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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해후 <화백 부여> 단군 해모수가 신과 같은 눈빛으로 사람을 꿰뚫어 보아 사람들이 천왕랑이라 칭하였다.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와 웅심산에 의지하여 난변에 궁실을 쌓았다. 오우관을 쓰고 용광도를 차고 오룡거를 타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에 오르더니 이에 즉위하였다. 협보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친구이다. 따르는 자 100여 가를 데리고 패수, 해포를 지나 가라해의 북안인 구야한국에 이르러 나중에 아소산으로 옮기니 이가 곧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후에 임나와 합하여 다스렸다. 의려왕은 선비족의 침략을 피해 따르는 자 수 천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 의려는 ‘스진천황’이다. 하나 대통령 면담 1. 한국과 일본, 양국은 물론 세계의 매스컴들은 스포츠 뉴스와 토픽란 등을 통해 동경대전의 실상을 낱낱이 묘사하고 일본 무사의 링 점거사건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였다. 그와 함께 링 주변의 가십거리를 모아 일본의 음모성 대회 유치를 지적하기를 이러한 행동은 일본을 움직이는 소수 집권층의 무지와 오만의 소산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제기한다. 유럽의 어느 통신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인간의 가치도 무시해버리는 일본 집권층의 절대적 단면주의가 드러낸 일례의 코미디라고 비난하면서 수년 전, 일본이 인위적으로 주체적 문화국가관 정립을 위해 행한 가짜 문화재 발굴 사건의 맥을 잇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상, 가짜 문화재 발굴사건 당시의 일본 총리가 다나까였다는 사실을 적시한 이 통신은 당시에도 그 사건은 다나까를 비롯한 일본 정계의 묵인과 지원하에 문화재 전문가를 사주하였다는 사실을 회고하며 다나까 노부오를 황혼(皇魂)의 이념으로 건설된 제국주의 일본의 산 증인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추종자라고 결론 짓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행하는 일련의 소인배적 과잉 행동들이 일본과 일본 국민의 입지를 좁게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 2. 귀국 후 규호는 세계적 유명세를 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귀국과 함께 청와대로 대통령을 방문하면서 시작된 유명세 치르기는 각종 방송사와 신문사에 출연과 탐방, 취재를 받으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빠져 운동은 물론이고 마음 편하게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배규호 씨, 승리를 축하합니다. 고생 많았지요?"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국정 다망하실텐데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번 다나까 전 총리에 대한 자네의 질책은 대단한 것이었소, 청년같은 민간 외교관들이 국위선양을 하면 외무부 직원들도 아주 신선한 자극을 받아 업무 성과가 대단한 상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고 장관이 귀띔하더구만, 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래, 일본에 가 보니까 반응은 어떻던가요? 대단했을텐데...?" "예, 작은 불상사도 몇 건 있었습니다만, 별 차질은 없었습니다." "그랬구만...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대통령이 다시 자랑스러운 한국의 청년을 향하여 지긋한 눈빛을 보낸다. 대한 청년의 기백이 가상한 듯, 흡족함이 만면에 풍겨난다. 청년 한국을 표방한 정부의 수반답게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나라 전반의 개혁과 부패추방의 틀을 견고한 제도로 다져 국민의 지지와 신뢰가 시간과 공간에 가득하다. 외교와 내치의 수행능력과 방법에 있어서 국민의 가슴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대통령은 양질의 양면에서 조국의 국가 위상 확립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천천히 입을 떼어 청년에게 화두를 건넨다. "배규호 씨같이 심신이 건강한 청년들이 조국을 걱정하고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요즘은 청년같이 정신, 육체의 양면적으로 공히 건강한 젊은이를 찾아보기는 그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모든 현상이 제도와 이념, 사상에 기인함이 큽니다. 