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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미술의 만남 15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과 최승호의 시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스무 살 무렵에 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만났다. 이미 10여년 전에 생을 마친 화가였지만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1970년, 나는 읍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도로가의 있던 2층 짜리 집이나 시멘트로 지은 건물, 그리고 길거리의 자동차들에 매우 낯설어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것은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대도시로 나오게 되면서 중학교 때와는 더욱 큰 낯섦과 문명에 대한 충격과 마주쳤다.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시멘트 건물에 칠해진 하얀 페인트가 짓밟아왔다. 길거리의 자동차가 나를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 것만 같았다. 어떤 때는 높은 건물들이 내게로 마구 쏟아지는 착시현상을 겪기도 하였다. 왜 나는 도시라는 자본주의 공간과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했는지 모른다. 지긋지긋한 그 때의 기억들이 지금도 또렷하다.
내가 읽은 책 표지에서 보았던 마하트마 간디의 얼굴을 닮고 싶었다. 눈만 부리부리하게 살아있는 비쩍 마른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가득 찼다. 그래서 나는 몸에 살이 찌는 것을 혐오했다. 음식이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비쩍 말라갔다. 그 무렵,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보았다. 막대기처럼 마른 인물 조각 작품들은 내가 닮고 싶었던 모델들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무척 반가웠다.
거울을 보며 멋을 부릴 스무 살 짜리 청년이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소가 먼 산 쳐다보듯 했다. 책만 읽었다. 수많은 책을 읽어가며 나는 외형주의보다도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철든 아이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1970년대 중반, 내가 대도시에서 빌딩을 보고, 많은 자동차들의 행렬을 보고, 그리고 오염된 광주천의 시궁창 물을 보고 문명에 대해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자코메티가 만든 막대기처럼 마른 인물상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 외롭고 쓸쓸한 그 시절 자코메티의 빼빼 마른 조각상들을 보며 동질감과 위로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청년 시절, 외롭고 쓸쓸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 준 조반니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01년 10월 10일, 이탈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스위스의 보르고노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1863~1933)는 스위스에서 명성을 떨친 후기인상파 화가였다. 그는 아들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예술적 환경과 재정을 아낌없이 지원하였다. 그는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미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고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 가르쳤다. ‘화가가 실체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예술과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를 나눈다.
자코메티는 1915년 가을 쉬어스 중등학교에 들어가 1919년 부활절 무렵까지 다니면서 친구들의 초상화와 공책에 교사들의 케리커쳐를 그렸다.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자코메티의 아버지는 아들을 제네바의 미술학교에 등록시켜 제임스 비버트에게 그림과 조각을 배우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적 스타일은 자코메티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자코메티는 며칠만에 학교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제네바 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한다.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이 학교의 방식에 흡족해 한다.
1920년 자코메티는 제네바에서 공부를 그만 두고 아버지를 따라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보러 간다. 1922년 1월, 자코메티는 프랑스파리의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로댕의 제자인 앙투안 부르델의 수업을 듣지만, 그에게는 감명 깊은 수업이 되지 못한다. 그러자 자코메티의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한다. 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만든 작품들을 모두 부숴버린다. 이러한 태도는 평생 동안 계속된다. 자코메티는 스승인 부르델과 미술의 견해에서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콘크리트 같은 새로운 재료나 기술의 근대성, 이국적 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코메티는 끊임없이 모사를 열심히 하는 부르델의 부지런함을 실천한다. 그러는 과정에 부르델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모방한다. 1922년 고향으로 돌아가 보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한다.
매달린 공(1930~1931년)
1928년, 아버지의 계속되는 지지로 파리에서 입체파 비구상조각의 선주주자였던 립시츠에게 자문을 구한다. 자코메티에게 립시츠는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조각가였다. 1930년에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그룹활동과 전시회에 참여한다. 이 무렵에 「매달린 공」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최초의 ‘움직이는 조각’으로 자코메티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공이 쐐기모양의 물체 위에 매달려 있다. 공은 쐐기의 형태를 따라 그 위를 지나가게 되어 있다. 공은 홈이 파였고 쐐기형태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닿는다. 따라서 공은 남성을, 쐐기는 여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공을 매달고 있는 끈 때문에 두 사물, 즉 남성과 여성의 결합은 좌절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작가의 성욕이 좌절됨을 암시한다. 초현실주의 시절 자코메티는 감각보다 사고를 우위에 두었다.
1935년 사물의 형상을 그리지 않는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자코메티가 실물과 똑같은 인간의 동상을 조각하자 그를 제명시킨다. 그러면서 초현실주의 그룹의 작가들이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인간이나 자연 등 실제 존재하는 것들을 그리지 않고, 의식의 세계를 초월하는 무의식·꿈·환상을 그리는 것이 초현실주의이지만, 자코메티는 인간의 두상을 조각하되 마음 속으로는 두상을 조각하지 않는다. 즉 자코메티는 현상이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 있는 현상을 지탱하는 핵심, 보이지 않는 본질에 닿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자코메티의 시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코메티를 초현실주의에서 제명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1932년 피에르 콜 화랑에서 첫 개인전, 1934년 미국 뉴욕에서 개인전을 하는 등 자코메티의 명성은 높아만 간다.
