 명상의 실천인 習禪이나 무념무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대승 불교의 진수인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여 그것을 인간의 평범한 일상 생활에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초기의 선 수행
「梁高僧傳」의 「習禪篇」 등에 의하면 인도나 서역에서 온 외국 승들에 의하지 않고 선을 수행한 중국의 선승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5세기 이전에 이미 중국내에 선이 수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선 수행 방법은 주로 소승계의 선법이었다. 그러나, 6세기 이후 선승들은 점차 대승선을 닦는 사람이 많아진다. 수도 엄청나게 늘어나 그후 중국 불교의 선종이 성립되는데 커다란 기반이 될 수 있었다.
2. 중국 선종의 철학적 원리와 역사
(1) 중국 선종의 철학적 원리
중국 선종의 사상을 네가지 귀절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敎外別傳,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 이 네 귀절의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진정한 도에 이르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과는 달라 문자나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음이다. 즉, 부처의 도는 以心傳心이고 경전이란 깨달음에 쉽게 이를 수 있도록 한 법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고명한 선사라도 자신이 깨달은 바를 상대방의 마음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거이 禪問答이니 단순한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는 도를 선문답을 통해 유도해 내는 것이다. 또한 선종에서는 아까워 같은 맥락에서 경전 속의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남의 말로서 해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서 불립문자의 도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립문자에 얽매여 비움(空)에 집착하게 되면 그 또한 진정한 도가 아니라 말하고 있다. 六祖 慧能은 문자를 진정 포기한다면 불립문자라는 말도 문자의 옷을 걸쳤으니 버려야 한다고 한다. 즉, 이는 불립문자라는 말을 통해 도를 얻으려 하되 그 말에 집착하지 말며 경을 통해 도에 이르려 노력하다라도 그 경의 문자를 뛰어넘어 진정한 가르침을 보라는 말이다.
직지인심과 견성성불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의 自性은 본래 깨끗하나 선악은 마음에서 새겨났으니 마음에서 악한 것을 생각하면 지옥에 들게 되고 선한 것을 생각하면 극락에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도를 이루기 위해선 모든 만물에 이르고 있는 자성, 즉 佛性을 바로 찾아내어 모든 外在가 자신의 마음으로 생긴 것임을 확연히 깨닫게 되면 마음이 無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자연히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2) 중국 선종의 수양 방법
지금까지 말한대로 선종에 있어서의 앎은 상식적인 앎이 아닌 不知之知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수양 방법에 있어서도 상식적인 수양이 아닌 수양, 즉 不修之修이다. 선종에 있어서의 성불을 위한 최선의 수양 방법은 어떤 수행도 전혀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데 있다. 고의적으로 노력을 들여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有爲이다. 黃檗선사 希運은 말했다. "설령 오랜동안의 六度萬行(Paramitas;구원을 얻는 방법)을 수행하여 불보리(佛菩提)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 또한 因緣造作 속에 있으므로 인연이 무로 돌아간다면 無常으로 돌아간다." 바로 최선이 수양 방법은 다하는데 있다. 이것이 바로 도가들이 말하는 '無爲'이며 '無心'이다. 이 수양 방법은 그 결과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목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결과도 뒤따르지 않는 그런 식의 일을 하고 있다. 자기의 모든 행동이 목적을 수반하지 않을 때, 그 때는 이전에 쌓였던 업의 결과도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되어 열반에 신뢰를 가지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버린다. 우리는 다만 일상 생활의 평범한 일을 추구하며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선사들이 말하는 不修之修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수양을 거친 자와 거치지 않은 자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 양자가 모두 똑같은 일을 한다면 후자 또한 열반(Nirvana)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렇다. 보통 사람이 일상의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은 간단하고 평범한 문제이다. 그러나, 완전히 어떠한 의도도 없는 마음과 집착 없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로 우리는 단순히 아무런 의도도 없이 어떻나 일상 생활에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러한 수양은 평법하고 간단한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서 생긴다. 그리하여 수양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수양을 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수양이다. 이러한 無知의 지혜는 하나의 고차원의 지혜와 같다. 그러한 지혜는 원초적인 무지와는 다르다. 애써 닦지 않는 不修 수양은 마찬가지로 원초적 자연 상태와 다르다. 원초적인 무지와 자연 상태는 자연의 선물이지만 무지의 지혜(不知之知)와 무수의 수양(不修之修)은 둘다 정신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3) 깨달음의 모습 頓悟
중국 선종의 깨달음을 단어로 표현하면 頓悟漸修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수의 과정은 아무리 길어도 다만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성불하려면, 이 수양은 절벽을 건너뛰는 것과 같은 돈오를 통하여 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에 대해 南泉普願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도란 앎(知)에도 알지 못함(不知)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앎은 망령된 깨닮은(妄覺)이며 알지 못함은 맹목적인 무의식(無記)이다. 마치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도에 참으로 도달한다면, 크게 텅비어 툭터진 것(太虛廓然)과 같으니 어찌 억지로 시비를 가리겠는가?" 도의 자각은 도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툭 터진 것과 같은 공간은 허공이 아니다. 그거은 다만 모든 차별이 사라진 상태다. 이 상태는 선사에 의하면 앎(智)과 이치(理)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합치되고 대상(境)과 정신(神)은 한데 모이게 되어 경험자와 경험 대상의 구분이 없어지는 상태라고 말한다. 즉, 경험자와 경험 대상의 구분이 없음을 체득한 자만이 참으로 그 경지를 안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 아래서 경험자는 상식적 의미의 지식을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지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不知之知의 경지이다.