요즘같이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거 유교 사회의 정신 문화를 기대할 수는 없어요. 과거는 과거대로 폐쇄적이고 정체적이며 비 현실적, 비 실용적 문화를 비판받지만 정신 문화만큼은 그 깊이가 심오하였지... 청년의 생각은 어떻소?" 존대로써 젊은이를 대하는 대통령의 예의에 마음의 부담이 큰 규호가 대통령의 하대를 청하는 한편, 한층 언행에 주위를 기울여 대통령의 화두에 참여한다. "대통령의 고견에 공감합니다. 과거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군사력이 미약하였던 우리 조상들이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고도의 정신 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도 확고한 국가관이나 풍부한 사상을 섭렵한 가치관의 정립없이 물질 만능의 이기주의에 물든 물리력은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늪에 빠져 타 문화의 지배에 복속되어 그에 동화되는 것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라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 어쨌거나 정신이 물질보다 우월하거늘..." "각하, 외람됩니다만, 우리나라의 핵문제에 대하여 제 생각을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 예상치 않은 청년의 말을 들은 대통령이 놀란 듯 규호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안색이 바뀐다. "그래? 자네, 핵에 관해서도 생각이 있었구만, 그래, 말해 보게." 대통령이 규호와의 대화에 상당히 고무되어 언급을 허락하자 규호는 기꺼이 자신의 소신을 대통령에게 밝혀 나간다. "각하, 우리나라는 핵무기를 보유하여야 합니다. 중, 러, 일의 초강대국에 둘러싸여 사면초가의 지경에 있는 우리나라가 핵이라도 보유하지 않으면 앞으로 반도의 운명은 물론, 장래 통일한국의 전도가 우려됩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입을 떼어 반론을 제기한다. "그래, 그건 그렇네만 우리의 핵무장을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이 달가와하지 않으니 문제 아닌가?" 대통령이 핵무장의 장애에 대한 해답을 기대하는 듯 넌지시 규호의 의중을 묻는다. "각하, 미국은 한반도 남쪽의 안보를 일면 책임지고 있는 우방입니다만, 대한민국의 군사 강국화는 절대 원치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자립할 경우,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고 태평양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 러, 일의 강대국에 대한 견제에 그들은 곤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북아 3대 강대국의 태평양 진출이 용이해질 경우, 그것은 곧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반도를 보살핀다는 명분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군사적 자립을 용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대한민국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결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깊은 시름에 잠긴 듯한 표정의 대통령에 한편 연민을 느끼는 규호가 호흡 조절을 하면서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계속해 간다. "하지만, 각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아무리 견고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정책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요구하여야 합니다. 특히, 미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도록 하고, 동북아의 군사 강대국들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대한민국의 믿음을 굳건히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우리는 미국에게 핵무장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한 일본과 같은 농축, 재처리 시설의 완비라도 보장받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감은 눈을 떠 청년을 바라본다. 