1949년 무렵,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남자」 시리즈를 제작한다. 마치 뿌리처럼 두꺼운 발을 하고서 정면을 바라보는 작은 여인상을 만들었는데 앞뒤로 이동하는 잠재적인 움직임을 표현하였다. 「커다란 여인들」에서는 머리가 아주 작아서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1966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만년에 이르러 자코메티는 조각상의 정면성을 고집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모든 방향을 포착한다. 또한 공간과 함께 작품이 용해되어 위로 올라가듯 옆으로 펼치는 작업을 한다.
걷는 남자(1960년)
자코메티는 모델을 앉혀놓고 조각작업을 많이 하였다. 이때 그는 모델을 재현하고 옮기고 복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델과 싸우고 투쟁하는 것의 반복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다. 그러므로 그가 만든 조각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얼굴과 신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본질이다. 다시말해 그는 현상이 아니라 현상 뒤에 존재하는 의미를 추구했다.
그런데 얼굴이나 신체 뒤에 숨어있는 것은 허공일 뿐이다. 얼굴이 얼굴일 수 있는 것과 신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 빈 공간 속에서 빈 공간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 빈 공간이 얼굴의 조건이고 신체의 조건인 것이다. 즉 자코메티는 사물이라는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감싸고 사물을 생산하는 공간, 다른 식으로 말해 사물의 근거를 보았던 것이다.
스웨터를 입은 디에고(1953년)
자코메티가 평생 꾸준하게 모사를 했던 것으로 모사를 뛰어 넘는 모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모사를 하게 된 배경은 자코메티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화가가 제대로 볼 줄 아는 자여야 한다. 미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보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는 데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훗날 자코메티는 그의 동생을 모델로 앉혀놓고 조각을 하다보면 동생이 전혀 낯설어진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모델을 보면서 모델을 보지 않았던 것인데 모델이라는 사물이 존재하는 허공의 근거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자코메티 조각의 본질은 현상 아닌 현상을 통해 인간과 사물의 존재를 규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자코메티는 작품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공허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 볼 줄 알았던 예술가였던 것이다.
마네킹(1933년)
나의 스무 살 시절처럼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에게서 위안을 느낀 사람이 최승호 시인이다. 최승호는 『자코메티와 늙은 마네킹』이라는 제목으로 시선집을 낼 정도로 자코메티의 작품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었다. 이 시집에는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을 중간 중간에 끼어 넣었다. 그리고 시집 말미에는 자코메티의 축약된 삶의 연보를 실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최승호의 시 여러 편에서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의 이미지에 시인 자신의 삶의 내력을 은연 중에 오버랩시킨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물론 최승호의 작품은 엄연히 독립된 텍스트로 존재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과 최승호의 삶의 체험이 시적 배경이 되었을 뿐이지만, 조각과 시라는 장르적 이질감이 주는 정서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뼈다귀가 가죽을 내미는 늙은 것이
털이 빠지고
웅크린 채
홀쭉한 뱃가죽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늙은 것이
쇠사슬에 목덜미가 묶인 채
짖어댄다
짖어댄다
짖는 일도 뜸하던 늙은 것이
머지않아 턱이 떨어지고
이빨마저 다 빠져버릴 병들고 늙은 것이
짖어댄다
짖어댄다
교회당 종소리가 뎅그렁거리고
유난히 크고 밝은 금성이 번쩍번쩍거리는 새벽에
돌연 늙은 개의 짖음은 음울하고 서러운
늑대의 울음으로 변해버린다
시커먼 늑대의 울음이
새벽하늘을 시커멓게 적셔버린다
-최승호 「울음」 전문
자코메티의 「개」를 최승호 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는 최승호가 자코메티의 「개」를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 지를 생각해본다. 무엇이든지 첫 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 인상은 거의 대부분 변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인상을 유지한다. 아마 최승호는 비루먹은 것처럼 비쩍 말라 가죽이 개의 뼈를 목죄고 있는 개를 통해 누군가, 혹은 자신일 수도 있는 어떤 존재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사람은 매우 우울하고 슬퍼서 울고 있다. 그 이미지가 개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개는 “뼈다귀가 가죽을 내미는 늙은” 개다. “털이 빠”져 “홀쭉한 뱃가죽을 들썩”인다. 이렇게 병든 늙은 개는 “가쁜 숨을 몰아” 쉰다. 뿐만 아니라 “쇠사슬에 목덜미가 묶”여 있으니 자유롭지 못하다. 자코메티의 「개」는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으면서 어디론가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최승호가 자코메티의 「개」를 바라보면서 느낀 이미지는 “웅크린 채”이며 “이빨마저 다 빠져버릴 병들고 늙은 것”이다. 늙고 병든 개가 웅크린 채 짖는 것은, 다시 말해 “늑대의 울음으로 변해버린” 늙은 개의 “시커먼 늑대의 울음이/ 새벽하늘을 시커멓게 적”신다.
