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야기 1
강림하면 단연 감자와 옥시기다.
감자와 옥시기를 빼고서 강림을 말할 수가 없다.
강림의 모든 논에는 봄이 되면 물을 대기 시작한다.
물이차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실례하는 놈이 참개구리이다.
논바닥 전체가 뭉글뭉글 여기도 뭉글 저쪽 논도 뭉글 개구리알로 가득차곤 했다.
좀 징그럽기도 하지만 개구리알은 그당시 강림의 정서였다.
개구리가 완전히 부화하고 성와가 되면 한여름이 시작된다.
개구리가 완전히 성장하면 여기서도 개굴 저기서도 개굴 온천지가 개굴개굴이다.
강림천의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개구리가 합창해내는
그시절 아름다운 시골의 멜로듸!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개굴 --개---액 객-----’
한여름 이소리가 들려야만 잠이 오곤하였다.
강림은 논이 적고 밭이 많은 농촌이다.
조선에서는 논이 많으면 부촌이요 밭이 많으면 대체로 빈촌이었다.
그런데 강림은 송실 노고소 아랫담 등에 얼마간의 논이 있고 대부분의 지역은
밭떼기였으며 또한 그 외의 산골자락은 산비탈에 누워있는 화전들이었다.
그리하여 강림은 한국의 농촌사회에서 부촌도 빈촌도 아닌 중촌?
아니 중하촌 정도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정바우에서 벌어지는 5일장은 이지역의 경제 허브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므로서 농촌경제를 다소 융통성있게 하지않았나 생각된다.
원주를 비롯하여 장사꾼들이 흘리고 가는 돈다발과 부곡 안흥 월현 심지어
수주면 운학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 날락거리면서 던진 산물들이
강림의 부를 일으킨것같다.
어찌됐던 강림은 대체적으로 밭이 많았다.
강림사람들은 이 밭에다가 주로 감자와 옥시기를 심었다.
봄이 되면 밭을 갈아 이랑을 내고 한이랑은 옥식기를 뿌리고 옥시기줄 사이
사이에는 감자씨를 심었다. 한여름이 되면 감자도 주렁주렁 옥시기도 말랑말랑
함께 열렸다.
옥시기대공이 어른 키를 넘길 무렵 아버지와 나는 호미를 들고 옥시기밭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물론 옥시기가 커나가는 과정에 이미 몇 번 들어가 잡초를 캐냈다.
그러나 계절적으로나 섶의 작은 키로 보나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날시도 선선하거니와 옥시기 섶도 부드러워 별로 문제될꺼리가 없었다.
그러나 육칠월 삼복더위가 극심한 한여름에 옥시기밭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내일은 옥시기밭을 매자고 할때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옥시기섶이 한창 커서 야들야들한 살거죽에 부딯치는 날에는 섶이 까글까끌하여
도루코칼날을 방불하는 날카로운 이파리가 팔뚝 여기저기를 시뻘것게 그어버린다.
30도가 넘는 폭염속에서 팔뚝과 다리종아리를 안 글키려고 긴 남방이나 긴바지를
입으면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옷이 온통 땀범벅이 되거니와 후텁지근하여 밭을
매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였다.
시원하게 밭을 매자니 옥시기 잎파리가 괴롭혔고 살가죽이 글키는 것이 싫어
긴옷을 입을라 치면 또한 더위가 괴롭혔다.
한 여름의 뙤약빛과 땅에서 반사되어올라오는 뜨뜻한 김은 나를 삶어버렸다.
한사래를 잡아 아버지가 저만치 달아났는데도 나는 아버지의 절반도 못매고
쩔쩔 매었다.
일단 한사래를 매기 시작하면 사래가 끝나야만 잠시 휴식을 할수있었다.
사래중간에 쉬기란 매우 어려웠다.
사래 중간에서 쉴라치면 쉴만한 공터도 없을 뿐만아니라 적당히 비비고 앉으면
감자 한포기가 작살 날 수밖에 없고 또 서서 쉴라치면 옥시기섶이 나를 베기 때문에
그것 또한 만만치않았다.
그래서 이랑을 한번 매기 시작하면 사타구니가 저리고 쓰리지만 한이랑을
다 매야만 쉴 수 있었다.
짧은 사래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긴사래를 만나는 날에는 죽을 맛이었다.
어찌했던 김을 매기는 맸다. 김을 다 매면 또 다시 감자를 캐야만 했다.
한여름의 별미는 단연 옥시기와 감자였다.
강림의 옥시기는 메옥시기나 찰옥시기 모두 쪄먹기에는 너무도 맛이 있었다.
한여름의 강림의 주 식단은 단연 삶은 감자와 찐옥시기였다.
하얀수염을 절반정도 벗겨내 가마솥에 집어넣고 소금을 약간뿌려 푹푹 삶아내면
쫄깃쫄깃 달짝지근, 입에 집어넣고 후드득 뜯어내면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아주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옥시기로 만들어내는 강림의 또하나의 별난 맛.
‘올챙이묵’
올챙이묵을 먹어봤는가?
야들야들한 옥시기를 맷돌아 갈아서 즙을 내고, 이 액기스를 커다란 무쇠솥에
끓이고 끓인 옥시기죽을 깡판에 부어 올챙이를 만들어 먹는 올챙이 묵도 있었다.
올챙이 묵은 깡판을 통과하는 즉시 찬물에 식혀야만 퍼지지 않고 적절하게 모양을
만들어 낼수가 있다. 아직 열기가 덜식은 올챙이 묵을 파를 숭숭 썰어넣은 간장
한 숟가락 푹떠서 훌훌 썩어 입속에 가득넣고 우물우물 거리면 그 또한
또 다른 맛으로 강림의 아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올챙이 묵을 한입넣고 열무김치 한젓가락 떠넣으면 환상의 콤비가 되었다.