흔들림 없는 눈빛은 당신의 의지를 느끼게 하고 그것은 또한 상대의 언급을 추궁하는 것임을 청년은 인식한다. "각하,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면서도 평화적 원자로 시설은 아무 제약 없이 가동하고 있습니다. 평화로 위장된 일본의 무증후핵전략은 농축, 재처리 시설의 자유로운 가동으로 막대한 량의 플루토늄을 추출, 비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고, 핵무장을 전제로 한 일본의 군사력은 순식간에 군사 초강대국의 반열에 설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각하,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열강들의 침략과 간섭으로 얼마나 많은 수모와 피해를 보았습니까?“ 규호가 애타는 심정을 토로하며 대통령의 의중을 물어 말문을 닫는다. 대통령이 흔들림 없던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리고 무거운 입을 떼 청년의 대안을 묻는다. "그래,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나?" "각하, 우리는 지금이라도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 중에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다소의 마찰과 난관의 어려움을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장래 양국간 확고한 우방 관계를 기대한다면 그 어려움은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국익도 고려한 것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성숙한 관계는 우리의 자주국방과 군사문화의 자립을 위하여 무엇보다 긴요한 일입니다.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통하여 미국은 한반도에서 그들의 부담을 줄이고,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통한 홀로서기와 동북아 군사강국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양국은 상호 보완의 우방 관계를 충실히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규호의 말이 맺기를 기다려 대통령이 다시 묻는다. "미국이 동북아 안정의 맹방으로 우리보다 일본을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대통령의 생각은 역시 날카롭다. 아마도 대통령은 이미 그것을 통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각하,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대통령의 말씀과 같이 미국이 경제 대국이자 선진 강대국인 일본을 제쳐 두고 대한민국을 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가 힘든 일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전범국인 일본에 핵무장의 잠재력도 용인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본은 전범국의 지위에서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은 그 일본을 전적으로 우방의 신뢰를 보내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종전 후 아직까지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일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일의 군사동맹이 견고해질 것을 가정한다면 각하, 이것은 국익만을 추구하는 냉엄한 국제 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은 더더욱 핵무장을 보장받을 명분을 찾아야 합니다." 대통령과 청년의 눈이 교차하면서 한동안 묵언의 대화가 이어진다. "배규호 씨,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도 우리 동포인 것을 감안하면 저들의 핵무장도 통일한국의 미래는 보장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대통령이 깊은 시름 끝에 엄청난 문제를 규호 앞에 던진다. 그것이야말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는 물론 세계 각국의 관심사가 아닌가?! 