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 백운산 19연대 6중대 전우 수련회를 다녀와서 --------
이동근
전남 광양이라. 그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서 25년을 전후하여 수사불패(雖死不敗), 청성투혼(靑星鬪魂)으로 멋진 군 생활을 했던 독수리부대 6중대 전우들이 십여 명이 다시 뭉쳤습니다.
금년 5월에 대전에서 1차 모임을 가진 바가 있었고 이번이 2차 모임에 이어 연말에 3차 모임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수년 전부터 6중대 1소대에서 군 생활을 했던 오동현 전우와 그 당시 소대를 이끌었던 송범영 소대장이 초석이 되어 수 년 전부터 몇 명이 만나기 시작하여 금년 들어 명실공히 전국모임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소대만이 아닌 3소대였던 필자가 동참을 했고 다른 소대원들이 일부 소재파악이 되어 중대모임 형식에 초기의 전남/부산 모임 위주가 아닌 전국 각지에서 전우들이 이번에 참석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청성전우회 발전에 한 획을 긋는 뜻 깊은 만남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아 이번에 전국 각지에서 모였던 전우들의 이름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봅니다.

(좌측 뒷즐부터 오동현, 이상웅. 송범영 소대장, 곽상봉, 노영규, 조후남. 이일영. 김옥근. 김영철.
좌측 앞줄부터 정현구, 이동근 오후 6시 현재)

(맨 우측이 멀리 동두천에서 달려온 소재현 전우)
- 소대장 : 송범영(학군81, 여수 체육교사)
- 총 무 : 오동현(82,전남 곡성교육청/중학교 행정실장)
- 전우들 : 송찬섭(82, 순천의료노조지부장), 김영철(82, 순천시청 근무)
정현구(82, 광양.회사원), 소재현(81,동두천 회사원)
노영규(81. 수원 병무청 사무관) 이일영(81, 대구 회사원)
이상웅(83.현대자동차, 울산), 김옥근(81. 부산 자영업).
곽상봉(81, 부산 ,자영업) 조후남(81, 부산, 회사원)
이동근(서울/자영업, 소설가)
- 특별 참석 윤재구 광주지부장(7연대)과 그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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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 송범영 소대장 사모와 아들, 송찬섭 전우 안식구, 소재현 전우 안식구
노영규 전우 안식구.
이런 모임을 위하여 오동현 총무는 수개월 전부터 장소 물색과 더불어 목포 압해도에 사는 친구가 섬에서 방목하여 기르던 염소를 손수 하루 휴가까지 내면서 현지 조달을 하여 전우들을 위한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투혼이 보여 주었다. 군 복무 시절 같으면 사단장 표창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데 6중대 전우들 이름으로 마음의 표창장을 드립니다.
더욱 이날 모임을 가지는데 장소와 먹을거리 요리를 책임졌던 정현구 전우의 공로가 있었음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임장소가 있는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취사도구를 손수 집에서 다 준비하는 번거로음을 마다하지 않고 애를 써 주었음을 이 글을 통하여 모임에 참석했던 모든 분들의 이름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이 일요일 아침에 경남 진주에서 근무하는 아들 면회를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일 전우들을 위해 전날에 남겨진 염소요리와 더불어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놓고 가는 그런 가슴 뭉쿵한 전우의 수고에 더 이상 무어라 고맙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야 할지 소설가인 필자도 소설같은 현실을 글로 옮기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날의 모임을 영원한 추억이자 기록으로 남기고자 청성정우회 카페 대문을 빌려 현수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모임이 있었는데 현수막 하나만으로도 청성전우회가 더없이 빛나보였고 흐뭇함을 더해 주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8.22일 오후 12시 30분 광양역에서 필자/이동근과 오동현 총무, 정현구 전우가 만나서 광양농협에서 행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으로 시작하여 백운산 입구에 위치한 백운산장에 전우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멀리서는 동두천에서 오후 7시에 도착한 소재현 전우와 그에 앞서 이상웅 전우가 울산에서 도착을 하여 정말 감회가 깊었습니다. 말이 동두천이지 한반도 남한 땅에서는 광양과는 끝과 끝인지라 하루 종일 달려와야 하는 거리임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날 모임에 가장 막내에 해당하는 이상웅 전우의 참가는 더욱더 이 모임이 장차 발전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그런 광경이었지요.

