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삼으심 성경본문: 엡 1:1~6.
우리는 에베소서 1:1~2절의 내용을 2회에 걸쳐 통상적인 편지들의 인사와는 다른 부분을 배웠습니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사는 어떻게 합니까?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사는‘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였습니다. 밤새 사고들이 많았고, 먹는 문제가 옛날에는 컷 습니다. 초근목피로 배고 푼 서러움을 달래야 했고, 하루에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두끼로 때우는 일이 일수였습니다. 요즈음은 세끼 다섯 끼도 먹습니다.
영어로 하는 인사는‘굿 모닝(Good morning)’입니다. 영국은 날씨가 좋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영어인사는 전부 날씨와 관계가 있습니다(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night).
일본사람의 인사는 오하요우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 오전), 곤 니찌와(ごんにちは- 오후), 곤 방와(ごんばんは-저녁)입니다.
브라질 사람의 인사는 봉지아(Bom dia- 안녕하세요 - 아침 인사), 보아 따르지(Boa tarde- 점심 인사, 보아 노이찌(Boa noite- 저녁 인사)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인사말은 한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인사는 세상과 구별된 신령한 사회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도 세상적인 명함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구원계시와 연관해서 자신의 신분과 사역을 소개하였습니다. 더욱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편지를 받는 모든 주의 백성들과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신실한 자들에게”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열망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 하신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근원이신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주목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한다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들의 문제보다는 하나님이 더 커보였습니다.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과 교회지체들을 소개한 바울은 이제는 교회를 하나님과 연관시킴으로 그 영광스러움의 극치를 더하고 있습니다(엡 5:27).
사도바울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현재의 어떤 좋은 것이 있다면 모두 다 그 분의 복주심이며, 그 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넉넉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믿음이 성숙한 자도 있고, 초보에 머물러 있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는데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자들도 있고, 아직도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함으로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진리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자녀 삼으심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을 이루신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벅찬 감격을 에베소서 1:3절 이하에서 충분히 대할 수 있습니다. 우선 흐르는 문맥을 살펴보면 3~6절까지의 구조를 살핌으로 복잡하게 보이는 문장을 단순하게 정리해봅시다.
첫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3절,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여 4절상반절 부분인 “우리를 택하사”까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강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복은 세상에 속하여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 복이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부터 택정하심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은 창세전부터 우리가 전혀 알지도 못한 때부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창설하시 전에 선택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4절,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를 자들을 미리 선택하시고 작정하셨다는 “선택교리”를 확정하는 본문입니다. 선택교리는 사변적인 교훈이 아니고 성경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선택의 확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분명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유기와 선택을 말입니다. 루터파에서는 유기는 별로 말하지 않고 선택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교회는 선택과 유기 두 가지를 확실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선택이 이루어졌느냐?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중보자로 세우실 때 선택하셨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를 도입해서 말씀드리면 창제 전에 성삼위일체하나님께서 구원협약을 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첫 부분의 강조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나를“선택”하셨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예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1:4절하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부터 5절 상반절인“우리를 예정하사”까지입니다. 곧 하늘의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나를 택하신 하나님은, 또한 나를 거룩한 백성 삼으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곧 아담의 후손으로 반역죄를 범한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도 거룩할 수 없는데, 그분 앞에서 어떻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선상에서 피흘려주신 구원의 은혜뿐입니다. 정리하면,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사역을 믿는 자들만 예정하시고 구원하십니다(행 16:31).
셋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신 근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의 길은(요 14:6),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대신 피흘려주신 속죄의 은혜입니다(마 20:28, 행 20:28, 요일 5:8).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아담 안에서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3~ 5절 상반 절까지의 내용이 결국은 5절 하 반절을 목표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루신 역사의 구체적인 결과는“하나님의 자녀”됨입니다(요 1:12). 그리고 6절,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심의 목적을 밝힙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놀라운 복음을 전함으로 이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다 들어왔습니다.
본문은 그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도록 함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를 덧입었다고 한다면, 그를 향한 찬양이 넘치는 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이런 긴 문장을 단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자녀들로 삼으신 것은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 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됨의 복을 얻은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출 15, 신 32장, 시 150편, 계 4~5). 에베소서 1:3절, “찬송하리로다.”이런 심정이 되는 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엡 1:6,12,14). 우리 자신을 세상에서의 환경과 연관하여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 번 백번 실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관해서 살필 수 있다면 만사를 다 그분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갈 상속자입니다. 우리다함께 일어나 영광스러운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친히 이루어 가시는 위대하신 성삼위일체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시다. 아멘