규호가 민감한 사안에 맞추어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간다. "각하, 북한의 핵무장은 그 자체로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 주변의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들과 관련해서도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더더욱 한반도 한민족의 생존문제에 직면하면 극단의 상반된 논리까지도 추출되는 사안입니다."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각하, 주변 강대국의 입장은 우리민족의 생존 문제와 관련시켜 볼 때 그다지 고려할 필요가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 북한의 핵무장이 미치는 영향은 한반도 자체에 있어서 현재와 미래를 보는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이 정당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만큼 긴장이 고조되는 규호가 잠시 호흡조절을 위한 휴지를 가진다. "각하, 남북한이 주적의 의미로써 대치하고 있는 이때, 북한의 핵무장은 어느 나라보다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에 가하는 위협이 큽니다. 그러므로 현재 북한의 핵보유는 민족적 정당성이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보유가 그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한민국의 핵보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미래 통일한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핵보유는 남한의 핵보유와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통일한국의 국민들에게 있어서 핵무기의 보유는 통일한국과 한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즉, 통일한국에 있어서 북한의 핵보유는 당연히 민족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말씀입니다." 규호가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마치자 대통령이 깊은 생각의 끝에 낮은 음성을 뱉어낸다. 혼잣말처럼,,, "그래, 우리나라가 더 이상 약소국으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지..." 대통령이 입술을 굳게 다문다. 국가의 장래를 우려하는 대통령의 깊은 시름이 분위기를 한층 가라앉힌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특히 지도자의 위치가 무척이나 힘든 자리임을 규호는 평소 잘 인식하고 있었다. 평화를 지향하는 분단국가로서, 초 강대국에 둘러 싸인 약소국가로서 민족의 생존을 근심하는 지도자라면 자주국방을 위한 고뇌가 얼마나 클 것인가! 가슴 저변에서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정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나자 규호가 얼른 감정을 추스려 현실로 돌아온다. 면담의 끝을 고려한 규호가 지금까지 나눈 대통령과의 면담내용을 정리하여 자신의 견해를 요약한다. 그리고 현실의 국제정세 속에서 자주국방을 위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대통령에게 브리핑한다. "각하, 미국과의 관계를 성숙하고 대등하게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방으로서의 신뢰를 보다 공고히 구축하여 미국을 설득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전범국인 일본을 거론하여 원자력의 농축, 재처리 시설 이상을 보장받아야 하고,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시하여 우리의 핵무장을 요구해야 합니다. 중, 러, 일의 초강대국으로부터 사면초가의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한반도의 실상을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조선말기 열강들의 국익 쟁탈의 장으로 전락했던 피폐한 한반도의 실상이 선명한 영상으로 규호의 뇌리를 스친다. 열변을 토로하는 논리의 근저가 규호의 웅변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각하, 미국을 비롯한 영, 불 강대국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주변 군사 강대국들도 통일 한국의 핵무장과 군사 강국화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차라리 통일 전이 유리합니다.