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는 왜 모차르트를 좋아 할까?
여성과학자 도로시 레털랙 실험에 의하면 모차르트, 바흐, 하이든 등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란 호박덩굴은 녹음기 쪽으로 뻗고 서로 감싸기도 하는데 록음악을 틀어주자 덩굴이 벽을 넘어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는 고전음악이 식물에게 기쁨을 주고 바이오 에너지를 촉진시켜 주는 반면 록음악 같이 시끄러운 음악은 식물의 정서에 분열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식물은 귀가 없는데 어떻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물을지 모르겠다. 농촌진흥청 이완주 박사에 의하면 “식물은 귀가 없지만 음파가 세포벽에 물리적 자극을 주면 자극이 세포막에 전달돼 내부의 세포질이 떨면서 식물 자체에 흐르는 10-50mv의 전압에 변화를 보이는 과정을 통해 반응한다.”고 한다.
시간대 별로 음악이 나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고, 음악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좋은 음악은 나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시끄러운 음악은 나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나 식물연구자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나는 1998년부터 포도나무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다. 같은 클래식 음악이라도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나무 가지가 삐뚤빼뚤 자란다든지, 잎이 까슬까슬해진다.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면 식물은 온순하게 잘 자란다. 포도밭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좋은 음악은 나무에게 약이 되지만 시끄럽고 소음이 많은 음악은 나무에게도 공해인 것이다.
포도나무 전정이 시작되는 2월 중순부터 나는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이른 아침에는 시사성 대담을 들려준다. 나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지만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어떤 사건이 나무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다. 아침 9시부터는 클래식으로 바꿔준다.
이렇듯 나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이 있어 좋아 하는 음악이 들리면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거름의 흡수가 촉진돼 양분을 만들어 주는 엽록소가 많아진다. 이런 식물의 유효한 원리를 얻기까지는 상당한 경험이 필요하였다.
5월 15일이 되자 나무는 잎이 일곱, 마디가 일곱이다. 칠의 숫자는 우리 밭에서도 희망을 주는가보다. 봄 가뭄으로 애타던 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니….
나는 거친 나무가 부드러워지라고, 버팀목에 스피커를 걸어 놓았다. 마침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1번 C장조가 흐른다. 흐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초록 밭, 어디선가 나타난 모차르트가 양처럼 포도 잎을 뜯고 있다. 잎이 움찔하다가 바람이 부니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그 위에 햇빛이 내려앉는다. 내 눈빛도 내려앉는다. 너무 무거워서일까. 잎사귀가 아래로 쳐지는 게 분명 지구의 중심이 기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던 나무의 몸집이 제법 커졌다.
포도밭도 제법 커졌다. 밭에는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내 귀도 자란다. 귀가 자란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으나 봄에는 밭쪽으로 자주 귀를 기울이니, 기울일 때마다 내 마음의 귀가 자란다는 뜻이다.
나무도 이제 새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입었던 낡은 옷, 껍질을 열심히 밀어내고 있다. 희고 부드러운 나무의 속살이 묵은 살(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벗긴다는 것은 힘이 필요하다. 나무는 때가 되면 제 스스로 훌훌 옷을 벗는다. 오늘에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종일 자연의 섭리에 나는 감탄하고 있다.
가지를 뚝 꺾어서 껍질을 벗긴다. 꺾은 가지를 입으로 씹어보니 상큼하다. 비 온 후 맑아진 창공의 공기처럼 상큼한 맛이다. 모차르트가 있는 오늘 깨달았다. 꺾은 가지의 수액을 맛본 내 몸에 포도 잎이 일곱 개가 달린 가지가 돋아나는 듯한 환각이 잠시 스쳐간다.
바흐를 좋아했던 나는 요즘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나무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모차르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모차르트 음악은 달콤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찬양, 낭만을 담고 있다. 바흐 이전의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성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음악이 슬펐다. 베토벤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의 음악이 장엄하고 웅장하여 뿌듯함도 있으나, 정신분열증 같은 것이 올 수 있어 나무에게는 치명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고른 것이다. 모차르트는 사람이나 나무를 어린 양처럼 양순하게 하여 준다. ‘피가로의 결혼’ 같은 오페라는 얼마나 경쾌하고 아름다운가.
포도 꽃이 필 때가 되면 농부들 사이에 규칙이 있다. 꽃을 건드리면 안 되고, 비와 바람이 불어서도 안 되고, 기온이 낮아서도 안 되고 높아서도 안 되고, 꽃이 피는 기간 동안 농부는 자기 밭에 들어가면 안 된다. 꽃이 피는 시기는 나무에게 있어 가장 신성하고 순결한 의식을 행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법칙을 나무에게 적용하면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때 우울한 샹송이나 시끄러운 헤비메탈을 틀어 주었는데 그 당시 꽃술이 잘 벌어지지 않고 불순한 냄새까지 풍겼다. 왠지 밭의 공기가 끈적끈적하고 꽃이 윤기도 없어 보였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포도나무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유난히 먹물처럼 검고 향기가 짙은 류기봉 포도밭의 포도. 이제 나무와 나는 서로 마주보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
사람은 음악을 만들었지만 음악은 나무를, 바람을, 공기를, 햇빛을, 하늘을 온순하게 바꿔준다. 내 무거운 마음도 온순하게 정제를 해 준다.
포도밭의 주치의, 모차르트는 나무나 나에게 몸살 앓을 틈을 주지 않는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