돈오를 설명하기 위해 선사들은 '百尺竿頭進一步'라는 은유를 쓴다. 백척간두에서 한발짝 더 나가면 그전의 모든 일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안간 깨달았을 때는 그전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어 있음을 안다. 이러한 방법은 획득점을 위한 일시적 적극적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인습을 과감히 타파할 때,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진정한 얻음 無得之得
선종에 있어서 실재는 곧 현상이다. 바로 진정한 도(佛性)는 언제나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깨닫기만 하면 만물속에 모두 불타가 있고, 또 어느 곳에나 불타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세상의 도가 바로 세상 자체인 것을 알고 있으며, 진정으로 깨달은 이는 자신이 깨달은 것이 만물에 드러나 있다는 거슬 알기 때문에 얻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無得之得이다.
(5) 선종의 역사
선의 원래 명칭은 '禪那'인데 그 어원은 범어로 Dhyana를 음역 한데서 유래한다. 영어로는 meditation이라 한다. 붓다의 법맥은 제 2조인 摩訶迦葉에게 전해지며 제 3조 阿難, 제 4조 商那和修를 거쳐 제 28조인 普提達磨에게 전하여 졌다. 후에 보리달마는 중국으로 넘어와 선종의 敎祖가 된다. 달마의 사적에 대한 후세의 전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續高僧傳'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南天竺人이며 먼저 중국 남방에 이르렀고 梁나라 때라 일컬어진다. 佛法天子였던 梁武帝와 대화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음을 알고 곧 북방에 이르러 선교의 學을 전하였다. 약 534년에서 537년 사이에 낙약 부근에서 세상을 떠났다. '속고승전'에서는 달마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理'와 '行' 두 문으로 나누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理入'과 '行入'이다. 이입이라는 것은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道와 함께 암암리에 꼭 합치되어 고요하게 아무런 作爲도 없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思辯을 폐지하는 것이니,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각종의 말로 하는 가르침을 중히 여기지 않음을 가리킨다. 행입은 즉 四行인데 대개 이것은 修心實踐하는 법이며 그 주요 취지는 意志 공부에 있다. 괴롭다고 원망하지 말며, 어떤 것을 얻음이 있다고 하여 기뻐하지 말고, 탐내어 구하는 것을 없애면 마음은 맑고 깨끗한 데로 돌아간다. 이것이 4행의 의미이다. 이것은 뚜렷이 言說을 베푸는 가르침과 같지 않다.
그후 달마의 법통이 계승된 순서를 보면
一 祖 達摩 → 二 祖 慧可 → 三 祖 僧璨 → 四 祖 道信 → 五 祖 弘忍 → 六 祖 慧能
이것은 선종 자체에 근거한 말이다. 홍인은 五祖라 일컬어 졌으며, 그 문하에 神秀와 혜능이 있었는데, 혜능이 더욱 뛰어나 선종의 육조가 되었으며, 뒤에 남북 두파로 나뉘어졌다. 남쪽은 혜능을 우두머리로 삼는 남종, 북쪽은 신수를 우두머리로 삼는 북종이다.