최승호의 「울음」 속의 개는 외롭고, 춥고, 병든 노인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교회당 종소리가 뎅그렁거리고/ 유난히 크고 밝은 개의 짖음”은 “음울하고 서러”워 마치 늑대처럼 슬프게 우는 것이다.
개(1950년)
이 작품에서 늙고 병든 개와 새벽녘 들려오는 교회당 종소리와 금성의 반짝거림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다.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면서, 생명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한다.
최승호의 「울음」은 생명성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공허’, ‘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자코메티가 사물의 현상을 형상화시키려 하는 것보다, 현상의 이면에는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보려했던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코메티는 청년시절부터 늘 새로운 것을 찾았다. 1927년에 살롱 데 튈르리에 「커플」, 「숟가락 여인」을 출품했는데 그는 특별초대전에 초대되었다. 특별 전시는 가장 아방가르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작품전이었다. 이 두 작품은 아프리카 미술을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부부(1926년)
최승호가 「숟가락 여인」이라는 괴상망측한 이름을 가진 작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바로 그의 시작품 「썩는 여자」이다. 즉 시인은 아주 대담하게 아카데믹한 기존의 조각 작품들과 달리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조각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을 보았을 것이다. 조각 작품의 이름을 통해 자코메티가 ‘숟가락’을 형상화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하얀 달걀 같고, 둥그런 숟가락의 형태를 보여준다. 자코메티는 타원형의 수저에서 여성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으로 같은 시기에 제작한 「부부」라는 작품에서 남성은 기다란 마름모꼴이지만, 여성은 나뭇잎, 또는 숟가락의 형상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보아 자코메티가 타원형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든 ‘숟가락’은 형태적으로 ‘여성’과 유사성을 띠고 계란 형태로 나타난다.
‘숟가락’과 ‘여자’의 유사성은 형태뿐만 아니라 ‘먹는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승훈의 말에 의하면 자코메티의 「숟가락 여인」은 ‘먹고 싶은 욕망’을 나타낸 것으로 ‘식욕과 성욕’이라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면 먹고 싶다고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식욕과 더불어 성욕 또한 ‘먹고 싶은 욕망’인데, 그러나 지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아무리 채워도 욕망을 모두 채울 수 없다. 끊임없는 결핍의 연속인 것이다.
숟가락 여인(1926년)
자코메티의 「숟가락 여자」에서 최승호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또는 결핍을 「썩는 여자」를 통해 드러낸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의 머리에
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습기와 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
속으로부터 썩으며 곪고 있지만 아직
구멍이 난 것은 아니다 새끼들을 치고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
축축한 벽지를 들고 일어나는 곰팡이와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밤이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자,
천장 위에 이사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
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주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늙은 학자의 흰 수염처럼 하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책을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를
그 어디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
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
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여야 할까
-최승호 「썩는 여자」 전문
화자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가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 한 발자국 쯤의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화자가 바라보는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는 욕망으로 가득찬 존재이다. 그러나 실상은 가난한 지하생활자이다. 가난하면서도 욕망하는 자본주의 사회 인물의 전형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지하”이다. ‘지하’라는 세계는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지하는 햇볕이 들지 않는 곳으로 음습하고 어두운 공간이며, “습기와 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가 풍기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지하에는 “그녀의 머리에/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렇듯 좋지 않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속으로부터 썩으며 곪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축축한 벽지를 들고 일어나는 곰팡이와” 싸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을 화자는 이미 알고 있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 보듯이 “그녀”를 뻔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어서 “밤이면 관 속에 누워”있다. 햇빛이 비치는 지상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가 “그녀”의 천장에서 들려온다.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주지 않는다” 이렇듯 무엇인가 잘 못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잘 못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컴컴한 문명”으로 인식하는 시적 화자는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를”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일지를 고민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문명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난하지만, 그래서 지하생활자이지만,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는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이 작품에서 ‘지하’는 실제의 ‘지하’일 수도 있지만 ‘햇볕이 들지 않는 땅 속’, 즉 ‘불모지대’의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햇볕이 따가운 문둥병자이기도 한 “그녀”는 과도한 욕망을 꿈꾸는 오늘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실을 알고 있는 시적 화자는 우리 모두를 지옥과 같은 지하에서 햇볕이 드는 땅 위로 구원하고 있다.
자코메티의 「숟가락 여자」라는 조각작품이 최승호의 시 「썩는 여자」를 통해 자본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욕망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시와사람 2013, 여름(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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