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순천시내 아파트에서 살아온 박종후(52)·서혜석(49) 부부에게 흙집은 인생 최대의 ‘도전’이자 ‘사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전원생활을 동경한 이들은 자녀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전원주택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했다. 흙집을 구상한 것은 2005년 6월 무렵. 꼬박 7개월의 작업공정을 거쳐 지난해 6월, 드디어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출발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흙집은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락헌의 가장 큰 특징은 본채와 별채의 외벽이 오로지 흙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목재나 철재 거푸집에 흙을 채워 넣고 압력을 가해 다지는 ‘담틀공법’을 이용해 45cm 두께의 외벽을 만들었고, 내벽은 나무로 마감했다.
“흙집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무너져 내리거나 끊임없이 보수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그런데 이일우 소장을 만나면서 흙집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어요. 건강한 흙집이 튼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전문가의 얘기도 듣고 흙집에서 거주하는 분들의 경험담을 확인한 뒤에는 무조건 흙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락헌의 흙벽은 튼튼한 것만이 아니다. 투박함이나 촌스러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질감과 농도가 다른 흙이 모던한 감각을 자아낸다. 흙벽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인테리어 효과를 내는 셈이다.
“은은한 흙색이 온 집안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는 것 같아요. 눈과 마음이 편안하죠. 생활하는데도 불편함이 없어요. 손으로 쓸어봐도 흙이 묻어나지 않을 만큼 깔끔하거든요. 느릅나무액을 발라 마감했기 때문이죠.”
사실 집을 짓는 자재 중에서 흙은 제법 비싼 축에 속한다. 설계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3㎡(1평)당 450만원이 들어가니 고급 콘크리트보다 비싼 편이다. 대신 흙벽은 자체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집안 전체를 쾌적하게 만든다. 마치 숨을 쉬듯 집안의 공기를 정화하고 온도를 유지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는 장점은 흙집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담이다. 관리비도 생각만큼 많이 들지 않는다고. 순천시내 185㎡ 아파트에 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공동 관리비가 안 들어 매달 3만~4만원 정도가 절약된다. 별도로 들어가는 비용은 여름철 잔디 관리에 필요한 인건비 정도다.
2층 구조를 포기하고 얻은 아담한 별채 동락헌은 115㎡의 본채와 49㎡의 별채가 중앙 정원과 데크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별채를 따로 설계한 것은 동락헌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편한 지인이라도 2층에 거주하다 보면 집주인이 신경 쓰이는 법이잖아요. 아이들이 결혼한 뒤에 찾아오거나 지인들이 가족과 함께 들러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원했어요.” 방은 물론 거실, 부엌, 화장실을 갖춘 별채는 아담한 펜션과 비슷하다. 데크를 통해 본채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동에도 불편함이 없다. 본채는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으로 안방, 구들방, 수납방, 서재, 거실, 부엌, 화장실로 이뤄져 있다. 동선이 매우 효율적이라 마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편리하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 동락헌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황토 명상방. 벽은 물론 바닥까지 황토로 마감한 구들방이다. 부인 서씨가 주로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데, 지인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일일 찜질방으로도 이용한다. 특히 흙벽에 크리스털 원형 막대를 박아 놓아 밤이면 별자리처럼 빛을 발하게 설계했다. “구들방은 보일러나 장작을 이용해 덥힐 수 있어요. 거실 한쪽에 있는 벽난로가 그 비밀통로죠. 이곳에 장작을 지피면 거실 벽난로 겸 구들방의 아궁이 역할을 해요.” 선조들의 구들방을 집안에 구현하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외부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가면 더욱 ‘신기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본채와 별채 지붕에 잔디를 심어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머금다 겨울이면 추운 냉기를 막아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부부만의 ‘비밀’ 피크닉 장소로도 활용된다. 주변 나무가 풍성해 자연 그늘막을 선사하니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흙벽에 드리워진 ‘춤추는’ 햇살
이들 부부는 지금도 흙집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 ‘적응’이란 낯선 집에 정을 붙이는 과정이 아니다. 새로운 건축방법과 디자인이 적용된 창작품에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애로사항(?)을 수용하고 보완하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기성품 사듯 완벽한 집을 상상한다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붕에 올린 잔디가 시트지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잠시 천장에 물이 샜어요. 깜짝 놀랐죠. 집을 짓고 일년 정도는 새집에 대한 적응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수정과 보완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완벽한 집으로 만든다고 할까요. 건축 ‘작품’에 사는데 그 정도는 이해해야죠(웃음).”
가끔 돌출하는 애로사항에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흙집에 사는 즐거움이 훨씬 커서다. 남편은 정형외과 의사로, 아내는 심리학 공부로 정신없이 지내지만 웬만하면 동락헌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집이 무작정 좋아서다. 부부는 햇살이 집안 곳곳에 길게 파고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동락헌에는 한쪽 벽면이 모두 유리창인가 하면 곳곳에 쪽창문이 숨바꼭질을 하듯 자리한다. 그래서 시시각각 햇살이 흙벽을 스크린 삼아 곱게 드리워진다. 인터뷰 도중에도 부부는 춤추는 햇살을 소개하기 바쁘다.
“잠깐만요. 이것 보이죠? 오후 3∼4시가 되면 천장 쪽에 있는 쪽창문을 통해 이렇게 긴 햇살이 거실로 떨어진답니다. 지붕에 심어져 있는 잔디가 바람에 흔들리면 햇살도 같이 춤을 추듯 흔들리죠. 흙벽에 드리워지는 햇살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아요.”
거실과 더불어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 서재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자연의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즐길 수 있는 공간. 아담한 안방에도 작은 쪽창문이 다섯 개나 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하루가 가는 것을 햇살의 길이와 방향으로 눈치챈다. 오늘도 흙집에서 ‘춤추는’ 햇살에 푹 빠져 사는 이들 부부는 동락헌에서 인생 후반전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아파트와는 달리 마음 편하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한결 쾌적하고 행복해졌단다. 이들 부부의 인생 최대의 ‘사치’는 요즘 최고의 ‘행복’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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