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한 자식이.
저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쫓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
붙여보세나 동무들아
고대로 못 붙여 보내면
고이 싸서 동무들 편에 들려 보내야지
들고 가서 이렇게 못쓰게 되었으니
묻어버려야 쓰겠다고
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시를 감상하며...]
제가 거주하고 있는 "안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 많이 살고 있습니다.
Korean Dream을 꿈꾸며 소위 3D업종(Difficult, Dirty, Dangerous
:어렵고, 더렵고, 위험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되는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많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시 [손목]을 감상하며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 때 아들과 같이 입원해 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그 당시 30대 초반,
이름은 기억나지 않음)는 오른손 집게 손가락 두 마디가 잘려 나가고
손목 인대를 다쳐 오른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습니다.
손짓, 발짓, 영어 단어와 우리말을 섞어 쓰며 저와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가 반복해서 말하는 어눌한 한국말은 "사장님, 참 나빠요" 였습니다.
오래전 일인데 미국에서 "반이민법(소위 '센센브레너 법안')" 반대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한인단체 간부 한 분이 우리나라 모 라디오 프로에서 전화인터뷰를 마치면서
간곡히 부탁했던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이
아직도 저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1980년대 우리의 노동현장을 시로써 고발한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
(시집 [노동의 새벽]-해냄출판사)이란 시가 생각났으며,
더불어 장갑을 잃고 어머니 한테 맞고 쫒겨 났다는 1연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 고무신을 잃고 쫒겨났던 일을 생각하며 2001년 4월에 썼던
저의 졸작 "검정고무신"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감상글 : 양해선)
[작가 소개]
윤제림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19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 외 9편이 당선.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1988), <미미의 집>(1990), <황천반점>(1994) 사랑을 놓치다 등
21세기 전망 동인
2003년~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