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대한민국의 핵무장에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 지도자의 노력을 무엇보다도 크게 요구하는 일입니다." 사실, 핵무장에 대한 관심과 실천에 있어서 역대 국가 지도자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정녕 무능과 무소신의 지도자들이었다. 그것은 군사 경제 약소국이었던 파키스탄을 예로 들면 명확해 진다. 인도의 군사적 위협을 명분으로 하여 핵무장에 성공한 파키스탄의 지도자가 핵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대외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강대국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군사 강국이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자주국방이 어려운 형편이다. 양국의 입장과 국제 정세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현실의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하고 못 하고는 전적으로 지도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대통령과 청년의 대담을 엿들으려는 듯, 석양이 창을 타고 넘어 와 테이블에 얹힌다. 대통령은 규호의 견해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고, 다시 한번 일본 원정의 패기를 칭찬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큰 우려를 나타낸다. 규호는 국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무거운 심중에 위로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청와대를 나온다. 북악산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가운데 어스름 황혼이 마지막 빛을 발하여 청와대의 실루엣을 그려낸다. 면담을 마친 규호가 청와대를 나서고, 2층 대통령 집무실의 창 너머로 석양을 마주한 그림자가 비친다. 대통령이 건강한 청년의 뒷 모습에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 둘 아가페 1. 한 달여를 그렇게 바쁘게 보낸 규호는 차츰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운동을 재개하고 곧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화사한 봄의 절정도 잊고 일상의 훈련을 마친 규호가 집에 돌아와 하루의 마감에 앞서 텔레비젼을 켠다. TV는 광고가 끝나면서 정규 뉴스를 막 시작하려고 한다. 순간, 바쁜 일정으로 잊고 있었던 여인의 모습이 낯익은 표정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여성 앵커인 지원이 남자 아나운서와 함께 번갈아 가며 뉴스를 진행하면서 이따금 냉철한 눈빛을 카메라로 향한다. 오랜만에 텔레비젼을 통해 연인을 만난 규호가 갑작스럽게 솟구치는 그리움을 가누지 못한다.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을 끄집어 낸 규호가 곧장 방송국으로 번호를 눌러 댄다. "KBC방송국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휴대폰의 저편에서 부드럽고 상냥한 여성의 말이 규호의 귀로 흘러 들어온다. "안지원 씨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방금 뉴스를 마친 아나운서 안지원 씨 말입니다."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곧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방송실로 전화를 돌리는 기계음을 느끼면서 규호는 그리운 사람을 당장이라도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텔레비전 속의 기계적인 음성과 달리 맑고 청아한 여인의 소리가 생생하게 귓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여보세요? 안지원입니다." 지원의 음성이 다시 한번 청아한 시냇물이 되어 고막을 타고 흐른다. "지원 씨, 저 배규호입니다. 잘~" "어머나! 규호 씨? 거기 어디예요?" 규호가 안부를 채 전하기도 전에 지원이 규호의 말을 막고 나선다. "여기 집입니다. 진작에 연락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예기치 않은 연인의 음성이 여인의 기운을 앗아버린다. 갑자기 무력감을 느끼면서 지원이 힘겹게 책상 모퉁이에 기대어 선다. 