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오전 11시쯤 출발한 비행기가 줄기차게 날아 마침내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약 8시간 늦기 때문에 오히려 날짜가 바뀌지 않은채 오후 3시였다.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시각은 몇 시간 바꾸지 않았다. 일정표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와서 보니 날짜 변경선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워낙 긴 비행이라 기내식도 두 번이나 주었다. 일본식 음식은 우리 것과 비슷했고 맛이 있었다. 마침내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히드로 공항에서 각국으로 가는 터미널로 향했고 공항 버스로 나는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터미널로 갔다. 영국은 운전사가 차 오른쪽에서 운전했고 차는 왼쪽으로 다녔다. 우리 시스템과 다르다. 특이하다. 그렇게 타로 터미널을 옮겨 이탈리아 피우미치오 일명 에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브리티쉬 에어웨이을 기다렸다. 시간이 좀 있어서 피자를 사 먹었다. 파운드로 나머지 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리고 30분간 인터넷이 무료로 주어져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인터넷 카페와 카톡으로 전송했다.
마침내 로마행 비행기를 탔고 피우미치오 공항에 도착했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미박집이 있는 테르미니 역까지 어떻게 갈 지 막막했다. 글자도 모두 일탈리아 말로 적혀 있어서 도무지 읽을수가 없었다. 지금은 읽을 수 있는 출구라는 단어 uscita가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단 순해 보이는 어떤 처녀에게 물어보았다. 다소 경계하는 표정이었지만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해서 무작정 따라갔다. 공항 대합실로 나가는 구내 기차를 먼저 타고 마침내 테르미니로 가는 공항 express train 티켓을 끊어 몸을 실었다. 아무런 안내방송이 없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같이 탔던 이탈리아 사람에게 물어 겨우 테르미니 역에 내렸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인텨넷에 그려둔 약도를 따라 몇 번이고 가보았지만 그 민박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여섯 번은 그런식으로 찾아 헤메였다. 연락할 길은 길은 없고. 호텔 프론트에 들어가 그곳의 위치를 물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via Apocellia를 호텔직원이 인터넷으로 찾아주고 지도도 무료로 한 장 주었다. 그것을 들고 찾아 가니 지금까지 갔던 길 보다 한 블록을 더 가는 위치였다. 밤 12시가 넘었다. 이렇게 로마에 안착할 수 있었다. 반드시 그곳에 그 장소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시간은 비록 더 느려졌지만 찻을 수 있었다. 그래 믿음이란 중요한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첫째날
다음 날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었다. 한국식 아침이었다. 도미토리에 한국 학생들이 유럽으로 여행을 많이 와 있었고 이들 중 한 명을 만나 9시쯤 그곳에서 시작헤서 걸어서 그 유명한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이것이 나의 로마 여행 시작점이었다. 정말 그토록 보고 싶었던 건물이 아니던가. 주변의 개선문 그리고 포로 로마노와 함께 볼 수 볼 수 있는 입장권을 끊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와 관광을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어디와 마찬가지로 유치원 생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알까마는 아주 어린 나이에 저런 놀랍고 웅장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나머지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5대 황제 베스파시우스 황제에 의해 지어진 대형 원형 경기장이다. 그는 로마의 장군답게 그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네로가 지었다고 하는 그곳의 황금궁전을 제거하고 그 곳에 시민을 위한 경기장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 유명한 다시 말해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시킨 티투스 장군의 아버지이다. 그들은 모두 아시아 쪽을 담당한 군 사령관들이었다.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 그 돌들과 건축물 하나나나를 보았을 때 그 규모와 크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큰 것이 또 그렇게 오래동안 버티고 서 있는지 정말 놀랍기만 했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와서 사진을 찍었다. 정말 아름답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냥 하나의 아름다운 경관이다. 주변과 잘 어울리는 그런 자연처럼 보였다. 로마가 나중에 기독교 국가가 된 후 이곳은 성지가 되었고 성당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한 참이나 나는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계속 콜로세움 내부를 돌아다녔고 또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바로 옆에 있는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이 건축물 역시 웅장하고 대단하다. 가까이에서는 올려다 보아야 볼 수 있고 멀리서 만이 그 모양을 감상할 수 있다. 역시 수리중이다. 콜로세움이 AD 79년에 세워졌고 이 개선문은 AD313년 쯤에 세워졌을 것이다. 시간적 차이가 있다. 이미 역대 로마의 황제들이 그 곳 주변에 건축물을 많이 세운 후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위치한 포로 로마노 유적에 갔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중으로 된 유적들이 포로 로마노 광광을 가득 메우고 있어 무엇이 무엇인지 다 알아 보기 어려웠다. 정말 로마는 고대 유적으로 가득 차 있다. 신저의 유적들, 주거 유적들, 그리고 기념비들, 개선문들, 너무나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중에 감비돌기아 광광이 있는 키피톨리아 언덕에서도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정말 해질녁의 이 유적들은 환상적이었다. 거의 점심 때가 지났다.
이번에는 진실의 입이 있는 Cosmetin 대성당을 혼자 찾아 가는 일이다. 지도를 보고 한 참 걸어 갔지만 반대방향에 가고 말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곳은 지오반니 대성당이 있는 곳이었다. 할 수 없이 그 곳의 한 식당에 들어가 피자를 시켜 먹고 길을 물어 보니 한 청년이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해서 버스표를 하나 사서 차를 타고 비토리오 이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곳에 왔다. 대단한 크기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랐다. 그 주변에는 그 유명한 황제인 트라야누스 황제를 기념하는 기둥이 이마누엘레 기념관 맞은편 저 지대에 다른 유적들고 함께 높이 솟아 있었다. 많은 관관객들이 이 곳과 그 광장을 찾아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한 젊은 커플은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기념물 한 쪽에서 열렬히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왜 그렇게 남녀를 불문하고 거리에서나 어디에서나 담배를 많이 피워대는지 참 알 수 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 지도를 보니 개선문을 지나 대전차경기장이 있고 다시 쭉 걸어가면 그 유명한 진실의 입이 있는 성당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지도를 볼 수 있었고 로마의 방향감각이 생기게 되었다. 몇 시간 만인가? 대전차 경기장 위쪽 길을 걸어가면서 대전차 경기장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주민들이 개를 데리고 다니며 사책하거나 조깅을 하면서 그 옛날 벤허에 나온 전차경기가 있었던 대전차경기장을 여유있게 걸어가면서 볼 수 있었다. 그 너머엔 오전에 돌아다녔던 팔라티노 언덕이 오후의 겨울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팔리티노 언덕과 그 위에 솟아 있는 건축물을 보는 것은 정말 한 폭의 고대 풍광을 현장에서 즐기는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언덕 위 벤치에서 한 참이나 그것을 즐길 수 잇었고 지난가는 관관객 중 한면에게 사진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하니 미소로 즐거운 마음으로 응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주욱
콜로세움을 시작으로 로마 여행을 시작한다. 테르미니에서 걸어서 가서 도착하여 콜로세움에서 내부에 들어가서 관람, 후에 바로 옆의 콘스탄티누스개선문, 팔라티노 언덕과 주변의 포로 노마노 어뭘 큰 지역을 구경하였다.
다음으로는 대전차경기장, 지나서 진실의 입이 이쓰는 마리라 코스메틴 성당 그리고 카피톨리노 언덕과 캄피돌기오 광장 및 거기서 보는 포로 오마노의 광경, 그 다음 이탈리아의 초대 대통령 비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 기념관, 이어진 곳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간 테베레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