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알라딘·시사인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일독할 것을 권유하였던 도서 ‘한국 경제의 미필적 고의’의 저자 정대영씨가 새로운 책을 출간하였다.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가 그것이다.
‘한국 경제의 미필적 고의’는 ‘성장잠재력 강화’ ‘일자리 창출’ ‘금융산업 발전’ ‘금융위기 방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화두로 해서 잘못된 경제이론과 정책을 비판한데 반하여, 금번에 출간한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는 특별히 ‘금융’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점의 방향도 약간 바뀌어서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고도 생각하지 못한 금융의 구석구석’을 ‘바로 보기’하는데로 향해 있다. 그래서 부제가 ‘정대영의 금융 바로 보기’이다.
‘바로 보기’, 1978년부터 30년 이상 한국은행에 근무하며 통화금융정책, 경제동향분석, 금융안정 등의 여러 분야를 담당했던 금융실무전문가의 입장에서 보기에 보통 사람들이 금융의 나쁜 면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진 듯하다. 저자는 두 가지 예를 들었다.
금융은 농업이나 제조업에 기생해 이러한 산업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를 빼앗아가는 산업이며, 금융산업이 발전하면 오히려 실물 부문이 위축되고 더 쉽게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따라서 금융은 가능한 한 많은 규제와 감독을 통해 잘 돌아가지 않게 해야 국민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
세계 금융의 움직임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 유태계 등의 세계 금융재벌이 엄청난 돈과 정보를 이용해 국제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이나 국제결제은행까지 뒤에서 마음대로 조정--한국 등 많은 나라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고 이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생각.
저자는 금융에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계층(경제적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과 비자본가계층(경제적으로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간의 가장 큰 차이는 자본력이다.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저축을 통해 비자본가계층이 자본가계층으로 이동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저축여력이 충분한 극히 일부 계층만 가능하다. 그러나 금융이 제 기능을 한다면 돈 없는 사람도 기술과 아이디어만 좋다면 성공해서 자본가가 될 기회가 많아진다. 특히 담보나 과거실적이 아니라 사업성을 기준으로 대출이 이루어진다면 돈 없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렇게 되면 금융은 자본주의의 모순, 즉 자본가와 비자본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는 것)
저자는 좋은 금융을 만들어내서 국민경제를 발전시킨 여러 나라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특히 독일을 강조한다. 전세계를 덮친 뉴욕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나홀로 ‘튼튼’을 자랑해서 다시보기 현상을 일으킨 독일경제의 바탕에 ‘좋은 금융’이 있다는 것이다.(세번째이야기 3. 및 4.) 여러 가지 정책적, 제도적 개혁을 시행하면 한국의 금융산업도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좋은 산업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려면 많은 시민이 금융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경제학이나 경제 이론을 모르는 사람도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다듬고 노력한 땀냄새로 가득하다. 돈이란 무엇인가?,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투자에도 나쁜 것이 있고, 투기에도 좋은 것이 있다. 은행업의 역사와 좋은 은행의 사례들, 국제금융시장의 올바른 이해, 금융위기의 발생원인과 대응, 예금/대출/신용카드/채권/주식/펀드/보험 등 생활 속 금융현상의 이해-이토록 넓은 주제에 관하여 저자는 쉬운 설명과 함께 이전까지 보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옆면’을 제시한다. 동전에 앞뒷면 이외에도 옆면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면서 무릎을 치게 한다.
가끔 주변을 보면 자기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서 자신은 투기에 젬병이고 돈복이 없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돈도 잃고 시장의 진폭을 키워 국민경제에 피해도 주는 것이다.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이후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 하우스푸어다. 하우스푸어는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소비위축에 따른 경기 둔화와 금융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개인의 잘못된 투자나 투기가 국민경제에 커다란 짐이 되는 셈이다.(61쪽)
독일은 주택보급율이 100%가 넘으면서도 자가보유비율은 43%로 우리나라의 62%보다 크게 낮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에 큰 어려움을 겪은 나라들은 자가보유비율이 높은 스페인(86%), 아일랜드(75%), 영국(74%), 미국(67%)등이다. 자가보유비율이 높을수록 주택의 거품 발생 가능성도 크다.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진다고 국민경제가 안정되고 개인의 복지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집값과 집세가 안정되어야야 국민 경제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국민생활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71쪽)
저자가 제시하는 옆면들의 사례인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모든 가구마다 1주택을 보유하게 되어야 좋은 사회라고 보는 기존의 통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주택마련저축제도에 1,500만 이상의 가구가 가입한 현상, 저소득 월세입자에 대한 낮은 지원과 보호의 문제점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치게 한다.
우리 공동체가 보다 낳은 사회로 발전하기를 열망하는 많은 분들이 선진 여러 제국의 현실과 제도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도서가 많다. 유러피안드림이 소개되기도 하고, 복지국가혁명이 주장되고도 있다. 소개되는 여러나라들은 물질적 삶의 수준과 자유와 정의의 민주적 가치 실현이 우리나라에 앞서는 한편으로 튼튼하고 안정된 금융을 가진 점에서도 공통된다. 선진의 전통적 모델이었던 영미뿐만 아니라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독일/덴마크/스위스/북구3국 모두 그 금융이 안정되고 튼튼하다. 금융이 발전된 공동체가 앞서 나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13-4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피렌체,베네치아는 당시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16-7세기 네델란드가 그러했고, 이후의 영미는 말할 나위없다. 이점에서 금융 발전의 뒷받침이 없이 우리 공동체가 보다 좋은 사회로 뛰어오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일지 모른다.
어떻게 금융발전을 이룰까? 필요조건으로써 금융에 대한 ‘바로알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우리사회는 어느 한면만으로 전체를 내세우며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 동전의 앞면만을 말하거나 뒷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동전에는 옆면도 있으며, 옆면을 놓치고서는 동전의 실체를 옳바로 인식했다고 할 수 없다. 저자의 노고에 힘입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옆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 공동체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함께 공유하기를 소망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