동경에서 시합이 있던 날, 규호의 타이틀전을 TV로 지켜보던 지원은 적진에서도 자신감으로 링을 주도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는 그의 패기와 용자를 자랑스럽게 지켜 보았다. 첨예한 외교 관계의 주인공인지라 규호가 시합이 끝난 후에도 바쁜 일정을 예상하였던 지원인지라 한동안 그를 만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일에 전념해 오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규호의 안부가 궁금해지던 차였다. 참았던 마음의 옷고름이 풀어진 여인이 목 메어 말을 못하고 있는 사이 어색한 정적을 깨고 규호의 음성이 전해져온다. "지원 씨, 보고 싶습니다." 그리운 사람의 구애의 음성을 잘디 잔 솜털의 여과 없이 받아 들이면서 여인은 벅찬 감정으로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 2. 밤 11시를 가리키던 대형 벽시계는 24분의 1 즉, 하루의 5퍼센트도 남지않은 짧은 시간을 채워서 빨리 하루를 마감하려는 듯 자정을 향해 곧장 치달아 나아간다. 규호는 지원과의 마지막 데이트 장소였던 63빌딩의 고층 레스토랑에 앉아 그날의 감미로웠던 사랑을 기억하며 여전한 올드 팝송의 악보에 마음의 음표를 그리며 온전한 감성의 지배에 순종의 노예를 즐기고 있다. 창 밖, 흑(黑)과 황(黃), 백(白), 간헐적인 적(赤)의 단순 채색된 서울의 야경은 노예의 감성적 몰입을 더욱 채찍질한다. 3. "오래 기다리셨어요?" 언제 왔는지 지원이 그의 맞은 편에 서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규호를 바라보고 있다. "아! 지원 씨?!" 감성의 몰입에서 깨어나 현실을 인식하면서 지성과 덕성의 정서가 가득 배어있는 미소를 자신의 오감(五感)으로 발송하는 지원을 마주하자 규호는 자신의 온몸이 솜털같이 가벼워지는 듯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지원을 향해 자신은 나신의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하는 원초적 본능의 화신임을 확인한다. 가슴에 흑장미로 도안된 얇은 분홍의 양장을 한 벌로 입은 지원의 모습은 조명을 받아 은빛을 발산하는 긴 생머리와 깊게 패인 굴곡의 가는 허리, 적당한 가슴 볼륨과 어울려 만면에 가득 어린 지성과 교양미로 은은하게 어른거리는 새카만 눈동자의 지성적, 육체적 카리스마에 은은하고 옅은 물감의 섹스 어필로 포인트를 강조한다. "어서 오십시요. 반갑습니다." 규호가 일어나서 정중한 인사를 지원에게 표현한다. "네, 반가워요. 그 동안 바쁘셨죠?" 지원이 자리에 앉으며 정감의 감정을 두 눈에 가득 담아 규호에게 보낸다. "예, 많이 바빴습니다. 지원 씨에게 연락도 못할 만큼요. 하하" "호호, 그러셨어요?" 간절한 그리움으로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시원한 웃음으로 날리며 카타르시스의 공허를 체험하는 지원은 한편 울컥거리며 가슴을 솟구치는 또 다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억눌러 나가다가 이윽고 더 이상 제어할 기력을 잃은 듯 옅은 눈물의 투명한 벽으로 둘러싼 그리움의 눈망울을 규호에게 던져 보낸다. 규호가 웃음을 그치며 그녀의 서러운 눈길을 따뜻한 눈동자로 받아들여 포근함을 전해 준다. 그리고 그윽한 눈길의 지속적인 고정과 함께 두터운 그의 손을 내밀어 지원의 가녀린 손을 요구한다. 지원이 양장의 치마 끝, 허벅지 사이를 누르고 있던 오른손을 올려 그에게 맡긴다. 오른손 위에 그녀의 손을 올려 잡은 규호는 어린 아이의 솜털같이 부드럽고 흰 섬섬옥수를 어루만지며 지원의 얇고 낮은 감정의 둑을 두텁고 높게 쌓아 간다. 왼손마저 요구하는 규호의 손길과 눈길을 바라보던 지원이 몸 어디에서도 거부할 힘을 전해 받지 못한 채 나머지 손마저 그리운 이에게 맡기면서 손바닥과 엄지의 두터운 부드러움으로 포근한 요람을 온화하게 느낀다. 규호는 검지에서 약지까지의 가늘고 섬세한 터치로 잠든 여인의 성감을 자극하여 지원을 긴장시킨다. "규호 씨!" 지원을 애무하기에 여념이 없던 규호가 지원의 볼륨 올린 호명을 받고 모범적인 초등학생의 굳어진 얼굴로 익살을 떠는 짓둥이를 보이자 싱그러운 미소로 흘겨보던 지원이 말을 이어간다. "제 아파트로 가요." 밤 12시를 향하여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자 쉼없이 나아가는 시침과 분침의 성화와 재촉이 거슬리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난 두 사람은 지원의 차를 타고 천천히 주차장을 미끄러져 나온다. 차 안에서, 뜻밖의 제의에 무사고(無思考)로 지원의 얼굴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규호를 정색으로 받아들이며 지원이 덧붙여 재촉한다.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제가 따뜻하고 맛있게 끓여 드릴께요." "함께 사는 가족이 없나요? 혼자 계신건가요?" 의아한 듯 의뭉한 듯, 규호가 사족의 말이나마 의례의 질문을 던진다. "그래요. 말만 잘하면 재워드릴 수도 있어요. 