그 뒤 북종은 쇠퇴하여 사라졌고 혜능의 남종이 선종의 정통이 되었다. '선종'의 이론을 말하면 혜능은 뚜렷이 독립적인 교의의 건립자가 된다. 그러므로 비록 '六祖'라고 일컬어지지만, 한 종교 교의를 완성한 인물인 것이다. 그 뒤로 혜능의 제자중 荷澤神會가 홀로 大宗의 의미를 주창할 수 있어 자연히 영향이 가장 큰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뒷날 선종의 분파를 말하면 대체로 혜능의 다른 제자인 靑原行思와 남악회양의 두 갈래에서 나왔다. 회양의 제자에는 馬祖道一이 있으며, 도일의 제자에는 懷海가 있으며, 회해의 제자에는 靈祐가 있는데 山에 살았다. 영우의 제자에는 慧寂이 있는데 仰山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 仰宗'을 개창하였다.
영우의 동문에는 希運이 있었는데 역시 회해의 가르침을 계승하였으며 黃蘖山에서 법을 전하였는데 문하에 義玄이 있었다. 의현은 뒤에 臨濟宗을 세웠다. 그러므로 '위앙종'과 '임제종'은 모두 남악회양에게서 나왔다. 또한 청원 행사의 제자에 希遷이 있었는데 石頭和尙이라 일컬엇으며, 마조도일과 나란히 이름이 나 있었다. 희천 문하에 道悟 및 惟儼 등이 있다. 도오의 갈래는 몇대를 거쳐 文偃이 나타났다. 문언은 '雲門宗'을 열었다.
문언의 동문에는 師備가 있었다. 사비는 桂探에게 전하였고, 계탐은 文益에게 전하였다. 문익은 '法眼宗'을 열었다. 도 행사의 재전제자인 유엄의 갈래는 몇대를 지나 本寂에 까지 이르렀다. 본적은 '曹洞宗'을 세웠다.
이것을 도표로 옮겨보면 이렇다.
六祖慧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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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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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澤神會 南陽慧忠 永嘉玄覺 靑原行思 南嶽懷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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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希遷 馬祖道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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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懷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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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悟 惟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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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靈祐 希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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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備 文偃 | 慧寂 義玄
| (雲門宗) | | |
桂探 | ( 仰宗) (臨濟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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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益 本寂
(法眼宗) (曹洞宗)
선종의 5가 중 위앙, 조동 二家는 먼저 끊어졌다.법안종은 송대 중엽에 이르러 끊어졌고, 운문종은 남송에 이르러 점차 쇠약해 졌다. 임제종은 뒷날 宗果의 한 갈래만이 홀로 성행하였다. 그러므로 明淸에서 오늘날 까지 선종의 제자는 '看話禪'을 주로 하였으며, 이것은 임제종 아래의 종과의 敎法을 계승한 것이다.
⊙ 결론
1. 선종에 대한 총체적 의미
禪은 지금 당장의 자기에게 본래심의 全分을 드러내어 성취하는 거을 유일하고도 긴급한 과제로 삼는다. "만약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本性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본성이 곧 부처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부처를 부르고 경전을 외우며 재계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血脈論)고 한다. 이리하여 불교가 다년간에 걸쳐 마음을 짓눌러 온 모든 종교적 장엄함을 벗어버리고 그 본바탕을 겉에 드러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禪心은 초월적인 실재가 아니라 파란 많은 일상 생활에 응하여 거리낌없고 자유롭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유동적인 총체이다. 이리하여 일체의 敎學的인 치장을 씻어 버리고 난 본연의 '마음'이 일상의 다반사 속에서 운동에 맡겨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은 채 움직여가는 그대로가 불도의 실천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해서 선종을 대하기 쉬운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깊은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종의 깨달음은 지식을 쌓아 올림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깨달음의 열쇠를 쥐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열쇠를 설정하는 것은 마음의 도량을 협소하게 하고 법계를 세분화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자유는 얻을 수 없다. 어쨌든 갖추어진 열쇠를 차례 차례 파괴함으로써 비로소 선종의 문은 열리게 된다. 실로 '無門의 문'이다. 이 문을 빠져나가기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에네르기의 낭비를 피하고 힘쓰기를 아까와 하는 것이다. 가슴을 펴고 자세를 높게하여 生死의 도랑을 일거에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은 다만 오늘 이 순간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이외에 선의 실천은 없다.
깨달음이란 부분을 끊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끊는 것이다. 이렇게하여 얻어진 깨달음이 다름 아닌 본래 자기의 발현이다. 이 자기가 행하는 바는 어떠한 장애도 정체도 없다. "어디에서든 主가 된다면 어떠한 자리도 모두 진실"(臨濟錄)이라는 것이다.