올챙이 묵 먹다가도 하얀분이 뽀송뽀송 빛나는 감자 한개를 젓가락으로 푹꿰어
한입 물면 그것이 강림의 특별 저녁이었다.
조선반도에 먹거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한여름의 찐옥시기 올챙이묵 찐감자를
따라 올수는 없었으리라---.
한여름이 지나 가을에 들어서면 강냉이가 바짝 말라간다.
강냉이가 말라간다 싶으면 강냉이를 통째로 따서 바소쿠리에 올려 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강냉이가 말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햇볕에 바짝말려야 했다.
밭에서 추수한 모든 강냉이는 일단 멍석위에 쌓는다.
멍석위에 자리를 튼 다음 송곳으로 강냉이 사이사이를 뚫어놓는다.
통강냉이에 한두줄 송곳으로 길을 내놓으면 그다음에는 따낸 강냉이속을
이용하여 나머지 강냉이 알들을 비틀어 따내곤 하였다.
지금은 고무장갑이나 심지어 실리콘 처리된 장갑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맨손으로
강냉이를 훌터냈다. 그래서 한 둬시간만 강냉이를 훌고나면 손바닥이 아리고
얼얼했다. 손바닥이 닳아 아려왔다.
어디 그뿐이랴!
강냉이를 타갤때 송곳이 빗나가 손가락을 또 얼마나 찔렸던가!!
그래서 송곳으로 줄을 타개는건 어른들 나머지 알들을 비틀어 따내는건 아이들
몫이었다.
이렇게 따낸 강냉이들은 멍석에 펴서 바싹 말려야했다. 그래야만 강냉이쌀로의
구실을 할 수가 있고 원주 장사꾼들이 수매해갔다.
바싹 마르지않으면 수매할 때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고 또 잘못하면
가마니안에서 썩을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가격을 다운시켰다.
한편으로는 내년 농사를 위하여 창고에 강냉이 몇 개씩을 한두루미에 묶어
수십 타래 벽에 서가래에 걸어놓았다.
강냉이가 많은 집은 원통형의 발을 만들어 강냉이를 통째로 집어넣고
그대로 건조시켰다.
이렇게 강냉이 수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뒷정리를 해야했다.
밭에 덩그라니 홀로이 서있는 강냉이 대공들을 낫으로 거둬내야 했다.
강냉이 대공을 잡고 지상에 가깝게 낫을 가져다대고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낫질을 해올리면 대각선으로 짤려졌다.
어떨때는 무심코 낫을 올리다가 손가락을 베인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강냉이 섶을 거둬내면 보통 두가지 용도로 활용하였다.
소를 멕이는 집에서는 강냉이 섶을 잘게 짤라 소여물을 끓였고---
소를 키우지 않는 우리집 같은 경우는 퇴비와 함께 섞어 썩혔다.
이 강냉이 대공을 짜를 때는 주로 작두를 사용하였다.
당시 수많은 농부들이 어떤 집이든지 이 작두에 서린 애환을 격지않은 집은 없었다.
생각만해도 돌이키고 싶지않은 농기구였다.
그러나 그당시 작두는 농부들의 어쩔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차씨 가문의 평호형도 그렇게 한쪽 손가락을 잃고말았다.
옥수수는, 풋 옥시기는 풋 옥시기대로 다 여문 옥시기는 옥시기쌀로 그리고
강냉이섶은 소여물로 얄짤없이 모두가 활용되는 전전후 농작물이었다.
강림의 한여름과 가을은 강냉이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잊지못할 계절이었다.
이곳 부산에서 여름이면 경상도지역의 강냉이를 사먹어 보지만 강림의 강냉이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요 곰발의 워카였다. 강림의 옥시기에 발뒷꿈치도 못따라간다.
너무도 맛좋고 그리운 어릴적 강냉이!!!!
그리고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하아얀 분의 감자!!!!!!!!
첫댓글 선배님 이번여름에는 강림에서 한번뭉쳐 옥수수도먹고 감자도 먹고그런한번보내고싶네요 ??? 강냉이 삶아서 마당에 멍석깔고 무수히떠있는별 바라보앗지요... 여름이야기 2번기대합니다 늘건강하세요
정말 올 여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강림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지금도 저녁에 마당에 멍석 깔고 감자찐것과 옥수수를 오이냉국과 먹던 그시절이 눈물나게 그리워지네요~~~
올챙이 묵 달착지근하고 풋풋한 향이나는 맛이 그립네요 지금도 횡성어딘선가는 만든다는데..............
올챙이 묵이 먹고십내요 올여름엔 꼭한번 먹어봐야지.
어릴적 추억을 어찌 그리도 맛갈스럽게 잘쓰시는지요. 선배님글 잃다보면 어릴적 동심으로 돌아가 항상 즐겁네요.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동생과는 통화했어요 올여름 동창회에서는 만날수있을것 같군요..
좋은글 고마워요..그냥 침이 꿀~을`~꺽억 넘어갑니다.그려 지금도 여름이면 안흥장날 올챙이 합니다. 한그릇 먹고 강림가다보면 금시 소화가 다 됩띠다 우리 어릴적에야 진짜 (wellbeing)이였죠. 또 기대하겠읍니다.
이러다 차선배님 머리 쥐나는것 아니가 ㅎㅎㅎㅎ
선배님 올창묵 먹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