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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금속 임정환(67)사장
역경이 클수록 강해지지요. 지금과 같은 불황기가 바로 강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평생 나사만 만들고, 나사만 생각하며 살아온 임정환(67) 명화금속 사장에게는 ‘나사 공화국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강한 기업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회사가 어려운 이유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 깊이 생각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기업은 환경이 어려운 곳, 어려운 시기에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다른 기업들은 경기가 나쁘다며 울상을 짓지만 명화금속은 수출도 내수도 좋다. 9월 현재 내수는 1백29억원으로 목표치의 99%를 달성했고, 수출 역시 2백34억원으로 목표치의 94%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을 빼면 환경이 어렵거나 좋거나 관계없이 연 평균 15∼20%의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왔다. 그야말로 ‘강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오직 ‘나사’라는 한가지에만 몰두했습니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나사를 많이 만들까만 생각했지요. ‘집중력’, 그것이 강해질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인생역정을 들여다보면 임사장의 말에 전혀 과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가 공장 직공에서 ‘나사 공화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나사만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1936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남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6세가 돼서야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 이력을 가진 대부분의 젊은이가 그렇듯 그 역시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작은 공장의 말단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이 ‘첫 직장’이 나사와 관련된 기계 공장이었으니 이 정도 한우물을 판 사람도 흔치 않다. 그가 “나사 인생 50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단 공원에서 ‘나사 대통령’까지. 이 표현 하나가 그의 50년 인생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때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 첫 계단은 학교였다. 거칠고 고단한 공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무려 8년이란 긴 시간을 중·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졸업하는 데 바쳤다. 물론 야간이었다. 공장직원 1백명 가운데 야간 학교를 다닌 것은 물론 졸업한 학생은 임사장이 유일했다.
“잠을 덜 자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었어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이었으니까요. 새벽에 보리밥 한 덩어리를 물에 말아 먹고 공장에 가면 기계만이 날 반겼지요. 그때 기계가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장을 마치면 학교로, 그리고 집으로…. 세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말자고 맹세했지요.”
25세 때인 61년 그는 학교와 공원을 마치고 마침내 젊은 기업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범양금속을 설립해 자신만의 ‘나사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돈도 학력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하는 임사장은 “살길은 오직 나사를 잘 만드는 일뿐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가난을 물리칠 길은 멀어 보였다. “남이 만들지 못하는 나사를 만들겠다”는 일념은 좋았지만 빛을 보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한 그는 “좀팽이처럼 자질구레한 짓 좀 그만하라”는 아내 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73년 각종 전자제품 등에 나사를 박고 꼭지를 떼어내는 ‘블라인드 리벳’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나사왕’ 등극의 길로 올라섰다. 나사 일을 시작한 지 거의 20년,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뒤였다.
이 제품으로 그는 이후 10년 동안 리벳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후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아지자 연구 성과도 커졌고 숱한 신제품으로 시장을 섭렵했다.
‘뒤틀린 나사’… 세계 최고
임사장에게 ‘나사왕’ ‘나사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가 늘 나사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해 낸 나사 종류가 8백여종, 나사 관련 특허가 1백80종에 이른다.
언제나 메모지와 펜을 끼고 다니며 이미지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지로 옮긴다. 많은 경우 그 아이디어는 새로운 나사로 드러난다. 심지어 “꿈도 나사꿈만 꾼다”는 그다. 잠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제품화된 적도 여러 번이다.
‘직결나사’는 그 많은 나사 중에서도 임사장이 자랑하는 최고의 제품이다. 나사의 기능은 본래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볼트·너트형’이 1세대라면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밖는 ‘일체형’이 2세대, 드릴처럼 직접 물건을 파고 들어가는 ‘직결나사’가 3세대다. 직결나사 시장에 관한 한 그의 회사는 이미 세계 최고다.
“철판을 직접 뚫고 들어가 스스로 두 물체를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나사의 끝이 뒤틀려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이 ‘뒤틀림 나사’는 장인들이 거의 손으로 깎아 만드는 식이어서 만들기도 어려웠지만 만들어도 값이 여간 비싸지 않았지요. 이것을 명화금속이 자동화시켜 처음으로 기계로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게 있다. 나사를 잘 만들고 싶은 생각에 급기야 나사를 만드는 기계까지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공장을 들어가 보자. 무엇보다 1천평에 이르는 공장 부지에 4열 횡대로 늘어선 나사 기계에 기가 질린다. 하루 5천만개의 나사를 쏟아내는 기계들은 한 시대를 웅변하며 명화금속의 역사를 대변한다. 맨 안쪽 기계들은 8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테면 임사장이 만든 첫번째 ‘자식’들이다. 이들은 분당 평균 1백50개의 나사를 생산해 낸다. 90년대 만들어진 두번째 줄의 기계들은 분당 2백50개의 나사를 토해내고, 최근 만들어진 맨 앞쪽 기계들은 분당 4백개의 나사를 찍어낸다.
명화금속의 역사는 한마디로 ‘생산성 향상의 역사’와 같다. 임사장은 “향후 분당 7백개까지 생산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력,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까지 만들어내는 집념, 그 제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에는 생산성을 높여야겠다는 경영능력…. 명화금속은 임사장이 있는 한 그의 말대로 “어떤 불황도 이겨낼 수밖에 없는 강한 기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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