후후" "하하하, 그래요? 잘 보여야겠는데요?" 지원이 가벼운 눈웃음을 치며 "그럼요!"하는 표정의 밝은 눈빛을 규호에게 반짝 전하며 입술을 다물고 새하얗고 매끄러운 볼에 힘을 가한다. 그와 함께 입술의 양 끝, 매끄러운 살결의 가운데에 여인의 내면의 마음만큼 복잡하고도 알기 어려운 미지의 블랙홀이 선명한 매력으로 자리를 잡는다. 규호는 새로움의 매력을 새록새록 드러내며 자신을 목마르게 하는 지원의 옆모습을 환상적으로 느끼며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에서 그녀를 갈구하고 있다는 신경세포들의 자극을 감지하면서 자신의 뜨거워지는 눈빛을 숨길 듯 그녀를 향하던 시선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명암을 교환하는 전방의 아스팔트 도로로 돌려버린다. 4. 아파트 입구를 지나간 백색의 승용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비어 있는 공간에 주차한다. 엘리베이터를 탄 두 사람은 지원이 15층을 누르고 문이 닫히면서 사각의 철곽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한 쌍의 천사로 완성되어 간다. 아파트 내부는 지원의 성격을 반영한 듯 심플한 느낌의 시원스러움을 제공하여 방문객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다. 지원이 안내하는 소파의 한 가운데로 파묻혀 들어가는 엉덩이의 쿠션을, 잦아드는 진동의 여감(餘感)으로 느끼며 규호는 낯선 거실을 둘러본다. "참으로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구나!"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과 단정한 용모, 맑은 눈동자를 통해서도 그녀의 성격을 예상했었지만 그녀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보면서 규호는 지원의 고아하고 정결한 심성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었다. 노랑과 파랑, 하양과 초록의 밝은 색으로 이루어진 동화적 무늬의 커튼 사이로 주방을 빠져나온 지원이 티없는 순결의 미소를 환하게 지어 보이며 들고 온 커피 세트를 탁자에 얹어 놓는다. 그런 다음 지원이 규호의 맞은편 자리에 자신의 소파임을 확인하는 능숙한 자세로 작고 탱글탱글한 그녀의 엉덩이를 담구어 간다. "블랙으로 하실 거예요?" 지원이 소파에 앉기 위해 다리를 굽히자 선명한 윤곽으로 드러나는 힙의 섹시한 곡선에 무아의 시선을 주고 있던 규호는 맑은 음성을 감지한 고막의 감각적 진동으로 정신을 차려 순수한 미소의 주인공을 바라본다. "참! 내 정신 좀 봐! 규호 씨는 운동 때문에 커피를 안 드시죠?" 지원이 자신을 책망하는 가벼운 눈짓을 지으며 음료수를 가져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규호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부드럽게 타서 마시면 괜찮을 겁니다." "아녜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리고는 지원이 일어나 냉장고를 열더니 오렌지 쥬스를 컵에 채워 규호 앞 탁자에 놓는다. "잠깐만요..." 아직 할 일이 남은 듯 소파 맞은편으로 쫓아가서 벽에 붙어있는 오디오 세트의 전원을 켠다. 오디오 세트가 얹힌 가구장 오른편에 놓인 테이프 모음집에서 테이프를 하나 고른 지원이 오디오 세트에 테이프를 세팅하고는 플레이를 누른다. 두 사람의 영혼을 미지의 낙원으로 안내하듯 잔잔한 사랑의 밀어들이 스피커를 빠져나와 리듬의 곡선을 타고 온 거실을 사랑만이 가득 존재하는 음표의 꽃밭으로 가꾸어간다. 지원이 방문 옆, 벽에 달린 스위치를 조절하자 천정의 샹들리에 조명이 밝은 빛에서 연분홍 빛으로 바뀌고 사방의 벽에 걸린 갓등의 적등(赤燈)과 황등(黃燈)이 은은히 점등된다. 백열전구와 형광등의 백주 조명(白晝照明)이 거실의 어둠과 그림자를 집요하게 추궁하여 두 사람의 공간을 밝혀 두고 규호로 하여금 의례와 격식의 허울을 강요하던 조도의 변화는 두 사람에게 자연스런 이성을 인식시키고 원초적 성감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식간에 변화한 공간의 분위기에 아직은 적응을 못한 듯 지원의 눈빛만을 더듬으며 눈동자를 키워나가는 규호를 바라보며 지원은 자신의 유혹적 분위기 연출이 성공적이라는 환희를 가슴 속으로 은근히 감춰두고 예의 빛나는 자신의 눈동자에 서툰 선정적 유혹의 미소를 담아 규호의 분위기 적응을 재촉한다. 지원이 맞은 편 소파에 앉을 때까지 등색(燈色)의 어울림과 조화로 혼색(混色)의 엷은 스카프를 얼굴에 두른 신비의 여인에 몰입한 듯 넋을 잃고 있던 규호는 자신의 바로 앞으로 뚜렷한 이목구비를 드러내어 정체를 밝히면서 하얀 이의 상큼한 미소를 던져주는 지원의 수정같은 광채를 시리도록 받아들이며 서서히 인간의 완성을 위한 분위기의 한가운데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분위기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좋군요. 