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Khabarovsk)에서 밤 10:20 분이 넘어서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TSR ; Trans Siberian Railway)는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 역까지 다음 날 아침 오전 10:20 분에 도착하였다. 800km를 12시간 정도 달린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약 두 배가 된다.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Yaroslavskiy vokzal)에서 출발하여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 역까지 소요시간은 166시간(7일)이며, 9288.2km의 매우 먼 거리이다. 시베리아 열차의 마지막 부분을 탑승해서인지 침구는 새 것을 주어 청결하지만 바닥에는 먼지들이 뭉쳐서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만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다면 더 깨끗한 횡단 열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열차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운행 시간과 비용도 차이가 난다.
우리는 3등석인 '플라츠카르타'(Reserved seat)를 이용하였다. 이층으로 쓸 수 있는 오픈된 한 실에 여섯 명이 잘 수 있는 구조이다. 다른 여행객들과 한 실에 배치되기도 해서 사적인 공간은 없지만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여행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대략 오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라 부담이 덜하고 러시아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기차 안은 약간 더울 정도로 따뜻하고 더운 물도 준비되어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하루 밤의 기차여행으로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느껴 볼 수 있다. 열차가 밤새도록 달려 아침을 깨우며 드러내는 창밖의 풍경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만의 색다른 재미를 가져
다준다. 열차 밖의 소박하고 황 량하지만 이국적인 숲들과 강은 고려인, 독립운동, 발해, 시베리아 유배, 톨스토이 같은 이름과 단어 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면서 달려간다. 그리고 서서히 아침이 되게 한다. 위 풍경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기 전, 8시 42분을 조망하는 모습이다.
블라디보스톡 역 앞의 정면이다. 이 도시는 러시아 극동지방의 군사 요충지이며 프리모르스키 지방(Primorsky Krai)의 행정중심지이다. 한국에서는 연해주(沿海州)라고 부른다. 2013년에 60만3천명으로 기록되어있어서 인구수는 하바롭스크와 비슷하다. 최근에는 국제 학술 대회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열린바 있어서 국제 무역과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부가 있는 폐쇄된 군사도시로서의 어두운 이미지보다는 국제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100만 인구를 가진 ‘러시아 극동지방의 샌프란시스코’로 발전시킨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블라디보스톡 역 후면에 있는 금각만의 모습이다. 군함도 다소 보인다. 지금은 루블화가 많이 떨어져서 여행하기에는 여유롭다. 호텔도 있지만, 매우 편리하게도 역 근처에 유스호스텔이 있어서 ‘착한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도시가 아주 크지는 않기 때문에 걸어 다니면서 촬영하기에 아주 적합한 도시이다. 중국과 일본과는 전혀 다른 유럽문화의 일면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볼 수 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보이는 모습 보다 실제 러시아인들은 친절하고 인간미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곳 사람들은 웃는 모습을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다. 아마도 추운 지방이라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금각만(金角灣)은 러시아 연방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만이다. 동해 북서부의 표트르 대제 만에 돌출되어 나온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반도의 끝 부분이 뿔 모양으로 길게 생긴 만이다. 폭 2km에 길이가 7km 가량 되며, 깊이는 20~27m이다. 이 만을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톡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1859년, 콘스탄티노플의 금각만과 비슷한 지형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니콜라이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백작이 지금의 이름을 부여했다고 한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진용 GPS 장비가 촬영된 지역을 표시하고 있다. 주로 금각만을 중심으로 걸어 다니면서 촬영하였다. 극동대학(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이 있는 루스키 섬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시내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숙소인 호텔에서 보이는 금각만과 사물 그 자체들. 저 흙무덤이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로 변형시켜 줄 수 있을까? 그 답은 2020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다가 보이며, 경사진 길이 있는 이 장면은 자동차가 간간이 다니는 모습이 마치 누보레알리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미있어서 동영상으로 촬영 해 보았다. 한 참을 그러고 있는데 한 모녀가 옆에서 핸드폰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해 달라고 해서 찍어준 후에 내 카메라를 들어 보였더니, 포즈를 취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한 몸이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지겠지만 현재에는 둘로 나뉘어 외양의 아름다운 순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딸의 신체는 분명 어머니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내 어머니는 정녕 돌아 가셨지만 어머니의 미래는 분명히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하고 있는 두 모녀의 사진에서 나는 뼈저린 풍크툼(Punctum)을 느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방문을 기념하는 개선문이다. 러시아 정교회와는 좀 다른 건축구조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혁명에 이 문도 희생이 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것이다. 문 안에 사람이 보이기 때문에 이 개선문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남대문이 서울의 랜드 마크로는 좀 작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개선문을 보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갖는 콤플렉스를 이제는 지양하고 복원에 대한 세밀함이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이 아닐까. 이 개선문을 복원할 수 있는 문화적인 힘은 러시아만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남대문을 더 정교하게 복원할 수 있는 문화적 복원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되새겨 보았다.