2. 선과 역사적 현실의 만남
선을 과연 불교가 부를 수 있을까? 선학의 형성에 노장.화엄.공관 철학등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아닌가. 선종이 불교학적 분석을 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성에서 절대 주체의 원점을 찾을 때 그것은 이윽고 생명이 흘러넘치는 대로 끝없이 모든 문화면에 침투하게 된다. 범부이든, 문인이든, 철학자이던간에 모두 그 밑에서 깨달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말초적인 논의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여 덮어놓고 인간 존재의 기저를 파 내려간 선은 이리하여 중국 문화의 중요한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것은 '禪文化'의 창조일 뿐아니라, 어떠한 종교와 사상도 불태울 것 같은 인내심을 갖고 사회적 병리의 치유자.개혁자가 될 수 있다는 커다란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 기구와 역사 현상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꾀하지 않는 선은 그 현실 돌파의 방법이 당연히 단조로운 외길이 될 수밖에 없으며 개개의 구체적 事象의 전후좌우를 정확히 관통하는 식견이 결여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하나의 역사적 현실의 기구와 조직을 성의껏 조사하는분석적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가, 선종에 있어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선심 그 자체가 분석할 수 없는 총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답을 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 '宋代 儒學'이다. 여기서 본래성과 현실성의 관련이 재검토 되고 재구성된 후 유교 노선은 완전히 불교 노선을 능가하기에 이른다.
3. 三敎(儒.佛.道) 논쟁의 의미
육조 이후 수당에 이르는 동안 불교 '오랑캐의 가르침'의 유행에 대해 유교와 도교측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파상 공격을 가하고 불교측도 이에 응수하여 험악한 공기가 조성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唐代의 저명한 道士인 成玄英이 은연중에 불교를 차용하여 「莊子」를 주석하였을 때 화엄종의 장관은 그 진위를 모를 정도로 혼잡하다고 비판하였다. 후에 장관의 제자인 宗密이 "三敎는 모두 성인이 갖춘 것이므로 文言은 달라도 道理는 일치한다. 다만 후세 사람들이 문언에 사로잡혀 도리를 잃고 다투어 비방을 시작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한 것은 장과의 입장을 넘어서 학문의 초종파적 개방으로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후학들이 그 이상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4.선종에 대한 나의 견해
솔직히 평소에 불교에 대해 관심이 깊었던 터라 선종의 발표를 맡게 되었으나, 선종은 불교의 일파 중 하나라 불교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과 지면을 통해 복잡하고 심오한 불교 철학.종파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서술하는데 다소 중구난방식으로 산만하였다.
중국 선종에 대해 알아보면서 선종에서 주장하는 不知之知나 無爲, 頁性成佛등이 유교나 도교에서 주장하는 바와 많은 부분에서 합치된다고 느꼈다. 오히려 선종이 유교와 도교의 사상적 원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 유.불.도의 상호 교류와 연관점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으나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건데 진정한 불교의 모습은 선종에 있지 않았던가 생각이 된다. 부처가 처음 불교를 이룰 때도 그 목적은 종교적 속성(구원.영생) 등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자신과 만물의 상호 상대성의 진리를 깨달아 인과의 순환을 벗어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不立文子의 도를 전한 것도 부처에 의해서 였다. 이것이 후세에 이르러 수많은 이론과 경전, 종교적 의식의 제정 등에 의해 원래의 참 불교적인 소박한 삶과 깨달음, 어떤 믿음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자신의 自性만을 믿는 가르침을 왜곡시켰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나라의 불교는 그 본래의 모습에서 동떨어져 서구 기독교와 다름없는 신앙의 생산 공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남의 모절의 주지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패싸움, 현란하게 꾸민 불상과 오직 돈밖에 모르고 수도따윈 내던져 버린 대처승들. 부처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사람들의 돈을 뜯어내는 자들, 도대체 부처는 신도 절대 창조자도 아닌데 어떻게 복을 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 불교의 모습이다. 여기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불교는 대스불교이다. 오직 자신만 깨닫기위해 산속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은 소승불교일 따름이다라고. 그러나, 자신이 깨달음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을까.
불교는 서구 여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지극히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지고한 정신 세계와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잃어버리고 다른 서구 종교와 같이 그야말로 종교에만 머루른다면 그건 더 이상 불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딘가에 의지하게 함으로서 마음의 안식을 주는 것은 진정한 안식을 주는 것은 진정한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현대와 같이 자신을 잃고 물질 문명속에서 허우적 대는 때에 선종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나 사상보다도 큰힘이 될 수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불교가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생각된다.
레포트 천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