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했다. 한겨울에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라니. 거품에는 살얼음까지 꼈다.
동네호프집 맥주가 아니다. 유명맥주회사의 체인점에서 나온 맥주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27일자 <조선일보>에 맥주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런던타임스>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앤디 새먼씨는 맥주 애호가이다. 그는 한국 맥주에 대해서 맛이 없다고 혹평을 가했다. 평소 맛객의 생각과 일치하기도 해 왜 맛없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일본 맛기행에 있어 묘미중 하나는 생맥주이다. 어딜 가든 맛좋은 생맥주가 나온다
앤디 새먼씨에 따르면 좋은 맥주는 깨끗하면서 맛이 진해야 한다. 또 신맛, 단맛, 쓴맛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병맥주는 무미하면서 밋밋하다고 평했다. 더군다나 10년 전에 비해 더욱 맛이 없어졌다고도 한다. 하이트 출시 이후 국내 음용자들이 순하고 덜 쓴 맥주맛을 선호하게 되어 대중의 맛에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쏘는 맛과 시원한 맛이 전부이다시피 한 한국 병맥주. 우리는 그것들을 맥주의 맛으로 착각하며 마시고 있는 것이다. 상태가 그러니 맥주의 풍미는 언감생심이다.
맥주 광고. 회사도 다르고 광고모델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 번에 들이키는 모습, 이른바 원 샷 장면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갈증해소가 될 것만 같다. 또 마시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지만, 실제 그렇게 단번에 마시지 않으면 별 맛이 안 나는 게 한국의 맥주다.
외국의 맥주와 한국의 맥주를 잔에 따라 10여분 후 마시면 맛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맥주 맛에 별 변화가 없는 외국맥주와 달리 한국맥주는 맹물이나 다름없다. 김빠진 맥주가 그것이다. 음미! 아직 한국맥주와는 상관없는 얘기이다.
좋은 맥주는 신맛, 단맛, 쓴맛의 조화
생맥주와 노가리. 매콤한 양념장에 찍어먹는 노가리는 술을 부른다
생맥주는 병맥주보다 신선하고 맛있다. 허나 불행하게도 한국은 예외이다. 관리부족이 생맥주를 천하게 만들었다. 앤디 새먼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맥주통과 호스를 자주 청소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서울 1개 구(區)당 한 맥주회사에서 고용한 관리인력이 1명뿐이라는 데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대형업소만 관리하기에도 부족한 인력이 동네 호프집까지 신경을 쓸까 의문이다.
생맥주에서 쉰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맥주통을 개봉해서 당일 소비가 되지 않았을 거란 짐작이다. 재고맥주 아니냐? 물으면 주인은 당일 개봉한 거라고 말한다. 그동안은 주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주인은 솔직했던 것이다.
문제는 앤디 새먼씨 말대로 맥주통과 호스가 관리가 되지 않은데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재고맥주를 파는 업소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고맥주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2만cc 맥주통도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가 생맥주를 주문하면서 쉰 맛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철저한 관리로 생맥주맛을 인정받고 있는 OB호프 을지로입구점. 직영점이다.
을지로 입구 전철역에서 바로 통하는 지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오비호프에서 비어할레(bierhalle)라는 새 이름을 달고 이전했다.
비어할레는 을지로입구역 1번출구 뒷골목에 있다.
그동안 맥주에 유통기한은 없었다. 최근 논란이 일자 음용권장기한은 12개월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1년이 지나도 맥주는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맛도 그대로일까? 일본의 경우 시판 뒤 3개월 된 맥주는 회사에서 무료로 새 맥주로 교환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맥주회사들은 몇 개월이 지나야 교환해주는 지 묻고 싶다. 아니, 교환이나 해주긴 하는 건지.
앤디 새먼씨는 그나마 맥스(Max)가 가장 낫다고 한다. 맥스(Max)는 국내맥주 중 유일한 100프로 보리맥주이다. 헌데 일본의 100프로 보리맥주에 비해 쌉쌀한 맛과 풍부한 맛이 덜하다. 혹, 곡물함량에서 차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쓴맛의 척도를 BU(Bitterness Unit)으로 정한다. 유럽과 일본의 맥주가 BU18 이상인데 비해, 국내 선호맥주들의 경우 BU11~12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쓴맛을 조절하는 것은 공법상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호프(맥주에서 쓴맛을 내기 위해 넣는 열매)의 양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홉의 차이로 인해 깊은 맛에서 차이가 나는 것 아닌가 싶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맛객 블로그에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쌉쌀하며 깊고 풍부한 맛의 수용층이 적다보니 시장성을 좇아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맥주 특유의 쌉쌀하며 깊고 풍부한 맛의 맥주를 찾는이가 많아져야 BU18등급 정도의 맥주가 나온다는 얘기이다. 어서 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만약 맥스(Max) 프리미엄이 시판된다면 아쉬운대로 BU 15등급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맛있는 맥주를 위해서는 탄산을 줄이고 맛과 향을 높혀야 한다. 아울러 관리인력을 늘려 철저한 품질관리도 부탁한다. 술도 음식이다. 풍미 가득한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
(2007.12.30 맛객& 맛있는 인생)
...경험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