그날 밤 블라디보스톡 바그잘(역)은 개선문 못지않게 녹색이 독특하게 빛나는 광휘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그 앞에는 언제나 어딘가를 지시하는 키 작은 사나이의 동상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레닌이다. 마르크시즘을 따르던 그의 공산주의 는 비록 실패했고 사회주의로 가자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러시아 역사는 흘러갔다. 트로츠키를 살해하고 철권통치를 시작한 스탈린의 독재아래 소비에트 연방은 결국 무너졌지만, 봉건을 무너뜨린 혁명의 아버지인 그는 현대 러시아 정치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레닌이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한 후에 트로츠키와 스탈린은 권력의 암투로 빠져 들었고 결국 무력을 가지고 있던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제거한다. 어찌 보면 실패한 혁명가인데, 이 나라는 봉건시대의 장군들과 함께 레닌 그리고 스탈린도 모두 동상으로 만들어 푸쉬킨과 함께 거리를 상징하고 있다. 러시아 역사의 힘은 좌도 우도 모두 하나로 녹여 내는 힘이 아닌가라고 짧은 여행 속에서 우선 정리해 보았다.
블라디보스톡 역 안에는 이렇게 성 니콜라우스(270-345)가 모셔져 있다. 그는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였던 성직자인데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니콜라오, 니콜라스, 니콜라라고도 한다. 네덜란드어로는 산테 클라스라 불렀는데, 이 발음이 영어식으로 변형되면서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수호성인이다. 그를 자본주의의 상품 판매자로 역할을 준 역사적 배경은 1930년대 초기에 코카콜라 성탄절 상품광고 기획에 포함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의 웃는 모습과는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얼굴 뒤에 보이는 후광과 문양 그리고 오른 손가락의 형상은 불상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서구의 종교화와 불화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건 러시아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살아오면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역 가까운 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고향이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인데 이를 영어식으로 율 브리너(Yul Brynner, 1920 ~ 1985)라고 부른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러시아인은 ‘율’을 ‘유리’라고 발음하였다. 1940년에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뮤지컬과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이다. 중학생이던 시절에 아디오스 사바타(Adiós, Sabata, 1971년)에 나오는 그의 배역에 매료된 나는 그를 몹시 좋아 하였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자문해 보았다. 누가 과연 가장 큰 영향을 인류에게 미쳤을까? 레닌인가 아니면 성 니콜라스일까? 아니면 율 브리너일까? 그 답은 아마도 다음 사진이 답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각만이 보이는 저 풍경은 이 도시의 건축이 갖는 색채의 다양함이 아주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건 어떤 한 건축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모든 건축물이 균형과 비례를 나타내며 블라디보스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도시에서 만난 정치인과 종교인 그리고 예술인은 정확하게 자신의 영역과 위치에서 블라디보스톡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누가 ‘더’ 라는 비교급은 이 도시에 없다. 그저 모두 균형과 비례가 되어 블라디보스톡으로 통일이 된다. 그래서 하나의 도시풍경으로 구성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금각만에는 군함이 정박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