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雲海 김 상 진
戊戌 년의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 아침입니다.
한동안 매섭게 몰아치던 겨울 한파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쌀쌀한 날씨는 수도꼭지가 얼어붙었습니다. 물을 끓여서 녹이고 아내가 사 온 토종닭 두 마리를 솥에 넣고 삶고 있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선배가 올려놓은 워싱턴 포스터의 기사를 읽으며 Joshua Bell(조수아 벨)의 350만 달러짜리(한화 약 35억)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헝가리 무곡"과 '사계'를 듣고 있습니다.
빈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덕의 아궁이에 말라버린 고춧대로 불을 지피고, 전지 해서 말려 둔 감나무 둥거리에 불이 붙자 활활 불꽃이 일어납니다.
가마솥에서는 물이 펄펄 끓으며 김이 나고 연주는 이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흘러나옵니다.
아궁이 불 앞이라고 하지만 앞 건물의 그늘에 가려있는지라 발은 시려오고 춥지만, 솥에서 닭이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납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 역에서 청바지 차림의 젊은이가 낡은 바이올린으로 43분을 연주하는 동안 한 사람이 벽에 기대서 연주를 들었고, 6분 후에 7명이 약 일분 가량 서서 듣다 갔으며, 27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모인 돈은 17불 27센트였습니다.
이 연주자는 Joshua Bell이었으며 바이올린은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였습니다."
아궁이의 불은 더욱 활활 타고 있고, 솥에서는 솥뚜껑이 들썩거리며 김이 나고, 한층 더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겨울 날씨에 그늘 속인지라 몸은 춥고 글을 쓰는 손까지 시려옵니다.
위의 기사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 가치있는 것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에 쫓기듯이, 그 소중한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그리고 어느덧 한 해가 갑니다.
그리고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고, 잠시 후면 다가올 새해의 제야의 종이 울리면 올 새해에는
더욱더 좋은 일이 있고, 하는 일이 잘 풀리어지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와 염원의 마음이 아우러진 설렘으로 새해를 맞습니다.
다시 연주는 'Fantasy for violin and orchestra'가 흐릅니다.
귀에는 이어폰에 귀마개를 하고, 두꺼운 옷을 입고, 아궁이 불 앞에서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듣고,
솥에서 닭을 삼는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참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얼굴에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웃는 얼굴입니다.
약간은 자조 섞인 웃음일 수 있지만 몸은 추워도 가슴이 따뜻한 양이면 많은 부분이 행복한 웃음입니다.
저녁 밥상에서 아내 그리고 딸이 나와 합께 둘러앉아 백숙을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아버지, 나의 하느님!
35억 원짜리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라도 사소한 우리의 일상에서 항상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마음을 주시고 허벅지 굵기만 한 감나무 둥거리가 아궁이에서 불꽃으로 사라지면서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심에 한없이 감사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위의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진정 소중한 것임을 알게 하시고, 고양이를 보고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도 음악처럼 들을 수 있는 겸손을 주시옵소서.
계속해서 듣다 보니 조슈아 벨의 연주도 실컷 들었고, 그 훌륭한 연주도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궁이 불은 점점 사그라들고, 닭은 다 익었을 테고, 몸은 추우니 햇빛이 드는 양지쪽으로 가렵니다.
하느님의 빛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나도 이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렵니다.
내일 새해 첫날 새 아침, 딸과 함께 성암산에 올라가서 해돋이를 보겠습니다.
2018년 12월 31일 아침
namukun n dry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