여느 레스토랑이나 카페보다도 훨씬 훌륭해요. 지원 씨의 감각이 상당하시군요?" "어머! 그 정도예요?" "그럼요. 여성의, 아니 지원 씨의 감각이 평범한 거실을 이토록 섬세한 공간으로 연출하시는 예술적 경지의 수준에 있음을 그저 경탄할 따름입니다." 규호의 지나친 공치사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 지원이 비스듬히 얼굴을 돌려 수줍은 곁눈질을 살짝 주면서 규호를 흘겨본다. 탁자의 가로막음이 없이 마주 붙어 있다면 두 손을 뽀듯이 모아 쥐고 마치 규호의 가슴을 방망이질 치듯 두드릴 것 같은 표정을 역력히 내비치며 지원이 애정의 눈길을 쏘아 보낸다. 규호도 그녀의 눈길을 거부없이 흔쾌히 받아들이며 언뜻 지원을 갈구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그녀를 향한 갈증의 해소를 위해 자신의 앞에 놓인 쥬스를 벌컥 들이 마신다. 수정같이 맑은 눈의 호수로부터 솟아오르는 지원의 간절한 바램을 의식하는 규호도 그녀의 온몸으로 그의 눈길을 던져 뿌린다. 어느 한 곳 부족함이나 못난 곳 없이 완벽한 미를 갖춘 여인의 몸매를 더 이상 형용하는 것도 이제는 실례로 느끼며 규호는 그녀의 윤기나는 긴 머리로부터 하얀 속살과도 같이 뽀오얀 지원의 맑은 얼굴과 그 한 부분씩을 자연의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균형미를 이루어 특유의 개성적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프라이드 강한 각각의 기관들을 샅샅이 탐색하여 아래로 내려간다. 이윽고 사내의 애틋하도록 새카만 동공이 가련한 여인의 붉은 입술을 지나 완성된 여성의 얼굴 끝, 살오른 숫처녀의 뽀송한 탄력의 음부와도 같은 곡선의 턱과, 길고 가늣한 두루미의 새하얀 목덜미에 머물면서 흔들리는 성(性)의 목마른 본능으로 큰 침을 "꿀꺽" 삼킨다. 적당한 볼륨의 아름다움으로 규호의 뇌리에 각인된 지원의 가슴이 색색의 조명을 받아 명암의 굴곡을 선명히 드러내면서 너무나 오똑하고 탱탱한 미정복의 처녀림과 같이 가파를 듯 완만한 구릉의 모습으로 앙징한 자존심을 가득 담아 사내를 노려보고 있다. 다시 한번 쥬스 잔을 든 규호는 남은 물기를 남김없이 들이키며 목줄기의 메마름을 적셔 준다. 잔잔하고 포근하게 깊은 사랑을 속삭여 완전한 인간으로 이끌어 가던 그윽한 분위기의 조정자는 연인의 사랑을 절정의 경지로 몰입시키고자 한층 더 옥타브를 올려 사내의 청각기관을 타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진솔한 사랑의 동력이 작동하도록 그 전원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연인의 사랑 만들기에 아낌없는 정열의 협조를 다하는 음표의 곡선과 명암의 분위기에 힘 입은 여인 또한 사내를 향하여 수정의 눈빛으로 순결의 구애를 추구하는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규호는 거실의 로맨틱하고 러블리한 무드와 어울린 지원의 섹시한 몸매를 느끼며 그녀의 청초하고 맑은 수정의 푸른 호수에 빠진 듯 차가운 감동의 성감을 자극 받는다. 두 사람의 결합을 촉구하는 인공의 자연스런 성적 공간에 완전한 동화의 본능을 좇아 자리에서 일어난 규호가 지원에게로 다가간다. 규호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도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를 향하여 수정(水晶)과 성화(性火)의 레이저를 교환하며 서로에 대한 집착의 강도를 이심전심으로 전달한다. 여인 앞에 다다른 사내가 그의 손을 내밀어 상대의 손을 요구한다. 움켜 쥔 주먹 안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온기가 손바닥을 빠져나와 얇은 연기와 같이 희미하게 흩어지는 듯 느껴진다. 지원이 규호에게 지긋한 믿음의 눈길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조명 속에서도 뽀오얀 광택의 은빛을 발산하는 새하얗게 고운 손결을 남자에게 얹어 맡긴다. 규호는 자신이 내민 손에 은근히 힘을 실어 그녀를 일으키고 지원 또한 거부의 미진(微塵)도 없이 자연스런 남녀의 모습으로, 텔레파시의 교감으로 힘의 전달을 주고받는다. 소파를 벗어나 거실의 중앙에 자리한 두 사람은 역할을 찾아 애태우던 규호의 나머지 손을 지원의 가슴 반대편 젖마개의 이음끈에 살며시 얹어 눌러 한 쌍의 커플을 이룬다. 두 사람의 사랑이 고저의 포물선을 그리는 음표의 파도 속으로 푹 빠져 든다. 한편 애잔하게 다른 한편 온유하게, 섬세한 터치의 묘사로 주인공의 심금을 울리는 오디오의 리듬과 이성적 신체 접촉을 허용하는 블루스의 문화는 두 사람의 어색함과 수치심의 허울을 벗겨내어 자연스런 연인의 관계로 이끄는데 큰 몫을 한다. 음악과 공간의 분위기에 맞추어 가는 두 사람의 영혼은 하나의 완전한 인격을 지향하여 자연스레 한 몸으로 어우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