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LG, 마케팅 대신 해드립니다(@LGinsteadofMKT)’라는 트위터 계정이 개설됐다. 20일 남짓한 시간 사이에 2400명에 육박하는 팔로어가 생긴 인기 계정이다. 페이스북에는 ‘엘지야, 힘내’라는 이름으로 페이지도 개설됐다. LG 관계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단지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LG 대신 홍보해주기’ 놀이에 동참한 사람들일 뿐이다.
시초는 지난해 여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으로 두 다리를 다친 장병들에게 LG가 각각 5억원씩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갑자기 왜 LG가?”라는 네티즌의 질문에, 누군가가 “원래 LG는 좋은 일 많이 했음”이라고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LG의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내용은 이렇다.
“LG 창업주 구인회는 1942년 백산 안희제 선생을 통해 당시 금액 1만원을 독립자금으로 희사하였으며, 이 사실은 1943년 순국한 백산 선생 유가족을 백범 김구 선생이 만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이야기이다.” 여기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LG가 국내외 독립운동 유적지킴이 후원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알고 보니 좋은 회사였다”는 인식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LG는 ‘만년 2등 기업’ 이미지가 강했다. 제품의 질이 삼성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데도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고 그만큼 가격도 싸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알려지지 않았을 뿐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 만한 제품과 제품 구성 요소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네티즌들이 몇몇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LG의 초경량 노트북 ‘그램’이다. 네티즌 중 누군가가 실중량을 측정해봤더니 980g이라던 노트북 무게가 963g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왜 더 무겁게 광고를 하느냐”는 네티즌들의 의문이 잇따랐다. 영상기기 전문가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이 다음 타자로 나섰다. LG가 출시한 모니터 IPS237L-BN에는 수백만원대 제품에 들어가는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기능’이라는 것인데 일반 모니터보다 더 섬세하고 전문적으로 색을 보정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 모니터 가격은 20만원대에 불과하다.
전자기기 매니아도 많고, 정보에도 밝은 네티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자기기 기능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요즘에는 기능이 하나 추가돼도 새로운 버전의 기기가 출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알려도 되는 기능들이 ‘묻힌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LG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네티즌들의 놀잇거리가 됐다. 2012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급습한 토네이도에 집은 날아갔는데, LG 냉장고만 멀쩡히 남아 있던 사건을 발굴해낸 것이다. ‘LG, 마케팅 대신 해드립니다’ 트위터 계정에는 “이젠 하다 못해 토네이도가 나서서 홍보해 줌”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아파트 9층에서 이불을 털다가 LG의 최신폰 V10을 떨어트린 국내 소비자의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아파트 9층 높이에서 그대로 떨어진 스마트폰이 액정 하나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V10은 미국 국방부의 MIL-STV 810 등급을 획득한 제품이다. 이론적으로는 122㎝ 높이에서 콘크리트 위에 26번 떨어트려도 기기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V10에 탑재된 음향 포맷 DSD는 최고급 음향 재생기에서나 지원하는 포맷이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음향 회사 AKG와 합작해 만든 이어폰을 제공한다. 제품 색상 중 ‘로즈골드’에는 20k 도금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몰랐던 LG 이야기 시리즈는 더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복지시설에 기부 좀 하려고 알아보는데 그쪽 실무자가 ‘기왕이면 엘지 제품으로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궁금해서 왜냐고 물어보니 엘지는 복지시설 제품은 무제한 무료 AS서비스 해준대요.” 이 글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SNS에도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글 아래에는 “왜 이런 좋은 일을 홍보하지 않느냐”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급기야 언론에서도 나섰다. 한 신문은 “LG전자에 ‘잘 만든 물건 왜 마케팅은 안 하나’ 물었더니”라는 제목을 붙여 기사를 싣기도 했다. 주간조선도 LG전자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좋은 기능을 모두 홍보할 수는 없다” “초경량 노트북은 오차를 감안해 무게를 더 늘렸다” “제품을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존에 나온 대답과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특히 부상 장병이나 복지시설에 대한 지원 같은 그룹 차원의 선행에 대해서는 “원래 좋은 일은 알리지 않고 하는 것인데 알아줘서 고맙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이런 유행이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실제 판매량과의 관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가에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증권 업계는 잇따라 LG전자의 목표 주가를 상향시켰고 투자 의견을 ‘매수’로 올렸다. LG전자뿐 아니라 여러 전자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전자기기 판매 매장에서도 “LG전자의 제품을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는 젊은 소비자가 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유행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을 밝혔다.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LG가 그동안 홍보를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네티즌 용어대로 ‘묻혀서’ 몰랐던 것뿐입니다. 이번 유행은 앞으로 기업들이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는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