(울산에서 이상웅 전우의 도착을 반기는 오동현 총무 전우)
이미 수개 월 전부터 예정된 모임이었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행사를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마음에 앞서 부산에서 참석한 김옥근 전우는 한복을 입고 오는 길에 미리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 들려 조문을 하고 왔다는 말에 잠시나마 참석차 온 전우들 모두가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밤 12시가 되어 숙소가 있었던 광양읍에 나왔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자리를 만들어 그 당시 추억을 되살리며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 와중에 숙소를 마다하지 않고 숙소 지하 주차장에서 군대시절 야전에서 매복을 하던 심정으로 하루 밤을 보낸 이상웅 병장이 필자로 하여금 이글을 쓰게 만들었답니다. 다른 전우들은 모텔 안에서도 모기에 물려서 잠을 설쳤다는데 이상웅 전우는 모기가 미리 겁을 먹었는데 한 놈도 얼씬은 못했는지 멀쩡했습니다.
필자는 직접 같이 근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이야기는 이미 경험을 했는지라 마치 내가 같이 근무를 했다는 착각을 했을 정도로 군대 이야기는 같은 내용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도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 언제나 새롭고 흥미 진지한 것은 군대를 안 갔 다 온 방위나 여자들은 별나라 이야기로밖에 안 들릴 것입니다.
이날 단연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는 김옥근 전우의 무용담인데 당시 대대장도 김옥근이를 모르면 군대가 아닐 정도로 사고무친 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래도 아무런 변고 없이 전역을 하여 오늘날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옛 전우들과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얼마나 선배가 하나님 같이 생각되었던 시절이었으면 25년이 지나 만난 선배 전우들에게 계급장 떼고 야자타임(막말로 서로 맞먹는 시간으로 선후배 전우들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일종의 군대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 10여분 정도 선후배 장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대화를 해 보는 군대문화의 일종인데 필자가 근무하던 80년대 전후는 상상도 못했음. 오늘날 군대나 있을 법한 이야기 인데 이상웅 전우가 들고 나왔음.)을 하자고 김옥근 전우에게 이상웅 전우가 신청을 해도 털끝만큼도 안 된다는 김 옥근 전우의 완고한 태도가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라고 합니다. ㅎㅎㅎ
또한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노영규 전우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을 해서 공무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관 진급을 했던지라 함께 기뻐했고 축하를 해 주었답니다.

(사무관 진급을 한 노영규 전우와 그의 아내... 노래 실력이 수준급 이상 이었지요.)
말이 사무관이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을 해서 십중팔구는 주사로 정년퇴직이 대다수 인데 군대로 말하자면 육균대위에서 영관급으로 진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못해 더 나아가 대령에서 별을 달고 장군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축하할 일이었답니다. 필자는 젊은 시절 행정고시를 통해 수년만에 이루고자 했던 그 사무관을 일평생 공직생활을 통해 이루었다는 그 자체가 뜻 깊은 영광이 아닐는지요? 공직생활을 성실하게 수행한 결과이지요.
그 외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자영업이다 회사 생활에 충실했다는 전우들의 생활상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우리 청성 전우들만이 느끼는 자부심 같은 것을 작가린 제가 글로 아니 옮길 수가 없었지요.
그런 가운데 송범영 소대장님의 카리스마 넘치던 그 시설 소대장의 위엄과 그 이면에 소대원들을 아껴주던 큰형과 같은 마음씨가 그를 다시 찾게 만들었고 소모임이지만 청성전우회에서 유일하게 소대 내지는 중대모임이 1년에 두. 세 번 모일 수 있는 그런 밑거름이 된 것이지요. 타 소대원이었던 필자가 그래서 더욱더 기를 쓰고 6중대 모임으로 발전시키는 의미에서 참석을 했던 것입니다.
더 없이 할 말이 많지만은 그냥 여기서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사진속의 분위기로 그 날의 감동을 느끼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되기에 말입니다.

(밤 12시가 되도록 일어날 줄을 모르고 지난날 군 복무 시절 추억으로 끝이 없었답니다.)
23일 오후까지 서너 명은 자리를 못 뜨고 억지로 해산을 하자고 필자가 종용하여 자리를 일어섰는데 정말 앞으로 제가 서울지부장 임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것을 몸소 배울 수 있었던 그런 자리였습니다.
우리 6중대 모임은 모일 때마다 특별한 형식이나 부담이 없이 기본 회비를 5만원으로 하고 그 이상은 여유가 있는 전우들이 자발적인 협조로 재정이 충당되는데 더 이상 총무가 재정으로 인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두가 뜨거운 성원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장차 서울지부도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감이랄까? 그런 서울지부가 되도록 앞서 제가 속해있는 19연대 6중대 모임을 벤치마킹에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 광주 윤 지부장님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백운산 등산일정에 19연대 6중대 모임 소식을 듣고 포도와 더불어 그의 친구 분이 함께 참석하여 사진촬영을 해서 카페에 올려주시는 성의와 오랜 시간 함께 자리를 같이해 주셨습니다.
다시 만날때까지 송범영 소대장님을 비롯해 이번 참석한 전우들 모두와 마음은 있었으나 여의치 않아 참석치 못했던 전우들에게도 한 마음으로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과 가정에 평화가 있가를 기원합니다.
또한 이 글을 읽어주신 청성전우회 모든 선후배 전우님들에게도 감사를 돌립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필자가 장차 서울지부장 임무 수행에 앞서 마음을 되새기자 자원해서 모임에 대한 후기로 남겨보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는 서울지부장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2009.8.25. 이동근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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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며칠전 일이지만 이십오륙년만에 만난 전우들과 기쁨의 눈물 등 아직도 감동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작가님의 후행기를 읽고나니 다시 살아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영원한 추억이자 기념으로 문숭리 카페에도 남겨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싶어 이 행복을 우리 카페회원들과 나누어 보는 것이라네. 그대 있음에 행복한 나날 들이었다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